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공간 - 우리시대 지성 11인의 삶과 시공간 이야기
황인숙 외 지음, 고종석 엮음 / 개마고원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 시대 지성 11인의 삶과 시공간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평소 좋아하던 사람도 있고,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었다. 각자 자신만의 삶이 있듯 자신만의 공간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편하게 읽히면서도 눈에 오롯이 들어오는 문장들이 여럿 보인다. 알뜰한 책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황인숙 시인의 글을 통해서는 고양이를 통한 그녀의 고독과 사랑, 연민과 이기심을 엿볼 수 있다. 누구나 다 그러하다. 자신만의 영역을 지키려, 어찌 보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조그만 무엇을 지키려 잔인해질 때가 있다. 그 잔인함을 추스르고 다독일 수 있는 사람이 현명하고, 또한 아름다운 사람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

홍세화 님의 글은 내 마음과 일견 통하는 부분이 많아 귀중했다. 물론 난 해외에서 타의에 의한 망명 생활을 한 적도, 공동묘지에서 가까운 곳에서 산적도 없지만 죽은 이들에 대한 죄의식과 분노, 체념에 파묻혀 산 기억이 있다. 홍세화 님이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혹은 받아들여 왔는가. 나에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진중권의 글은 키득키득 웃으면서 읽었다. 저자 역시 웃어주길 바랐으리라. 그 의도에 충분히 보답해주었다. 프라모델을 만들어 망원경으로 살펴보는 스킬은 처음 배웠다. 반드시 해보리라 생각하고 있다. 사실 아직도 집에는 여기저기 탱크, 비행기, 그리고 건담들이 우뚝 제자리를 지키며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들에게 먼지를 털어주는 것만큼, 또 다른 활기와 의미를 넣어주리라.

조선희의 경포바다에 비견하는 내 바다는 강원도의 속초, 고성의 바다들이다 특히 속초시 동명동 앞 영금정이 있는 앞바다. 그곳은 내 어릴 적 모래사장에서 지금은 방파제와 금강산 관광,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으로 이미지가 바뀌어 있다. 그리고 고성의 송지호, 백도 해수욕장 역시 유년시절의 즐거움을 간직하고 있다. 백도에서였나. 부모님과 함께 놀러온 귀여운 소녀에게 용기 있게 말을 걸어, 아주 잠깐이지만 사귀었던 기억도 있다. 고향은 서울, 본적은 수원, 그러나 내 바다는 동해였다.

이우일처럼 붙박이장이 있는 집에서 살아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의 붙박이장 역할을 했던 것이 나에겐 다락방이었다. 지금도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 다락방에는 채 발굴되지 않은 수많은 보물들이 빛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보물섬, 아이큐점프와 같은 만화책에서부터 이젠 발사가 가능할지 의심스러운 BB Gun까지….

나희덕 시인의 글은 글쎄…. 방에 대한 근본적인 내 인식은 무엇이었나 생각하게 해주었다. 맨 처음 나만의 방을 가지게 된 중학교 시절. 단지 방이 재래식 화장실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며칠 동안 이유 없는 공포감에 잠 못 들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그 방과 재래식 화장실. 지금은 내 방이 아닌 어머니와 아버지의 휴게실 정도의 역할을 하는 그 방은 이제, 공포감보다는 부모님에 대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죄스러움, 슬픔, 추억 등으로….

김정환의 글은 일단 읽기 상당히 어려웠다는 느낌이다. 내 짧은 지적 능력으로 문자 이상의 심오한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아예 못 알아먹었다고 하면 창피한 일이고, 어느 정도 글쓴이의 의도는 파악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은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아! 난 언제 이런 어려워 보이는 글을 쓸 수 있단 말이냐.

이밖에도 김연수 작가, 김명근 한의사, 공선옥 작가, 강금실 변호사 등의 글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공선옥 작가는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 그리고 김명근 한의사는 착한 사람일 것이라는 짐작. 김연수 작가는? 관찰력이 뛰어난 주변인 정도? 이렇게 말하면 실례겠다.

그리고 강금실 변호사는 이미 그가 예전에 발표한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 반가웠다. 요즘은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고독을 즐기기 어려울 만큼 바쁘게 살고 있으리라는 짐작.

전체적으로 상당히 즐거운 엿보기였다. 스스로 내보인 것이니 그 이상의 이야기도 있겠지만, 일단 저자들이 보여준 것들만 본 것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고, 충분히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이젠 맥주를 찾을 시간. 그리고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다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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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09-10-26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진중권이 쓴 부분은 정말 재미있어요.

근데 다른 글들은, 저자들의 지명도에 비하면, 별루라는 생각이....

메틀키드 님도, 고성 의 바다를 좋아하는 군요. 올해 봄에 고성 속초에서 바다구경

실컷했는데...ㅎㅎ


메틀키드 2009-10-27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셨네요.^^ 동해는 어릴 적부터 많이 가서 좀 친근하죠. 다른 곳은 별로 가본 적도 없고...^^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한 번 가볼까 생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