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한 날들 안전가옥 오리지널 20
윤이안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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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오리지널 20권이다. 이 시리즈도 벌써 20권까지 나왔다. 중간중간 읽지 않은 책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고 있다. 윤이안이란 작가는 낯설다. 검색하니 이 책 포함해서 4권이 보인다. 2권은 앤솔로지다. 개인적 감상이지만 글을 참 재밌게 쓴다. 낯익은 설정이나 상황이 보이지만 장면 곳곳에 풀어놓은 이야기들이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식물의 소리를 듣는다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을 등장시켰는데 이 능력의 한계는 분명하고, 이 능력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하지만 이 능력을 얻게 된 이유를 알게 되면 마냥 좋게만 볼 수 없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이 소설은 시리즈로 만들어져야 한다. 매력적인 등장인물과 능력 때문이다.


모두 네 편의 연작 소설이 실려 있다. 단편으로 읽어도 되지만 마지막 이야기에 이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장편으로 분류해야 할 것 같다. 4개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은 평택이다. 최근 이경희 작가의 소설 속에서도 평택이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한다. 오래 전 친구가 결혼하고 생활한 곳이 평택이라 몇 번 다녀온 것이 전부인 나에게 평택은 익숙한 듯하지만 낯선 곳이다. 작가들이 이 공간을 특별하게 다루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읽으면서 잠시 든 생각이다. 이번에는 이 공간을 생태학적 공간으로 만들었다. 에코시티란 이름으로 말이다. 신소재 플라스틱 시범 사용 도시의 탄생은 기후 변화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역대급 폭우를 생각하면 기후 변화는 우리 삶을 크게 변화시킨다.


연작 단편으로 읽어도 좋다고 생각한 것은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박화음과 해준이 사이비종교의 기도원 앞에서 만난 이후 둘의 협업이 이어지지만 앞의 이야기가 다음 이야기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화음이 가진 초능력인 식물의 소리를 듣는 것과 식물 생태 법의학자를 꿈꾸는 해준의 만남은 최상의 결합이다. 이 둘은 각각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데 소설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려나온다. 화음이 해준을 만나게 된 데는 오지랖이 큰 역할을 했다. 칼국수집 외국인 아내와 아이가 사라진 것을 듣고 그들을 찾아나섰다가 기도원 앞에 잠복 중인 해준을 만났다. 해준이 탐정 면허를 취득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해준은 기도원에 들어간 딸을 찾아달라는 의뢰 때문에 잠복 중이었고, 화음은 식물의 사념을 좇다가 이곳에 왔다. 뻔한 사이비 기도원의 풍경을 보여주고, 신념이란 이름으로 가족을 구속하는 사람과 그들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종교 단체의 모습을 그린다. 재밌는 점은 사람들을 현혹하는 도구 중 하나가 기후 변화란 점이다. 이후 이어지는 사건은 화장한 애완묘를 묻고 왔는데 그 장소를 모르겠다면서 그 납골함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식물의 소리를 듣는 화음에게 최고의 의뢰이지만 그 위치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함점이다. 발품을 팔면서 열심히 숲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것은 살해당한 유골이고, 이 발굴로 경찰과 인연을 맺는다. 이렇게 작가는 화음이 탐정 사무소 조사원으로 일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조금씩 세계가 확장된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식물학 표본이자 독버섯이 사라진 것과 한 인물의 죽음을 연결했다. 이 독버섯을 먹고 죽은 사람이 있는데 목을 조른 흔적이 있다. 살인 가능성이 있다. 그 독버섯은 해준이 도둑맞았다고 한 것이다. 탐정 사무소 직원이 나와 갇힌 해준의 모습을 사진 찍으면서 신나게 웃는 장면은 이 탐정사무소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갇힌 해준이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동안 둘은 단서를 찾아 피해자 집 주변을 탐문한다. 이때 드러난 몇 가지 사실은 다음 이야기에서 이어지고, 몇 가지는 웃음을 자아낸다. 얼마나 허술한 탐정 기술인가! 결국 밝혀지는 사연은 씁쓸하다. 이때 나온 해준의 과거사는 잔인하고 참혹하다.


에코시티. 땅에 묻으면 썩는 플라스틱. 이 플라스틱만 사용하는 화음의 커피숍. 이런 화려한 이미지 뒤에 숨겨진 거대한 탐욕과 거짓은 예상하지 못한 테러를 일으킨다. 이 소설에서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맞닿아 있다. 우연히 터진 맹장으로 화음이 입원한 병원에서 병원 이사장에게 테러가 일어난다. 경찰이 출동하고, 수사가 이어지지만 이 범인을 잡는 것은 화음이다. 그 사건 이면을 들려줄 때 씁쓸한 현실을 마주한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이후다. 앞에 풀어 둔 이야기와 이어지고, 다음 이야기를 암시한다. 암시는 아닌가? 조금 무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그 무게를 가볍게 걷어내고, 경쾌하게 풀어낸다. 이 경쾌함 속에는 아직 다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성장하는 화음과 앞으로 더 많이 해결할 사건들을 생각하면 벌써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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