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사춘기 - 명진 스님의 수행이야기
명진 스님 지음 / 이솔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찰의 운영도 당연히 수행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천도재나 제사가 기본이 되는 ‘제사종’, 관람료를 받아서 운영하는 ‘관람료종’, 입시기도 위주의 ‘입시종’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대한불교 조계종’으로 거듭나야 한다.”

 

명진 스님은 언제나 거침이 없다. 해야 할 말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시는 분이다. 때문에 적도 많고 지지층도 두껍다. 정말 운이 좋게도 스님을 여러 차례 뵐 기회가 있었고, 봉은사의 주지로 계실 때 일요법회를 참석해 스님의 법문도 들을 기회가 종종 있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으면, 정말 종교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스님이 살아온 인생, 그리고 앞으로의 나아갈 길을 담은 책은 소박하지만 가볍지 않은 울림을 준다. 마치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처박고 세상의 모든 불의를 외면하려 한 나의 어깨를 후려치는 죽비라고 할까.

 

젊은 수행 시절, 당대의 스승이신 성철 스님께 버릇없이 덤비기도 했던 명진 스님. 자신이 깨우쳤다고 느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신감에 넘쳤던 스님.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스님은 진정 깨우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 부처님의 길을 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더욱 뼈저리게 느끼셨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안다는 것은 무엇이고, 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느끼는 주체는 누구인지, 그 누구는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배설을 하는 그 놈은 과연 누구인지. 여기에 대한 명쾌한 답을 할 수 없다면 그 어떤 부귀영화도 한낱 거품에 불과하다는 사실. 스님은 지금도 끝없이 묻고 또 묻고 있다.

 

“다만 모를 뿐이다.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오직 모를 뿐이다. 그렇게 모름의 세계 속으로 끝없이 몰입을 해 가다 보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의 물거품이 전부 가라앉아 잔잔해진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의심 하나만 홀로 드러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알 수 없는 그놈이 밥을 먹고 알 수 없는 그놈이 잠이 들고 알 수 없는 그놈이 꿈을 꾼다. 허공같이 텅 비어져 알 수 없어진 그 자리, 오직 알 수 없는 그놈 하나만 남아서 알 수 없음과 내가 일체가 된 자리가 바로 진리의 바다에 직통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모든 앎이 끊어지고 오직 알 수 없는 그것만이 간단없이 이어지는 완벽한 비어짐의 자리에서 부처님은 별을 보았고 어느 조사 스님은 닭 우는 소리를 들었고 또 어느 조사 스님은 기왓장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스님의 어린 시절은 언뜻 너무나 불행해 보인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젊을 적엔 사랑하는 동생을 먼저 떠나보냈다. 하지만 스님은 바로 그 죽음이라는 스승을 통해 뜨겁게 삶을 성찰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곧은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언제나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눠온 스님. 봉은사 주지 소임을 맡을 당시 천일기도를 통해 수행 중심의 참 불교를 실천으로 보여주신 스님. 천일 중 단 하루,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 절 밖을 나섰던 스님. 이명박 정권의 어처구니없는 실정에 매서운 죽비의 목소리로 호통 쳤던 단 한 명의 종교인. 천일기도 후 가장 먼저 용산참사 유가족을 찾아 위로해주셨던 스님.

 

나에게 명진 스님은 여전히 다가가기 어려운 분이다. 하지만 막상 스님 앞으로 달려가 인사를 드린다면 그 변함없는 미소로 반겨주실 것을 안다. 사바세계에서 오직 나 하나만 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지금, 끊임없는 용맹정진으로 많은 이들에게 견성의 길을 보여주신 이 시대의 선지식.

 

이제 봉은사를 떠나 다시 자유인이 되신 스님이 더 맑고 더 시원한 법문으로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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