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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헤이스 두 번 죽다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4
마커스 세이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한 남자가 벌거벗은 채 바닷가에서 눈을 뜬다. 춥다. 생존을 위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차가 보인다. 차 안으로 들어간다. 푸시 버튼을 눌러 시동 건다. 온기가 느껴진다. 아늑한 시간이다. 그런데 내가 있는 곳은 어디지? 나는 누구지? 집중한다. 하지만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을 잊었다. 차안을 뒤져 차량등록증을 찾아낸다. 차 주인 이름이 대니얼 헤이스다. 자신을 대니얼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이제 자신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움직인다. 왜 자신이 이런 곳에서 이런 모습으로 있었는지 말이다.
잊어버린 기억을 찾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아무 정보도 없이 우선 쉬기 위해 모텔에 들어간다. 그곳 방송에서 여배우 에밀리를 본다. 자신을 자극한다. 낯익은 정보가 들어온다. 그녀는 누굴까? 이 의문을 품고 있는데 풋내기 경찰이 그를 급하게 달아나게 만든다. 에밀리를 통해 자신의 잊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BMW를 몰고 달려간다. 이 여행은 별로 힘들지 않지만 말리부와 LA에서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여기에 베넷이라는 무시무시한 악당이 등장한다. 자신의 정체를 결코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그는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 사람을 조정한다. 처음엔 해결사 같은 분위기였는데 그보다 훨씬 무서운 인물이다.
중요한 인물 세 명이 등장한다. 기억을 잃고 자신을 대니얼 헤이스라고 생각하는 남자. 악당 베넷. 마지막으로 베넷을 잘 아는 여자 벨린다 니콜스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당연히 대니얼이다. 미국 동서를 가로질러 도착한 후 마주한 사실은 자신이 대니얼 헤이스의 외모와 똑같고, 여배우 에밀리를 연기한 레이니를 죽인 제1용의자이자 그녀의 남편이란 것이다. 기억이 분명하지 않는 가운데 이 사실은 큰 충격이다. 하지만 독자에게 이 사실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펼쳐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중반으로 넘어가면 예상하지 못한 만남과 사실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때 다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호기심을 품는다. 레이니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 외에 다른 이유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 의문이 모두 풀리는 것은 반전으로 펼쳐지는 마지막 부분이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 보여준 각자의 활약과 예정된 장면들은 대니얼이 시나리오 작가란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있다. 어떤 순간에는 너무 뻔한 설정으로 혼이 나고 어떤 순간은 모두의 허를 찌른다. 하지만 이 때문에 풀리는 어두운 기억은 개인적으로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정도의 것인가 하는 의문과 더불어 마지막 장면과 엮인다. 너무 쉽게 적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현재의 삶은 과거의 내가 결정한 것이다. 지금 내가 결정한 것이다. 지금 내가 결정하는 것이 미래의 나를 만든다. 이런 당연한 일들을 약점과 협박이란 수단을 통해 사람을 조정하는 베넷의 존재는 읽는 내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 어떤 사람을 등장시켜 새로운 상황을 만들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일에 파탄이 생기는 것은 자만심이 가슴 한 곳에서 자랄 때다. 과거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바라는 바를 성취했던 그가 역습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소설의 오락적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속고 속이는 과정에 이를 엿보는 사람과 불신하는 관계가 형성되고 반전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기억 상실자와 시나리오 작가를 동일한 위치에 놓으면서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그리고, 벨린다를 통해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의 욕망을 표현한다.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한 사람들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는 베넷은 냉정한 포식자이지만 자신도 그 무리 속에 포함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알려준다. 선택과 결정, 그리고 행동. 이것을 통해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사실들이 하나로 모이기 시작한다. 두 번의 죽음 후에 발견한 어둠의 끝은 그를 웃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누군가의 선택과 결정에 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