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린, 채플린
염승숙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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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소설이다. 여덟 편의 단편들이 낯설다. 기존 작가들이 보여준 환상이 이 소설에선 다른 모습을 띈다. 소설 속에 벌어지는 사건과 환상들에 대한 설명도 없고, 끝도 없다. 처음 그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럴수록 그 환상의 세계는 모호해졌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환상들이 이 소설 속에선 힘을 잃는다. 물론 가끔은 옛 소설의 향수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느낌도 읽는 순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읽고 난 후 한참 후에 깨닫게 된다.  

 

 그녀의 처녀작이자 첫 작품인 <뱀꼬리왕쥐>부터 난해하다. 꼬리뼈를 둘러싼 대화와 현실과 환상의 교차는 모호함을 더 강하게 만든다.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상의 변화는 현실의 경계를 너무 쉽게 무너트린다. 그 변화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처럼 다가온다. 꼬리뼈를 내어준 사람들의 부재가 그를 공포에 물들게 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도전인지도 모르겠다.  

 

 <수의 세계>는 숫자를 몸에 지닌 한 사람의 일대기다. 이름은 공영, 몸의 각 부위에 1부터 9까지 숫자가 새겨져있다. 아버지는 수학교사다. 영(零)이란 이름을 지은 것은 그 숫자가 몸에 없기 때문이다. 이 아이의 성장기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작가는 이 아이의 성장기와 모험기를 녹여내면서 환상의 세계를 수의 세계로 변환시킨다. 앞의 소설 때문인지 조금 더 쉽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의 모험은 재미있다.   

 

 <거인이 온다>도 비현실적인 설정이다. 사랑니가 아파 치과에 갔는데 괴상한 공룡의 이빨이라면서 학계에 보고 할 생각만 한다. 공무원인 주인공은 민원 때문에 고생이 많다. 그런 중에 그의 아내는 거인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 눈이 오지만 눈은 쌓이지는 않는 이변이 발생한다. 이런 일련의 괴변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비일상적인 환상이 현실에 자리잡아간다.   

 

 

 <춤추는 핀업걸>은 읽을 당시는 떠올리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외수의 소설이나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가끔 본 설정이다. 물론 그들의 작품에선 한 번 들어간 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이 소설에서 들락거린다. 그리고 주인공의 몸 상태도 이상하다. 반쪽은 조로증으로 30년이나 먼저 늙고 있다. 이런 비대칭은 포스트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한 몸에 구현한 것이다.   

 

 <채플린, 채플린> 연작 두 편은 여봇씨요 사나이를 둘러싼 해프닝과 사건을 다룬다. 첫 편이 모철수란 하객 아르바이트를 통해 현실에서 발생한 채플린 증후군을 설명한다. 여봇씨요 사나이의 이 말에 반응하여 돌아보면 채플린 같은 자세를 하고 동작이 멈춘다. 이 증후군을 나열하면서 작가는 유머스러운 문장과 진행으로 재미를 만들어낸다. 두 번째 이야기에선 전편에서 모철수 사건 이후 사라진 채플린 증후군을 다룬다. 왜? 라는 의문과 그는 누군가? 하는 의문이 대두되고, 그의 정체를 밝힌다. 하지만 그것을 믿고 안 믿고는 개인의 문제다. 이번 소설에선 언어유희가 극에 달하고, 재미난 상황을 연출하면서 농담을 멋지게 만들어낸다.  

 

 <지도에 없는>은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지번인 1-173번지에 살았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다. 중개경력 29년의 베테랑인 자신이 기억하고, 기록한 지번이지만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실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여행은 오디세이의 방랑과도 같다. 결국 집으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다. 오년 동안 살았던 다섯 남자의 일상은 현대인의 삶을 희극적으로 풀어내었고, 웃음을 자아낸다.  

 

 <피에로 행진곡>에서 비일상적인 사건은 우산을 들고 하늘로 사라진 사람들이다. 이 괴상한 사건이 공포를 자아내기보다 사람들은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채플린, 채플린>에서 채플린 증후군을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특이한 반응이다. 공무원 조사맨은 주민등록말소 신청자를 조사한다. 하늘로 우산을 들고 사라진 사람들과 주민등록말소를 신청한 화자에 조사맨의 조화는 그 설정 자체가 현실의 경계를 넘었다. 조사맨이 반복해서 말하는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까?”는 어쩌면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기 위한 바람과 읽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즐기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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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크리파이스
곤도 후미에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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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레이스란 스포츠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신사의 스포츠라고 불리는 로드레이스는 사실 우리에게 인기 없는 스포츠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색다른 재미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제목이 의미하는 희생이란 단어의 참뜻을 깨닫게 된다. 팀원들의 단결과 희생 위에서 이루어지는 승리는 한 사람 게 아니다.   

 

 시라이시, 그는 육상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린 유망주였다. 하지만 승리를 위해 달리는 육상이 주는 부담감이 싫었다. 그러다 우연히 본 로드레이스의 한 장면은 탁월한 성적을 거두고, 올림픽을 노릴 정도의 그가 진로를 바꾸게 만들었다. 그것은 로드레이스에서 두 선수가 앞뒤로 달리면서 최종 골인을 남겨두고 악수를 하면서 그냥 통과한 것이다. 분명 앞 선수 뒤에서 달린 선수가 바람의 영향으로 힘을 내어 골인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이를 보고 모두 그 레이스를 칭찬한다. 초보자가 보기엔 너무나도 이상하다. 그러나 로드레이스를 알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이 이해되고, 새로운 스포츠 세계로 입문하게 된다.  

 

 시라이시가 있는 로드레이스 팀은 팀 오지다. 이 팀의 에이스는 산악에 강한 이시오다. 신참으로 에이스의 능력을 보여주는 이바가 있다. 그러나 그는 상당히 개인적이다. 자신을 위해 달린다. 로드레이스에 필요한 희생이 부족한 선수다. 어쩌면 에이스 스타일인지도 모르겠다. 팀원의 희생을 딛고 최종 승리를 위해 달려 나가는 것이 에이스다. 어떻게 보면 잔인한 스포츠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다.   

 

 3년 전 유망주였던 한 명이 내리막에서 사고를 당한다.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시점이 묘하다. 어시스트로 늘 에이스를 보조하던 시라이시가 구간 우승을 한 후 한 선배로부터 나왔다. 늘 에이스였던 이시오가 고의적으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찜찜하다. 작가는 여기에 미스터리 요소를 풀어놓는다. 과연 이시오는 고의적으로 사고를 일으켰는가와 또 다른 사고를 일으킬 것인가? 하고 말이다. 로드레이스를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면서 이런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출로 몰입도를 높이고, 읽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로드레이스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냥 빨리 달려 골인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무식한 것이 죄다. 단순하게 그냥 빨리 달리는 것 같은데 그 속에 수많은 노력과 열정과 희생과 전략이 필요하다. 체력 비축에서 에이스의 우승까지 그 하나하나가 새롭고 놀랍다. 인간의 본능이 이기고자 하는 마음일 텐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없으면 이기기 힘든 상황을 만드는 스포츠란 점도 흥미롭다. 마라톤 같은 레이스지만 먼저 들어간다고 우승하지 않는다. 한 구간에서 이겼다고 최종 승리가 아닌 것이다. 시라이시가 자신의 미래를 바꾸게 만든 장면이 바로 로드레이스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어준다.   

 

 

 스포츠는 승리와 기록의 경기다. 로드레이스라고 승리를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팀을 생각하지 않고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경기에서 혼자 독불장군처럼 튀어나가서는 며칠이나 이어지는 경기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혼자 바람을 맞으면서 달리면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상대편 에이스나 어시스트를 끌어내어 체력을 소모시켜야 한다. 순간의 판단력 착오로 이변이 발생하기도 한다. 달리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속도를 높이고, 오버를 한다. 이것은 자제해야 할 상황이다. 이런 순간적 감정과 상대편 대응과 자신과의 싸움이 경기 도중에 펼쳐진다. 한 장면 장면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텔레비전으로 본다면 결코 느끼지 못할 재미다.   

 

 이 소설에 스포츠 소설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재미는 사실 없다. 자신의 승리를 위해 열정적으로 훈련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없다. 하지만 팀 승리를 위해 펼치는 전략과 심리묘사는 탁월하다. 3년 전 사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는 뒤에 벌어질 사건을 기대하고 예측하게 만든다. 반전에 반전을 보여주는 연출과 마지막 장면은 깔끔한 여운을 남긴다. 이기기 위해 달리는 에이스에게도 팀을 위하는 마음이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에선 강한 감동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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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토르소맨>을 리뷰해주세요.
꿈꾸는 토르소맨 - 팔다리 없는 운명에 맞서 승리한 소년 레슬러 이야기
KBS 스페셜 제작팀 지음, 최석순 감수 / 글담출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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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팔다리가 없는 한 소년이 레슬링 옷을 입고 앉아 있다. 상처투성이 팔다리에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다. 그가 바로 유투브를 통해 세계에 알려지고, 세상을 놀라게 한 더스틴이다. 그의 모습과 레슬링을 생각하면 쉽게 연결이 되지 않는다. 팔다리 없이 어떻게 경기를 하지? 하는 의문이 먼저 생긴다. 이런 의문과 고정관념을 그는 산산이 부셔버렸다. 우리가 장애라고 생각하고, 포기한 그 순간 그는 새로운 도전과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KBS 스페셜>을 통해 나온 것을 엮은 것이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아 그 내용은 잘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더스틴의 삶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수막구균혈증’이란 병에 걸렸고, 살기 위해 사지를 절단해야 했다. 어린 그에 대한 이야기 중 가슴 아팠던 것은 잘린 팔다리를 잊고 평소처럼 움직였다는 대목이다. 아픔은 알지만 이 상실을 알지 못했다는 설명에서 과연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모두 네 꼭지로 나누어져 있다. 사건으로부터 현재까지의 요약 부분과 현재의 그가 있게 한 레슬링 이야기와 그와 함께 가는 사람들과 고교 마지막 학창시절에서 벌어진 대회와 그의 열정을 다룬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가 팔다리를 잃고 현재까지 살아온 것은 저자의 말처럼 팔다리 없이도 생활하는 방법이 아니라 잔인한 운명에 하나씩 도전하는 방법이었다. 팔이 없어, 손가락이 없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해내는 그를 보면 모두 있으면서도 너무나도 서툰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또 이런 장애에 굴복하지 않고 실생활에 적응하는 모습은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생각하게 만든다.  

 

 한 소년의 길지 않은 삶이지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으니 당연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보통의 장애인처럼 살았다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레슬링 선수다. 그것도 이름만 레슬링 선수가 아니라 주 대회 결승까지 올라간 실력 있는 선수다. 신체적 장애를 딛고 마지막 대회까지 나간 그를 보면 그 과정에서 흘린 땀과 피와 노력이 저절로 보인다. 물론 이 과정이 혼자만의 노력은 아니다. 그를 도와주고, 격려하고, 독려하고, 함께 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도움도 그의 노력과 열정과 땀이 없었다면 불가능하다.  

 

 많은 사진들이 실려 있다. 사진 하나 하나에 그의 삶이 잘 묻어난다. 그의 노력과 친구와 땀과 기쁨과 슬픔과 아픔 등이 있다. 한때 사춘기를 겪으면서 힘든 시기를 보낸 것이나 첫 경기에서 너무나도 쉽게 진 것이나 다른 보통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채우기 위해 힘든 노력을 기우렸던 순간들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물론 한 편의 감동 이야기로 묶기 위한 장치도 살짝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런 장치들이 그의 위대함을 덮을 정도는 아니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그를 바라보는 나에게 먼저 장애인 이전에 한 명의 청소년임을 알려준다. 그 다음에 그가 겪었고, 앞으로 겪어야 할 수많은 어려움에 대한 도전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같고, 남들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쉽게 해내는 노력가다. 영웅으로 보이기보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 봐주길 원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그는 평범한 한 학생이다. 단지 우리가 그를 영웅으로 보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길 원한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 그의 곁에는 좋은 코치와 친구와 여자친구와 그 무엇보다 많은 힘이 되어준 가족이 있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장애라는 운명에 굴복하기보다 그것과 싸워나가는 그가 대단하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헬렌 켈러 자서전>, <스티븐 호킹 천재와 보낸 25년>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일이 잘 되지 않아서 늘 핑계를 대거나 열정과 용기를 잃고 있는 모든 사람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세상을 구성하는 다수 또는 소수 모두 서로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일반인이나 장애인이나 삶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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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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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읽어주는 남자>로 유명해진 작가의 단편집이다. 모두 여섯 편이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사랑을 가끔 나 자신이 이해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지만 그들 각자가 펼쳐보여주는 사랑은 우리가 삶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다. 사랑은 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각각 다른 길이 있다. 그 사랑을 이해하려고 할 때 자신의 경험에 의해 왜곡되어진다. 이 소설 속 사랑을 보면서 그냥 그런 사랑이 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소녀와 도마뱀>은 그림 속 여자에 대한 사랑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 걸려 있던 그림을 보고 마음을 빼앗긴 소년 이야기다. 그 그림이 좋아 몰래 서재에 들어가 훔쳐보고, 학교 숙제로 그림을 묘사하려고 한다. 이때 이것을 본 아버지가 중단시킨다. 이상하다. 혼자만 감상하려는 것일까? 소년이 청년이 되어 이 그림의 정체를 밝힌다. 유명화가의 작품이다. 왜 그렇게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아버지는 그림을 팔지 않았을까? 그림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진실은 사랑만으로 표현하기엔 너무 무겁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넘어온 진실은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외도>란 제목을 보면서 남녀의 외도에 대한 감정을 담았을 것으로 미리 짐작했다. 하지만 외도는 단순히 한 순간 벌어지는 사건일 뿐이다. 이 외도가 일어나게 된 이유를 말하는 순간 외도는 삶의 순간적 일탈로 변한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단순한 도전이다. 이번 단편에서도 시대가 만들어낸 아픔이 전해진다. 사랑을 위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이 현재의 사랑을 아프게 만든다. 화자이자 관찰자는 이 상황에서 외도의 대상이지만 무력한 존재다. 세 남녀의 삶이 비틀거린다.  

 

 <다른 남자>는 표제작이다. 아내가 죽은 후 한 남자로부터 온 편지를 통해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남자 이야기다. 그가 아내를 사랑했는지 모르지만 그 아내와 아이들은 그와 함께 한 행복한 시간들이 결코 많지 않았다. 아내를 추억하고 살아가기가 그에게 충분할지 모르지만 그를 제외한 가족들에게 그는 어쩌면 낯선 존재인지 모른다. 뛰어난 업무 능력으로 사회에서 인정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가족들이 바란 것은 그것이 아니다. 그가 아내의 부정을 알고 딸을 찾아갔을 때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게 된다. 또 아내의 부정 상대가 보여준 거짓과 허세에 조롱하고 비웃음을 날린다. 하지만 결국 그는 알게 된다. 무미건조했던 삶에서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청완두>는 한 남자의 자아 찾기다. 그는 지붕 증축 전문가다. 이 사업이 성공하는 중에 다리 설계 공모전에 2위로 당선한다. 이 일들로 승승장구한다. 그러다 문득 그림 그리기를 그리워한다. 여기도 그는 능력을 발휘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각각 새로운 여자들을 만난다. 첫 사업의 파트너였던 유타와 결혼을 하고, 화랑을 운영하는 베로니카와 내연 관계가 된다. 이혼을 하고 새 결혼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세 번째 여자 헬가를 만난다. 두 여자 사이의 고민을 그녀를 통해 해소한다. 관계가 더욱 복잡해진다. 그녀들이 요구하는 것이 점점 많아진다. 그만의 시간은 더욱 없어진다. 그는 수도자 복장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일어나는 사고.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바람둥이 같은 남자의 성공과 삶과 사랑 속에서 자신을 찾고자 하는 한 남자의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많은 것을 가졌지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남자 말이다.  

 

 <아들>은 중남미의 어떤 나라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산만한 마음 때문에 다른 소설보다 깊이 빠져들지 못했다.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나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주유소의 여인>도 그의 감정에 빠져들지 못했다. 여행 중 갑자기 벌어진 것인지 아니면 삶 속에 쌓여 온 것이 그 순간 터져 나온 것인지 말이다. 이 두 소설은 나중에 다시 정독을 하여야만 그 재미를 찾을 것 같다.  

 

 이 단편집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의 상황과 역사를 같이 다루고 있다. 사람들이 현실의 상황에서 완전히 떨어져 사랑을 나눌 수만은 없다. 문장도 상당히 건조한 편이다. 쉽게 몰입하게 만들지 않는다. 감정을 깊이 있게 파헤치기보다 상황과 현실 속에 묻어 표현한다. 독일 단편을 오랜만에 읽는데 아직도 낯설다.  또 검색을 하다 보니 <사랑의 도피>란 제목으로 이전에 출간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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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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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블랙유머를 담고 있다. 처음부터 이것을 예상하고 선택한 것이지만 읽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대부분 그의 추리소설만 읽다 이런 종류의 단편을 읽으니 예상하지 못한 재미를 발견했다고 해야 하나? 그의 문장이나 구성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군살 없고 간결하면서 잘 구성된 작품들을 생각하면.  

 

 모두 13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그 중 마음에 드는 작품도 있고, 조금은 아쉬운 작품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특이한 능력이나 상황을 만들고 뒤통수를 때리는 마지막 반전까지 깔끔한 느낌이다. 짧은 글들에 사람들의 욕망과 심리를 잘 녹여낸 수작들을 보면서 감탄을 하고, 새롭게 해석해 낸 동화에 놀람도 느꼈고, 기발한 발상에 즐거웠다. 

 

몇 개로 묶어 소제목을 달아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하는 단편들이 있다. 문학상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작가와 편집부의 동상이몽을 다룬 것들인데 ‘최종심사’, ‘불꽃놀이’, ‘과거의 사람’, ‘심사위원’ 등이 그렇다. 반면에 ‘거대유방 망상증후군’, ‘임포그라’, ‘시력 100.0’, ‘사랑가득 스프레이’ 등은 카툰 같은 재미와 반전이 있다. 만화 같은 상상력이 뒤따라 나오는 상황과 전개로 웃음을 주지만 흑소소설이란 느낌은 좀 덜하다.   

 

 나머지 5편 중 ‘신데렐라 백야행’은 동화를 새롭게 꾸며낸 작품인데 너무 현실적이고 계획적인 방법이 가슴에 와 닿고, ‘임계가족’에선 현재 애니메이션과 결합한 산업에 의해 끌려가는 가정을 씁쓸하게 느끼게 한다. ‘스토커 입문’에선 애인의 요청에 의해 스토커를 배우는 한 남자의 모습에 쓴 웃음을 짓고, ‘웃지 않는 남자’에선 마지막 문장 때문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기적의 사진 한 장’은 조금 밋밋한 느낌을 준다.  

 

 대충 세 범주로 묶어 말했지만 문학상을 다룬 작품을 제외하면 어느 것을 읽어도 상관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신데렐라 백야행’과 ‘임계가족’이다. 이 소설 제목과 가장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재미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카툰 같은 내용들이 유쾌하고, 편집부와 작가들의 뒷모습을 잠시 보는 소설도 좋았다. 전체적으로 마음에 드는 작품집이고, 괴소소설이나 독소소설이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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