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정의 (양장본)
나카무라 히라쿠 지음, 이다인 옮김 / 허밍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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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국내에 처음 번역된 작가다.

제7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에서 우수상 및 WEB독자상을 수상했다.

이때 수상작은 아직 출간전이다.

제목에 무한정의란 한자가 적혀 있는데 묘하게 ‘不’가 ‘正’에 겹쳐 있다.

의도적인 설정인 듯한데 소설을 읽기 전까지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다.

한 번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의 끝없는 붕괴 과정을 굉장히 불안하게 그려낸다.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것을 계속 무시한다.

그것이 사회 정의를 바로잡아야 하는 형사일 때 무한부정의로 변한다.

양심은 사라지고, 상황을 자기 행동 합리화로 바꾸면서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처음 살해된 인물은 전직 야쿠자였고, 칼에 여려 차례 찔려 죽었다.

시신에는 이마에 깊게 새겨진 ‘X’의 흔적이 있다.

다음 피해자에게도 같은 흔적이 이마에 새겨져 있다.

이 피해자도 반사회집단의 일원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연쇄살인범을 성소자라고 부른다.

반사회집단 사람들만 죽이기 때문에 일부 시민의 호응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회질서 위반이자 범죄행위다.

특별수사본부가 차려지고 경찰력이 총동원되어 범인을 쫓는다.


강력계 형사 료이치는 누구보다 법을 신뢰했고, 범죄자 잡는 것을 신념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바라던 본청 수사1과로의 승진을 바라고, 앞두고 있었다.

그에게는 영국 유명 학교 발레 유학을 앞둔 딸과 집에만 있는 아들이 있다.

딸 카나는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클럽을 돌아다니다 새벽에 들어온다.

항상 착하고 모범생으로 살아온 딸이 유학 가기 전 잠시 늦는다고 크게 탓하지 않는다.

연쇄살인범을 쫓는데 전력을 다하는 료이치에게 딸의 전화 한 통이 온다.

아빠, 내가 사람을 죽인 것 같아.”란 무시무시한 전화다.

현장에 도착한 그는 정당방위란 것을 알지만 딸이 살인자로 불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앞길이 창창한 딸의 미래에 어둠이 깔리는 것을 걱정한 그는 성소자의 범죄로 바꾼다.

이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은 연쇄적 붕괴의 시작이다.


작가는 단순히 료이치의 시각만 그려내지 않는다.

성소자가 죽인 사람들의 과거를 파헤치고, 단서를 하나씩 모은다.

첫 살인과 다음 살인 사이의 차이를 발견하고, 새로운 가능성도 세운다.

이런 와중에 료이치의 행동은 수사에 혼선을 초래했다.

법의학자의 부검 결과는 이마에 새겨진 흔적의 차이가 뚜렷하다.

모방범죄의 가능성이 생기면서 수사본부가 조사해야 할 부분들이 더 늘어났다.

그리고 경찰 내부의 수사 정보가 반사회조직으로 흘러 들어갔다.

조직은 상금을 내걸고 이 성소자를 자신들이 잡으려고 한다.

카나가 죽인 유이치의 부하 한 명이 그날 밤의 정보를 가지고 료이치에게 연락한다.

천만 엔을 주면 이 사실을 경찰에게 알리지 않겠다고.


료이치의 두 번째 잘못된 선택은 이 협박에 대해 성소자에게 살인 의뢰한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성소자가 바라는 경찰 내부의 증거를 없애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료이치와 성소자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협력하는 관계가 된다.

최악의 결합이자 사건 해결의 단서가 경찰 내부에서 사라진다.

다음 피살자가 나오지만 사라진 증거와 둘의 협력이 사건을 미궁으로 몰아넣는다.

여기에 료이치의 친구이자 감찰계를 담당하는 카타세가 끼어들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카타세는 이케부쿠로 경찰 내부에서 반사회조직으로 정보를 흘리는 인물이 있다고 말한다.

뛰어난 직관력과 추리력을 가지고 있고, 역시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경찰이다.

출연 빈도는 높지 않지만 그의 등장은 료이치의 선택이 불러온 나락을 현실화시킨다.


가족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연속적인 잘못을 선택한 료이치.

성소자에게 살인을 의뢰한 후 더욱 깊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 료이치.

누군가를 죽였다는 사실에 두려움과 공포에 짓눌린 딸 카나.

이런 카나의 불안감을 눈치채고 어떻게든 누나를 괴롭히려는 동생 쇼타.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살인사건은 긴 꼬리만큼 단서가 많아진다.

료이치가 성소자와 협력하면서 이 단서들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쇼타가 저지른 행동이 또 다른 단서가 되면서 상황은 알 수 없게 흘러간다.

후반부에 가면서 범인의 윤곽은 뚜렷해지고, 상황은 더 꼬인다.

이 꼬인 상황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료이치의 양심은 더욱 흔들린다.

마지막 장면은 독자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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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로그인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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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가독성과 묵직한 이야기들은 이 작가를 기억하라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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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로그인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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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의 작가다.

이 소설을 재밌게 읽었고, 그 기억이 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타이완판 ‘N번방’을 고발한다고 해서 더 관심이 생겼다.

그런데 소설 중반까지 N번방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당연한 성공을 길에서 굴러떨어진 천신한의 기이한 이야기만 나올 뿐이다.

미국 유학과 대기업 입사를 꿈꾸었던 청년은 교통 사고 이후 삶이 바뀐다.

죽을 위험을 넘긴 큰 교통 사고였는데 이 이후 그는 죽음의 검은 안개를 보는 능력이 생긴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 능력을 알게 되지만 이때만 해도 견딜만했다.

하지만 같이 일하던 동료의 죽음을 본 후 그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집밖으로 나가면 그의 눈에 죽음의 연기가 보여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가 집밖으로 나갈 결심을 한 날은 자살하려고 한 날이다.

숙소 중 평이 나쁜 곳에서 죽어 최대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려고 한다.

자살할 도구를 사고, 그 전에 먹을 음식을 산 후 공원에서 구워 먹는다.

이때 만난 노숙인과의 대화는 그를 다시 살게 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인터넷 게임 위그드라실에서 뚸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으로 넘어간다.

그의 뛰어난 실력은 아이템 팔기 등으로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게 한다.

자살 시도를 그만 둔 이후로도 그는 결코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다만 병원에서 우연히 만나 자신의 비밀을 말한 허칭옌만 집에 찾아올 뿐이다.

그가 소속된 길드 환절중당은 게임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유일한 곳이다.

이 길드의 멤버인 시리는 그와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여자다.


항상 집안에만 있던 그를 집밖으로 나오게 한 것은 좋아하던 시리다.

시리가 실제 만나길 바랐는데 이 만남에 허칭옌을 대신 내보낸다.

그는 주변에서 둘이 대화하는 것을 들고만 있으려고 한 것이다.

허칭옌을 보낸 것은 그가 시리에게 자신이라고 속이고 친구의 사진을 보냈기 때문이다.

시리와 친구의 대화는 반가움 속에 이어지지만 천신한은 시리에게서 검은 안개를 본다.

이 검은 안개는 시리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시리와의 대화를 복기하고, 전화로 시리가 만나는 남자와 연락을 끊게 한다.

자신이 직접 시리를 만나러 가지만 오히려 시리를 속인 것처럼 된다.

그리고 이때 시리가 잠시 출연했던 다큐멘터리의 스탭 왕전샹을 만난다.

이 만남을 통해 시리의 본명이 루이안이란 것을 알게 되지만 검은 안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왕전샹은 시리 친구 양양의 외삼촌이다.

시리는 양양의 가족이 내어준 집에서 살고 있다.

양양이 시리의 대화에서 이상함을 느끼면서 왕전샹을 통해 천신한에게 연락했다.

뉴스에는 십대 소녀가 사라진 뉴스가 흘러나온다.

양양이 어색하게 느낀 대화는 그 둘만의 오랜 습관이자 암호와도 같다.

그리고 시리가 남자친구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서 천신한이 예상했던 사람이 범인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누가, 왜 시리를 이렇게 죽음으로 몰고 가려는 것일까?

그 이야기의 시작이 범인의 사연을 통해 하나씩 흘러나오고, 대만판 N번방과 이어진다.


한 사람의 불행과 두려움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사회의 비리와 비극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 해결되지 않은 몇 가지가 그대로 놓여 있다.

이 미해결 상황 때문에 이 소설의 후속작을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와 많은 부분 닮아 있는 대만의 가족들 모습에 나를 돌아본다.

천신한은 왜 자신의 비밀을 부모님에게 말하지 못하고 있을까?

집안에만 있는 그를 두고 느끼는 부모의 갈등은 너무 사실적이라 섬뜩하다.

아들이 친구와 나간 날 나온 뉴스에서 엄마가 느낀 불안은 또 어떤가.

만약 아들이 범인이라면 어떻게 대응할지 보다 가족의 명예를 먼저 말한다.

이런 엇갈린 관계 속에 서로는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뛰어난 가독성과 묵직한 이야기들은 이 작가를 기억하라고 외친다.

#장편소설 #스릴러 #검은안개 #죽음의로그인 #우샤오러 #위즈덤하우스 #리뷰어스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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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음에는 이유가 있다
김아영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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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의 첫 여행 에세이다.

저자는 한국방송기자대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항공사 승무원이었고, 지방 뉴스 기자로 재직하다 MBC로 이직했다.

MBC에서만 8년을 근무했고,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되는 이력은 이 책 속에 그대로 나온다.

뉴스를 잘 보지 않는 나에게 솔직히 김아영 기자는 낯설다.

자신이 잘 하고 바라던 직업을 떠난 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서다.

네 번의 걸음 속에 담긴 여행지 커피 및 차 전문점과 그녀의 과거와 엮여 하나씩 풀린다.


첫 번째 발걸음 장소는 대만이다.

저자는 흔한 여행지의 관광지나 아름 풍경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찾아간 커피 전문점 등에서 경험한 것들과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커피와 차의 맛과 향에 집중하고, 작고 소소한 이야기들에 눈과 귀를 기울인다.

단순히 이곳의 맛과 향을 다루었다면 더 많은 곳을 방문해야 했을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엮어서 하나씩 풀어낸다.

약간 놀랐던 부분은 자신의 강박증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이다.

이보다 더 놀란 것은 이 강박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도와준 친구다.

이런 친구 한 명이 있다는 것만으로 삶은 충분히 풍족하다.


두 번째 걸음은 일본에서 경험한 것들이다.

승무원 경험이 흘러나오는데 살짝 그 세계의 이면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승무원에 갑작스럽게 합격했다고 하는데 약간 의문이 생긴다.

승무원 학원까지 다니면서 준비하는 사람들과 기자의 격을 나누는 듯하기 때문이다.

여행지의 노을 보면서 일하고 살던 곳에서 제대로 보지 못한 노을을 떠올린다.

일상을 벗어난 여행지 속에서 우리가 다시 일상의 생각하는 것과 닮아 있다.

말차와 호지차 이야기도 재밌었지만 300년된 차 가게가 더 눈길이 갔다.

긴 세월보다 세 번을 우려내는데 각각 다른 온도로 우려낸다고 한 부분이다.

40도, 60도 이런 식으로 온도를 높인다 마지막 세 번째는 정확한 온도가 없다.

물 온도를 같이하고 우리는 시가는 달리하는 것은 봤지만 이런 방식은 새롭다.


베트남이 세 번째 걸음이 있었던 곳이다.

대부분 다낭과 호이안이란 지역에 머물었는데 다낭에서 만난 탄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오토바이를 처음 타봤다는 저자, 탄과 장의 호의와 친절.

이 사이에 기자 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힘든 일들.

여행지에서 만난 최고의 선물은 좋은 친구란 것을 알게 하는 에피소드들이다.

그리고 호이안의 Uncle huan coffee에서 청년이 만들어준 커피 아트는 최고다.

사진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멋지다.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는 장면을 보면서 다른 직장으로 떠난 동료들이 떠올랐다.

그녀와 관계를 맺었던 선후배에 대한 단상은 직장이라 삶의 현장을 돌아보게 한다.


마지막 발걸음이 걷는 곳은 한국이다.

한때 한국에 갈 곳이 많다고 말했지만 늘 가는 곳만 간 나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늘 이런 저런 이유로 가지 못했다.

남편의 아버지 이야기를 읽다가 오래 전 아버지와 술 한 잔 했던 날이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데 어머니에게 이 이야기를 즐겁게 했다고 한다.

이런 소소한 일들이 조금씩 쌓여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준다.

저자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풀어낸 것도 시아버지의 부고와 이어진다.

가족들을 위해 온갖 힘든 일을 겪으면서 급여를 받는다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담고 있는 비디오는 나와 아이의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저자는 모든 걸음에 이유가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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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사람 열린책들 한국 문학 소설선
고수경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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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한국문학 소설선 두 번째 소설집이다.

열린책들이 한국문학을 낸 것이 이번이 두 번째다.

2022년에 낸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이 있었다.

대부분 낯익은 시인들이지만 낯선 이름도 몇 명 보인다.

하지만 동시대의 소설가 작품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처음 만나는 작가인데 매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등단작이 표제작인 <옆사람>인데 읽고 나서 마음이 불편했다.

이런 불편함은 다른 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독 읽는 이의 마음이 잘 비친다.”란 평론이 마음 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읽으면서 나의 선입견이 먼저 작용하고, 놓친 대목들을 돌아보게 했다.

첫 단편 <새싹 보호법>이 대표적이다.

새싹이란 단어 때문에 교사가 고등학교를 담당한다는 것을 순간 잊었다.

섬이란 지형은 아주 좁고 적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으로 미리 짐작했다.

하지만 이 섬에는 무려 3만 명이 거주하는 결코 작지 않은 섬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을 찾아 떠도는 아이를 뒤쫓는 교사에 몰입하지 못한다.

생략된 이야기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명확하지 않거나 내가 놓쳤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방>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에 대한 갈구가 느껴졌다.

두 연인의 긴 동거와 서로 다른 생각은 좀더 열린 마음으로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집문 번호를 잘못 눌러서 생긴 이야기를 다룬 <이웃들>.

옆집 사람도 모르는 우리의 현실과 현대인의 삶을 보여준다.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사람은 이사했거나 해외여행 중이다.

다른 집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 결과는 가끔 이상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분실>은 방콕에서 캐리어가 바뀐 지영의 심리 변화가 눈길을 끈다.

그녀가 찾아온 대학 동기 은희의 방콕에서의 새로운 삶도 마찬가지다.

캐리어를 찾으러 치앙마이까지 기차를 타고 떠나는 그들.

엇갈리는 현실, 과거의 기억들, 과거의 흔적.

여운이 강하게 남고, 예전에 갔던 치앙마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아직 새를 몰라서>는 유산한 아내가 돌보는 저어새 소금이를 둘러싼 이야기다.

장인이 낚시 갔다가 데리고 온 멸종위기종 저어새.

이 새를 집 화장실에서 키우고, 산책한다.

그리고 이 부부사이에 있었던 불행과 일상의 틈을 파고든다.

소금이를 돌보는 일이 무너졌던 마음을 데우고 서로 의지하게 한다.

<좋은 교실>은 학습지 선생하는 엄마가 느끼는 불안과 현실이 강렬하다.

수많은 아이들이 하는 학습지. 이 수업이 싫어서 화장실로 도망간 아이.

아들의 친구가 자살한 사건 때문에 이사했지만 아들은 이전 친구를 만난다.

한국 교육의 현실, 경쟁, 서로 엇갈리는 마음과 깊게 파헤치지 못하는 불안감.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나를 대입할 수밖에 없었다.


<탈>은 SF적 요소를 넣었지만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 얼굴 전면을 가리는 마스크가 상용된 미래 사회.

사람들의 본 모습은 사라지고, 마스크에 꾸민 모습만 타인에게 보여준다.

이와 비슷한 설정의 소설들을 몇 편 보았기에 낯익지만 몇 가지는 흥미롭다.

고객들의 불만과 갑질을 기계대신 사람으로 내세워 욕받이처럼 설정한 부분이다.

표제작 <옆사람>은 남편의 지갑분실과 삼장마비 죽음을 엮었다.

남편은 지갑을 옆좌석 사람이 훔쳤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의 오해와 언론이 무책임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엮인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녀가 결혼했던 남편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나아가게 한다.

결혼한 부부가 결코 ‘우리’가 아니었다는 사실. 그리고 옆사람이란 호칭.

남편을 남의 편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 옆사람이란 단어가 복잡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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