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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4 - 전국시대 ㅣ 화폐전쟁 4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벌써 이 시리즈가 4권까지 나왔다. 이 중에서 읽은 것은 불과 2권이다. 음모론적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2권과 바로 4권이다. 개인적으로 2권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 때문에 화폐전쟁 시리즈가 출간되면 늘 관심을 두었다. 그래서 1권을 샀지만 왠지 손이 쉽게 나가지 않았다. 변덕이다. 순서대로라면 3권을 읽어야 하지만 의무감이 동반되지 않으면 이렇게 두꺼운 책을 요즘 잘 읽지 않는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열심히 읽고 다시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하지만 늘 그때뿐이다.
전국시대란 부제가 달려 있다. 그 유명한 중국의 전국시대를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의미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제목과 함께 새롭게 다가온다. 전국시대 말에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한 것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을 때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은 삼국지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화폐의 블록화가 그것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미국의 달러, 유럽의 유로, 아시아의 야위안이 삼국의 위치에서 경쟁하는 모양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해한 한도 안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바로 ‘기축통화 전쟁’이다. 자국의 화폐를 세계의 화폐로 만들기 위한 노력과 공작을 다룬다. 대단히 흥미진진한 전개다.
우리는 흔히 달러를 당연한 기축통화로 알고 있다. 경제사를 조금만 배운 사람이라면 이런 과정이 어떤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 것인지 알고 있다. 그 유명한 금본위제, 금환본위제 등을 지나 현재의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가 된 것이다. 사실 학창시절 이 부분을 배울 때 그냥 외웠다. 왜 이런 전개가 되었고 어떤 배경이 있는지 제대로 배우지도 공부하지도 못했다. 가르쳤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 당시 학교의 주류는 미국 경제학을 배운 교수들로 채워져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배운 대로 우리에게 가르쳐주었고 배움이 짧았던 나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나중에 언론 등을 통해 얻은 정보가 결합하여 나의 얄팍한 경제 지식이 되었다. 공부가 부족하고 대충한 결과다.
화폐전쟁이란 제목처럼 유럽과 미국과 소련이 어떤 화폐전쟁을 펼쳤는지 앞부분에 보여준다. 이 과정은 2권의 음모론과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어느 부분에서 겹치기도 하고 또 어떤 대목에서는 상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축통화가 되고자 하는 열망과 바람이 어떤 정책으로 이어졌는지 보여줄 때, 특히 미국의 채무경제를 말할 때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하던 몇 가지 의문이 확 풀렸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경제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고민되었다. 물론 나의 고민에 대한 답을 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문제점 몇몇은 알게 되었다. 이것은 상당히 큰 소득이다.
기축통화 전쟁에서 미국 루스벨트의 노력을 다룬 부분은 기존에 알고 있던 이미지를 깨트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2차 대전과 냉전을 화폐전쟁으로 풀어낸 부분은 역사를 분석하는 다른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경제에 대한 기본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실물경제와 화폐와 생산성 등의 기본적인 개념이 재정립된 것이다. 여기에 유로의 탄생을 둘러싼 유럽 각국의 경쟁과 조정 등은 저자가 주장하는 아시아공통화폐 야위안의 탄생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이것은 다시 미국의 경제, 유럽의 정치, 아시아의 역사 문제와 엮이면서 방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몇몇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자주 등장하지만 전체 흐름을 따라가는데 큰 문제는 없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유심하게 본 것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앞에서도 말한 야위안이고, 다른 하나는 현 세계 경제와 관련 있는 미국의 채무 화폐다. 통화 정책에 대한 정답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지금의 저금리와 통화 확대 정책이 분명히 미래의 성장 동력을 갉아 먹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저자가 미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고 미국 경제가 채무 화폐 경제로 바뀌면서 거대한 달러 보유국들이 처한 불행한 현실을 말할 때 단순히 이것이 중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중국 생산 및 미국 소비’와 ‘중국 저축 및 미국 차입’이라는 공생관계가 어떤 의미인지 알려줄 때 얼마나 거대한 거품의 위험 속에 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솔직히 쉬운 책이 아니다. 분량도 많다. 단숨에 읽기 어렵다. 전문가라면 물론 다르겠지만 일반인이 이 책을 읽으려면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배경 지식 없이 읽게 되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미국 경제 문제와 유럽의 스페인, 아일랜드,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문제 등을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다시 저자가 주장하는 야위안과 관계있다. 단순히 화폐 통합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소득과 경제 수준과 생산성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복지 포퓰리즘으로 그리스가 망했다는 부정확한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만든다. 물론 단순히 이것만의 문제는 아니다. 야위안의 탄생과 화폐 블록화와 각 나라의 경제 격차 등은 지속적인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책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또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