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웠다. 분명 앞에서 본 문장인데, 같은 등장인물이 또 나오네, 어! 시작하는 문장이 완전히 같네 등등. 그렇다. 이 소설은 같은 등장인물을 이용한 변주 같다. 영화로 치면 한 편의 시나리오를 이용한 다양한 각색이다. 과학적으로 풀어내면 평행우주론과 비슷하다. 뭐 좀 유식한 척 표현했지만 한 남자가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한 사항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로 줄여 말할 수 있다. 예전에 티브이에서 그래 결정했어! 라고 외치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양이지만.

 

네 편 모두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같은 문장이 얼마나 나올까 세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마지막 문장도 셋은 같고 하나만 바뀌는데 그 변화가 절묘하다. 이처럼 같은 문장이 반복되어 나오지만 이야기는 다른 흐름으로 진행된다. 대학 새내기인 화자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의 삶이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변화라는 것이 참 경계가 보인다. 그가 선택한 네 곳 모두에서 그가 요괴라고 말하는 오즈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환상의 지보라고 말하는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를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존재다. 그러나 그 덕분에 이 동일한 문장에서 시작한 같으면서도 다른 이야기가 활기를 띄고, 흥미를 가지게 하고, 빠져들게 만든다. 그의 외모는 표현대로라면 요괴 같다고 하니 묘하게 상상력을 자극한다.

 

같은 문장에서 시작하지만 구성은 절묘하다. 앞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등장인물들을 설명하고, 의문스러운 것을 바닥에 깔아놓는다. 그러면 다음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를 만들면서 앞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의문스러웠던 것을 하나씩 풀어준다. 하지만 절대 그가 만들어놓은 가공할 세계인 다다미 넉 장 반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곳을 기점으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이렇게 형성된 인간관계는 반복해서 등장하고, 앞에 나온 의문들을 풀어주면서 점층적 구조를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반전과 놀라운 오즈의 비밀들은 살포시 웃음을 짓게 한다.

 

재미있다. 기발하다. 같은 등장인물들과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다른 느낌을 주면서 비슷한 듯한 이야기를 멋지게 만들다니 대단하다. 그냥 단순히 아무 생각 없이 읽다보면 본 것 같은 느낌을 받고, 다시 그 상황에 부딪히면서 이 책의 구조를 깨닫게 된다. 시작과 끝은 동일하지만 그 중간 과정이 모두 다른데 기발한 상상력과 재미난 문체로 즐거움을 계속 준다. 이 작품 하나로 작가를 제대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대단한 재능임에는 틀림없다. 현재의 나를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주는 교훈이 의도적이고 목적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의 벽을 무너트리기 위해선 가장 먼저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려준다. 이런 해석이 과연 이 소설에 맞는지는 각자가 판단할 것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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