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커리드웬 도비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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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를 독재자가 다스린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큰 불행이다. 하지만 이 독재자를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늘 있다. 정경유착으로, 부패로 그들은 이익을 얻는다. 그 부패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그에 대한 반동도 강해진다. 그 반동의 형태가 혁명이냐 쿠데타냐에 따라 그 다음 정권의 성격이 결정된다. 물론 이것이 단숨에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난 후 정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 속의 정권 교체가 쿠데타란 단어로 표현된 것은 의미하는 바가 분명하고 크다.  

 

 소설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선 대통령을 위해 봉사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화가, 요리사, 이발사 등이다. 화가가 하는 일은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고, 요리사는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여 맛있는 요리를 대접한다. 당연히 이발사는 머리를 깎아주고, 면도를 해주고, 코털을 정리해준다. 이들은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인지도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혁명을 위해 몸을 바치는 인물들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직업에 충실할 뿐이다. 그런데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면서 잠시 그들에게 위험이 닥친다. 새 정권의 수장인 두목이 잠시 동안 이들을 감금한 것이다.  

 

 이들이 감금되는 과정에서 당연히 폭력이 행사되었다. 정권을 잡기 위해 무력과 살인이 동원되었고, 그들의 주변인들이 살해되었다. 그들은 다행스럽게 살아남았다. 이제 이야기는 이 세 남자의 과거 속으로 들어가서 현재와 미래의 그들을 보여준다. 화가가 무명으로 있다가 우연히 화장실을 찾아온 아내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그녀의 후광으로 대통령의 전속 화가가 되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난다. 요리사는 이혼한 아내가 있고, 그의 바람기에 아내는 정신병원에 갇힌다. 그의 딸은 아버지를 꼭 닮았고,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발사는 멋진 형이 독재자의 하수에게 죽은 후 복수를 꿈꾸지만 현실에 안주하고, 오히려 대통령을 위해 봉사한다.   

 

 2부에선 이 세 사람과 관련된 여자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끌고 간다. 화가의 아내, 요리사의 딸, 이발사의 형의 애인이 화자다. 그녀들의 삶은 남자들이 생각한 것과 분명히 다르다. 아내는 남편과 멀어지려고 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 받지 못한 엄마의 애정으로 결핍을 느낀다. 요리사의 딸도 역시 아버지의 바람기와 엄마의 정신병으로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두목의 아내이자 이발사의 형의 애인이었던 그녀는 이발사의 과거를 떠올려주고, 현재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단순히 현실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건조하면서 사실적인 문장으로 이들의 삶 뒤에 숨겨진 사실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3부에선 다시 화가, 이발사, 요리사가 다시 화자로 나선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삶의 냉혹함과 부조리와 절망과 권력에 대한 욕망을 표출한다. 앞의 작업들이 깔아놓은 단서들로 예측했던 것들이 하나씩 사실로 드러난다. 혁명이라 믿고 싶었던 쿠데타가 결국 다시 독재자의 이름만 바뀐 것이나 사랑이란 이름 뒤에 숨겨진 잔혹한 진실과 아픔이나 과거에 결코 용기를 내지 못한 행동이 단숨에 벌어지는 것 등이 갑작스럽고 순식간에 벌어진다.   

 

 

 모두 여섯 명의 화자가 돌아가면서 상황과 현실을 설명한다. 짧게 과거가 요약되고, 현실의 삶이 드러나고, 놀랍고 추악한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파멸이 다가온다. 그 파멸 속에서 또 다른 권력의 욕망이 피어난다. 마지막 문장에서 “양심의 가책은 오래가지 않았다”(237쪽)고 했을 때 양심이란 얇은 껍질 뒤에 숨어 있던 욕망이 껍질을 깨고 나온다. 이제 권력은 욕망과 손을 잡고 또 다른 독재자의 탄생을 낳는다. 지독히도 잔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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