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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위의 세 남자
제롬 K. 제롬 지음, 김이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개인적으로 가슴 아픈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살아온 짧은 삶 중에서 가장 아픈 일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어요. 꽤 큰 충격이었고, 상처로 남았습니다.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듯 합니다.
때문에 온전히 책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업무와 관련해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하는 것들이 아니면 책을 가까이 할 수 없었죠. 그마저도 참 힘들게 읽어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아파하고 상처를 안고 있어봤자, 어차피 지난 일이 아닌가. 모든 것을 다만 그렇게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희망으로 이제 다시 일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보트 위에 세 남자》를 꺼내들었습니다. 책에 대한 평판은 익히 알고 있었거든요. 1889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함 없이 독자들의 배꼽을 잡게 만드는 코미디 소설의 걸작. 바로 그 책이었습니다.
주인공을 포함해 세 명의 지구상 최고의 게으른 남자들, 그리고 원기왕성하고 세상살이에 조금은 염세적인 폭스테리어 한 마리(이름은 몽모렌시)가 떠나는 템스 강변 ‘보트’여행. 장면 하나 하나가 살아 숨 쉬는 코미디 그 자체였습니다. 게다가 저자의 코믹스러운 묘사와 기가 막힌 문장력은 그야말로 ‘빵빵’터지게 하고도 남았습니다.
때문에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잠시나마 제가 가지고 있던 상처와 아픔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술처럼 다음날 아침 쓰린 속을 부여잡을 필요도 없고, 또 돈도 많이 들지도 않은 참 적절한 ‘슬픔 해소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샌드포드와 머튼》의 작가인 토마스 데이가 워그레이브에서 살았고, (워그레이브를 더욱더 알리는 계기가 되며) 그곳에서 살해됐다. 교회에는 자신이 남긴 유산으로 매년 1파운드씩 부활절이 돌아올 때마다 소년 두 명과 소녀 두 명에게 나누어주게 했던 사라 힐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자격은 ‘부모에게 불효했던 적이 한번도 없고, 거짓을 말하거나 맹세한 적도 없고, 도둑질을 하거나 창문을 깬 적도 없는’아이들이어야 했다. 일 년에 5실링을 받으려고 그 모든 것을 포기한다고 상상을 해보라! 바보 같은 짓이지.
그 마을에는 오래전 한 때 이런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아니 여하튼 그런 일을 저지른 적이 있다고 알려진 경우는 한 번도 없다는 소년이 나타나, 명예의 왕관을 거머쥐었다는 소문이 있다. 그는 그 후 삼 주 동안 유리 진열장에 넣어져 마을 회관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우리 학교에 어떤 남자아이가 있었다. 우리는 그를 스탠포드 앤 머톤이라고 불렀다. 그의 진짜 이름은 스티빙즈였다. 그는 내가 만난 친구들 중 가장 독특한 녀석이었다. 공부를 진짜 좋아했으니까. 그는 밤새며 공부를 했고 그리스어를 읽었다. 프랑스어의 불규칙 동사도 늘 손에서 놓지 않았다. 부모의 자랑, 학교의 명예가 되어야 한다는 괴상하고 특이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친구였다. 그는 상에 목말라했고, 얼른 자라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도 심약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정말 이상한 친구였다. 하지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처럼,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책에는 이밖에도 정말 재미있는 문장들이 가득합니다. 이들의 우스꽝스러운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템스강의 아름다움, 혹은 지저분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중간 중간 영국의 역사도 친절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또 하나의 미덕은 단지 코미디에 국한되지 않는 ‘의미심장한’문장들도 거뜬히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묘사, 혹은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듯한 표현까지, 저자는 솔직히 천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사람입니다.
참 즐거운 세상이지만, 언제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정말 힘들고 죽고만 싶을 때, 가만히 하늘을 보며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바보처럼 책장을 넘기며 키득거리며, 마치 아무 일 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세 명의 남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물론 까칠한 강아지 ‘몽모렌시’역시~!
“몽모렌시가 삶에서 추구하는 야망은 훼방을 놓고 욕을 얻어먹는 것이었다. 만약 자신을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옴죽거리다가 완벽하게 성가신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그의 대가리에 아무것이나 막 집어던지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는 자신의 하루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