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무더위 때문인지 요즘 가벼운 책을 선호한다. 두께가 얇다면 더 좋다. 그러던 중 나의 앞에 턱하니 나타난 오츠 이치의 <베일>은 딱 맞는 선택이다. 커지 않은 판형에 많은 글이 실려 있지 않고, 212쪽에 불과하다. 한 번 잡으면 단숨에 읽기 좋다. 뭐 가끔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머리가 쥐나는 책이 있지만 이 소설은 쑥쑥 진도가 나간다. <너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후 처음으로 읽지만 전혀 낯설지 않다. 작가의 지명도에 비해 나의 두 번째 시도는 상당히 늦었다. 

 

단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천제요호>와 <A MASKED BALL - 그리고 화장실의 ‘담배’씨, 나타났다 사라지다> 두 편이다. <천제요호>는 두 사람의 글이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야기와 쿄코다. 야기가 쿄코에게 쓴 편지로 시작한다. 그가 쿄코에게 받은 은혜와 감사가 바닥에 깔리고, 그의 무섭고도 외로운 과거사로 펼쳐진다. 그 과거에서 드러난 사실은 현실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하지만 어린 야기가 겪은 그 경험과 현실은 쿄코를 통해 사실로 드러난다. 그가 왜 온몸을 붕대로 감고 다니고,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말이다. 그 모든 것은 어린 시절 한 순간의 선택과 공포가 만들어낸 결과다.  

 자신도 모르게 괴물로 변해가는 인간을 통해 외로움과 공포를 다룬다. 사람이 아닌 존재로 변해가는 자신과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소녀와의 관계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오락적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지만 상대방의 피와 공포와 살인을 갈구하던 그가 순간 멈칫하고 멈춘 것은 바로 이 관계를 통해 인간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예상된 결말로 이어진 것은 조금 아쉽지만 인간임을 잊지 않으려는 야기의 노력과 낯선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손길을 내미는 쿄코의 모습은 그 존재를 넘어서 따스함을 전해준다.  

 

 두 번째 이야기 <A MASKED BALL>은 학교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에무라는 초등 5학년 때 탁자 위에 놓인 담배를 처음으로 피웠는데 기침 등의 반응이 전혀 없었다. 그 후 담배를 계속 피웠다. 고등학교에 와서도 계속 피웠는데 학생의 신분으로 편하게 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그러다 찾은 곳이 약간 떨어져 있는 화장실이다. 이곳에서 편하게 담배를 피우는데 한 낙서가 보인다. 낙서하지 말라는 낙서다. 이 밑에 댓글 형식으로 낙서를 달기 시작한다. 이후 그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낙서를 한다. 재미난 놀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낙서에 심각한 의미를 담은 글이 적힌다. 어떻게 보면 장난일 수도 있지만 점점 규모가 커지고, 상황은 무서워진다. 작가는 이 과정을 학원탐정물과 호러를 섞어서 풀어낸다. 규칙에 대한 강박이 만들어내는 비정상적인 상황들은 역시 어느 정도 범인이 누군지 예상하게 만든다. 비록 그 존재의 정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 두 소설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초등학교 시절 선택한 것 때문에 현재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천제요호>가 코쿠리 상이란 놀이를 통해 육체가 점점 잠식당하고, 과격한 본능을 충동질하는 유혹과의 끊임없는 싸움과 도피가 벌어진다.  <A MASKED BALL>도 역시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핀 담배로 인해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 낙서라는 소통이 이루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 이 둘 모두 자신과 관련된 사람과의 대화가 제대로 소통되지 않고 일방적이다. 야기가 사나에에게 몸을 내준 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변해가는 것이나 우에무라가 화장실 낙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과 달리 상대방의 의지가 일방적으로 행동으로 옮겨진 것 등이다.  

 아직 오츠 이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읽지는 않았다. 처음 읽었을 때 괜찮은 작가란 생각을 했는데 어느 날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환호하고 있었다. 나의 경우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언제 나도 그 환호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낄지 말이다. 이번 소설이 약간의 아쉬움을 주기는 하지만 재미난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분량도 단숨에 읽기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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