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번의 세계가 끝날 무렵
캐트리오나 실비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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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생애를 거듭하는 남녀의 운명과 비밀이란 소개에 혹했다.

거듭하는 환생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남녀의 운명적 사랑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흔하게 보는 환생과 로맨스만을 생각했다면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기존 소설 장르의 벽을 허물어트리고 철학적 메시지를 건낸다는 말이 결정타를 날렸다.

그리고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환생 설정을 짜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초반부를 지나가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머릿속은 기존에 읽었거나 본 소설 등의 설정들이 다시 뛰어놀기 시작했다.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도 궁금해졌다.

 

소라와 산티. 이 둘은 우연히 한 파티에서 만난다.

둘은 시계탑 꼭대기를 함께 올라갔다 왔는데 다음 날 산티가 시계탑에서 떨어져 죽었다.

이 둘의 만남이 하나의 인연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을 것이란 예상이 바로 무너졌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또 다른 소라와 산티가 나온다.

자연스러운 이끌림, 밀착되어 가는 관계, 보통의 연인들이 살아가는 삶.

이 삶이 끝난 후 다른 소라와 산티가 다시 나타난다.

공간은 항상 쾰른이고, 환생한 둘의 나이 차이는 어떤 이유로 차이가 난다.

이들은 만나고 헤어지면서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부부, 연인, 선후배 과학자, 아빠와 딸, 친구 등.

그리고 이 둘은 어느 순간 자신들의 이전 삶을 기억하게 된다.

이때 또 한 번 삶의 변주가 일어나고,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간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는 <사랑의 블랙홀>이다.

타임루프에 갇힌 남자의 반복되는 일상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같은 공간과 시간이지만 이 소설은 같은 공간에서 반복되는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게임이라면 시작하는 지점에 돌아와 같은 상황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이 또한 다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하나의 가능성을 찾아내었다.

하지만 왜 다른 나이와 상황으로 변주가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둘이 반복되는 삶을 바꾸기 위한 노력들이 나타난다.

이 노력은 각자의 환생 시기와 다른 선택에 의해 엇갈리면서 하나로 모인다.

이 과정 속에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현재 삶을 갈아먹는다.

무한 전생 속에 사람들의 인격 등이 변하는 것을 다룬 판타지도 떠올랐다.

 

같은 공간 속에서 같은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앞에서 말한 다양한 조합과 다양한 삶은 우리의 가능성에 대한 예시다.

이런 삶을 짧게 짧게 보여주면서 그 숫자를 늘여나간다.

이 수많은 삶이 보는 재미를 주지만 어느 순간 조금 지루해지는 부분도 생긴다.

이때 다른 설정을 통해 이 지루함을 몰아내고 다시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머릿속은 이 설정과 비슷한 소설이나 영화 등을 바쁘게 검색한다.

같은 것은 없지만 비슷한 것들이 머릿속에서 하나씩 튀어나온다.

가벼운 이야기가 어느 새 무거워지고 마지막에 도착하면 잠시 호흡을 고른다.

설정과 상황을 하나씩 빌드업 시키는 과정 속에 진실이 조금씩 드러난다.

과연 영화는 이 삶 중 얼마나 많은 수를 재현하고 변주할까?

영화를 본다면 이 소설의 기억이 어떤 식으로 작용할까? 재밌는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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