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커리드웬 도비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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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를 독재자가 다스린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큰 불행이다. 하지만 이 독재자를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늘 있다. 정경유착으로, 부패로 그들은 이익을 얻는다. 그 부패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그에 대한 반동도 강해진다. 그 반동의 형태가 혁명이냐 쿠데타냐에 따라 그 다음 정권의 성격이 결정된다. 물론 이것이 단숨에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난 후 정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 속의 정권 교체가 쿠데타란 단어로 표현된 것은 의미하는 바가 분명하고 크다.  

 

 소설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선 대통령을 위해 봉사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화가, 요리사, 이발사 등이다. 화가가 하는 일은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고, 요리사는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여 맛있는 요리를 대접한다. 당연히 이발사는 머리를 깎아주고, 면도를 해주고, 코털을 정리해준다. 이들은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인지도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혁명을 위해 몸을 바치는 인물들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직업에 충실할 뿐이다. 그런데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면서 잠시 그들에게 위험이 닥친다. 새 정권의 수장인 두목이 잠시 동안 이들을 감금한 것이다.  

 

 이들이 감금되는 과정에서 당연히 폭력이 행사되었다. 정권을 잡기 위해 무력과 살인이 동원되었고, 그들의 주변인들이 살해되었다. 그들은 다행스럽게 살아남았다. 이제 이야기는 이 세 남자의 과거 속으로 들어가서 현재와 미래의 그들을 보여준다. 화가가 무명으로 있다가 우연히 화장실을 찾아온 아내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그녀의 후광으로 대통령의 전속 화가가 되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난다. 요리사는 이혼한 아내가 있고, 그의 바람기에 아내는 정신병원에 갇힌다. 그의 딸은 아버지를 꼭 닮았고,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발사는 멋진 형이 독재자의 하수에게 죽은 후 복수를 꿈꾸지만 현실에 안주하고, 오히려 대통령을 위해 봉사한다.   

 

 2부에선 이 세 사람과 관련된 여자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끌고 간다. 화가의 아내, 요리사의 딸, 이발사의 형의 애인이 화자다. 그녀들의 삶은 남자들이 생각한 것과 분명히 다르다. 아내는 남편과 멀어지려고 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 받지 못한 엄마의 애정으로 결핍을 느낀다. 요리사의 딸도 역시 아버지의 바람기와 엄마의 정신병으로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두목의 아내이자 이발사의 형의 애인이었던 그녀는 이발사의 과거를 떠올려주고, 현재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단순히 현실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건조하면서 사실적인 문장으로 이들의 삶 뒤에 숨겨진 사실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3부에선 다시 화가, 이발사, 요리사가 다시 화자로 나선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삶의 냉혹함과 부조리와 절망과 권력에 대한 욕망을 표출한다. 앞의 작업들이 깔아놓은 단서들로 예측했던 것들이 하나씩 사실로 드러난다. 혁명이라 믿고 싶었던 쿠데타가 결국 다시 독재자의 이름만 바뀐 것이나 사랑이란 이름 뒤에 숨겨진 잔혹한 진실과 아픔이나 과거에 결코 용기를 내지 못한 행동이 단숨에 벌어지는 것 등이 갑작스럽고 순식간에 벌어진다.   

 

 

 모두 여섯 명의 화자가 돌아가면서 상황과 현실을 설명한다. 짧게 과거가 요약되고, 현실의 삶이 드러나고, 놀랍고 추악한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파멸이 다가온다. 그 파멸 속에서 또 다른 권력의 욕망이 피어난다. 마지막 문장에서 “양심의 가책은 오래가지 않았다”(237쪽)고 했을 때 양심이란 얇은 껍질 뒤에 숨어 있던 욕망이 껍질을 깨고 나온다. 이제 권력은 욕망과 손을 잡고 또 다른 독재자의 탄생을 낳는다. 지독히도 잔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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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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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때문인지 요즘 가벼운 책을 선호한다. 두께가 얇다면 더 좋다. 그러던 중 나의 앞에 턱하니 나타난 오츠 이치의 <베일>은 딱 맞는 선택이다. 커지 않은 판형에 많은 글이 실려 있지 않고, 212쪽에 불과하다. 한 번 잡으면 단숨에 읽기 좋다. 뭐 가끔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머리가 쥐나는 책이 있지만 이 소설은 쑥쑥 진도가 나간다. <너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후 처음으로 읽지만 전혀 낯설지 않다. 작가의 지명도에 비해 나의 두 번째 시도는 상당히 늦었다. 

 

단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천제요호>와 <A MASKED BALL - 그리고 화장실의 ‘담배’씨, 나타났다 사라지다> 두 편이다. <천제요호>는 두 사람의 글이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야기와 쿄코다. 야기가 쿄코에게 쓴 편지로 시작한다. 그가 쿄코에게 받은 은혜와 감사가 바닥에 깔리고, 그의 무섭고도 외로운 과거사로 펼쳐진다. 그 과거에서 드러난 사실은 현실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하지만 어린 야기가 겪은 그 경험과 현실은 쿄코를 통해 사실로 드러난다. 그가 왜 온몸을 붕대로 감고 다니고,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말이다. 그 모든 것은 어린 시절 한 순간의 선택과 공포가 만들어낸 결과다.  

 자신도 모르게 괴물로 변해가는 인간을 통해 외로움과 공포를 다룬다. 사람이 아닌 존재로 변해가는 자신과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소녀와의 관계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오락적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지만 상대방의 피와 공포와 살인을 갈구하던 그가 순간 멈칫하고 멈춘 것은 바로 이 관계를 통해 인간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예상된 결말로 이어진 것은 조금 아쉽지만 인간임을 잊지 않으려는 야기의 노력과 낯선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손길을 내미는 쿄코의 모습은 그 존재를 넘어서 따스함을 전해준다.  

 

 두 번째 이야기 <A MASKED BALL>은 학교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에무라는 초등 5학년 때 탁자 위에 놓인 담배를 처음으로 피웠는데 기침 등의 반응이 전혀 없었다. 그 후 담배를 계속 피웠다. 고등학교에 와서도 계속 피웠는데 학생의 신분으로 편하게 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그러다 찾은 곳이 약간 떨어져 있는 화장실이다. 이곳에서 편하게 담배를 피우는데 한 낙서가 보인다. 낙서하지 말라는 낙서다. 이 밑에 댓글 형식으로 낙서를 달기 시작한다. 이후 그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낙서를 한다. 재미난 놀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낙서에 심각한 의미를 담은 글이 적힌다. 어떻게 보면 장난일 수도 있지만 점점 규모가 커지고, 상황은 무서워진다. 작가는 이 과정을 학원탐정물과 호러를 섞어서 풀어낸다. 규칙에 대한 강박이 만들어내는 비정상적인 상황들은 역시 어느 정도 범인이 누군지 예상하게 만든다. 비록 그 존재의 정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 두 소설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초등학교 시절 선택한 것 때문에 현재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천제요호>가 코쿠리 상이란 놀이를 통해 육체가 점점 잠식당하고, 과격한 본능을 충동질하는 유혹과의 끊임없는 싸움과 도피가 벌어진다.  <A MASKED BALL>도 역시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핀 담배로 인해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 낙서라는 소통이 이루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 이 둘 모두 자신과 관련된 사람과의 대화가 제대로 소통되지 않고 일방적이다. 야기가 사나에에게 몸을 내준 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변해가는 것이나 우에무라가 화장실 낙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과 달리 상대방의 의지가 일방적으로 행동으로 옮겨진 것 등이다.  

 아직 오츠 이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읽지는 않았다. 처음 읽었을 때 괜찮은 작가란 생각을 했는데 어느 날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환호하고 있었다. 나의 경우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언제 나도 그 환호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낄지 말이다. 이번 소설이 약간의 아쉬움을 주기는 하지만 재미난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분량도 단숨에 읽기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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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즈데이
에단 호크 지음, 우지현 그림, 오득주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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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새로 나온 책 중에 저자가 에단 호크라는 것을 보고 영화배우인 그를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그임을 확인하였지만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 서평 등이 좋게 나오면서 그의 책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였지만 왠지 모르게 손이 가지 않았다. 우연히 들어온 그의 책을 읽으면서 예상 외의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예상 외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그의 영화배우로써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원제목은 재의 수요일이다. 웬즈데이라는 제목만으로 의미를 알 수 없었는데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원제목을 찾았더니 Ash Wednesday 였다. 원 제목을 그대로 사용해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제목으로 사용된 재의 수요일에 대한 의미를 모르는 나에게 그 제목이 다가오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간단히 해석을 찾아보니 부활 준비하는 회개와 정화의 시기라는 해석이 있었다. 이 해석을 보고 난 후 제목도 마지막 장 제목으로 사용된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소설 속 주인공 지미와 크리스티를 보고 있으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기보다 일상적인 삶의 계도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라고 해야겠다. 군인인 지미는 친구들과 만나 가끔 코카인을 하는 반 중독자고, 크리스티는 임신 후에도 담배를 계속해서 피우면서 자신과 뱃속에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 이 두 사람 모두 성장기가 평범하지 않다. 지미의 아버지는 정신병원에서 자살을 하고, 미스 오하이오인 어머니는 욕정에 굴복하고 남자들을 전전한다. 크리스티의 아버지는 이혼을 반복하고, 어머니는 어린 그녀를 두고 달아났다. 이 불안정한 청소년기가 성장한 후의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다.  

 

 불안정한 성장에 갑자기 생긴 아기와 더불어 남녀 주인공들의 충동적인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상당히 능숙하다. 문장은 간결하고 심리묘사도 나쁘지 않다. 가벼운 독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였는데 생각보다 무거운 내용이었고, 주인공들의 행동과 과거는 탄탄한 구성과 함께 흥미를 불러왔다. 자신들의 우발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사건과 일들은 그들의 성장을 나타내고 원 제목과 연결되면서 그 의미가 더욱 부각된다. 불안과 불안정한 삶에서 의미를 찾고, 분노를 조절하고,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그 과정들이 쉽지는 않지만 마지막 문장에서 충분히 살아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비록 종교적 색채가 강한 제목이긴 하지만 원제목을 그대로 사용하고 책에 그 의미를 설명해 놓았다면 독자들이 이해하는데 좀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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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학대하라
조이 고블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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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두꺼운 책이다. 550쪽이 넘는다. 처음 책을 쥐었을 때 언제 다 읽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거기에 빈의 젊은 비평가들이 뽑은 청소년소설 상을 받았다고 하지 않는가! 비평가들이 준 상을 받은 소설들이 빠르게 읽히는 경우가 거의 없음을 생각하면 힘든 책읽기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선입견은 몇 쪽을 넘기지 않아서 날아가 버렸다. 할런이 빈센트에게 쓴 편지를 지나 자신의 과거사를 이야기하고 베로니카로 넘어가는 순간 빠져버렸다. 너무 속도가 나서 오히려 잠시 숨을 길게 돌려야 할 정도였다.  

 

 제목에서 알려 주듯이 이 소설은 한 천재 예술가 빈센트를 학대하고, 그 결과물을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미국 문화 예술계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할런이 그 중심에서 독설을 퍼붓고, 빈센트는 그 타락한 세상에서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성장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빈센트 작품의 질과 창의성이 떨어지면 할런으로 대표되는 뉴르네상스의 학대가 시작된다. 이런 피눈물 나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확실히 성장하고 질 좋은 작품이 나온다.   

 

 그럼 왜 이런 학대가 벌어진 것일까? 그것은 엄청난 미디어그룹인 IUI-글로브터너의 회장인 리포비츠가 가진 말년의 바람 때문이다. 그가 수십여 년에 걸쳐 탐욕스럽고 사악한 비즈니스로 돈을 벌면서 이룬 주류 엔터테인먼트의 가치를 상업에서 예술로 전복시키고자 새로운 기획을 한 것이다. 그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로 뉴르네상스다. 그리고 이것은 회사의 이름이 된다. 자신들의 수많은 계열사를 통해 예술을 부흥시킬 영재 모집 광고를 내보내고, 이 영재를 가르칠 학교를 설립한다. 이때 빈센트가 회사가 내놓은 질문에 대한 답은 ‘나는 세상이 틀렸기 때문에 글을 씁니다.’였다. 이 답으로 합격하고 빈센트의 인생은 예술 한 가지 목적을 위해 길들여지고 가꾸어지고 학대받게 된다.  

 

 좋은 예술 작품을 내놓기 위해 뉴르네상스가 선택한 것은 바로 예술가를 학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택된 매니저가 술 때문에 퇴학당했지만 독설을 마구 내품는 할런이다. 그의 학창시절과 청소년기의 경험은 앞으로 펼쳐질 빈센트 학대의 도구가 된다. 빈센트가 삶의 기쁨을 느끼고, 사랑을 경험하고, 좋은 친구를 만날 때면 그의 경험은 하나의 날카로운 창이 되어 기쁨과 사랑과 우정을 찌르고, 채찍이 되어 빈센트를 학대한다. 이런 과정의 반복 속에 빈센트는 성장하고 괴로워하고 좌절하면서 육체적으로 피폐해지고 작품의 질은 더욱 좋아진다.   

 

 예술의 질을 위해 펼치는 학대의 기법은 다양하다. 어린 시절에는 가장 좋아했던 강아지에게 약을 먹여 죽이고, 살 곳을 없애기 위해 집을 불 지르고, 첫 사랑은 돈으로 매수하여 쫓아내고, 친구는 또 다른 사랑으로 떨어트리고, 또 다시 다가온 사랑은 술에 취하게 만들어 떠나가게 만든다. 이 이외에도 크고 작은 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빈센트의 정신을 학대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빈센트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인물은 바로 할런이다. 우습게도 그를 그런 상태로 몰고 간 주범인데 늘 그의 곁에서 그를 돌봐주기에 아버지처럼 생각한 것이다. 진짜 아버지를 모르는 불행한 가정사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빈센트를 학대한 결과물들은 좋은 성과를 이룬다. 음악을 만들면 일등을 하고, 드라마로 제작하면 엄청난 인기를 몰고 온다. 얼굴도 이름도 없던 그가 주류 엔터테인먼트에서 하나의 권력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권력의 달콤함을 누리게 만들지 않는다. 그가 전면에서 나서 부각되면 얻게 될 쾌락과 풍요로움과 사랑은 곧 예술가의 타락과 작품의 질 저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뒤로 가면서 윤리적인 문제와 상업적인 목적이 충돌하게 만들고, 예정된 결말로 나아가게 한다.   

 

 소설은 묻는다. 과연 한 천재 소년의 삶을 학대해서 수많은 소비자가 받게 될 예술적 가치가 과연 정당한가, 하고 말이다. 물론 직접 묻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작가가 또 대부분의 좋은 음악이나 영화를 요즘이 아닌 1990년대 이전의 것으로 한정해서 표현한 부분에선 예술 그 자체가 아닌 비주얼과 상업적 목적에 의해 흘러가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것 외에도 촌철살인같이 날카로운 시선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리고 작가의 후기에서 이 책을 정말 소용이 될 독자는 이 책을 볼 일이 절대 없을 것이란 소견에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작가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취향으로 그 사람을 나타낸다. 그것은 가장 좋아하는 밴드, 티브이쇼, 영화 등이다. 작가는 데드 밀크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펀치 드렁크 러브다. 아쉽게도 내가 경험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나의 취향은 어떤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졌고, 수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엄청난 속도감과 재미들을 주는 책 속에서 얻게 되는 즐거움의 하나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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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관람차 살림 펀픽션 2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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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지난번에 읽은 <악몽의 엘리베이터>에서 밀폐된 공간에서 펼쳐진 놀라운 이야기가 즐거움을 주었다. 그래서 이번 소설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와 장면들이 만들어내는 폭소와 스릴은 이 작가의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차분히 앉아 천천히 읽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마지막에 도달한다. 그 속도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너무 빨라 조금씩 아껴 읽고 싶기도 하다.  

 

 전작에서 엘리베이터가 무대였다면 이번엔 관람차다. 그것도 보통 크기가 아닌 높이 112.5미터, 직경 100미터의 엄청난 크기의 관람차다.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이 관람차가 최고 높이에 도달했을 때 멈추고, 유괴범인 다이지로가 폭탄을 시험적으로 터트리며 평범하고 즐거워야 할 놀이기구가 악몽의 공간으로 바뀐다. 그리고 네 대의 관람차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속에 담긴 비밀은 이 소설의 재미이자 반전을 품고 있다.  

 

 이야기는 일주일 전 야쿠자 다이지로가 무면허의사 니나를 찾아오고, 그가 돈을 빼앗아온 채무자가 큰 칼로 협박하면서 시작한다. 다이지로는 니나에게 이 상황을 무사히 넘기면 데이트를 하자고 요청한다. 칼을 든 채무자를 마술의 한 동작으로 기절시키고 그녀와 약속을 잡는다. 하지만 이 단순하고 조그마한 사건이 다음에 이어질 거대한 인질극의 시작일 것이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면서 거대한 계획이 펼쳐진다.  

 

 많은 사람들이 타는 관람차지만 다루어지는 곳은 네 곳이다. 17호에는 아내와 아들과 딸을 데리고 온 고소공포증이 있는 겐지 가족이, 18호엔 모든 것을 계획한 다이지로와 니나가, 19호엔 전설적인 소매치기 긴지와 그의 제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마지막엔 이별청부업자인 여자가 타고 있다. 처음엔 이들 관람차의 상황이 묘사되고, 평범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하지만 폭탄이 터지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이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다.  

 

17호 가족은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이다. 남편이 아내를 약간 떨어진다고 평가하는데 이것은 뒤로 가면서 밝혀지는 사실을 보면 누가 그 집안에서 가장 사차원인가 알려주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특히 큰딸 유카의 대사와 행동은 읽는 내내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그 아이의 괴팍하고 촌철살인 같은 대사와 반응은 아내 아사코의 숨겨진 비밀과 더불어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남편 겐지의 어리숙하고 가장으로서의 자세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18호를 탄 두 남녀는 이 모든 소동의 중심이다. 니나의 아버지는 유명한 성형외과를 가지고 있고, 10년 전 의료사고를 낸 적이 있다. 이때 의대를 다니던 딸 니나는 의사란 자격증을 포기하고 집을 나온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후 그녀를 납치한 후 아버지에게 6억 엔이란 거액을 요구하는 인질극이 발생한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다. 만약 돈이 마련되지 않으면 그녀뿐만 아니라 함께 탄 모든 관람차 승객이 폭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단순히 6억 엔이 목적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작가는 이 속에 또 다른 사연을 담고, 트릭을 만들고, 멋지게 상황을 연출한다.  

 

 19호의 소매치기 긴지는 전설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다. 얼치기 같은 한 남자가 그에게 소매치기 실력을 배우려고 한다. 이 둘의 이야기는 양념처럼 가미된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중반에 펼쳐지는 상황은 또 다른 이야기를 위한 장치가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회상에서 왜 이런 상황이 펼쳐졌는지, 그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려준다. 마지막 남은 20호의 여자는 7년 사귄 남자에게 차인 후 멋지게 복수를 하고, 이때부터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이용해 이별청부업이란 직업에 뛰어든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이별청부를 하고 멋지게 성공한다. 그녀가 이 관람차를 타게 된 것도 바로 겐지 부부를 이별시키기 위한 것이다. 과연 어떻게 될까?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진 듯한 사람들이 탄 관람차의 풍경에서 시작한다. 과거로 돌아가 이 놀라운 인질극이 왜 벌어졌는지 밝혀준다. 이미 전작에서 연관성이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이 멋지게 연결되고 기발한 반전이 펼쳐진 것을 기억하기에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하지만 빨리 밝혀낸 사실과 더불어 마지막까지 숨겨놓은 반전과 사실은 지난번처럼 나를 멋지게 속여 넘겼다. 그리고 곳곳에 터져 나오는 웃음은 이 악몽 같은 상황에 여유를 준다. 또 인질극을 펼치면서 몸값을 받게 되는 경우 어떻게 받을 지와 어떻게 잡히지 않고 달아날지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 웃음과 반전과 탈출극이 만들어내는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이 소설 아주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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