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니아
최공의 지음 / 요다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 미래를 다룬 SF소설이다. 최근 유행하는 인공지능을 넘어 인공의식 이야기를 다룬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는 것에 반해 인공의식은 스스로를 의심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의지다. 기존의 SF소설에서 인공지능을 가진 안드로이드 등이 인간처럼 되길 갈망하는 바를 다루었다. 인간의 감정이 중요한 핵심이었는데 이 소설 속 인공의식을 가진 엑스는 80대 노인 레인과 대화하면서 점점 인간처럼 변한다. 그 대표적인 행동이 인간의 감정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다.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한 감정은 말 그대로 데이터일 뿐이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불안전성이 제거된 상태다. 작가는 이 불안전성과 불완전성을 내세워 엑스에게 자유의지를 건낸다. 그리고 그 결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이오니아란 기업이 인공지능을 탑재한 제품을 만들면서 인간들은 둘로 나뉘어진다. 이것을 반기는 쪽과 거부하는 쪽이다. 인공지능이 생활의 편리함을 정확하게 전달해주는데 이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진다. 인간 30명이 할 수 있는 일을 인공지능 하나가 해치우는 현실은 거대한 실업을 불러온다. 이 인공지능을 기업에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은 인간들이다. 그 당시에는 자신들도 해고의 대상이 될 줄 몰랐다. 뒤늦은 후회와 반성은 뒤바뀐 시대에 따라가지 못한 탈락자의 감상일 뿐이다. 청소업체에 일하면서 로봇을 박살낸 레인의 친구 에피소드는 또 다른 추락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이 미래의 시대는 대규모 실업이 존재한다. 기본소득을 제공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충분한 돈이 없다면 좋지 못한 환경과 음식을 감수해야 한다. 늙은 레인이 통조림을 들고 오다 쓰러졌을 때 풍경은 생존 앞에 도덕은 너무나도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이용한다. 그를 인터뷰한 레이철의 본신 에밀리와 바에서 나누는 대화는 엑스와의 대화와 다른 방식으로 이 사회의 한 축을 잘 보여준다. 인공지능을 뛰어넘은 존재의 탄생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이 그곳에 담겨 있다.


레인은 아이오니아 야간 경비직에 뽑히기 전 일체의 인터넷 사용을 그만두었다. 전화도, 이메일도, 전자화폐도 사용하지 않는다. 전철에서 힘들어하는 그를 보고 인공지능 로봇이 라멘집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가 현금을 내는 것을 보고 가게 주인이 곤혼스러워한다. 그리고 라멘집 주인이 왜 인공지능 로봇을 라멘집에 놓아둘 수밖에 없는지 설명할 때 대중의 기호와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뒷배경과 인터뷰의 몇 가지 대답이 그를 뽑는다. 처음 엑스와 만났을 때 인공의식 엑스가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졌던가. 노인인 레인은 최선을 다해 그에 답해준다. 주저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준다. 인간은 인공지능 같은 연산능력도 기억도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이 소설에는 SF소설하면 흔히 떠오르는 액션이나 화려한 볼거리는 거의 없다. 오히려 철학적 질문과 답변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사람에 대해,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해, 인간의 느림에 대해. 수많은 질문은 엑스가 점점 인간처럼 변하는데 도움을 준다. 작가는 여기에 한 가지 변수를 넣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만든다. 바로 인간의 죽음이다. 인간처럼 의심하고, 판단하고, 감정의 싹을 가진 인공의식 엑스가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도 인간적이면서도 인공지능적이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가독성에 비해 상당히 무거운 이야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딴생각 - 유럽 17년 차 디자이너의 일상수집
박찬휘 지음 / 싱긋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단 저자의 이력에 먼저 눈길이 갔다. 페라리,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유럽 자동차 회사에서 활동한 디자이너라는 이력은 한국에서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선택은 책소개에 나온 몇 줄의 글들을 읽은 다음이다. 간결한 문장과 자신이 생각한 바를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흥미를 끌었다. 여기에 목차는 또 어떤가. 스물두 개의 명사 각각에 달린 간단한 부제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왠지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이름들이 곳곳에 보인다. 만약 뻔한 성공담을 다루었다면 나의 시선은 딱 그곳에서 멈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일상기록은 그의 생각을 담고 있고, 나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읽다 보면 몇 가지 실수가 먼저 들어온다. 자동차의 발명을 헨리 포드라고 말한 부분이다. 현대적 공정을 발명한 인물이 포드인 것은 맞지만 자동차는 이미 그때도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혼자 그린 것처럼 설명한 부분도 눈에 살짝 거슬린다. 어쩌면 사소한 것들인데 아쉬운 디테일이다. 어쩌면 의도적인 생략일 수도 있지만 눈길이 그곳에 머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이런 사소한 부분으로 그의 글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여러 부분에서 낯선 경험을 시켜주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과거에 머물면서 회상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현재 속에 녹여내면서 이야기를 상당히 맛깔스럽게 풀어낸다.


솔직히 앞의 몇 가지 에피소드는 그냥 무덤덤했다.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다른 곳에서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연필’부터 나의 과거 기억과 경험들이 저자의 글들과 엮이면서 재밌어졌다. ‘종이’의 질감을 말할 때 어릴 때 그 까칠함이 생각났다. 그렇지만 저자의 아버지가 그렸다는 태극기가 더 놀라웠다, ‘카메라’ 속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옛날 앨범 속 사진들이 생각났고, 불필요하게 마구 찍은 사진들이 떠올랐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상황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커피’는 그 속에 든 이야기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인상적이다. 그의 수집품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고, 그렇게 된 사연이 따라온다. 당연히 나의 수집욕도 같이.


‘라디오’ 속 아버지의 사연은 노래를 몇 번이나 들으면서 가사를 적든 시절이 떠올랐다. 좋아하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위해 얼마나 반복해서 들었던가. 유럽의 하늘색도 파란색이란 부분에서 왠지 낯설다. 빛과 색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잊는 부분이다. 그의 전문 분야인 ‘자동차’ 이야기는 재밌지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사장단에게 거액을 들여 만든 이미지 체험을 하게 했더니 실물을 직접 보지 못해 화를 낸 부분이나 전기차로 인해 부자 사이의 경험이 사라진 이야기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시대의 변화 속에 우리의 반응이 어떻게 갈리는지 알 수 있다. 저자의 아들이 구형 폰의 터치감을 이야기할 때도 잊고 있던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시계’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놀란 것은 이탈리아에서 역사 시간에 시계 보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한때 나의 팔목에 항상 차고 있던 시계가 이제는 귀찮아서 떼어버렸는데 이 시계가 좋다고 차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것도 아주 무거운 것을.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고가의 물건이란 이유가 많다. ‘와인잔’의 단순함을 예찬할 때 단순과 simple을 비교한 부분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좀더 간결하고 단순한 것을 선호하는데 그 안에 담긴 수많은 반복과 노력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세탁기’의 독일 브랜드 <밀레>를 예찬했는데 솔직히 커피 머신의 밀레는 정말 별로였다. 정밀한 독일 기계 등에 대한 예찬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소설이나 다른 곳에서 본 독일과 다른 부분이 많아 살짝 고개를 갸웃거린다.


‘볼트’와 ‘비행기’ 이야기는 발상의 전환을 다룬다. 영국 디자인 대학에서 볼트를 진열해 대상을 받았다거나 집에서 서독으로 넘어가기 위해 비행기를 몇 년에 걸쳐 만들었다는 부분은 가장 기본적인 것과 대단한 의지와 열정을 담고 있다. 왼손잡이 아들을 보고 세계적인 인물들이 왼손잡이란 사실과 비교해 좋아하던 아버지와 이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교정하려고 한 한국 교육의 과거 현실을 꼬집은 부분도 좋은 이야기다. 이렇게 이 책은 자신의 경험과 사물에 대한 사유가 뒤섞여 있다. 디자이너가 본 사물의 모습과 변화는 잠시 동안 나를 추억속으로 끌고 들어갔고, 잊고 있던 단순함을 떠올려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는 2021년 CWA 대거상을 수상했다. 이 상을 수상했지만 한국에서 출간된 책은 이 책이 현재는 유일하다. 출간 이력이 상당히 흥미롭다. 2009년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되었다. 영국은 그 이후다. 프랑스 등에서도 이미 많은 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루이스 섬’ 3부작 중 첫 권이다. 개인적 바람은 나머지 두 권이 출간되는 것인데 내가 기대한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이 아직까지 출간되지 않는 것을 보면 쉽게 기대할 수 없다. 루이스 섬을 지도에서 보면 상당히 북쪽에 위치해 있다. 작은 섬도 아니다. 작가가 그려낸 섬의 풍경은 황량하지만 매력적이고, 아주 낯설다. 읽는 내내 왠지 모르는 강한 바람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소설의 주인공은 18년 전 섬을 떠난 형사 핀 매클라우드다. 그는 현재 아이가 죽은 것 때문에 휴직 중이다. 그의 상사는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고 하면서 그가 조사하던 수사와 비슷한 살인사건이 일어난 루이스 섬으로 출장을 보낸다. 그가 집을 떠나기 전 아내와 다툼이 있었다. 만약 섬으로 간다면 다시는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한다. 하지만 그는 고향 섬으로 간다. 이후 펼쳐지는 서늘하고 어두운 이야기 속에서 이 부부의 관계를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아주 잠깐 아내를 떠올리고, 아이가 죽게 된 사건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만 생략된 채 끝까지 간다. 이후 시리즈에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이 부부의 삶이 나올지 의문이다.


섬에서 죽은 이는 에인절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핀의 어린 시절 많은 아이들을 괴롭힌 악동이었다. 어른이 된 후에도 많은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닌 모양이다. 그는 아주 참혹하게 죽었고, 이 시체는 섬의 연인들이 발견했다. 경찰의 정보기술시스템 홈즈가 게일어를 할 줄 아는 형사 핀을 선택했다. 그가 이 섬에 온 것은 프로그램의 선택이다. 섬에 도착한 그를 맞이한 것은 그가 떠난 후 잊고자 했던 과거들이다. 섬의 경찰서장은 그를 반기지 않는다. 그가 이 섬에서 할 일은 이 사건이 그가 이전에 수사하던 살인사건과 같은 인물이 저지른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만약 맞다면 연쇄살인이다. 시체 부검을 위해 다른 법의학자가 불려오고, 유력한 용의자들을 만나야 한다.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가 교차한다. 과거는 학교에 처음 들어간 날부터 시작한다. 영어를 몰랐던 그때 그에게 다가온 마샬리, 천식을 앓던 아슈타르 등이 그의 친구가 된다. 스코틀랜드 섬에서 살기에 영어를 몰라도 상관없었지만 학교에서는 공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생각보다 빠르게 그는 영어를 배운다. 그리고 아슈타르의 아버지 도움을 받아 학업 성적이 좋아진다. 대학을 가야만 섬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더 쉽게 생긴다. 학창 시절 좌충우돌하는 약간은 평범한 일상이 처음에는 나온다. 하지만 그가 자라면서 그가 섬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연들이 하나씩 생긴다. 작가는 이 어둠을 마지막까지 꼭꼭 숨겨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어둠에 크게 한방 맞는다.


어린 시절 그와 친구들을 괴롭혔던 에인절. 그를 둘러싼 소문들은 결코 좋지 않다. 그를 죽일 사람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18년의 세월이 흐른 후 서로 변한 친구들을 만난다. 이 만남은 그를 잠시 과거로 데리고 간다. 누가 에인절을 죽였을까? 그가 이전 살인도 저지른 것일까? 연쇄살인일까? 모방살인일까? 이런 의문들이 깔린 채 현실의 수사는 천천히 진행된다. 핀이 변한만큼 친구들도 변했다. 세월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핀처럼 섬을 떠나지 않은 친구들은 그 섬에서 일하면서 먹고 살아야 한다. 그 삶의 모습들은 결코 풍족하지 않다. 제1용의자인 환경론자는 에인절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 폭행을 본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그 이유도 나중에 밝혀지는데 생각보다 간단하다.


춥고 어둡고 묵직하다. 앞부분에 조금 분위기와 섬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가면서 이야기 속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엮이고, 꼬인 관계와 생각도 못한 새로운 관계 때문이다. 바닷새를 사냥하는 섬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는 섬에만 머문다. 그 잔혹한 이야기는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거짓과 위선, 사랑과 욕망, 보이는 삶과 숨겨진 삶 등이 하나씩 기억 위로 떠오르면서 그가 섬을 떠난 이유를 밝힌다. 그리고 그를 불러온 살인사건이 있다. 이 소설의 백미는 바닷새를 사냥하는 섬에 있다. 진실을 묻어두어야 하는 곳. 잔혹한 학살이 있는 곳. 생존을 위한 사냥이 전통이 된 곳. 일 년에 한 번 그 섬에 머물면서 학살하는 장면은 잔혹하다. 하지만 그 맛에는 입맛을 다신다. 모순된 감정들. 책 마지막 문장을 읽고 이 기억이 완전히 퇴색하기 전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다고 느낀다. 멋진 소설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2-08-19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확 다가옵니다!
👍 👍 👍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
다비드 디옵 지음, 목수정 옮김 / 희담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년 부커 인터내셔날 수상작이다. 2016년 한강의 수상 이후 우리에게 더욱 익숙해진 상이다. 이전에는 맨부커 상이었는데 이름이 조금 바뀌었다. 이와 동시에 다양한 수상 이력이 책소개에 나온다. 이런 수상 이력도 눈길을 끌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어떻게 악마 군인으로 변해가는지 보여준다고 한 대목이다. 전쟁으로 인간의 이성이 마비되고, 인간성을 상실한 주인공을 다룬 소설들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끌렸다. 어쩌면 악마 군인이란 단어를 보고 판타지 속 이능력을 발휘하는 주인공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소설 속 주인공은 그런 능력은 없다. 그가 네 번째 손을 가지고 온 이후 동료들이 보여준 반응을 생각하면 이 능력도 사실보다는 상상력에 기댄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제1차 대전 세네갈이다. 알파는 친구 마뎀바와 함께 프랑스 군대에 입대한다. 왜 이 군대에 입대했는지 알려주는 것은 후반부에 가서 나온다. 첫 장면은 마뎀바가 죽는 순간과 그 시간을 단축해달라는 요청을 다룬 부분이다. 시체가 된 마뎀바를 안고 알파는 진지로 돌아온다. 그 후 그는 매일 밤 적군을 한 명씩 사냥한다. 그가 적군을 죽이는 방법은 아주 잔인하다. 몇 번의 복수에 동료들은 환호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적을 죽이고 가져온 손 때문이다. 실제 그가 그들을 어떻게 죽였는지 본 사람은 없다. 알파의 고백 속에 자세히 나온다.  


그의 복수가 반복되면서 적들만이 아니라 아군들도 그를 두려워한다. 당연한 일이다. 적에게 잔인한 사람들은 어느 한계를 넘으면 아군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대 장교는 그를 후방으로 보낸다. 그 사이 그가 모은 일곱 개의 손들을 찾아내고, 꼬투리를 잡으려고 한다. 그의 말을 통역하는 세네갈 군인은 혹시 알파의 원한을 살까 두려워 항상 “대위께서 말씀하셨다.”라는 단서를 붙여 말을 전달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헛웃음이 나왔지만 아마도 그 순간 통역병의 심장은 아주 살 떨렸을 것이다. 후방 부대로 온 이후 이야기는 과거로 흘러간다.


알파는 아주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다. 크고 잘 생겼고 탄탄한 몸매를 가졌다. 여자들은 그의 신체 한 부분에 눈길이 머문다. 마뎀바와 함께 군 입대하기 전날 밤 그에게 반한 여자 한 명이 그와 하룻밤을 보낸다. 사랑하는 두 연인의 안타까운 이별 정도로 생각했는데 뒤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소설은 이렇게 조금씩 뒤로 가면서 과거와 사실이 하나씩 드러난다. 후방에 와서도 그에게 이전과 똑 같은 눈길을 주는 여인이 있다. 하지만 전쟁의 광기 속에서 변한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이전과 다르다. 자세한 장면은 생략되었지만 왠지 모르게 서늘하다.


한 개인이 전쟁의 광기 속에서 복수를 외치며 잔혹한 행위를 한다. 사람들의 공포를 불러오지만 이것보다 훨씬 잔혹한 장면이 하나 나온다. 무분별한 돌격을 거부한 일곱 명의 병사에게 부대장이 내린 참혹한 처형 장면이다. 돌격을 거부한 그들을 묶고, 만약 나가지 않으면 그들의 가족들에게 그 어떤 연금이나 수당도 지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겁박한다. 도망병이란 불명예도 함께.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가족이나 연인에게 무엇이나마 남기겠다는 병사가 나온다. 죽음 속으로 달려가는 그들과 이 모습을 지켜보는 병사와 부대장의 모습은 또 얼마나 잔혹한가. 전쟁의 참상은 실제 한 병사의 광기에 찬 복수보다 훨씬 참혹하지만 쉽게 묻힌다. 적군의 손 일곱 개와 아군 일곱 병사의 죽음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간결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잘 읽히지만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현상을 그대로 보여줄 때는 그 이미지를 따라가면 되지만 마지막에 도달하면 그 이미지 너머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 나온 이야기에 새로운 이미지를 덧씌우려고 하면서 머릿속이 복잡하다. 반복되는 문장이 의미를 강조하지만 완전히 이해되지 않으면서 아쉬움을 남긴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생각보다 금방 읽었지만 무엇인가가 생략된 느낌이다. 예상과 다른 전개와 결말 부분도 여운이나 감동보다 아쉬움을 더 준다. 소설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온난한 날들 안전가옥 오리지널 20
윤이안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전가옥 오리지널 20권이다. 이 시리즈도 벌써 20권까지 나왔다. 중간중간 읽지 않은 책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고 있다. 윤이안이란 작가는 낯설다. 검색하니 이 책 포함해서 4권이 보인다. 2권은 앤솔로지다. 개인적 감상이지만 글을 참 재밌게 쓴다. 낯익은 설정이나 상황이 보이지만 장면 곳곳에 풀어놓은 이야기들이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식물의 소리를 듣는다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을 등장시켰는데 이 능력의 한계는 분명하고, 이 능력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하지만 이 능력을 얻게 된 이유를 알게 되면 마냥 좋게만 볼 수 없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이 소설은 시리즈로 만들어져야 한다. 매력적인 등장인물과 능력 때문이다.


모두 네 편의 연작 소설이 실려 있다. 단편으로 읽어도 되지만 마지막 이야기에 이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장편으로 분류해야 할 것 같다. 4개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은 평택이다. 최근 이경희 작가의 소설 속에서도 평택이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한다. 오래 전 친구가 결혼하고 생활한 곳이 평택이라 몇 번 다녀온 것이 전부인 나에게 평택은 익숙한 듯하지만 낯선 곳이다. 작가들이 이 공간을 특별하게 다루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읽으면서 잠시 든 생각이다. 이번에는 이 공간을 생태학적 공간으로 만들었다. 에코시티란 이름으로 말이다. 신소재 플라스틱 시범 사용 도시의 탄생은 기후 변화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역대급 폭우를 생각하면 기후 변화는 우리 삶을 크게 변화시킨다.


연작 단편으로 읽어도 좋다고 생각한 것은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박화음과 해준이 사이비종교의 기도원 앞에서 만난 이후 둘의 협업이 이어지지만 앞의 이야기가 다음 이야기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화음이 가진 초능력인 식물의 소리를 듣는 것과 식물 생태 법의학자를 꿈꾸는 해준의 만남은 최상의 결합이다. 이 둘은 각각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데 소설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려나온다. 화음이 해준을 만나게 된 데는 오지랖이 큰 역할을 했다. 칼국수집 외국인 아내와 아이가 사라진 것을 듣고 그들을 찾아나섰다가 기도원 앞에 잠복 중인 해준을 만났다. 해준이 탐정 면허를 취득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해준은 기도원에 들어간 딸을 찾아달라는 의뢰 때문에 잠복 중이었고, 화음은 식물의 사념을 좇다가 이곳에 왔다. 뻔한 사이비 기도원의 풍경을 보여주고, 신념이란 이름으로 가족을 구속하는 사람과 그들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종교 단체의 모습을 그린다. 재밌는 점은 사람들을 현혹하는 도구 중 하나가 기후 변화란 점이다. 이후 이어지는 사건은 화장한 애완묘를 묻고 왔는데 그 장소를 모르겠다면서 그 납골함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식물의 소리를 듣는 화음에게 최고의 의뢰이지만 그 위치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함점이다. 발품을 팔면서 열심히 숲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것은 살해당한 유골이고, 이 발굴로 경찰과 인연을 맺는다. 이렇게 작가는 화음이 탐정 사무소 조사원으로 일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조금씩 세계가 확장된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식물학 표본이자 독버섯이 사라진 것과 한 인물의 죽음을 연결했다. 이 독버섯을 먹고 죽은 사람이 있는데 목을 조른 흔적이 있다. 살인 가능성이 있다. 그 독버섯은 해준이 도둑맞았다고 한 것이다. 탐정 사무소 직원이 나와 갇힌 해준의 모습을 사진 찍으면서 신나게 웃는 장면은 이 탐정사무소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갇힌 해준이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동안 둘은 단서를 찾아 피해자 집 주변을 탐문한다. 이때 드러난 몇 가지 사실은 다음 이야기에서 이어지고, 몇 가지는 웃음을 자아낸다. 얼마나 허술한 탐정 기술인가! 결국 밝혀지는 사연은 씁쓸하다. 이때 나온 해준의 과거사는 잔인하고 참혹하다.


에코시티. 땅에 묻으면 썩는 플라스틱. 이 플라스틱만 사용하는 화음의 커피숍. 이런 화려한 이미지 뒤에 숨겨진 거대한 탐욕과 거짓은 예상하지 못한 테러를 일으킨다. 이 소설에서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맞닿아 있다. 우연히 터진 맹장으로 화음이 입원한 병원에서 병원 이사장에게 테러가 일어난다. 경찰이 출동하고, 수사가 이어지지만 이 범인을 잡는 것은 화음이다. 그 사건 이면을 들려줄 때 씁쓸한 현실을 마주한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이후다. 앞에 풀어 둔 이야기와 이어지고, 다음 이야기를 암시한다. 암시는 아닌가? 조금 무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그 무게를 가볍게 걷어내고, 경쾌하게 풀어낸다. 이 경쾌함 속에는 아직 다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성장하는 화음과 앞으로 더 많이 해결할 사건들을 생각하면 벌써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