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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 - 꼭 이루고 싶은 자신과의 약속
강창균.유영만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1월
평점 :
어느 순간부터 ‘버킷리스트’란 단어가 꽤 알려지기 시작한 것 같다. 할리우드 영화나 국내 드라마로도 몇 번 소개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단 죽음이라는 꽤 묵직하고도 또한 상품성이 있는 주제가 중심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들은 어디선가 많이 본 콘셉트로(마시멜로 이야기라고 굳이 말은 하지 않겠다) 줄거리를 엮었고, 거기에 적당히 많은 일화와 예시들을 포함시켜 나름 괜찮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미 자기계발서를 여러 권 펴낸 이들답게 깔끔하게 또 하나의 자기 계발서를 만들어냈다.
이미 성공한 호텔리어와 이제 갓 요리사의 꿈을 안고 입사한 청년의 우연을 가장한 의도된 만남. 그리고 만남이 이어질수록 점차 ‘꿈을 가진 인간’이 되어가는 청년의 성장기. 아름다운 스토리다.
하지만 구구절절하고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들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으로 계속 불편함을 느끼며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설명하기 참 애매한 듯했다. 하지만 하나의 이미지가 계속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케이블 티브이에서 거의 매일 24시간 반복적으로 틀어주는 ‘광고’였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죽음을 이유로 협박을 일삼으며, 또는 아직 살아계신 부모님들의 죽음을 하나의 커다란 짐으로 생각게 하며, 돈을 뜯어내는 보험사들의 무지막지한 광고. 또 상조회사들의 광고. 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광고들을 떠올리게 되었을까.
버킷리스트는 누구나 알다시피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의 목록이다. 하지만 어쩐지 죽음을 앞둔 이가 그동안 하지 못했지만,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하긴 그게 더 애절하고 상품이 될 테니.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이 사소한 것일 지라도 하나하나 이뤄가는 행복을 맛보자는 것. 절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적극 장려할 일이다.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물론 여기에서 의미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누가 규정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보내는 것보다 무언가 성취해 나가는 기쁨을 누리며 산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일 것이니.
하지만 책은 이렇게 말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의 버킷리스트는 지극히 소박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대는 아직 젊고 또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가. 지금부터 목록을 정해 하나씩 실천하라. 작은 것이라도 성취감을 느껴라. 그렇다면 당신이 인생은 어제보다 분명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점차 자기계발서의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불가능은 없다고 일단 도전하면 한 만큼 얻는 것이 생긴다고. 정주영 회장의 예화를 들며, 불가능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바보라고 규정짓는다. 맙소사. 여기서부터 이제 버킷리스트는 사라지게 된다.
게다가 잔인하게도 생활고에 못 이겨 자살한 한 어머니의 일화를 소개하며 ‘스스로 삶을 마감한 그녀의 세 가지 소원’이란 제목으로 그대로 옮긴다. 내가 보기엔 잘못 돌아가고 있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희생양일 뿐인 그녀를 이용해, 살아있는 ‘잉여인간’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맙소사.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며, 자신의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수많은 책들. 그 책 중에 이 책은 차별성을 끝내 갖지 못했다. 노력하면 된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신화를 여지없이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 책. 버킷리스트란 이름의 자기 구속 노트, 혹은 잔인한 데스노트를 만들지나 않을지 걱정될 따름이다.
자살이 대한민국 성인의 사망률 4위를 차지하고, 경제적 궁핍으로 결혼은커녕, 사랑마저 포기해야 하는 세대들이 늘고 있는 지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 매사에 최선을 다하라’고 강요하는 사회. 당최 사회가 만들어준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사회에서 하라는 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도, 결국 남는 건 극도의 불안 뿐인 삶.
지금의 삶, 미래도 모자라 이제는 죽음까지 협박의 수단으로 삼아, 개인을 착취하고, 또한 스스로 자각하지도 못한 채 착취를 강요하는 사회. 온전한 사회는 아니다. 아니, 지극히 미쳐버린 사회다.
저자들의 의도가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개인은 어떻게 하라고 시켜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 다르듯, 각자가 할 수 있는 능력, 깜냥도 분명 한정적이고 다를 수밖에 없다. 이걸 말하면 자기계발서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런 책들은 언제나 공허하게 아름답다.
‘꼭 이루고 싶은 자신과의 약속’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건 각자의 능력으로 남겨두자. 굳이 손으로 꾹꾹 눌러 쓰지 않아도 된다. 매일 매일 자신의 목표를 확인하며, 하루의 성과를 기록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도 너무 힘들고 바쁜 삶이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그것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읽어도 난 변할 것 같지 않다. 버킷리스트를 적는 것도 좋지만, 일단 지금은 읽고 싶은 책들, 그리고 한 번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적겠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으면 금상첨화~!
삶은 숙제가 아니다. 그렇게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