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 단숨에 읽는 시리즈
한잉신.뤼팡 지음, 김정자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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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해적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나는 인정사정없고 잔혹하고 난폭한 악당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멋지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낭만주의자다. 이 두 모습은 모두 영화나 다른 매체에 의해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우리가 해적하면 당연하게 생각하는 해골이 그려진 해적기를 생각하듯이 이런 두 모습은 알게 모르게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해골이 그려진 해적기를 사용한 해적이 많지 않다는 사실과 대부분의 해적들이 잔혹하고 피해자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바람직한 존재는 아니다.

 

이 책은 몇 백 년 전 해적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 시절이 해적이 가장 융성했던 시기인데 그것엔 이유가 있다. 바로 사략선이 그 이유다. 정부의 허가를 받은 공식 해적인데 이 무리가 약탈과 파괴 행위를 한다. 그들의 뒤에는 정부가 있다. 정부는 사략선이 약탈한 보물의 일정액을 상납 받았다. 현재처럼 체계화되고 정비된 해군이 없던 시절 이들이 일정 부분 해군의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그들의 본질은 해적이다. 아무리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하여도 규율이나 기타 다른 것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해적이 순순히 정부의 명령에만 따르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서 필요가 없어진 해적은 소탕의 대상이 된다. 물론 사략선이 아닌 해적의 경우는 더 많은 적에게 둘러싸이지만 부의 획득은 더욱 거대하다. 그러나 쉽게 획득한 부는 쉽게 흥청망청 사용하면서 사라진다. 긴 해적의 역사를 통틀어 부유하고 편안하게 말년을 보낸 해적이 거의 없음을 보면 알 수 있다.

 

16세기 이후 19세기 초까지 해적을 다루고 있다. 이 당시 해적이 가장 융성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바로 신대륙이다. 스페인이 신대륙에서 획득한 부를 스페인으로 운반하는 과정은 해적들의 표적으로 변했다. 무적함대를 이끌던 스페인이지만 카리브에서 자주 출몰하는 해적들을 모두 상대하기는 무리다. 여기에 영국, 프랑스 정부가 사략선을 허용하니 더욱 힘들다. 가진 것 없는 자들이 보기엔 이 노략질이 일확천금의 기회로 보인 것은 당연하다. 덕분에 캐리비안 해적들이 득세를 하고, 우리는 영화나 다른 매체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즐긴다. 잔혹하고 난폭한 해적들 속에 가끔 나타나는 낭만적인 해적에 열광하면서.

 

대부분이 캐리비안 지역에서 활동한 해적 이야기라면 다른 쪽은 인도나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동방무역항로에서 활약한 해적이다. 이들은 마다가스카르에 둥지를 틀고 캐리비안 해적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조직과 생활 방식들이 상당히 특이하다. 해적들의 유토피아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들의 본질은 해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록 그들이 세운 유토피아가 아주 멋지다고 하여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전에 읽은 ‘낭만적인 무법자 해적’의 옛 기억을 다시 살렸다. 두 책이 중복되는 부분이 있지만 책의 편집이 다른 방향이다 보니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다. 이 책이 해적의 역사에 집중하다보니 너무 간략하게 지나간다. 단숨에 읽는다고 하였지만 왠지 교과서 같은 느낌도 있어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았다. 많지 않은 분량과 많은 그림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물론 이것엔 나의 집중도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너무 그림을 비롯한 자료에 집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책을 모두 보고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역자에 대한 소개는 있다. 하지만 저자들에 대한 소개는 없다. 그들은 누굴까? 궁금하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에서 서아프리카에서 우리나라 상선을 납치한 해적들의 다루면서 우리나라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단순히 의역인지 아니면 그 장 자체가 편집에 의해 삽입된 것인지도 궁금하다. 혹시 숨겨진 다른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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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는 끝났다
이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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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심리추리소설이다. 사건이 발생한 후부터 시작하여 10일 전으로 돌아가 역으로 현재로 돌아오는 구성이다. 그 하루하루에 담긴 사건과 심리적 공포의 진행은 간결한 문장과 빠르고 잔혹한 장면으로 깊게 빠져들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살인들과 레이즈 킬러로 대변되는 연쇄살인범을 나란히 병치시키면서 한 사람의 공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사실은 어느 정도 이미 짐작한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말처럼 누가 범인인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한 사람이 마음으로부터 붕괴하는 그 과정에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일인칭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메구리는 메기의 입과 너구리의 눈을 가지고 있는 인기절정의 개그맨이다. 그가 보여주는 개그와 춤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소위 말하는 대박으로 그는 엄청난 일정을 소화해야 하고, 대단한 계약을 성사시킨다. 이런 설정이 조금은 과장된 모습이 있으나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위한 기초로 튼튼하게 자리를 잡는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간 사람의 추락하는 과정이 점차적으로 진행되다 급속하게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 엮인 인간관계와 현실의 무서운 살인사건들이 엮이면서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게 된다.

 

메구리의 심리 상태는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다. 심리추리소설이다 보니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고, 그 경계가 조금씩 무너지는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다. 진행하는 과정 속에서 단서를 하나씩 툭툭 던진다. 하지만 그 단서들이 정확하고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는다. 이 소설에서 아쉬움을 느끼는 몇 가지 중 하나다. 그 단서들과 환상을 재현한 장면은 이 소설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 그가 왜 이렇게 무너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읽는 과정에서 놓친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비워놓은 것인지 헷갈린다.

 

요즘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다. 뉴스를 보아도 좋은 소식은 거의 없다. 가끔 보면 놀라운 사건들로 가득하다. 정치는 언제나 삼류고, 이제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에 나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무감각해진다. 예전 같으면 분노하고 노여워하고 놀랄 사건이 평범한 일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현실이 나에게서 떨어져나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의 나와는 상관없는 일임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 이런 현실이, 공포가 조금씩 다가온다면 어떻게 될까? 성공하기 위해 나를 도와주던 사람들을 내가 버리고 온 것을 깨닫고 나를 협박하는 존재가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 가장 먼저 그들이 생각나지 않을까? 괜히 찔린다는 표현처럼. 이렇게 성공한 개그맨의 심리를 파고들고, 무리한 일정으로 약해진 몸 상태와 현실의 무서운 모습이 다가온다면 예상한 것보다 쉽게 무너질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숫자 5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정확한 범인을 알게 되지만 이미 나의 마음은 누가 범인인가 보다 메구리의 심리적 붕괴 과정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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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써바이 써바이 - '온 더 로드'의 박준, 길 위의 또 다른 여행자를 만나다
박준 지음 / 웅진윙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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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물음이다. 그 참혹한 킬링필드의 대지인 캄보디아 사람들과 그 속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자원봉사자들의 삶을 보면서 이 근원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진화니 세계화니 하면서 점점 각박해지는 우리 현실에 비추어 이 빈곤한 나라 사람들은 써바이 써바이를 외친다. 우리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점점 죽겠다 죽겠다를 외치는 것과 반대로.

 

써바이 써바이는 무슨 뜻일까? 행복하다는 의미란다. 먹는 물도 지저분하고, 댕기열을 전해주는 모기에 물려 아이들이 죽고, 한 끼 식사를 위해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이들이 외치는 말이다. 정말로 그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습관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반응을 보면 행복한 것 같다. 그 마을 사람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로 간 사람들도 행복하고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그 지독한 결핍이 이들에겐 또 다른 삶의 여유를 열어준 것이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 불편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저자가 캄보디아를 방문하면서 느낀 감상과 자원봉사자들과의 인터뷰다. 분량이나 내용으로 보아도 인터뷰가 더 중요하고 의미 있다. 어느 정도 일방적인 칭찬과 포장이 가미되어 있다고 하여도 그들이 그 속에서 살면서 느끼는 마음의 풍족함과 여유는 부럽다. 그리고 그 쉽지 않는 현장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은 존경스럽다. 누군가의 말처럼 봉사가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거나 월급쟁이 마음으로 한다는 표현은 그들이 얼마나 그 생활에 매료되어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물질적 풍요는 현재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절대 빈곤이 주변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굶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라에 나 가난하오 하고 말하면 먹을 것은 전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곤과 피곤함을 느낀다. 그것은 상대적 빈곤 때문이다. 자신과 부자를 비교함으로써 생기는 일인데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것을 무시하라고 하는 것은 자본주의 자체를 부인하는 꼴이다. 그래서 더욱 우린 쫓기고 쫓는 치열한 삶의 긴장을 가진 채 살아간다. 그러니 피곤하지 않을 수 없다.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인터뷰에선 만족과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또 동시에 절대 빈곤과 사회기반 시설이 열악하여 생기는 비극은 아픔을 전해준다. 진료비 1달러가 없어 병원에 오지 못하고, 아예 평생 병원이란 곳을 가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빈곤함 속에서도 사람들은 따뜻한 마음과 배려를 잊지 않는다. 불과 십 수 년 전 우리 어머니들이 밥은 먹었냐? 고 묻듯이 그들도 처음 만나는 이방인에게 이 말을 잊지 않는다. 점점 이런 사소한 배려를 잊어가는 우리를 생각하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가슴을 뜨끔하게 하는 이야기도 있고, 부끄럽게 만드는 이야기도 있다. 캄보디아에서 한 벌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다 한국에 잠깐만 있어도 예쁜 옷이랑 신발을 사고 싶다고 욕망에서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매달 10불씩 지불하는 것이 귀찮아 1년 120불을 한꺼번에 내려고 하는 사람 이야기에선 부끄러웠다. 또 한때 유행했던 “아빠, 힘내세요”란 노래가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는 한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가 느끼고 있는 강박감을 잘 나타내어준다고 생각한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아직도 킬링필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한 자원봉사자가 이 나라 사람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이것과 연관시켰는데 섬뜩하고 무서웠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죽음으로 연결된다면 누구나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할 것이다. 이와 유사한 우리의 삶에 대해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 있다. “잘살고 싶다는 바람을 넘어 잘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쫓긴다.”(261쪽)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자원이 부족하고 절대빈곤을 경험한 우리를 생각하면 캄보디아 사람들의 여유를 닮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강박에 시달리며 병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를 본다면 조금, 아니 많이 그들의 삶이 부럽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행복한 마음으로 열심히 봉사하는 그들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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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카, 짖지 않는가 미스터리 박스 2
후루카와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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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형식과 재미난 구성이 갖추어진 소설이다. 개들의 역사를 통해 현대사를 보여주고, 인간들을 통해 현재를 말한다. 인간의 수명과 개의 수명을 비교해도 인간의 몇 분의 1 밖에 살지 못하는 개들이 전체를 아우르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개들의 족보와 역사를 현대사와 함께 풀어내면서 당당히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 책이 주는 특이한 재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에 철수하면서 버리고 간 네 마리의 개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미군을 따라 이들은 옮겨지고, 분양되면서 각각의 삶을 산다. 그 삶을 보면 인간의 충실한 동반자 모습과 야생의 삶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교배하고, 분양되고, 도망 다니고, 양육되면서 그들은 만나고 헤어지고 죽고 자라고 또 살아남는다. 이 과정을 단순히 개들만 비춰주었다면 조금 지루했을 것이다. 여기에 세계사의 한 장면들을 이어가면서 긴장감을 높여주고 시시때때로 변하는 국제정세를 개의 삶과 연결시켜 연속성을 부여했다. 그 과정의 끝은 현재의 삶과 결국 만나게 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군견부대다. 전쟁사나 다른 역사에서 군견부대가 있었다는 것 정도는 들었지만 그들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아는 몇몇 품종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품종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었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선 그런 인위적인 교배는 없다. 먼 태고부터 내려온 본능과 노력으로 점점 더 발전한 것이다. 개가 독학으로 마약을 구분하는 장면 등에 이르면 인간과 별다른 차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구별하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혼자 사유하고 노력하는 모습 때문이다.

 

개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페레스토로이카 이후 혼란스러운 소련을 배경으로 피와 살이 튀고, 죽음과 잔혹함이 가득한 세계를 만들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벨카로 불리는 수컷과 그를 키우고 있는 대주교로 불리는 노인이다. 그들의 능력은 대단하다. 철저하게 무장한 마피아를 주저 없이 공격하여 죽음으로 내몬다. 벨카를 필두로 한 군견부대는 잘 훈련되어 시가전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둔다. 사람들이 개를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좋아하는 허점이 그 위력을 더욱 배가시킨다. 불을 지른 현장에서 집개처럼 조용히 있는 모습을 연출하는 장면은 인간의 상식을 비웃는 멋진 작전이다. 그 외 애완견이나 떠돌이 개처럼 행동하는 장면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어떨까하고 놀라게 된다.

 

개들의 역사에서 한 획을 끗는 중요한 한 마리가 있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에 나간 라이카다.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우주로 나간 그 개는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다. 실제 그 개의 후손이 활약하는 것도 아니고, 그가 멋진 활약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인공위성을 타고 지구 계도를 도는 순간 그의 동료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인 수많은 개들은 그 위대함과 새로운 개의 기원에 눈을 뜨게 된다. KGB 군견부대의 상징이자 맹세의 대상이 라이카의 두개골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게 시작한 개의 기원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무참히 학살되지만 암암히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혹시 다음에 그 맥을 이은 개들이 나와서 다시 한 번 더 멋진 활약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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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타이 생활기 - 쾌락의 도가니에서 살다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강병혁 옮김 / 시공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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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히데유키의 책은 재미있다. 그를 우리에게 소개한 <와세다 1.5평 청춘기>로 관심을 끌었다면 그 다음 작품인 <별난 친구들의 도쿄 표류기>로 그 이미지를 굳혔다. 일본인이지만 일본인처럼 느껴지지 않는 행동과 시각은 그의 별난 삶의 방식과 더불어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정형화된 일본인의 모습보다 어딘가 자유로운 행동과 상상력은 책을 읽는 동안 잠시나마 그 기발함과 자유로움에 여유를 느끼게 만든다. 그 때문에 항상 그의 책이 나왔다면 시선이 간다.

 

이 책도 나오기 전에 그의 다른 책에서 이미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글 속에 많은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앞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불과 얼마 전에 첫 작품인 <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아서>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대단히 빠른 속도로 출간되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이 글에선 한국에서 먼저 출간된 책에 비해 재미가 조금 떨어진다. 전작들이 일본이란 나라를 다루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신명나게 펼쳐 보여준 반면에 여기선 타이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삶이 그 중심에 있다. 그러나 그 구성이나 서술 방식이 우리가 흔히 접했던 다른 나라 사람의 삶이나 생각 방식에 대해 쓴 글과 별다른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개성이 많이 사라지다보니 그만의 특색이 많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아쉽다.

 

개인적으로 태국이란 나라를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자주 가거나 오랫동안 머문 것은 아니다. 처음엔 패키지로, 그 다음은 자유여행으로 다녀왔는데 굉장히 피상적이지만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여행을 가기 전 태국관련 사이트에서 많은 정보를 가지고 갔지만 현지에서 부딪히는 일들은 또 달랐다. 여행객이다 보니 관광지나 번화가에 집중하게 되고, 태국사람과 삶에 밀접하게 부딪힐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런 피상적인 접촉에 비해 이 책에서 보여주는 태국은 분명 뛰어나고 재미난 시각을 닮고 있다. 첫 여행에서 가이드가 한 말과 여행 전 조사한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도 많은 반면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 부분도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타이인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무난한 구성과 일본인의 시선으로 본 태국인의 삶이다 보니 많은 점에서 나의 시선과 겹치고, 엇갈리는 장면들이 있다. 일본과 한국의 두 나라가 공유하거나 배타적인 문화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같고 다른 시선으로 읽다 보면 재미나고 즐거운 추억이 떠오르고 그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솟아난다. 아마 시간 여유가 없기 때문에 더 그런 모양이다. 그리고 저자가 나처럼 단기간 스쳐지나간 사람이 아니라 비교적 장기간 머무르고, 자주 다녀간 사람인 것이나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인 점은 약간 평범한 구성의 이 책에 활기와 그만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이 책이 출간된 지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저자도 후기에서 지적했듯이 급속하게 이 나라도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불과 십 수 년 만에 엄청난 변화를 겪은 것과 비슷하다.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가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 태국 공포영화가 여름이면 들어와 상영되는데 책 속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두 가지가 연상된다. 하나는 잡지에 시체 사진이 많이 실리고 그 잡지를 보면서 밥을 먹는 여성의 모습과 삐라고 불리는 영의 존재를 둘러싼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삶과 문화의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인데 왠지 모르게 공포영화 강국으로 느껴지는 태국의 이미지와 이어진다. 타이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 이 책 속에 나온 많은 이야기를 좀더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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