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크리파이스
곤도 후미에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로드레이스란 스포츠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신사의 스포츠라고 불리는 로드레이스는 사실 우리에게 인기 없는 스포츠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색다른 재미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제목이 의미하는 희생이란 단어의 참뜻을 깨닫게 된다. 팀원들의 단결과 희생 위에서 이루어지는 승리는 한 사람 게 아니다.
시라이시, 그는 육상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린 유망주였다. 하지만 승리를 위해 달리는 육상이 주는 부담감이 싫었다. 그러다 우연히 본 로드레이스의 한 장면은 탁월한 성적을 거두고, 올림픽을 노릴 정도의 그가 진로를 바꾸게 만들었다. 그것은 로드레이스에서 두 선수가 앞뒤로 달리면서 최종 골인을 남겨두고 악수를 하면서 그냥 통과한 것이다. 분명 앞 선수 뒤에서 달린 선수가 바람의 영향으로 힘을 내어 골인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이를 보고 모두 그 레이스를 칭찬한다. 초보자가 보기엔 너무나도 이상하다. 그러나 로드레이스를 알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이 이해되고, 새로운 스포츠 세계로 입문하게 된다.
시라이시가 있는 로드레이스 팀은 팀 오지다. 이 팀의 에이스는 산악에 강한 이시오다. 신참으로 에이스의 능력을 보여주는 이바가 있다. 그러나 그는 상당히 개인적이다. 자신을 위해 달린다. 로드레이스에 필요한 희생이 부족한 선수다. 어쩌면 에이스 스타일인지도 모르겠다. 팀원의 희생을 딛고 최종 승리를 위해 달려 나가는 것이 에이스다. 어떻게 보면 잔인한 스포츠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다.
3년 전 유망주였던 한 명이 내리막에서 사고를 당한다.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시점이 묘하다. 어시스트로 늘 에이스를 보조하던 시라이시가 구간 우승을 한 후 한 선배로부터 나왔다. 늘 에이스였던 이시오가 고의적으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찜찜하다. 작가는 여기에 미스터리 요소를 풀어놓는다. 과연 이시오는 고의적으로 사고를 일으켰는가와 또 다른 사고를 일으킬 것인가? 하고 말이다. 로드레이스를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면서 이런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출로 몰입도를 높이고, 읽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로드레이스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냥 빨리 달려 골인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무식한 것이 죄다. 단순하게 그냥 빨리 달리는 것 같은데 그 속에 수많은 노력과 열정과 희생과 전략이 필요하다. 체력 비축에서 에이스의 우승까지 그 하나하나가 새롭고 놀랍다. 인간의 본능이 이기고자 하는 마음일 텐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없으면 이기기 힘든 상황을 만드는 스포츠란 점도 흥미롭다. 마라톤 같은 레이스지만 먼저 들어간다고 우승하지 않는다. 한 구간에서 이겼다고 최종 승리가 아닌 것이다. 시라이시가 자신의 미래를 바꾸게 만든 장면이 바로 로드레이스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어준다.
스포츠는 승리와 기록의 경기다. 로드레이스라고 승리를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팀을 생각하지 않고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경기에서 혼자 독불장군처럼 튀어나가서는 며칠이나 이어지는 경기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혼자 바람을 맞으면서 달리면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상대편 에이스나 어시스트를 끌어내어 체력을 소모시켜야 한다. 순간의 판단력 착오로 이변이 발생하기도 한다. 달리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속도를 높이고, 오버를 한다. 이것은 자제해야 할 상황이다. 이런 순간적 감정과 상대편 대응과 자신과의 싸움이 경기 도중에 펼쳐진다. 한 장면 장면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텔레비전으로 본다면 결코 느끼지 못할 재미다.
이 소설에 스포츠 소설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재미는 사실 없다. 자신의 승리를 위해 열정적으로 훈련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없다. 하지만 팀 승리를 위해 펼치는 전략과 심리묘사는 탁월하다. 3년 전 사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는 뒤에 벌어질 사건을 기대하고 예측하게 만든다. 반전에 반전을 보여주는 연출과 마지막 장면은 깔끔한 여운을 남긴다. 이기기 위해 달리는 에이스에게도 팀을 위하는 마음이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에선 강한 감동이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