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엔자
한상운 지음 / 톨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한상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캐릭터에 있다. 캐릭터가 중심을 잡고 이야기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제훈과 고문관 인호가 바로 그들이다. 이 둘이 보여주는 활약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대단하다. 이 대단함이 엄청난 활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행운과 대담함과 의지가 함께 작동하면서 힘을 발휘한다. 바로 이런 부분들이 비교적 간결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몰입도를 높여준다.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단숨에 달려가게 만든다.

 

종말과 좀비를 다룬다. 우선 좀비를 다루는데 소설이 품고 있는 종말론적 상황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모두 읽은 지금 머릿속에는 좀비와 종말을 다룬 두 권의 소설이 생각난다. 한 권은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이고, 다른 하나는 스티븐 킹의 <셀>이다. 바이러스라는 소재를 택한 것과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한 원인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알지 못한다는 것이 죽음과 이어질 때 그 공포는 더 깊고 넓어진다. 생존을 위한 노력은 상황이 더 힘들수록 더 처절해진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왠지 모르게 그런 처절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김전일 시리즈에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죽지만 김전일과 그의 여자 친구는 무사한 것처럼 말이다.

 

제훈은 일병이다. 그의 여자 친구 영주는 예쁘다. 우연과 행운이 겹치면서 그녀와 사귀게 되지만 이 행복은 군입대로 사라진다. 그런데 그의 부대가 강원도 산골 오지가 아니다. 서울 시내다. 시내면 쉽게 만날 것 같은데 아니다. 그의 부대는 특급호텔 옥상이다. 옥상에 군부대가 주둔한다는 것을 얼마 전 회사 직원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예쁜 여자 친구를 둔 군바리가 걱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하다. 그녀가 보낸 편지 한 통은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여친을 위해 금연까지 하면서 휴가를 기다리는데 그놈의 인플루엔자 때문에 나갈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세계는 알 수 없는 인플루엔자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새로운 약이 개발되어 완치의 길이 열리지만.

 

작가는 이 소설의 설정에서부터 패러디와 풍자로 가득하다. 인플로엔자가 돌 때 불과 몇 년 전 신종플루 사태를 비튼다. 여기에 예방약까지. 그런데 이 소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예방접종을 한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는 것이다. 이런 좀비들이 처음 나타난 곳이 미국과 한국과 일본이란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또 인호의 입대 전 이력이 종말을 바탕으로 한 게임임을 감안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작가의 전작 <게임의 왕> 시리즈에 등장한 세 소년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카메오처럼 등장하는데 강한 인상을 준다. 물론 이 소설을 읽은 사람에게만 해당한다.

 

갑작스런 좀비의 공격과 고립된 군부대란 설정은 결국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좀비가 인간을 공격해서 먹고 감염시키는 것처럼 인간도 음식을 먹어야 산다. 고립된 공간에서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식수가 제대로 공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옥상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다. 당연히 내려가서 식량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서울의 현실에서 여친을 걱정하는 제훈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녀에게 가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새로운 기회가 되는 동시에 좀비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살기 위해 사랑을 위해 일병과 이병의 힘겨운 탈출과 도전이 시작한다. 그 끝은 다른 종말과 좀비를 다룬 소설과 별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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