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책 읽어주는 남자>로 유명해진 작가의 단편집이다. 모두 여섯 편이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사랑을 가끔 나 자신이 이해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지만 그들 각자가 펼쳐보여주는 사랑은 우리가 삶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다. 사랑은 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각각 다른 길이 있다. 그 사랑을 이해하려고 할 때 자신의 경험에 의해 왜곡되어진다. 이 소설 속 사랑을 보면서 그냥 그런 사랑이 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소녀와 도마뱀>은 그림 속 여자에 대한 사랑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 걸려 있던 그림을 보고 마음을 빼앗긴 소년 이야기다. 그 그림이 좋아 몰래 서재에 들어가 훔쳐보고, 학교 숙제로 그림을 묘사하려고 한다. 이때 이것을 본 아버지가 중단시킨다. 이상하다. 혼자만 감상하려는 것일까? 소년이 청년이 되어 이 그림의 정체를 밝힌다. 유명화가의 작품이다. 왜 그렇게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아버지는 그림을 팔지 않았을까? 그림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진실은 사랑만으로 표현하기엔 너무 무겁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넘어온 진실은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외도>란 제목을 보면서 남녀의 외도에 대한 감정을 담았을 것으로 미리 짐작했다. 하지만 외도는 단순히 한 순간 벌어지는 사건일 뿐이다. 이 외도가 일어나게 된 이유를 말하는 순간 외도는 삶의 순간적 일탈로 변한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단순한 도전이다. 이번 단편에서도 시대가 만들어낸 아픔이 전해진다. 사랑을 위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이 현재의 사랑을 아프게 만든다. 화자이자 관찰자는 이 상황에서 외도의 대상이지만 무력한 존재다. 세 남녀의 삶이 비틀거린다.  

 

 <다른 남자>는 표제작이다. 아내가 죽은 후 한 남자로부터 온 편지를 통해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남자 이야기다. 그가 아내를 사랑했는지 모르지만 그 아내와 아이들은 그와 함께 한 행복한 시간들이 결코 많지 않았다. 아내를 추억하고 살아가기가 그에게 충분할지 모르지만 그를 제외한 가족들에게 그는 어쩌면 낯선 존재인지 모른다. 뛰어난 업무 능력으로 사회에서 인정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가족들이 바란 것은 그것이 아니다. 그가 아내의 부정을 알고 딸을 찾아갔을 때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게 된다. 또 아내의 부정 상대가 보여준 거짓과 허세에 조롱하고 비웃음을 날린다. 하지만 결국 그는 알게 된다. 무미건조했던 삶에서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청완두>는 한 남자의 자아 찾기다. 그는 지붕 증축 전문가다. 이 사업이 성공하는 중에 다리 설계 공모전에 2위로 당선한다. 이 일들로 승승장구한다. 그러다 문득 그림 그리기를 그리워한다. 여기도 그는 능력을 발휘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각각 새로운 여자들을 만난다. 첫 사업의 파트너였던 유타와 결혼을 하고, 화랑을 운영하는 베로니카와 내연 관계가 된다. 이혼을 하고 새 결혼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세 번째 여자 헬가를 만난다. 두 여자 사이의 고민을 그녀를 통해 해소한다. 관계가 더욱 복잡해진다. 그녀들이 요구하는 것이 점점 많아진다. 그만의 시간은 더욱 없어진다. 그는 수도자 복장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일어나는 사고.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바람둥이 같은 남자의 성공과 삶과 사랑 속에서 자신을 찾고자 하는 한 남자의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많은 것을 가졌지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남자 말이다.  

 

 <아들>은 중남미의 어떤 나라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산만한 마음 때문에 다른 소설보다 깊이 빠져들지 못했다.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나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주유소의 여인>도 그의 감정에 빠져들지 못했다. 여행 중 갑자기 벌어진 것인지 아니면 삶 속에 쌓여 온 것이 그 순간 터져 나온 것인지 말이다. 이 두 소설은 나중에 다시 정독을 하여야만 그 재미를 찾을 것 같다.  

 

 이 단편집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의 상황과 역사를 같이 다루고 있다. 사람들이 현실의 상황에서 완전히 떨어져 사랑을 나눌 수만은 없다. 문장도 상당히 건조한 편이다. 쉽게 몰입하게 만들지 않는다. 감정을 깊이 있게 파헤치기보다 상황과 현실 속에 묻어 표현한다. 독일 단편을 오랜만에 읽는데 아직도 낯설다.  또 검색을 하다 보니 <사랑의 도피>란 제목으로 이전에 출간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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