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울산공장 점거 투쟁 기록
박점규 지음 / 레디앙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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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규직이다!”

“출입증 반납하고 사원증 쟁취하자!”

가슴 깊은 곳에 쌓아 두었던 울분과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는 현대차 정규직이라는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의 판결이 밑불이 되었고, 2010년 11월 15일 울산 1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울산의 파업은 전주와 아산으로 이어졌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와 저항의 횃불은 12월 9일까지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25일은 하루 하루가 아름다운 나날이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하루 종일 물만 마셔도 가슴이 벅찼고, 매서운 삭풍을 막아 줄 비닐이불 한 장에 행복했다. 젊은 노동자들의 눈빛은 식어 버린 가슴을 열망으로 들끓게 만들었고, 밤을 새운 토론은 녹슨 머리를 맑게 했다. 행복하고 또 행복했다.

 

아름다운 저항의 25일 그 한복판에 있었다는 사실은, 나의 마지막 30대를 이곳에서 보냈다는 사실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축복이었다. 2008년 5월 2일 청계광장에서 첫 촛불이 타오르던 날의 환희, 2010년 11월 1일 1895일 만에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합의서에 서명하던 날의 감동만큼이나 행복한 25일이었다.

 

2010년 11월 15일부터 12월 9일까지의 25일. 현대자동차 울산 시트1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들과 함께 ‘25일’의 시간을 보낸 저자는 이 투쟁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바로 잡자는 ‘상식의 회복’을 위한 투쟁, 왼쪽 바퀴를 끼우는 정규직과 오른쪽 바퀴를 끼우는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 놓여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차별을 없애자는 ‘차별 철폐’투쟁, 자본주의 체제 수호의 보루,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라는 ‘준법 촉구’투쟁, 노동자의 심장에 대못을 박는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을 짓밟고 우뚝 서서 돈을 세는 자본의 논리를 뒤집기 위한 ‘전복’투쟁이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차마 자신이 비정규직임을 말하지 못하고 헤어진 청년, 원하는 학원을 갈 수 없기에 정규직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없었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이들. 바뀔 수 없는 신분,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 ‘비정규직’이란 네 글자에 구속되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 땅의 900만이 넘는 노동자들. 울산 공장에서의 ‘25일’은 이들이 더 이상 아이들에게까지 이런 세상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피맺힌 절규, 바로 그것이었다.

 

◆ 처절토록 아름다웠던 연대와 희망의 시간들

 

무려 1895일 만의 기륭전자 교섭 타결. 가장 오랫동안 단식투쟁을 한 노동자로 기록된 김소연 분회장의 94일 단식. 두 달간의 피를 말리는 교섭 현장을 지켰던 저자는 쉴 사이도 없이 다시 울산으로 향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폭발한 것이다. 하지만 비록 몸은 피곤했지만, 그가 노동자들과 보낸 25일은 아름다웠다. 2004년 노동부가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이후, 불같이 일어났던 파업 투쟁들이 모두 무참히 깨지고, 6년의 세월동안 침묵과 좌절,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로소 일어난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단순히 월급의 차이, 처우의 차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울산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직영이세요? 하청이세요?”라는 질문에서 나타나듯, 비정규직은 한 인간의 신분을 규정짓는 또 하나의 낙인이 되어버렸다. 그래, 이들과 함께 끝까지 싸워보자. 이 지긋지긋한 비정규직의 굴레를 날려버리자. 젊은 노동자들의 뜨거운 가슴과 연대의 몸짓은 저자에게 벅찬 감동과 용기를 주었고, 이 역사적인 시간들을 꼼꼼하게 기록해야겠다는 책임감을 주었다. 책은 때문에 이 땅의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노래이며, 정규직·비정규직·사내하청·실습생 등 모든 이 땅의 노동자를 위한 연대의 찬가다.

 

“지금 희망버스 행사를 맡고 있어요. 이제 파업이나 노동자들의 투쟁을 바라보는 일반 시민들의 시각도 많이 바뀌었잖아요. 저는 그게 바로 연대와 희망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기륭전자의 10명밖에 안 되는 노동자들이 끝내 승리할 수 있었던 힘, 6년만의 그들이 정규직을 따낼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많은 이들의 연대와 응원이었습니다.

 

울산 현대공장의 25일 역시 그랬어요. 정말 많은 분들이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연대도 눈물겨웠습니다. 물론 절반의 성공 혹은 절반의 실패라 평가하기도 하지만, 전 울산에서 보여준 그 연대의 힘이 지금 희망버스에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더 광범위하고 질적으로도 차원이 다른 놀라운 연대가 이뤄지고 있잖아요. 이 모든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투쟁과 많은 시민들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 탐욕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

 

25일은 그러나 쉽지 않았다. 혹독한 추위보다, 노동자의 몇 배나 되는 용역들의 폭력보다 더 두려운 것은 고립감과 연대의 끊어짐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노동자들은 지쳐갔고, 흔들렸으면, 외로웠다.

 

회사는 악랄했다. 갖은 유언비어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끊으려 시도했고, 단전, 단수조치에 이어 급기야 식량마저 반입을 막았다. 그리고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조치 등을 통해 노동자들을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었다. 보수 언론을 방패로 이들이 고액 연봉을 받는 노동자라는 사실을 부풀려 유포해, 같은 노동자들의 지지와 후원마저 막으려 했다. 울산에서의 25일은 물리적 폭력과 함께 정규직과 시민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민심 쟁탈전’도 치열하게 이어졌다.

 

저자 역시 ‘외부세력’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공장 내에서 쫓아내려는 시도까지 이뤄졌다.‘외부 세력론’은 회사의 단골 메뉴 중 하나였다. 현대자동차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세력들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지금의 희망버스를 바라보는 보수세력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덕분에 저자는 7개월 동안 수배생활을 해야만 했다. ‘외부세력’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전엔 사무관리직과 생산직의 구분만이 있었죠. 하지만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을 통해 생산직 노동자들의 처우가 조금이나마 개선되자, 이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내하청 등으로 다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마치 카스트제도와 흡사하게 말이죠. 실제로 현대자동차 인도공장은 정규직, 사내하청, 임시직, 수습생 등으로 노동자들을 철저히 구분시켜요. 이젠 비정규직 문제를 보다 크게 봐야 합니다.

 

현대자동차는 세계 경제위기 당시 국민의 혈세로 지원을 받아 막대한 이윤을 남겼어요. 그런데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사내하청만 늘리며,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지 않았죠. 매출액이 두 배, 100% 이상의 순이익 증가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기는커녕 일자리 창출에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윤이 오로지 재벌들에게만 몰리는 지금의 비정상적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비정규직 문제는 근본적으로 풀 수 없어요. 재벌들의 탐욕을 스스로 바꾸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철저한 규제를 통해서만 비정규직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저자는 울산 사태 이후 ‘비정규직 희망버스’를 만들어 전국 10개 도시 13개 공장을 둘러봤다. 비정규직 문제가 단순히 한 공장,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알기 위해서였다. 기가 막혔다. 전국에 있는 현대 모비스 공장은 총 12개, 그 중 무려 8개 공장이 비정규직으로만 이뤄져 있었다. 정규직은 관리자뿐이었다. 이런 야만적인 공장들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정부도 기업도 오로지 이윤에만 몰두하고 있다.

 

“전북도청을 찾아갔어요.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민주당 사람이 도지사를 하고 있고, 비정규직 투쟁의 현장에 나타나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국회의원이 지역구로 있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현대 중공업 군산조선소에 100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온갖 세금 혜택을 다 주고 ‘세계적인 조선소’로 만들겠다고 말이죠.

 

그런데 그 곳에서 채용한 정규직은 고작 50명이 다예요. 대신 3천 명의 사내하청을 고용했죠. 전북은 일자리 1만1000개를 늘린다고 했는데, 50명을 뽑는 업체에 100억 원을 투자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야만적인 공장은 규제해야지, 왜 투자를 합니까.”

 

◆ 일자리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

 

저자의 옛 친구는 가정이 어려워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은행원이 되었다. 물론 정규직이었다. 공업고등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공장에 취직했다. 역시 정규직이었다. 하지만 이제 대학을 나와도 태반이 백수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한다. 일자리가 줄어든 게 아니다. 그 일자리들이 비정규직으로 바뀐 것뿐이다. 경제는 더욱 발전하고 있다는데, 왜 일자리는 가면 갈수록 없어지는가.

 

정규직이 ‘꿈’이 되어버린 학생들, 다 필요 없고 남편이 ‘정규직’이기만 하면 된다는 여성들. 정규직인 가치가 아니지 않나. 하지만 희망이 쉽지 않은 시대, 이들의 소박한 요구는 이미 소박하지 않다.

 

결국 연대가 희망이라 저자는 말한다. 구태의연한 답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답이다. 함께 싸워야 하고, 연대해야 한다. 희망버스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목격하고 있는 지금. 어쩜 아직 늦지 않았는지 모른다. 울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25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이 만든 역사가 희망버스를 만들었고, 또 다른 ‘희망’들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끝없는 탐욕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과 ‘정당한’노동의 대가를 원하는 이들의 대결에서 결국 승자는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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