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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알 ㅣ 환상하는 여자들 1
테스 건티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3월
평점 :
환상하는 여자들 시리즈 제1권이다.
데뷔 소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는데 필립 로스 이후 최연소 수상자다.
쪽수만 보면 그렇게 두툼한 분량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 한쪽의 분량을 보면 다른 책보다 20% 이상은 더 많다.
더 많은 분량보다 작가의 문장이나 장면이나 구성이 더 많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체력이 최악의 상황에서 읽은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상당히 더디게 읽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다 보면 좀 더 젊었던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최상의 상황에서 이 소설을 읽었다면 훨씬 재밌고 대단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좋은 컨디션에 흥미롭게 읽었던 대목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육체에서 빠져나온 블랜딘 왓킨스.
이 유체이탈을 보면서 머릿속에서 마약이나 신비주의 경험이 떠올랐다.
신비주의자들이 이 경험을 ‘심장의 황홀경’이나 ‘천사의 공격’이라고 불렀다는 문장 때문이다.
그리고 육체를 빠져나오기 이전의 시간대로 넘어가 이야기가 펼쳐진다.
열여덟 살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쇠락한 가상의 도시 바카베일이다.
실업률은 두 자리 숫자를 기록하고, 범죄율은 치솟는 도시다.
그녀가 살고 있는 저가 아파트는 토끼장으로 불린다.
그녀는 세 명의 십대 소년들과 함께 한 집에서 살고 있다.
블랜딘을 중심에 두고 그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펼쳐진다.
읽다 보면 황당하게 느껴지는 상황이나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한 유명 여배우가 자신의 부고장을 직접 작성했다.
그녀의 사후 이 부고에 수많은 사람들의 댓글이 달린다.
그 중 하나가 그녀의 아들이 직접 쓴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회사의 정책에 반하는 내용이다.
처음 조앤이 기사를 삭제한 후 그 아들의 반발로 다시 되살렸다.
이 문제를 조앤의 상사가 지적하는데 나중에 부고와 댓글로 나온다.
그리고 그 아들이 이 도시에 오는데 그 이유도 황당하다.
온몸에 형광물질을 바르고 밤에 그녀를 놀라게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결정과 행동은 마지막에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만든다.
블랜딘은 신비주의자들의 말에 매혹되어 있다.
그녀의 이전 이름은 티퍼니였고, 위탁가정에서 자랐다.
그녀는 뛰어난 성적을 유지했고, 자신의 선생 제임스에게 매혹되었다.
그녀와 제임스 사이에 벌어지는 일과 과정은 약간은 흔한 학생과 선생의 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섹스를 한 후 일어나는 일은 둘 모두에게 큰 충격을 준다.
결코 저지르지 말아야했다는 듯한 제임스의 반응과 버림받은 듯한 티퍼니.
이 일이 있은 후 티퍼니는 이름을 바꾸고, 학교도 중퇴한다.
그녀가 신비주의에 끌리게 된 데는 이 사건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나중에 이 둘이 다시 만났을 때 장면을 보면서 이 둘의 관계와 사실이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이 도시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홍수로 삶의 터전을 잠시 잃은 사람, 이 상황을 왜곡하는 시장.
새로운 도시 개발을 두고 일어난 기묘한 사건들.
과거 이 도시의 부흥기에 있었던 한 가문의 성공과 몰락의 이야기.
이야기는 파편적으로 흘러나오지만 어느 순간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그림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들도 있다.
다양한 형식,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 감추어져 있던 사실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머릿속은 이 이야기와 목소리들이 맴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야기가 오히려 마지막에 도달하면 간단하다.
그리고 이 간단함 속에 담긴 따스한 마음과 작은 인연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