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생각 - 유럽 17년 차 디자이너의 일상수집
박찬휘 지음 / 싱긋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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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자의 이력에 먼저 눈길이 갔다. 페라리,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유럽 자동차 회사에서 활동한 디자이너라는 이력은 한국에서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선택은 책소개에 나온 몇 줄의 글들을 읽은 다음이다. 간결한 문장과 자신이 생각한 바를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흥미를 끌었다. 여기에 목차는 또 어떤가. 스물두 개의 명사 각각에 달린 간단한 부제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왠지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이름들이 곳곳에 보인다. 만약 뻔한 성공담을 다루었다면 나의 시선은 딱 그곳에서 멈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일상기록은 그의 생각을 담고 있고, 나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읽다 보면 몇 가지 실수가 먼저 들어온다. 자동차의 발명을 헨리 포드라고 말한 부분이다. 현대적 공정을 발명한 인물이 포드인 것은 맞지만 자동차는 이미 그때도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혼자 그린 것처럼 설명한 부분도 눈에 살짝 거슬린다. 어쩌면 사소한 것들인데 아쉬운 디테일이다. 어쩌면 의도적인 생략일 수도 있지만 눈길이 그곳에 머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이런 사소한 부분으로 그의 글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여러 부분에서 낯선 경험을 시켜주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과거에 머물면서 회상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현재 속에 녹여내면서 이야기를 상당히 맛깔스럽게 풀어낸다.


솔직히 앞의 몇 가지 에피소드는 그냥 무덤덤했다.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다른 곳에서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연필’부터 나의 과거 기억과 경험들이 저자의 글들과 엮이면서 재밌어졌다. ‘종이’의 질감을 말할 때 어릴 때 그 까칠함이 생각났다. 그렇지만 저자의 아버지가 그렸다는 태극기가 더 놀라웠다, ‘카메라’ 속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옛날 앨범 속 사진들이 생각났고, 불필요하게 마구 찍은 사진들이 떠올랐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상황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커피’는 그 속에 든 이야기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인상적이다. 그의 수집품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고, 그렇게 된 사연이 따라온다. 당연히 나의 수집욕도 같이.


‘라디오’ 속 아버지의 사연은 노래를 몇 번이나 들으면서 가사를 적든 시절이 떠올랐다. 좋아하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위해 얼마나 반복해서 들었던가. 유럽의 하늘색도 파란색이란 부분에서 왠지 낯설다. 빛과 색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잊는 부분이다. 그의 전문 분야인 ‘자동차’ 이야기는 재밌지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사장단에게 거액을 들여 만든 이미지 체험을 하게 했더니 실물을 직접 보지 못해 화를 낸 부분이나 전기차로 인해 부자 사이의 경험이 사라진 이야기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시대의 변화 속에 우리의 반응이 어떻게 갈리는지 알 수 있다. 저자의 아들이 구형 폰의 터치감을 이야기할 때도 잊고 있던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시계’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놀란 것은 이탈리아에서 역사 시간에 시계 보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한때 나의 팔목에 항상 차고 있던 시계가 이제는 귀찮아서 떼어버렸는데 이 시계가 좋다고 차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것도 아주 무거운 것을.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고가의 물건이란 이유가 많다. ‘와인잔’의 단순함을 예찬할 때 단순과 simple을 비교한 부분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좀더 간결하고 단순한 것을 선호하는데 그 안에 담긴 수많은 반복과 노력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세탁기’의 독일 브랜드 <밀레>를 예찬했는데 솔직히 커피 머신의 밀레는 정말 별로였다. 정밀한 독일 기계 등에 대한 예찬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소설이나 다른 곳에서 본 독일과 다른 부분이 많아 살짝 고개를 갸웃거린다.


‘볼트’와 ‘비행기’ 이야기는 발상의 전환을 다룬다. 영국 디자인 대학에서 볼트를 진열해 대상을 받았다거나 집에서 서독으로 넘어가기 위해 비행기를 몇 년에 걸쳐 만들었다는 부분은 가장 기본적인 것과 대단한 의지와 열정을 담고 있다. 왼손잡이 아들을 보고 세계적인 인물들이 왼손잡이란 사실과 비교해 좋아하던 아버지와 이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교정하려고 한 한국 교육의 과거 현실을 꼬집은 부분도 좋은 이야기다. 이렇게 이 책은 자신의 경험과 사물에 대한 사유가 뒤섞여 있다. 디자이너가 본 사물의 모습과 변화는 잠시 동안 나를 추억속으로 끌고 들어갔고, 잊고 있던 단순함을 떠올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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