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엔자
한상운 지음 / 톨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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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캐릭터에 있다. 캐릭터가 중심을 잡고 이야기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제훈과 고문관 인호가 바로 그들이다. 이 둘이 보여주는 활약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대단하다. 이 대단함이 엄청난 활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행운과 대담함과 의지가 함께 작동하면서 힘을 발휘한다. 바로 이런 부분들이 비교적 간결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몰입도를 높여준다.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단숨에 달려가게 만든다.

 

종말과 좀비를 다룬다. 우선 좀비를 다루는데 소설이 품고 있는 종말론적 상황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모두 읽은 지금 머릿속에는 좀비와 종말을 다룬 두 권의 소설이 생각난다. 한 권은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이고, 다른 하나는 스티븐 킹의 <셀>이다. 바이러스라는 소재를 택한 것과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한 원인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알지 못한다는 것이 죽음과 이어질 때 그 공포는 더 깊고 넓어진다. 생존을 위한 노력은 상황이 더 힘들수록 더 처절해진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왠지 모르게 그런 처절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김전일 시리즈에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죽지만 김전일과 그의 여자 친구는 무사한 것처럼 말이다.

 

제훈은 일병이다. 그의 여자 친구 영주는 예쁘다. 우연과 행운이 겹치면서 그녀와 사귀게 되지만 이 행복은 군입대로 사라진다. 그런데 그의 부대가 강원도 산골 오지가 아니다. 서울 시내다. 시내면 쉽게 만날 것 같은데 아니다. 그의 부대는 특급호텔 옥상이다. 옥상에 군부대가 주둔한다는 것을 얼마 전 회사 직원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예쁜 여자 친구를 둔 군바리가 걱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하다. 그녀가 보낸 편지 한 통은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여친을 위해 금연까지 하면서 휴가를 기다리는데 그놈의 인플루엔자 때문에 나갈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세계는 알 수 없는 인플루엔자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새로운 약이 개발되어 완치의 길이 열리지만.

 

작가는 이 소설의 설정에서부터 패러디와 풍자로 가득하다. 인플로엔자가 돌 때 불과 몇 년 전 신종플루 사태를 비튼다. 여기에 예방약까지. 그런데 이 소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예방접종을 한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는 것이다. 이런 좀비들이 처음 나타난 곳이 미국과 한국과 일본이란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또 인호의 입대 전 이력이 종말을 바탕으로 한 게임임을 감안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작가의 전작 <게임의 왕> 시리즈에 등장한 세 소년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카메오처럼 등장하는데 강한 인상을 준다. 물론 이 소설을 읽은 사람에게만 해당한다.

 

갑작스런 좀비의 공격과 고립된 군부대란 설정은 결국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좀비가 인간을 공격해서 먹고 감염시키는 것처럼 인간도 음식을 먹어야 산다. 고립된 공간에서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식수가 제대로 공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옥상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다. 당연히 내려가서 식량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서울의 현실에서 여친을 걱정하는 제훈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녀에게 가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새로운 기회가 되는 동시에 좀비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살기 위해 사랑을 위해 일병과 이병의 힘겨운 탈출과 도전이 시작한다. 그 끝은 다른 종말과 좀비를 다룬 소설과 별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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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혼자였다
미리암 케이틴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이상빈 추천 / 이숲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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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끊임없이 2차 대전 당시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혹자는 이것을 두고 홀로코스트 산업이라고까지 표현한다. 하지만 역사적 기록이나 그 당시 사진 등을 보면 홀로코스트 혹은 쇼어 등이 일어난 장소의 참혹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산업이란 표현을 사용할 정도라면 그 이후 얼마나 많이 다루어졌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세계적으로 이슈화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 일제나 친일에 대해 이 만큼 다루어졌을까? 우리는 이제 그만 과거는 잊고 앞으로 나가자고 말한다. 좋다. 맞다. 앞으로 나가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 그럼 과연 누가 이 과거를 진솔하게 진심을 담아 참회하고 용서를 구했나? 용서 이전에 필요한 것이 빠진 상태를 생각할 때 ‘과거는 미래를 향해 울리는 경종’이란 말의 의미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반복을 생각할 때 더욱더.

 

이 만화는 기존 홀로코스트나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이야기와 조금 궤를 달리한다. 헝가리 유대인 엄마 에스텔과 딸 리사의 참혹한 여정을 다룬다. 이 여정의 시작은 그렇게 나쁘지 않지만 독일군이 그 마을에 오게 되고 그녀의 미모를 탐한 장교가 등장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여기에 독일군을 쫓아내고 진주한 러시아군까지 가세하면서 그녀는 생존을 위해 몸을 내던질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군이 갑자기 죽으면서 눈보라치는 상황에서 달아나야 한다. 이런 여정을 거친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낸 고마운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녀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도 등장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작가는 단순한 흑백과 컬러라는 색의 구성으로 어둡고 아픈 과거와 밝은 현재를 대비시킨다. 이 구성을 금방 이해하게 된 것은 색뿐만 아니라 윤곽에서도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많지 않은 분량이다. 단숨에 읽힌다. 기존의 2차 대전 유대인과 다른 이야기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자신들의 삶의 바탕인 신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신들이 와인통에 산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한 은유지만 가슴 한 곳을 파고들어 그들이 느낀 절망이 와 닿는다. 생존을 위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줄 때 그 현실에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읽다가 느낀 점 중 하나는 리사가 아이와 함께 낯선 사람의 집 문을 두드릴 때 그녀를 흔쾌히 모녀를 받아들인 것은 남자다. 왜일까? 그녀의 미모 때문이라면 다른 수작을 부렸을 텐데 그것은 없다. 열악한 환경에서 여자들이 좀더 현실적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만난 사람들 때문일까? 이것은 다시 앞으로 돌아가면 바뀐다. 그녀의 재산을 노리는 인물은 집주인 남자고 그녀를 도와주는 주변 사람은 여자다.

 

내 눈이 맞다면 연필로 그린 만화다. 선으로 표현된 감정은 분명하고 풍경은 섬세하다. 수많은 학살의 와중에 생존했다는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았다 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녀가 생존을 위해 그 마을과 집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녀의 정체를 알거나 정복자로 온 군인에게 어떤 비참함을 당했는지 보여줄 때 그녀의 강인한 생존력과 희망이 드러난다. 작가는 이 과정과 풍경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여운을 남기면서 가슴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해설에서도 나왔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가 보여준 행동은 큰 충격이다. 평화가 찾아온 가정에서 잊고 있던 폭력의 기억이 아이를 통해 드러날 때 그 섬뜩함은 정말 대단하다. 작가와 엄마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임을 생각할 때 그 기억을 벗어났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물론 프리모 레비 같은 경우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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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4 - 전국시대 화폐전쟁 4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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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 시리즈가 4권까지 나왔다. 이 중에서 읽은 것은 불과 2권이다. 음모론적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2권과 바로 4권이다. 개인적으로 2권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 때문에 화폐전쟁 시리즈가 출간되면 늘 관심을 두었다. 그래서 1권을 샀지만 왠지 손이 쉽게 나가지 않았다. 변덕이다. 순서대로라면 3권을 읽어야 하지만 의무감이 동반되지 않으면 이렇게 두꺼운 책을 요즘 잘 읽지 않는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열심히 읽고 다시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하지만 늘 그때뿐이다.

 

전국시대란 부제가 달려 있다. 그 유명한 중국의 전국시대를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의미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제목과 함께 새롭게 다가온다. 전국시대 말에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한 것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을 때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은 삼국지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화폐의 블록화가 그것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미국의 달러, 유럽의 유로, 아시아의 야위안이 삼국의 위치에서 경쟁하는 모양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해한 한도 안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바로 ‘기축통화 전쟁’이다. 자국의 화폐를 세계의 화폐로 만들기 위한 노력과 공작을 다룬다. 대단히 흥미진진한 전개다.

 

우리는 흔히 달러를 당연한 기축통화로 알고 있다. 경제사를 조금만 배운 사람이라면 이런 과정이 어떤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 것인지 알고 있다. 그 유명한 금본위제, 금환본위제 등을 지나 현재의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가 된 것이다. 사실 학창시절 이 부분을 배울 때 그냥 외웠다. 왜 이런 전개가 되었고 어떤 배경이 있는지 제대로 배우지도 공부하지도 못했다. 가르쳤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 당시 학교의 주류는 미국 경제학을 배운 교수들로 채워져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배운 대로 우리에게 가르쳐주었고 배움이 짧았던 나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나중에 언론 등을 통해 얻은 정보가 결합하여 나의 얄팍한 경제 지식이 되었다. 공부가 부족하고 대충한 결과다.

 

화폐전쟁이란 제목처럼 유럽과 미국과 소련이 어떤 화폐전쟁을 펼쳤는지 앞부분에 보여준다. 이 과정은 2권의 음모론과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어느 부분에서 겹치기도 하고 또 어떤 대목에서는 상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축통화가 되고자 하는 열망과 바람이 어떤 정책으로 이어졌는지 보여줄 때, 특히 미국의 채무경제를 말할 때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하던 몇 가지 의문이 확 풀렸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경제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고민되었다. 물론 나의 고민에 대한 답을 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문제점 몇몇은 알게 되었다. 이것은 상당히 큰 소득이다.

 

기축통화 전쟁에서 미국 루스벨트의 노력을 다룬 부분은 기존에 알고 있던 이미지를 깨트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2차 대전과 냉전을 화폐전쟁으로 풀어낸 부분은 역사를 분석하는 다른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경제에 대한 기본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실물경제와 화폐와 생산성 등의 기본적인 개념이 재정립된 것이다. 여기에 유로의 탄생을 둘러싼 유럽 각국의 경쟁과 조정 등은 저자가 주장하는 아시아공통화폐 야위안의 탄생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이것은 다시 미국의 경제, 유럽의 정치, 아시아의 역사 문제와 엮이면서 방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몇몇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자주 등장하지만 전체 흐름을 따라가는데 큰 문제는 없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유심하게 본 것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앞에서도 말한 야위안이고, 다른 하나는 현 세계 경제와 관련 있는 미국의 채무 화폐다. 통화 정책에 대한 정답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지금의 저금리와 통화 확대 정책이 분명히 미래의 성장 동력을 갉아 먹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저자가 미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고 미국 경제가 채무 화폐 경제로 바뀌면서 거대한 달러 보유국들이 처한 불행한 현실을 말할 때 단순히 이것이 중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중국 생산 및 미국 소비’와 ‘중국 저축 및 미국 차입’이라는 공생관계가 어떤 의미인지 알려줄 때 얼마나 거대한 거품의 위험 속에 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솔직히 쉬운 책이 아니다. 분량도 많다. 단숨에 읽기 어렵다. 전문가라면 물론 다르겠지만 일반인이 이 책을 읽으려면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배경 지식 없이 읽게 되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미국 경제 문제와 유럽의 스페인, 아일랜드,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문제 등을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다시 저자가 주장하는 야위안과 관계있다. 단순히 화폐 통합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소득과 경제 수준과 생산성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복지 포퓰리즘으로 그리스가 망했다는 부정확한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만든다. 물론 단순히 이것만의 문제는 아니다. 야위안의 탄생과 화폐 블록화와 각 나라의 경제 격차 등은 지속적인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책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또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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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씨네 가족
케빈 윌슨 지음, 오세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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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혈연관계는 분명하지만 그들이 살아온 여정을 생각하면 그렇다고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왜냐고? 책을 읽으면 쉽게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몇 개의 예만 들어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요즘 인기 있는 TV프로그램 <안녕하세요>의 마니아라면 ‘그럴 수도 있지’하고 쿨하게 말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난 다음에는 그들도 ‘어떻게 이런 가족이 존재할 수 있을까’와 ‘가족이 아니다’라는 나의 의견에 좀더 귀를 기울일 것이다.
 
펭씨 부부는 극단적인 행위예술가다. 그들이 만들어낸 어떤 장면을 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몰래카메라다. 하지만 단지 이런 상황을 보고 기록하는 것에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자신들과 아이 A와 아이 B 두 아이를 이 행위예술(?)에 참여시키면서 자신들이 예상한 혹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이 해프닝은 아주 간단한 것에서 시작하여 극단적으로 위험한 것이나 인생을 바꾸는 것 같은 것으로까지 발전한다. 예술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이들의 결혼이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는지 보여주는 장에서조차 행위예술은 멈추지 않는다. 정말 대단하다.
 
정상적이지 않은 부모 아래에서 자란 두 아이는 어떻게 될까? 아마 그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고자 할 것이다. 그래서 누나 아이 A 애니와 동생 아이 B 버스터가 떠난다. 그녀는 연기를 좋아하고 어느 정도 인정받고 인기 있는 배우다. 하지만 감독과의 충돌로 인해 상의 노출을 하고 이 때문에 하나의 가십거리로 전락한다. 이 전락은 성공한 여배우에서 다시 아이 A로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반면에 동생인 버스터는 소설가에 자유기고가다. 소설은 성공하지 못했고 감자총 기사를 쓰기 위해 간 곳에서 감자총에 맞아 얼굴이 박살난다. 돈까지 없다. 마지막 선택으로 집으로 간다. 아이 B가 된다.
 
이 둘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부모들의 감각이 예전 같지 않다. 무료 쿠폰을 통해 기대했던 상황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시도가 무참하게 실패한다. 이 때문에 오히려 자식들에게 위로받는 지경으로 변한다. 이 변화는 소설 구성에도 변화를 준다. 이전까지 두 아이와 가족을 설명하기 위한 펭씨 부부의 작품들이 연도순에서 이야기와의 유기적인 설명으로 바뀐다. 그리고 부모가 실종된다. 그들이 사라진 곳에는 자동차와 피가 남아있다. 지역 경찰이 그들에게 전화했을 때 이 둘이 보인 반응은 사고가 아니라 또 하나의 행위예술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언제 다시 나타나 사람들의 반응을 즐길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종 기간이 길어지면서 불안해진다. 부모를 찾기 위한 남매의 추리가 시작된다.
 
실종으로 인한 과거 추적은 펭씨 가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된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작품을 해왔고 얼마나 그 예술이 위험한지도 같이 보여준다. 정말 못 말릴 부부다. 예술을 위해서라면 총까지 쏠 정도니 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정말 대단한 것은 몇 년을 준비한 대작이다. 과연 이것이 예술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이런 엄마 아빠 아래에서 정상적으로 자란다는 사실 불가능하다. 그들이 상처받고 그 집을 떠난 것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물론 이 가족들의 협업으로 인한 유대감과 행복감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엽기적이란 단어를 사용할 정도의 가족이야기이다 보니 가독성이 좋다. 재미있다. 하지만 이 재미는 예술이란 이름 아래 두 아이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래서 불편하다. 이것은 몰래카메라를 보면서 그 상황이 만들어내는 장면에서 반사적으로 웃게 되지만 그 때문에 남게 되는 불편함과 비슷하다. 또 이 소설은 두 아이의 성장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부모의 그늘에서 실제 벗어나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상처를 씻어내고 진짜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이 얼마나 쉽거나 또는 얼마나 어렵고 난해하고 기이한지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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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잉잉 1
황준호 지음, 수연 그림 / 애니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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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인간에 대한 유쾌한 만화다. 시작은 27살 3학년 복학생이 프레젠테이션 도중에 똥을 싸면서부터다.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엄청난 부끄러움과 놀림과 시선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학업을 포기하면 책 속에 나오는 대사처럼 어떻게 취직하고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뭐 이런 고민은 나중 문제고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사건으로 주인공 황준호가 학교에 갈 마음이 없고 이 때문에 똥싼 팬티를 빨다가 괴상한 일을 만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눈물, 콧물, 침, 똥물 등이 어우러지고 간절한 소망이 엮이면서 신들을 소환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신들 별 능력이 없다. 바로 여기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만화는 곳곳에 패러디가 넘쳐난다. 소환이란 의식을 통해 현세에 나온 신들의 모습부터 패러디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능력은 전혀 신 같지 않다. 이름부터 평범하거나 패러디고 자신들을 인간성의 신이라고 부른다. 신의 권능이라 마법을 부려 주인공을 멋지게 도와주기는커녕 민폐만 끼친다. 물론 이 과정에도 곳곳에 패러디는 배치된다. 이런 신들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최소한 그들은 친구도 없이 학교를 다니고 바지에 똥 쌀 정도로 무력한 그의 곁에서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나아간다. 가끔은 혹은 자주 잘못된 방향으로 그를 인도하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순간도 많지만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우리가 받은 교육이 그것을 더 어렵게 만들고, 나의 시선이 다른 사람을 통해 되돌아오면서 이것을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좋은 친구라도 있다면 고민을 상담하고 무게를 나누겠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친구조차도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고민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힘으로 이 모든 어려움을 뚫고 지나가야 하는데 이 때문에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가 개인의 것으로 축소되고 변질된다. 뭐 이 만화가 거기까지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제목이 우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과 함께 잉여의 의미도 품고 있다. 주인공의 삶이 실제 이런데 혹시 작가 이름과 같은 것처럼 그의 삶도 이랬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살짝 생긴다. 책 속에 아니라고 하지만 한 번 생긴 의심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리고 이 만화는 엽기와 로맨스가 결합되어 있다. 똥과 인간성의 신들이란 존재가 만들어내는 상황극과 진행은 엽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지연에 대한 마음과 행동은 로맨스의 그것이다. 그녀가 준호에게 보여주는 착한 행동은 오해를 사기 딱 좋고 이 때문에 라이벌도 생긴다. 전형적인 로맨스의 삼각관계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나면서 이 만화가 어떤 만화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몇몇 반전이나 예상하지 못한 캐릭터들의 돌출행동이 뻔한 결말을 살짝 비틀지만 그 기본 흐름은 뻔하다. 그 과정을 어떻게 꾸미고 재미나게 이어가느냐 하는 것인데 이 틈을 채우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패러디다. 정확하게 어디서 가져왔는지 아는 것은 몇 없지만 그 장면들을 만나면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무겁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뻔한 대사지만 그 뻔함이 뻔한 설정과 어우러져 이어질 때 재미있었다. 제목처럼 마음먹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마음먹은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더 어려운 현실을 생각할 때 잉여인간의 활약은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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