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또 죽었네?
K.Kajunsky 지음, ichida 그림 / 애니북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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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만화를 선택하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일단 제목이 눈길을 끌었고, 다음은 <살인자ㅇ난감>의 만화가 꼬마비가 직접 번역했다는 것이다. 꼬마비의 만화를 정말 좋아하지만 그가 번역까지 했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것도 일본만화를 말이다. 문득 공항에서 집어든 만화가 재미있어 편집자 친구에게 소개를 했는데 출간이 결정되고 번역은 자신이 맡게 되었다란 사연도 나중에 알고 나서 재미있었다. 또 번역의 고민이 살짝 실려 있는데 의역 쪽으로 기울어 아쉬움이 남았다고 한다. 재미있는 외국 작품을 번역할 때 그 느낌과 재미를 제대로 살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제목만 보면 왠지 호러나 판타지 같은데 읽으면 전혀 다른 내용이 펼쳐진다. 이 만화가 나온 사연도 ‘일본 Yahoo! 지혜주머니’에 ‘집에 돌아가면 아내가 반드시 죽은 척을 하고 있습니다’란 질문을 올리다가 인기를 얻었고, 이를 정리해서 자신의 블로그에 아내와의 생활을 올리고 있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단순히 제목만 보면 낚시성 제목인데 이 아내의 기행이 일본 네티즌들의 호응을 상당히 많이 받은 모양이다. 책을 읽으면 물론 이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아내도 재미있지만 남자의 입장에서 남편의 행동과 반응도 상당히 공감하게 된다.

 

첫 장면은 아내가 죽은 척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놀라는데 매일 매일 이어지면서 둔해진다. 이 과정 속에 아내의 죽음 연출 강도는 점점 강해진다. 이런 일상이 간결하게 이어지면 인터넷에 왜 이런 것일까 하는 질문을 올린 것이다. 남편이 제대로 모르는 것처럼 네티즌의 답변도 역시 추측일 뿐이다. 우연히 이어지는 상황 때문에 추리를 해보지만 제대로 맞을 리가 없다. 아내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난이었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 사이에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단지 이런 생각은 제삼자의 멋대로 판단일 뿐이다.

 

이후 아내의 귀엽고 놀라운 장난은 마이클 잭슨 흉내에서 안마시술소 등으로 이어진다. 이 사이에 두 사람의 만남과 연애 이야기가 흘러나오는데 아주 풋풋하고 입가에 미소를 자연스레 떠오르게 만든다. 많은 에피소드 중 침대와 벽 사이에 낀 아내의 모습은 다시 대충 넘겨볼 때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두 사람 사이에 가정 내 헌법이 제정되는 상황을 보면서 이 둘의 알콩달콩한 신혼 생활이 조금씩 정착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아내가 정말 예술적인 죽은 척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는다. 물론 금방 후회한다.

 

인터넷 글을 만화로 옮겼는데 개인적으로 내용과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간결한 선과 배경으로만 연출해서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순간순간 살아있고 재미있는 표정을 연출하여 자연스럽게 웃게 만들었다. 가끔 이런 만화들을 볼 때면 좀더 대화와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화려한 연출은 없지만 그 비어있는 공간을 독자의 상상력으로 충분히 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이야기와 강한 액션에서 잠시 벗어나 일상의 풋풋함과 장난끼 넘치는 이야기를 살짝 들여다보는 것도 즐거운 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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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올해 4월 잔인하고 참혹하고 슬픈 달이다.

기억하고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할 아픈 우리의 현실이자 역사다.

언제나처럼 좋은 책들은 나오고 있다. 이중에서 몇 편 선택해본다.

  1. 리틀 드러머 걸 : 존 르 카레

  냉전 시대 스파이들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그려내었다고 평가를 받는 거장의 83년 작품이다. 이 작품을 '스마일리 시리즈'와 함께 그의 완벽한 대표작이자 최고 걸작으로 꼽는다는 평가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2. 이웃집 두 남자가 수상하다 : 손선영

 최근 한국 미스터리 소설가 중 몇 되지 않는 믿고 보는 작가다. 이 작품을 손선영의 종합추리선물세트라고 부르는데 어떤 재미를 줄지 기대된다.

 

 

 

 3. 11eleven(일레븐) : 쓰하라 야스미

 쓰하라 야스미의 작품집이다. 작가주의적인 모습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라니 예전에 읽은 <아시야 가의 전설>이 살짝 떠오른다. 그런데 이 작품으로 자신의 껍질을 한꺼풀 벗어난 느낌을 준다고 하니 묘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4. 자유로운 삶 : 하진

  "톈안먼 사태를 목격한 이후 미국에 남기로 결심한 유학생 난이 이민 1세대의 고단한 삶을 이어가면서도 글을 쓰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자유로운 삶>은 어찌 보면 아메리칸 드림의 실례라고도 할 수 있는 하 진의 일생과도 많이 닮아 있다." 이 소개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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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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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의 후속편이다. 전작의 주인공인 대니는 살짝 찬조 출연하고 실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은 커글린 가의 막내 조지프다. 오래전에 읽은 <운명의 날>은 솔직히 자세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그 당시 시대 분위기만 어렴풋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 잔상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씩 살아났다. 물론 이 이미지들이 단지 전작에서 비롯한 것만은 아니다. 다른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받은 영향이 작가의 문장과 결합하여 이미지와 함께 되살아난 것이다. 이런 이미지는 소설을 읽은 내내 작용했다.

 

몇 년 후의 한 장면에서 시작한다. 조 커글린은 멕시코 만 바다 위 배에서 두 다리를 시멘트 통에 담구고 있다. 영화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다. 그리고 한 여자의 이름이 나온다. 에마 굴드. 이제 시간은 과거로 흘러간다. 1926년 어느 날 새벽 사우스보스턴 비밀 술집의 골방도박장이다. 그와 바르톨로 형제는 도박장을 털려고 한다. 그런데 이 도박장은 보스턴 조폭 앨버트 화이트 소유다. 만약 알았다면 그대로 줄행랑치고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흔적도 깡그리 지웠을 곳이다. 하지만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그들은 도박장을 털러 갔고, 성공했다. 바로 그곳에서 그는 에마 굴드를 만난다. 운명처럼 강하게 끌렸다.

 

어떤 사람에게 평범한 남녀가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강할 수 없는 끌림을 준다. 이 소설 속에서 에마 굴드가 그렇다. 그녀가 앨버트 화이트의 정부임을 알면서도 조는 끌린다. 그녀에게 다가가서 비밀연애를 시작한다. 만약 앨버트 화이트가 이 사실을 안다면 그는 죽음 목숨이다. 청춘의 열정은 뜨겁게 타오르고 이 둘의 관계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때 조와 바르톨로 형제는 은행을 턴다. 이 순간에도 조는 그녀의 향기에 취해 실수를 한다. 경찰과의 추격전 도중에 차가 뒤집어진다. 그런데 경찰차도 사고가 난다. 경찰 3명이 죽었다. 그가 죽인 것은 아니지만 이 사건은 그로 하여금 경찰의 적이 되게 만든다. 그의 아버지가 경찰총장을 바라는 순간에 벌어진 최악의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그는 감옥에 들어간다. 검사가 엄청난 기간을 구형할 수 있지만 아버지의 도움으로 겨우 5년 형을 받는다. 그냥 5년만 버티면 될 것 같지만 이 감옥에서 살아남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가 조금만 긴장을 풀고 방심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감옥 안은 아버지의 영향력 밖이다. 아니 아버지 때문에 그가 목표물이 된다. 앨버트와 함께 보스턴을 두고 싸우던 마소가 감방에서 이 상황을 묘하게 조정한다. 마소는 조를 통해 경쟁자의 근거지를 공격하고 압박을 가한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도움을 주지만 언제나 조폭의 요구는 끝이 없다. 자신의 신념과 갈등하면서 토머스는 고뇌하고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이 소식은 조에게 엄청난 공포와 고통을 안겨준다. 그리고 단순한 애송이에서 한 명의 조폭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모두 세 시기로 나눠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10년이라는 긴 시간이지만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갱들의 대립과 갈등을 긴장감 넘치게 묘사한다. 단순히 갱들만의 대결이 아니라 그 시대의 풍경과 상황도 같이 그려낸다. 보스턴의 이야기가 조의 성장을 다룬다면 마이애미로 내려온 후 이야기는 성공을 보여준다. 이 성공은 단순히 난폭하다고 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의 기지와 대범함이 결합하고 상황과 시장 등을 제대로 파악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쿠바 인들과의 독점 거래를 위해 군함에서 무기를 훔치는 장면은 놀랍기 그지없다. 그리고 이 일에 숨겨진 쿠바 인들의 의지는 전작의 향기를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조는 갱이지만 특이한 인물이다. 경찰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범죄자로 살았고,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 성장하고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거부했고 두려워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조직폭력배가 아니라 치외법인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한 사람을 죽이면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사라진다. 이후 그의 사업은 성공가도를 달린다. 그리고 그의 삶을 뒤흔든 에마 굴드 대신 쿠바 여성 그라시엘라가 등장한다. 마약과도 같았던 에마 굴드가 사라지고 진실한 사랑을 만난 것이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갱으로 한 지역을 관리하고 불법 사업을 성장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쟁 상대도 제거해야 하고 성장하는 적들도 없애야 한다. 이 소설에서 이 부분은 간결하게 나오는데 그를 조사하는 경찰은 잘 다루지 않는다. 경찰이 그에게 포섭된 상태라 그런지 모르지만. 조는 보통의 갱들과 다르다. 금주법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지만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도 않고 오히려 거부감을 느낀다. 물론 사업에 장애가 되면 주저함이 없다. 예쁘게 포장된 갱의 모습이다. 그의 심리 갈등을 잘 묘사해 기존의 갱들과 차별시킨다. 덕분에 그에게 감정 이입이 잘 된다. 하지만 그가 밤에 살아가는 인물이란 것은 변화가 없다. 그 밤은 언제 그를 삼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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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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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다. 글을 읽으면서 헤맨다. 앨리스씨가 주인공인 듯한데 읽으면 앨리시어가 등장한다. 그를 관찰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그의 정체성이 처음에는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디서 잘못 알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와 그의 친구 고미의 성별을 착각했다. 이 착각은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분명해졌다. 이런 모호함이 이 글 속에 담겨 있다. 딱히 뭐라고 정의하기 힘든 문장 구조와 전개라 높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많은 쪽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이 걸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162쪽에 끝나고 세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자로 內, 外, 再 外 다. 시작은 앨리시어가 여장 부랑자로 사거리에 서 있는 장면이다. 처음 이 장면을 읽을 때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중에 인터넷 서점 소개글을 읽으니 일본 오사카 한신백화점 지하보도에서 여장을 한 노숙인을 보고 그 뒷모습에 압도되어 한국에 돌아온 후 단편을 Tm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문학동네 잡지 연재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때 이 소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고 다시 첫 문장을 읽으니 새롭게 다가온다.

 

앨리시어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살았던 고모리라는 마을을 알아야 한다. 그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그가 자랐던 당시는 재개발 직전이었다. 이제는 거대한 주거단지로 변했다. 이미지와 간략한 정보가 나온 후 개로 이야기가 넘어간다. 이때부터 과거로 들어간다. 과거 속 개는 개장에 있다. 이 개들은 여름이나 늦가을에 정성껏 불에 구워 이웃과 나눠 먹는다. 새끼는 살아남지만 다음은 기약할 수 없다. 개장 속 개들은 어린 앨리시어를 단번에 쓰러뜨릴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인간의 눈치를 본다. 이것은 나중에 앨리시어가 자신의 엄마보다 커졌지만 엄마의 권위와 폭력 앞에 제 힘을 쓰지 못하는 것과 연결된다. 한번 심어진 공포와 권위는 그 굴레를 벗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려준다.

 

앨리시어가 동생에게 이야기를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 이야기 이상하다. 동생도 느낀다. 이상하다 말하지만 그때 또 이야기가 변한다.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는 앨리시어를 통해 변주된다. 어떻게 보면 황당하지만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결말이다. 아니 어쩌면 정답일지도 모른다. 동생의 상황과 대화는 이 소설을 구성하는 중요한 하나의 축이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꾸는 꿈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씨발. 이 단어는 앨리시어에게 중요한 단어다. 그의 엄마가 휘두르는 폭력을 가장 잘 나타내준다. 이 폭력은 아이들에게 원초적인 공포를 안겨준다. 그녀가 흔히 내뱉는 씨발이 아이들의 입에도 달라붙는다. 앨리시어의 동생도 내뱉는다. 욕이 가지고 있는 기세와 분위기가 아이로 하여금 따라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단어가 어머니의 입에서 나와 그들에게 향하면 달라진다. 이런 가정 폭력은 이 고모리에서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고미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정 폭력이 성장기의 소년들을 흔들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또 하나는 재개발 보상이다. 인간의 욕망이 그대로 쏟아져 나오는 장면이 바로 시위 장면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들이 보여주는 시위는 우리 시대의 어그러진 삶의 한 단면이다. 아이까지 동원해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려는 그들의 모습과 이들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는 자산가들의 충돌과 합작은 시간 속에 새겨져 있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금액을 얻은 후 마을 잔치에서 개를 태워 먹는 것을 보면서 다시 첫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몇 쪽 되지도 않는 마지막 장을 읽는다. 앨리시어의 실패와 패배의 기록이라는 문장을 보면서 비어있는 시간과 표현된 시간의 괴리를 느낀다. 불친절하고 야만적이면서 은근히 매력적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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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 1
김도경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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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자신의 난자를 추출하려고 한다. 이 여성의 이름은 송여지, 가상현실에서 레이로 불린다. 왜 난자를 뽑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생긴다. 이 세계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로 읽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난자를 세계 최대 경매 사이트에 올린다. 돈이 필요해서다. 여기에 한 남자가 그녀에게 도움을 준다. 아노미아다. 그는 레이의 경매 가격을 올리는 역할을 맡았다. 경쟁이 붙어 가격은 점점 올라간다. 일반적인 가격을 훨씬 넘어섰다. 왜일까? 그녀는 평범한 애니메이터인데 말이다. 이렇게 거대한 음모와 놀라운 사실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아노미아는 남성 권리 연합(이하 남련) 소속이다. 이 미래 세계는 여성이 권력을 잡았다. 남자들은 남성성을 잃고 여자처럼 변하거나 권력의 중추에서 떨어져 있다. 과학의 발달은 근육의 힘보다 기계나 유전자 조작 등을 통해 여성들이 더 잘 활약할 수 있게 만들었다. 대통령부터 정부 관료 대부분이 여자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조건 중 하나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여자들이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아주기 때문이다. 여성 억압의 역사가 뒤바뀌었다. 이런 세계에서 레이는 경매 낙찰 금액의 일부를 남련에 기부하겠다고 말한 상태다. 물론 여기에는 아노미아의 조그만 욕심이 담겨 있다.

 

레이와 아노미아가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면 정부 측에서는 여대통령 장수진과 그녀의 경호원 가희와 정보조직의 수장 마담 리즈와 그녀의 부하 준 등이 있다. 이들은 음모를 꾸미거나 이용하거나 이용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다국적기업의 하수인 로렌스와 카스트라토이자 남련의 대표인 B 등이 있다. 이들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속고 속이는 과정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레이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험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 모든 것의 시발점은 레이의 난자들이다. 이것은 단지 어릴 때 고아원에서 자신을 도와준 아이를 수술할 비용 마련 때문이다. 이 세계에 대한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본격적인 SF 액션이 펼쳐진다.

 

소설은 왜 그녀의 난자가 정상 가격을 넘어 폭등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가지게 만들고, 그녀를 둘러싼 수상한 음모와 마담 리즈의 DNA 정보 차단 등을 조금씩 풀어놓는다. 여기에 대통령이 개발한 새로운 웹사이트의 가능성은 단순한 액션을 넘어 정치, 경제 등의 문제를 같이 다룬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의 깊이가 그렇게 깊지는 않다. 하지만 화폐 대신 전기를 교환가치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발상은 놀랍다. ONS 백신 개발로 여대통령이 된 그녀에게 이 사업은 한국의 미래 성장을 보장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다. 그러니 당연하게 국제 자본들이 이것을 그대로 놓아둘 리가 없다. 특히 석유로 거대한 부를 불린 석유회사와 금융재벌 등.

 

SF적 발상을 통한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활약과 액션은 볼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파워슈트와 같은 물건을 통해 근육의 한계를 기계로 대체하였고, 기계와 인간의 결합체를 좀비라고 부르면서 판타지의 영역을 과학 속으로 끌고 들어왔다. 여기에 다이 블레이드란 검을 통해 파워슈트 등으로 몸을 보호한 사람들을 공격하면서 다시 원초적인 액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작가의 미래 과학 인식 중 일부는 현재 과학 기술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살짝 거부감이 생기게 만들었다. 리얼월드 대신 레알월드란 단어를 사용한 것도 현재의 시효성을 미래에 적용한 것이지만 스페인어 레알의 의미를 되새기면 아쉬운 대목이다.

 

작가는 한국이란 공간 속에서 출생의 비밀을 이용해 음모를 풀어내었다. 이 공간을 확장하지 않은 것은 박수를 칠만하지만 너무 쉽게 국제 음모가 발각되고 무너지는 부분은 역시 아쉽다. 처음에 주인공이었던 레이가 어느 순간 음모의 희생자로 전락하고 출연 비중이 줄어든 것은 미래 세계나 내면 심리보다 액션에 더 무게를 실어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덕분에 빠른 전개와 액션으로 가독성은 충분히 높였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개인 영웅주의와 충돌은 약간 전형적인 연출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좀더 빠르고 간결하면서 덜 설명적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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