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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워터 레인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평점 :
<브레이크 다운>의 개정판이다.
개정판으로 나오면서 영화 제목으로 책 제목을 바꾸었다.
한때 연속적으로 책들이 나오다 중단되었는데 최근에 다시 몇 권이 나왔다.
개인적으로도 강렬했던 데뷔작 <비하인드 도어>를 재밌게 읽어 관심을 두고 있던 작가다.
설정을 만들고, 심리적으로 상대를 무너트리는 기술이 아주 일품이었다.
이 능력은 이번 소설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만 나의 스릴러 구력이 깊어지면서 예상 가능한 설정이 있었는데 이번에 잘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모든 설정을 다 맞출 정도는 아니다. 마지막 반전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 캐시는 남편의 경고를 무시하고 지름길 블랙워터로 집에 온다.
집에 오는 도중에 주차한 차를 보고 잠시 멈춘다.
평범한 밤이면 밖으로 나가겠지만 폭우와 평온한 차안의 풍경이 그냥 지나가게 한다.
남편은 두통 때문에 먼저 다른 방에서 잠들었고, 집에 도착해서 경찰에 신고할까 고민하다 잠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자신이 지나온 길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그때 차 문을 두드리거나 경찰에 신고했다면 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이 죄책감은 피살자가 자신이 알던 제인이라는 사실에 더 강해진다.
경찰이 그날 밤 이 도로를 지나간 사람을 찾지만 죄책감과 두려움이 신고를 멈추게 한다.
이런 일상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약속 등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캐시의 엄마는 40대에 치매 증상으로 고생을 하다 죽었다.
캐시는 자신도 엄마처럼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친구의 생일 선물을 위해 모든 돈을 잊고 있거나 초대한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이 주문하지 않은 유모차가 집에 배달되어 온다.
죄책감과 범인이 자신을 찾으러 올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섞여 상황은 더 악화된다.
자신의 엄마가 치매 환자였다는 사실을 남편에게 말하지 못한다.
말하지 못하면서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 일들을 어물쩍 넘어가는 일들이 늘어난다.
어느 순간 집에 걸려오는 말없는 전화, 남편이 없을 때만 걸려온다.
이 전화가 그녀에게 범인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남편과 절친 레이첼에게 모든 것을 떨어 놓아야 하지만 공포가 그것을 막는다.
작가는 집요하게 캐시의 무너지는 심리 상태에 파고 든다.
불안과 공포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손길을 내미는 것을 막는다.
한 번 엇갈린 관계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더 방해가 된다.
이런 현상들을 지켜보다 보면 이상한 부분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이 부분들이 내가 설정을 알아채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아마 이것과 비슷한 설정을 예전에 본 적이 있어 빨리 눈치챈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과 상관없이 캐시를 둘러싼 환경과 신경이 쇄약해지는 모습은 흥미롭다.
의심의 눈초리를 어디까지 뻗어나가야 하는지 의문스러웠다.
이 상황이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 그랬다.
바깥에서 볼 때 캐시의 반응은 부정확하고 무력해 보인다.
하지만 과거의 이력과 현재의 공포 등이 엮이고, 주변 사항이 압박을 가한다면 어떨까?
작가는 서서히 조이는 심리적 공포를 차근차근 쌓아 올린다.
자신의 기억과 다른 상황, 엄마의 병력, 남편의 반응 등이 상황을 악화시킨다.
잔인한 장면은 없지만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상황이 순간순간 나타난다.
당사자가 아닌 경우 쉽게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흔적과 상황이, 가족력이, 남편의 소개로 만난 의사의 진찰이 있는데.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이, 가족이, 친구가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해결은 아주 우연한 일로 하나씩 풀린다.
이때부터 소설은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되고, 속도감은 더욱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