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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 - 악의 뿌리 미국이 지목한‘악의 축’그들은 왜 나쁜 나라가 되었을까?
권태훈 외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무모한 이들이 있다. 분명 승부는 그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대부분 질 것이라 판단하는 싸움에 끝까지 나서는 이들이 있다. 김유신과 맞서 자신의 부인과 자식들을 먼저 죽인 후 최후의 결전을 맞았던 계백이나, 어차피 질 것을 알면서도 웃으며 돌진했던 인류 전쟁사의 수많은 장수들. 그들은 분명 어리석었지만, 그만큼 아쉬움과 전설을 남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미국에 맞서는 나라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세계 최강의 절대 국가. 세계 경찰이라 자부하며, 전 세계에 자국의 군 병력을 주둔시켜둔 국가. 무수히 많은 국가들을 전복시키거나 새로 만들어 내기도 했던, 지금도 이라크를 새로 만들고, 아프간을 새로 만들고 있는 절대 강자. 이 미국에 저항한 나라들. 이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책은 역사상 미국에 대항했던 국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놀랍게도 미국에 대항해 승리를 거두었거나, 혹은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이 중에는 부시 정권 당시 “악의 축”이라 불린 국가들이 상당수다. 북한도 포함된다. 하긴 북한이 빠진다면 그게 더욱 이상한 일이긴 할 것이다. 세계2차 대전 후 자신만만하던 미국이 처음 치른 전쟁에서 패배를 안겨주고, 또 지금까지 핵을 무기로 십년이 넘도록 미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나라가 바로 북한 아닌가. 정확히 말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쿠바,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베트남, 이란, 리비아 그리고 북. 모두들 선진국의 기준, 이른 바 지구상에서 잘 산다는 국가들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그리 풍족한 나라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국력이라는 것을 평가할 때 우리가 빠지기 쉬운 과다한 경제력의 감안은 이들 나라에 있어서만은 공정성을 요구한다. 우리가 북과의 경제력에 있어 수백 대 일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진정 북과의 국력에서 절대적 수치를 차지하느냐에 문제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 국가의 구성원들이 느끼고 있는 자신감, 자존심 그리고 국민적 화합이 얼마나 되는가를 따져본다면 단순히 북이 우리보다 열등한 국가라고 평가하는 것은 우둔한 생각이다.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집요한 경제제재와 군사적 전복기도에도 끝끝내 맞서 싸워낸 국가들. 제국주의의 무례한 침공을 이겨내고, 경제적 제재의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국가들. 이들을 승자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이유다.
책은 일곱 개 국가들을 각각 필자 한 명씩 맡아 쉽게 설명하고 있다. 간략한 역사와 각 국가들이 미국과 인연을 맺게 된 배경, 그리고 그들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욕에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그 투쟁의 역사를 담고 있다. 다들 저마다의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미국의 침략, 간섭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힘 좀 있다고 다른 나라를 멋대로 침공하고, 1퍼센트 부자들만을 위한 신자유주의 경제를 전 세계에 강요하는 나라, 미국”
이러한 미국에 대항해 국가의 자존심을 지켜낸 나라들. 물론 세계를 보는 시각과 미국에 대한 인식이 저마다 다 다른 상황에서 이 책이 모든 이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 내 짧은 지식과 경험으로 돌이켜 볼 때, 책의 내용 중 사실과 다른 것을 서술한 것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저자들의 반미 성향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긴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의식을 역사적 사실과 혼동하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한다. 미국이 지금까지 저질러왔던 분명한 사실. 그 사실에 기초해 쓰여진 글이기에 믿음이 간다. 물론 내 취향이 책과 비교적 잘 맞았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러 번 말했지만, “우리 안의 미국”은 생각보다 매우 깊숙이 내재화되어 있다. 행여 미국의 관심에서 멀어질까 전전긍긍하는 우리 정부의 오랜 습성과 미국 문화에 거의 100% 동화되어 있는 국민들의 심성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그에 반하는 이른 바 반미 의식도 상당 수 존재하는 것이 우리이긴 하다. 이러한 미국에 대한 이중성. 우리가 진정 우리로 살 수 있는 길에 필요한 고민을 제공해준다.
부시 정권 8년 사이 미국은 많은 친구들을 잃었다. 겉으로나마 평화를 이야기하고 공존을 이야기하던 클린턴 정부와는 전혀 다르게 일방적으로 힘에 기초한 정책을 추진했기에, 많은 이들이 미국의 진면목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진면목은 언제나 같았음을 유의해야 한다. 우리가 오바마에게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은 오만하게도 자신의 적들을 “악”이라 불렀다. 명확한 이분법 논리, 전혀 바르지 못한 종교적 오만이다. 예수님이 이슬람 민족을 악이라 부른 적이 있던가. 북을 악마라 한 적이 있던가. 오히려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과 학살을 더 죄악시 하지 않으실까.
영원한 동경의 대상, 절대 우방, 혈맹, 우리의 다정한 친구. 미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이제 시급한 교정을 필요로 한다. 쓸데없이 뒤통수 얻어맞고 울지 말고, 다시 한 번 미국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영원한 우방 따위는 애시 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치열한 국제관계의 역학구조 속에 우리는 단 한 순간 미국에게 버림받을 수 있는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젠 우리 스스로 살아야 한다. 더 이상 비굴함과 아첨으로, 막연한 믿음으로, 저열한 사대주의로 생존을 모색할 순 없지 않은가. 미국과 맞짱을 떴던 국가들을 모두 긍정하고 받아들일 순 없다. 각 국가에 대한 판단은 스스로의 몫이다. 저자들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어쩌면 독자들은 조금은 깨어날지 모른다. 미국이 얼마나 하찮고도 도덕적 정당성을 결여한 국가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 해도 책이 전해주는 의미는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는 책이 될 것이다. 무턱대고 쿠바가 싫고, 북이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 속는 셈 치고 한 번 읽어보시라.
울화통 터지면서도 속이 시원한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