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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여행에 대해 아직 친숙하지 않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환경친화적인 여행자가 되는 가장 쉽고도 중요한 방법들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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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그만 가자!
진주 지음 / 북극곰 / 2009년 10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09년 10월 2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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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그리고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  

난 어떤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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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심리학-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옌스 푀르스터 지음, 장혜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5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09년 10월 2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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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간 2008년 6월 4일~6월 8일 / 독서번호 957

손석춘 지음 / 시대의창 펴냄 (2007년)

“저널리즘의 목적은 사람들이 자유로워지고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실 미디어 폭증시대에 저널리즘의 존재가 더욱 절실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만일 존재원칙이 흔들릴 때, 우리는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게 될 수밖에 없으며, 바로 그 점에서 그것을 저널리즘의 실체적 위기로 규정할 수 있다. 저널리즘의 존재원칙을 분석하는 잣대나 기준은 결국 철학의 문제, 윤리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략)
한국 저널리즘은 산업의 위기나 정파성의 위기 이전에 근본적으로 저널리즘의 존재원칙과 기본윤리를 스스로 부정하는 실체적 위기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 42p

경제성장이 국민경제의 내적 연관 없이 수출 중심의 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노사 사이에 힘의 균형도 사쪽으로 치우쳐 있기에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대기업의 수출 경제는 전혀 위기가 아닌 가운데 노동자, 농민, 빈민들의 삶은 위기를 맞고 있는 게 경제위기의 핵심이다.
따라서 문제는 ‘경제성장’이 아니라, ‘어떤 경제성장’인가에 있다. 뭉뚱거려 ‘경제위기’가 아니라 ‘누구의 경제위기인가’를 물어야 옳은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언론은 시종일관 경제위기와 함께 경제성장을 부각해왔고, 때로는 대표적인 수출 기업마저 마구 흔드는 자가당착을 서슴지 않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 80p

삼성경제연구소는 2005년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통일 후 10년 간 북쪽 주민의 기초생활 보장을 위한 447조 원, 산업화 지원금 99조 원을 포함해 모두 546조 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것이 앞으로 남쪽 경제가 도약하는 데 심각한 부담이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이 논리는 그대로 분단현상 유지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남쪽의 정당과 언론은 통일비용론에 대해 아무런 비판적 분석도 없고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분단의 현상유지를 원하거나 흡수통일을 갈망하는 세력에게 남북공동선언이 명시한 민족경제 균형발전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른바 ‘대북 퍼주기’를 들먹이며 남북 경협을 비난하는 논리의 밑바닥에는 현상유지론이 짙게 깔려있다.
더 큰 문제는 퍼주기론에 반론을 펴나가는 쪽도 햇볕론의 논리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거나 “동족을 돕자”는 인도주의적 지원을 강조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 95p

대학에서 언론학과의 저널리즘 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교양과목으로서 미디어 교육이다. 미디어 교육은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들어야 할 전공 필수과목이 되어야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독해가 없다면 민주시민으로서 기본상식을 결여했다고 판단해야 옳다. - 138p

만일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저널리즘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알지 못하게 되거나 그에 대해 오판을 내릴 가능성이 높도록 일방적 정보만 제공받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발전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 143p

미디어 개혁 과정은 미디어가 깔아놓은 허위의식을 사회구성원 스스로 극복해나가는 과정인 동시에, 새로운 사회의 주체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이다. 새로운 미디어가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고,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미디어를 영글어 갈 터이다. - 1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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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간 2008년 5월 24일~5월 27일 / 독서번호 952


정혜신 외 / 한겨레출판 펴냄 (2006년)


제가 모호한 여러 가지 관점들을 얘기했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에 대해서는 모호함을 참고 이리저리 열어놓고 생각하자는 거예요. 사람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모호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사람들을 보면서 깨달은, 완벽하게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 전제를 여러분들한테 말씀드릴께요.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건 오류가 전혀 없다든지 이건 100퍼센트 확신한다고 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이 말만은 제가 자신 있게 할 수 있어요.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다.” 그러니까 쫄지 말자. 열어놓고 보자. 완벽하게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 것 하나가 저는 이 명제라고 생각해요.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을 열고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생각한다면, 거짓을 좀 더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 드리고 싶네요.
- 정혜신, 38p



결국 과학을 한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하고, 그렇게 해서 찾아낸 중요성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제기하는 것이 과학사회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반드시 과학사회학자나 그와 연관된 학문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이제는 과학과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 김동광, 63p


우리 사회에서 과학주의가 반성되지 않는 것도 큰 문제지만, 한편으로 생명에 대한 인식이 너무 기계화되고 분절화되어 있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생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분절화되어 있다는 말은 생명이라는 것을 오로지 개체 중심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중략)
인간이 살아가면서 하루에 의존하는 생물들의 수가 수만 종에 이른다는 분석이 생태학자들에 의해서 나오기도 하는데, 그처럼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거대한 생태계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죠.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자신을, 또 사회와 자연 같은 부분들을 쉽게 분리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 김동광, 77p


그렇지만 줄기세포 연구처럼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는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서는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시켜서 사회적 합의를 얻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만 다시 똑같은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겠지요. 저는 지금 상태에서 그냥 지나간다면 또 다른 제2, 제3의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지금 아무도 반성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어떤 제도도 만들지 않고 있는데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또 한 번 왁자하게 떠들다 끝나버리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로서는 그런 부분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중략)
분자생물학적인 부분들이 너무 과장돼 있다고도 보는 것이죠. 지금은 마치 분자적 관점을 통해서만 생명을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이지만, 그건 하나의 패러다임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까 얘기한 생명에 대한 조작적 관점이라든가 등등 많은 것들을 통해서, 그건 하나의 패러다임일 뿐이지 결코 그것이 다른 접근들에 비해서 훨씬 우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 김동광, 95p


백범 말씀 중에 “천길 벼랑에 올라가는 거야 장부라고 할 수 있느냐. 거기서 자기를 내던지는 게 장부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자기가 믿던 가치를 버리지 않으면 죽게 생겼으니까 그것을 바꿔나가는 과정은 훌륭한 것이라고 봅니다. 즉 모든 역사적인 부분에는 진보적인 성격과 한계가 함께 있을 수 있는데, 그 사람이 가진 진짜 진보성이라는 것은 그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성찰하고 그럼으로써 어떻게 변화시켜 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한홍구, 128p


원래 인간이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존재고, 때로는 자기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을 남이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조차 모를 때가 많은 존재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속이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가 거짓말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자기도 모를 때가 많지요. - 김두식, 170~171p


지금은 한국 교회가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는 전통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만, 1938년에 우리나라 대표적인 교단인 장로교 총회에서 이런 결의를 했습니다. “신사는 종교가 아니며 기독교의 교리에 위반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 참배가 애국적인 국가의식임을 자각하여, 앞으로도 신사 참배를 열심히 하자. 황국신민으로서 적성을 다하자.” 신사 참배가 종교의식이 아니라 애국심을 표현하는 한 방법일 뿐이라고 장로교 총회에서 결의하자, 그 뒤를 위어서 감리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독교 종파들이 모두 신사 참배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냥 참여한 정도가 아니라 일본까지 가서 신사 참배를 하기도 하고, 안 하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권유해서 함께 하기도 했어요. 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주기철 목사님을 비롯한 아주 소수의 기독교 지도자들만이 당시에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 순교했습니다. - 김두식, 172p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사람들이에요. 거짓말도 많이 하죠. 사회 시스템 전체가 거짓말을 권하는 그런 면도 있어요. 다 같이 거짓말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그런 면이 있는데, 그런 불완전성 속에서 불확실한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늘 마음 한편이 불안하다는 거죠. - 김두식, 185p


서구 지성사회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아우슈비츠와 굴락 얘기를 계속 해요. 그 이유는 그게 무슨 자랑스러운 역사라서가 아니라,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러는 거죠. 따라서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복원한다고 해서 누구를 다시 감옥에 집어넣고 그런 방법만 있는 게 아닙니다. 잘못된 역사, 잘못된 기억에 대해서는 계속 애기해야 합니다. 계속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겁니다. - 김두식, 188p


북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북에 대해서 다 비판적이지 않아요. 저는 북쪽과 화해하고 용서함으로써 교류를 강화하는 것이 통합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북에 대한 환상 또한 안 가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북은 모순투성이인 사회이면서 좋은 사회이기도 합니다. 남한도 비인간적인 사회이면서 또 좋은 사회이기도 하죠. 양면이 다 있어요. 따라서 같이 고민하고 같이 노력해서 공존을 모색하는 게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형덕, 220~221p


우리가 새롭게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안다는 것은 ‘알게 된 새로운 자기 몸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알기 이전의 몸이 있고 알고 난 뒤의 몸이 있는데, 몸이 변했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비가 알로 돌아가지 못하듯이……. - 정희진, 266p


저는 모든 언어는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언어는 말해지는 순간, 이미 번역됩니다. 화자와 청자가 말하는 의미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완벽한 의사소통은 군대에서나 가능합니다. 그러나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요. 대화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전달될 때는 이미 다른 의미가 됩니다.
...(중략)
저는 어떤 면에서 우리가 하는 영어를 미국 사람이 못 알아들을 때, 저항이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번역 불가능성이 바로 저항의 가능성입니다. 다시 말해, 저는 모든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즉 권력관계의 전제는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은 무지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의사소통이 돼야 권력이 작동하죠. - 정희진, 268~269p



사람들이 짝퉁을 모방이라고 보는데, 그것은 위계적인 발상입니다. 원래 원본, 기원, 순종, 본질 같은 건 없어요. 원본이 있는 게 아니라, 원본을 지향하는 욕망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본이나 짝퉁 모두가 지향하는 바를 모방하는 거죠. - 정희진, 270p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포스터 중에, ‘인권은 배려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것이 있어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은 배려가 아니라 경합하는 가치예요. 각축하고 투쟁하는 가치입니다. 누가 누구를 배려합니까? 흑인이 백인을 배려해야 돼요? 배려하는 말에는 이미 주체와 대상, 주체와 타자라는 구분이 있습니다. 남성이 여성을 ‘배려’한다 또는 ‘보호’한다는 것도 이상한 말이잖아요. 가정폭력을 보세요. 여자들은 맞으면서 보호받고 있잖아요.(청중 웃음) 보호라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굉장히 문제적인 말이에요. - 정희진, 273p


첫 번째로 대화를 나누는 사회적 구성원들, 곧 청자와 화자는 계급이라든가 성별, 인종, 나이, 성적 정체성 등 다양한 사회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둘 사이에 완벽히 번역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항의 차원에서 다양한 말을 생산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언어는 서구 백인 이성애자 젊은 남성에 의해서 구성된 말이지,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 입장에서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는 거죠. 동성애자 시각에서 하는 말과 여성 시각에서 하는 말, 장애인 시각에서 하는 말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릅니다. - 정희진, 275p


현실과 갈등하지 않거나, 투쟁하지 않거나, 문제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지배 이데올로기와 자기를 일치시키기 때문에 의견이 없을 수밖에 없고, 감정적이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감정적’이라는 말과 ‘정치의식이 있다’는 말을 같은 뜻으로 씁니다. 현실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무슨 감정을 느끼겠어요? 저는 ‘쿨한’ 사람하고는 말을 안 섞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감정적으로 세련된 사람을 싫어합니다. - 정희진, 277p


저항은 소통과 협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너의 타자성을 사랑한다’, ‘너의 결핍을 사랑한다’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사회적 약자들 중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깨달은 사람들은 고통당하고 억압받아왔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섹시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여성주의자나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 지역 차별이나 학력 차별에 분노하는 사람에게는 보입니다. 1인치를 더 본다는 텔레비전 광고처럼요. 다시 말해, 너의 결핍이 나의 대안이라거나, 너의 고통이 내게 지혜와 통찰을 준다거나, 너보다 내가 더 희생자라는 식으로 불행을 경쟁하는 소통방식, 즉 결핍을 부정하고 메우려는 생각보다는, 너의 결핍과 나의 결핍을 우리 자신의 일부로 긍정하고, 서로의 타자성과 연대하고 소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자 또는 다른 언어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 정희진, 283p



어차피 현재의 제도교육에서는 99.9퍼센트가 ‘실패’합니다. 제도교육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0.1 퍼센트 밖에 안 돼요. 그리고 0.1퍼센트로 성공해서 이른바 ‘명문 대학’에 갔다고 칩시다. 거기서 극소수만이 대기업에 취업합니다. 하지만 대기업에 들어가 봤자 10년 후면 명퇴 소리가 나옵니다. 지금은 영원한 정규직이 없습니다. 저는 진로를 고민하는 대학생들한테 “그렇게 살고 싶으세요?”라고 묻습니다. 다른 삶의 양식을 모색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과 기준으로 사는 사회에서는 개인도 사회도 불행합니다. 지금 교육제도에서는, ‘성공’한 극소수도 ‘실패’한 사람도 모두 불행합니다. 제 주변에 흔히 말하는 학벌 좋고 출세한 사람 많거든요. 그런데 행복한 사람 하나도 없어요. 다 죽을 만큼 바쁘거나 스트레스 최고인 상태예요. 행복이 성적순이라는 것은, 그것을 욕망하는 사람이나 그게 전부인 사람의 관점일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권력이나 출세에 인생 저당 잡힐 필요가 없다. 그래 봤자다, 다르게 살아야 한다, 궤도 밖으로 탈출하자, 그래서 왕따 당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사회를 왕따 시키자. - 정희진, 295p



인도 어린아이들의 47퍼센트가 평균 체중에 미달합니다. 또 가임 연령대에 속하는 여성들의 48퍼센트가 평균 체중에 미달하거나 심각한 빈혈에 시달려서 아이들을 낳더라도 제대로 영양을 공급할 수가 없습니다. 이 수치는 수년 동안의 내전과 인종 갈등, 가뭄에 시달리던 아프리카 사하라 지역보다도 더 심각한 수치입니다. - 프라폴 비드와이, 315p


기본적으로 프랑스와 한국, 인도, 남미, 미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본질은 기업이 주도한 세계화라는 것입니다. 기업이 주도한 세계화가 각 국가들의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국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용률은 내려가고 각종 공공요금들은 올라가며, 어느 나라에서나 동일하게 지역간 그리고 계급간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 프라폴 비드와이, 325p


민주주의라는 것이 사람들이 그저 몇 년에 한 번씩 투표장에 가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 뽑힌 사람들이 자신들을 뽑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게 하는 참여의 메커니즘으로 계속 돌아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실제로 그들이 말하는 세계화보다 더 현실적인 대안적 정책을 도출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프라폴 비드와이, 3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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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간 2008년 5월 21일~ 5월 23일 / 독서번호 951

전재호 지음 / 책세상 (2000년)

반동적 근대주의란 19세기 말 이래 독일에서 진행된 근대화 과정을 지칭하는 용어로, 역사학자인 제프리 허프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파시즘의 반자유주의적이고 반계몽주의적 성격과 기술적 근대성 사이의 모순을 찾다가 독일의 전통적인 혼과 서구의 기술을 접합시키려 했던 일단의 사상가와 기술자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19세기 말엽부터 비합리적인 독일의 절대정신과 기술적 근대성을 적절히 종합해냈고 이는 반자본주의적이고 비합리적인 파시즘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허프에 따르면 반동적 근대주의는 1960년대 제3세계 국가에서 기술과 금융에 대한 광신의 형태로 다시 등장했다. 반동적 근대주의는 19세기 말 독일과 마찬가지로 근대성을 기술만으로 한정시킨 저발전국가에서 등장했으며, 이는 민족주의적 열정과 결합되었다.
- 15p

우선 박정권의 경제개발계획은 당시 한국의 열악한 경제적 조건, 군사 쿠데타로 인한 정통성 부재를 경제 성장으로 만회하려는 욕구, 경제적으로 우월한 북한을 따라잡으려는 욕구 그리고 자립적인 한국을 건설하려는 미국의 대한정책이 결합되어 등장한 것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경제정책에 대한 박정권의 의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박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이미 민주당 정권에 의해 거의 완성된 것이었다. 제1차 계획을 전면적인 수출 주도형 산업화로 수정시키고, 당시 한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던 자금을 차관 형태로 제공해주었으며, 한국제 상품의 최대 수출시장을 제공했던 미국의 역할을 고려한다면, 당시의 경제 성장이 결코 박정권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세계 최장시간의 노동과 최악의 노동조건에 시달린 노동자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한국의 경제 성장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측면을 간과한 채 경제 성장의 공을 박정권에게만 돌리는 것은 명백한 역사적 왜곡이다.

뿐만 아니라, 박정권이 70년대 초반부터 추진하기 시작한 중화학공업화정책과 새마을 운동은 이 시기의 대내외적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등장한 정책이지만, 경제 논리에 의해 진행되지 않고 유신체제의 정당화 및 공고화라는 정치 논리에 의해 좌우됨으로써 정책의 방향과 성격이 변질되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 84~85p

국가주의 담론이 등장한 60년대 말부터 박정권은 본격적으로 전통문화 부문의 정책을 강화해나갔다. 이는 자신이 한민족의 역사적 정통성-민족사적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에게 정권을 중심으로 단합해야 한다는 국가주의를 유포하려는 의도에서 출현한 것이었다. - 89p

 

결국 박정권은 60년대 말부터 호국선현 및 국방유적 정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자주국방, 총력안보, 국민총화로 대표되는 군사주의, 국가주의 및 반공주의를 주입시키려 했으며, 선현유적 보수 등을 통해 자신들이 민족적 정통성을 갖고 있음을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 94p

 

박정권은 자신들의 경제 발전의 성공을 한민족의 새로운 ‘황금시대’로 격상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한글 창제가 ‘국민 주체화의 노력’이며, 우리 민족은 “훌륭한 내 나라의 글자를 가진 문화민족……우수한 민족”이라고 지적한 데서 드러나듯이, 박정권은 세종대왕 및 한글 강조를 통해 자신이 ‘민족 주체성’을 세운 정권임을 과시하려 했다. 게다가 이를 통해 ‘민족문화의 정수’인 한글의 전용화를 결정한 박정권이야말로 진정한 민족문화의 계승자라는 논리를 전파하려는 의도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여기에는 군사 정권의 딱딱한 이미지를 세종대왕의 문화 이미지로 순치시키려는 의도도 개입되어 있었다. - 101p

 

박정권은 한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복원하고 부활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의적이고 선택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군사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호국유적을 집중 복원한 것이나 국가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충효사상과 같은 봉건적인 사고를 부활시킨 사례들은 그들의 사고에 내재한 반동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 107p

박정권은 북한 공산당의 남침 야욕을 방지하기 위해, 다른 말로 국가 안보를 위해 경제 발전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국민들의 기본권 침해를 정당화 시켰다. 그들에게는 국가 안보와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민주주의도, 노동자의 권익도 희생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정당한 것은 아니다”라는 한나 아렌트의 말대로, 박정희의 독재는 정당화될 수 있지만, 결코 정당한 것은 아니었다.
- 118~119p

단적으로 박정권은 자신에게 저항하는 자의 신체뿐 아니라 정신에도 고통을 가해서 자신의 개인적 의지를 관철시켰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시대의 절대군주였다. 그렇기 때문에 박정권의 근대화를 반동적 근대화로 지칭할 수 있는 것이다. - 123p

홉스봄은 1984년 《전통의 발명》을 편집하면서 ‘발명된 전통’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했고, 많은 역사학자들은 ‘역사의 이용’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전자는 일반적으로 오래된 것으로 간주되는 전통들 대부분이 정치, 경제, 사회적 이유에 의해 아주 최근에 발명된 것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증명하는 반면, 후자는 현재적 필요에 따라 역사가 어떻게 새롭게 해석되면서 변형되는가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 1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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