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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월드 Blue World 1~4 세트
호시노 유키노부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참 예전에는 만화를 정말 많이 봤는데요. 왜 요즘은 만화에 쉽게 손이 가질 않는 걸까요. 건방지게 제가 이젠 만화 따위는 안 봐! 이렇게 생각이 변할 것일까요. 아니면 어른 흉내 낸다고 까부는 것일까요. 물론 모두 아닙니다.
지금도 만화를 정말 좋아합니다. 허영만, 김수정, 고행석, 이현세 선생님 등 제 유년시절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또 우리나라가 일본 만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시작했을 때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일본 만화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북두신권》《드래곤 볼》등이 인상에 남고 최고의 작품이라면 역시나 《슬램덩크》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블루 월드》의 작가인 호시노 유키노부는 일본 SF 만화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일본 만화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기에 미처 몰랐던 분입니다. 물론 이 분의 작품도 처음 접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작품 하나만 읽어도 이 분의 역량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스케일의 스토리 전개와 기발한 아이디어 그리고 현실감 넘치는 그림체는 ‘대가’라는 이름에 걸맞았습니다.
이 작품은 전작 《블루 홀》의 후속작이라 합니다. 미지의 세계를 통해 과거의 지구로 이동할 수 있는 블루 홀을 발견한 인류가 그곳에서 다시 현재의 지구로 돌아오는 내용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저자는 과학적 상상력과 함께 인류가 가지고 있는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꼬집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블루 월드》를 통해서도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블루 홀의 존재를 깨달은 인류는 과거 제국주의의 역사를 되풀이하려 합니다. 즉 너도나도 먼저 블루 홀을 통해 과거의 지구를 선점하려는 것이지요. 영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가운데, 영미원정대가 쥬라기 시대에서 고립되고 맙니다. 자신들이 들어온 블루 홀이 막혀버리고 만 것이지요. 이들은 다시 현재의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거대한 크기와 가공할 공격력의 공룡들, 그보다 더 무서운 자연과 싸우며 생존을 위해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작품에선 영국의 진 중위와 미국의 그록 대위가 날카롭게 대립하는데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선 그 누구도 살인할 수 있는 그록 대위와 타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던지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진 중위는 인류의 양면성, 즉 선과 악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이 작품은 과거 공룡들이 멸종된 이유에 대해 자기장 등 나름대로 신선하고 새로운 가설을 세웁니다. 이러한 신선한 과학적 접근은 단순히 저자가 스케일만 큰 작가가 아님을, SF 만화의 대가라는 타이틀을 그냥 얻은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 자체로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총 4권으로 이뤄진 《블루 월드》는 《쥬라기 공원》류와는 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합니다.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인류애와 지구, 자연에 대한 확고한 주제의식이 살아있습니다. 또한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그 자체로 이미 SF 장르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거장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아울러 전작 《블루 홀》과 《2001+5》《2001 Space Fantasia》등 그의 대표작들도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만화는 가장 오해받고 천대받는 장르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제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영화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강풀 등 유명 작가는 스타의 대접을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허영만 선생님 같은 경우는 이제 레전드라 불리고요.
감동과 재미 그리고 또 다른 삶에 대한 일깨움을 줄 수 있는, 무한한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만화가 우리나라에서도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받고, 더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