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플레이스
길리언 플린 지음, 유수아 옮김 / 푸른숲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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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섬뜩하고 섬세하면서 반전이 있다. 섬뜩함은 24년 전 악마주의에 빠진 오빠가 막내 여동생 리비를 제외한 엄마와 여동생들을 모두 죽였다는 것이다. 섬세함은 과거의 시간을 현재와 교차하면서 시간 단위로 나누고 엄마 패티와 아들 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마지막 반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는 점이다. 거기에 살인범에 대한 예상을 무참하게 깨트리면서 그 사건이 단순한 일가족 살인사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대와 언론과 거짓말이 만들어낸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알려준다.

 

유일한 생존자 리비는 그날 밤 사건을 피하다가 손가락과 발가락을 몇 개 잃었다. 하지만 더 크게 잃은 것은 가족이다. 겨우 일곱 살인 그녀에게 큰 그늘이 사라지고 가십을 노린 언론과 이에 동조한 기부자들만 주위에 가득했다. 물론 이모도 있었고, 그녀의 기금을 관리하는 관리인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날의 기억 속에 매몰된 채 살아간다. 언론의 주기적 방송으로 얻게 된 기부금은 그녀가 일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더 많이 흐르고 세상은 새로운 끔찍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녀는 이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돈도 점점 떨어진다.

 

현재를 살아가는 그녀에게 점점 더 돈이 절실해진다. 이때 한 남자가 그녀가 오기만 하면 오백 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가 바로 라일이다. 그는 미스터리한 사건에 빠진 사람들의 모임에 총무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모임들은 단순히 한 사건만 다루지 않는다. 사건에 따라 다양한 모임이 있다. 라일이 속한 모임은 리비 일가족 살인 사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나름대로 자료를 조사하고 추론하면서 오빠 벤이 살인자가 아니라 아빠 러너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 미스터리 마니아들은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다. 하지만 돈이 절실한 리비에게 이들은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게 만드는 힘이 된다.

 

구성은 현재 리비의 생활이 한 축이고, 사건 전날 아침에서 그날 밤에 있었던 그 순간까지 엄마 패티와 벤의 시점이 한 축이다. 두 축을 움직이는 것은 역시 리비다. 리비가 오빠 벤을 처음 면회하고 정보를 하나씩 수집한다면 과거의 두 모자는 그날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시간 단위로 끊어서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이 과정에 수많은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혹시 범인이 누가 아닐까 하고. 하지만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반전으로 이어진다. 사실 이 반전이 놀랍지만 이 소설의 진정한 재미는 이 교차하는 시간 속에 한발씩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그 과정이다. 일곱 살 리비는 절대 몰랐을 과거를 하나씩 파헤치면서 이 거대한 어둠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든다. 동시에 긴장감도 같이 고조된다.

 

리비가 돈을 위해 진실을 찾아가듯이 과거 속 두 모자도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돈이다. 엄마는 부채에 시달리고 있고, 벤은 가난 때문에 남들에게 무시된다. 엄마의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에 벤을 둘러싼 아동 성추행 소문까지 퍼지면서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무력하고 술에 절어있었던 전 남편에게서 모두 네 남매를 낳은 그녀에게 너무 가혹한 삶의 시련이다. 삶의 수레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굴러가고 그 흐름 속에 한 개인은 너무나도 무기력하다. 그녀를 따라가면서 그날의 현실과 심리를 자세하게 묘사한 것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된다.

 

벤은 10대다. 겨우 열다섯 살이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도 그렇게 좋지 않다. 여기에 여자 친구 디온드라의 임신은 또 다른 고민이다. 늘 돈이 궁해 무료 급식을 먹고 어떻게 하면 돈을 모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반면에 여자 친구 디온드라는 돈을 팡팡 쓴다.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끌린다. 하루란 시간 속에 벤의 과거가 거의 모두 담겨 있다. 이 과거가 현재에 다시 살아날 때 그날 밤 살인 사건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진실이 드러난다. 진실과 거짓과 소문이 뒤섞이고, 목적을 위해 왜곡되고 유도된 살인사건의 진실이 말이다.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날 밤 사건에 대한 진실에 다가가는 그 과정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다. 흔히 하는 말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몇 가지 조건만 만들어진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 여파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살아남은 자는 어둠 속에서 평생 살아야 하고, 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 소설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이 진실을 찾게 만드는 것이 돈이란 점이다. 그 가족을 파멸로 몰아넣은 것이 돈인 것처럼. 또 사실과 거짓이 얼마나 가까운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로 흡입력이 재미가 <나를 찾아줘>보다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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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더스트 Diamond Dust 1 다이아몬드 더스트 Diamond Dust 1
강형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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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로 강한 흡입력을 보여준 강형규의 새로운 작품이다. 이야기가 지닌 힘이 상당한데 이번 작품도 그렇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만화에서 그런 것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기에 그렇다. 전작이 서열과 돈이라는 설정을 통해 우리가 그냥 무심코 본 사람과 장소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줬다. 그럼 이번 작품은 어떨까? 실제 1권만 본 지금 섣부른 예단은 무리다. 하지만 결말에 대한 반전을 지운다면 예상하는 대로의 전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니라고? 그럼 작가가 멋진 것이다.

 

두 남녀가 있다. 한 명은 아버지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교육된 문혜린이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이주원이다. 혜린은 천재성을 지닌 피아니스트다. 피아노 이외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연습을 해야 한다. 그 대가로 천재 피아니스트란 호칭을 얻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녀에게는 그 어떤 친구도 없다. 있다면 피아노다. 그녀는 그렇게 아버지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다음날 갈 장소를 다녀오다 차 사고로 죽는다. 누구나 연주하길 원하는 카네기 홀이고 그곳에서 딸이 연주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 보고 싶어하던 아버지가. 이 사고로 그녀 마음 한 곳에 여유가 생기지만 손은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 피아니스트의 생명이 끝났다. 그 여파로 그녀는 손목에 칼을 댄다. 그녀와 주원이 만나는 첫 장면이 바로 이때 일어난다.

 

홍대 인디 밴드 당나귀벤자민 세컨 기타겸 보컬인 이주원. 그에게 세상은 뿌옇다. 뇌에 종양이 있어 그의 기억을 갉아 먹는다. 수술을 해야 하지만 가난한 인디 밴드 멤버인 그에게 돈이 있을 리 없다. 하루하루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그다. 점점 그의 머리를 뿌옇게 만드는 뇌종양은 삶의 의지마저 갉아 먹는다. 이주원의 삶을 통해 우리 시대 20대들의 삶이 조금 드러난다. 하루를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딱 그 이상의 돈이 모이지 않는 88만원 세대. 그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그것을 알리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 남은 앰프를 팔기 전 혜린이 입원한 병원에서 마지막 연주를 한다. 엇갈린 길을 달려온 두 남녀가 이제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한다.

 

혜린에게 주원은 굳어있던 손가락을 움직이게 만드는 존재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그녀에게 희망의 빛이 다가온 것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하지만 돈의 굴레 때문에 죽음을 그냥 기다려야 하는 그에게 혜린이 다가온다. 도와주겠다고 한다. 분명 두 사람 모두에게 이익인 결합이다. 새장 속에서만 살아온 그녀에게 주원의 말과 행동은 별세계와 다름없다.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려는데 1권이 끝난다. 앞에서 말한 예정된 진행을 과연 작가는 어떤 식으로 연출하면서 이 둘을 엮을 지 기대된다. 아니면 다른 반전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최종평가는 마지막 권을 읽은 다음으로 미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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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
박하와 우주 지음 / 예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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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의 사형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장면을 간단하게 보여준 후 이 살인범을 잡은 검사의 짧은 단상으로 이어진다. 이 단상을 보았을 때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갈 인물로 남기호 검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연쇄살인범을 쫓는 검사에서 피해자 가족으로 변한다. 이들은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원장 장준호 박사에 의해 한적한 센터에서 외상후증후군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사실 이 부분이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앞에 등장한 인물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인물 도아가 화자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검사와 형사 하드보일드에서 한정된 공간 속 스릴러로 변한다.

 

이 소설의 중심에 놓인 것은 범죄피해자들이다. 모두 10명이다. 이들의 가족들은 살인사건으로 죽었다. 혹은 어릴 때 살인한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은 그들의 삶을 힘들게 한다. 이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한적한 센터에 모인 것이다. 약간 밋밋한 전개가 이어질 수 있는 순간 하나의 소포가 도착한다. 폭발한다. 이상한 가루가 날아다닌다. 이 가루는 사형당한 연쇄살인범의 재다. 살인범의 아버지가 보낸 것이다. 소심한 복수일까? 아니다. 여기서 이야기는 다시 변한다. 연쇄살인범이 조디악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정보가 제공된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누구나 연쇄살인범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조디악 바이러스. 실제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작가의 창작물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구성하는 중요한 소재다. 연쇄살인범들에게서 발견되는 바이러스다. 이 정보는 센터를 폐쇄된 공간으로 만든다. 백신이 있지만 사전에 맞아야 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후는 심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들이 만들어졌다. 한정되고 폐쇄된 공간 속에 누구나 조디악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연쇄살인범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첫 살인에 대해서는 범인이 누군지 알려주지만 다음 살인부터는 미스터리로 남겨놓았다. 범인은 누굴까? 머릿속에 설마 하는 느낌이 지나간다.

 

신문기자 출신 도아를 중요 인물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적 능력이 있는 수애가 불길한 상황을 미리 본다. 이 피해자 가족 중 가장 이성적인 인물들이다. 도아는 살인범에게 아내가 죽게 되었고, 수애는 방화사건으로 아이를 잃었다. 이런 과거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다. 이 과거가 하나씩 밝혀지는 과정에 한 명씩 죽게 된다. 죽음은 조디악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의 살인방식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가여운 피해자 가족들이 어떤 알 수 없는 살인자에 의해 죽게 된다. 센터 속 누군가가 범인이다. 그런데 사건이 진행되면서 뭔가 이야기 속에서 파탄이 난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착각일까?

 

사람을 가둬두기 위한 장치로서의 센터는 훌륭한 역할을 한다. 피해자 가족들이 느끼는 아픔과 상실감과 혼란과 두려움 등은 이어지는 연쇄살인과 상관없이 우리가 너무 쉽게 잊게 되는 피해자 가족들의 감정을 알려준다. 이보다 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런데 그들이 다시 피해자가 된다. 누군가가 상황을 왜곡하고 피해자 가족들의 감정을 건드리고 공포감을 고조시킨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조디악 바이러스 때문일까?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이 의문보다 그들이 최후에 부딪히게 되는 장면에 눈길이 간다. 무엇을 의미할까?

 

마지막으로 다가가면서 범인에 대한 윤곽이 잡혔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절대 바라지 않은 것이다. 다행 중 하나라면 모든 것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 정도랄까. 반전을 위한 장치를 이해하지만 그 장치에 맞춰진 설정과 소재는 아쉽다. 이야기를 풀어가고 속도감을 높여가는 필력은 상당하다. 그렇지만 캐릭터를 만들고 관계를 긴밀하게 연결하고 아!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능력은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다. 나만 그런 것일까? 간결한 문장과 세부적인 묘사 등을 볼 때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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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울음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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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작가로 먼저 알게 된 작가의 작품이다. 귀여운 고양이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생각할 때 제목과 상관없이 미스터리가 아닐까 하고 멋대로 상상해봤다. 그런데 아니다. 삶과 죽음을 다룬다는 점에서 미스터리와 닮은 부분이 있지만 상당히 묵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작소설이지만 고양이가 중심에 놓인 단편이 있는 반면에 시간이 상당히 떨어져 있어 어떤 공통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몽이란 고양이가 이 3부의 이야기를 이어주지만 말이다. 각 단편을 독립적으로 읽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전편에서 가진 의문들이 다음 이야기에서 풀린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하나로 이어져 있다.

 

제1부 <새끼 고양이>는 몽이란 이름을 가진 새끼 고양이가 어떻게 집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흔히 보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혹은 불쌍하게 생각한 주인이 주워 키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침을 당한 고양이가 다시 집을 찾아오고, 다시 내치는 과정을 통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노부에의 감정을 풀어낸다. 노부에가 가지고 있는 힘들고 어렵고 어두운 감정은 아기 유산에서 비롯한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지도 추스르지도 못하는 노부에가 몽이란 고양이를 통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힘겹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할 때 그냥 살아가고 잊고 있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제2부 <절망이라는 블랙홀>은 5년 전 엄마가 도망간 유키오 이야기다. 아버지와 살고 있지만 화목이나 단란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먼 집안 풍경이다. 아이에게 맛있는 밥을 제대로 지어준 적도 없고 매일 편의점 음식으로 저녁을 떼운다. 점심은 800엔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침울해하고 절망하게 된다. 뒤틀린 감정은 결국 엄마와 함께 있는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향한다.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에서 키우게 되는 고양이는 유키오의 감정을 순화시켜준다. 그리고 유키오가 큰 실수를 저지를 뻔 했던 사건 이후에 경찰서에서 아버지가 보여준 반응은 유키오의 시선을 통해 드러난 풍경과 다른 모습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간격이 단숨에 좁혀질 정도는 아니지만 공감대와 이해의 시간을 가진다.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어린 시절 절망의 깊이를 이 단편을 통해 들여다본다. 나에게도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지만.

 

제3부 <멋진 이별>은 노부에의 남편 도지가 20살이 된 몽과의 이별을 다룬다. 고양이 20살은 인간 100세와 비슷할 정도다. 도도하고 난폭하고 마초적인 고양이였던 몽이 점점 힘을 잃고 집에만 머물게 되고 결국 죽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을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체한다면 죽음을 준비하는 우리의 모습이 될 것이다. 점점 쇠약해지는 몽을 통해 간호하는 도지의 모습은 변한다. 최선이 무엇인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내가 죽은 후 몽과 함께 살면서 조그만 위안을 얻었던 그가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죽음이 아닌 삶이다. 죽음은 삶이 다하는 곳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몽이 자신을 지키면서 살다 죽을 수 있게 도와주는 도지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공원에서 만나게 되는 고양이들을 그냥 무심코 바라보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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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굿맨
A. J. 카진스키 지음, 허지은 옮김 / 모노클(Monocle)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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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경전 <탈무드>에 나오는 36명의 굿맨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이와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쓴 소설이 있었다. <36인의 아틀라스>다. 개인적인 평을 내린다면 둘 다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 하지만 한 작품을 고르라고 하면 <36인의 아틀라스>다. 이 평가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것이다. <라스트 굿맨>의 후반부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단순히 몰입도와 속도감만 놓고 보면 더 좋은데도 말이다.

 

36명의 굿맨이 사라지면 종말이 온다는 주장에 결코 동의하지 못한다. 고대 유대민족에서 36명의 굿맨을 찾는 것이 어려웠을지 모르지만 현대는 개인적으로 100배 정도 더 많다고 본다. 이야기의 소재로 이것을 이용한 것은 좋은데 여기에 머물러 버리면 미스터리 장르가 판타지로 바뀌게 된다. 내가 이 소설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을 가지게 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물론 이 굿맨들의 역할을 좀더 거창하게 만들었다면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이 너무 약하게 느껴진다.

 

좋은 사람. 굿맨. 이들은 흔하지는 않지만 조금만 찾아보면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많다. 물론 가짜들도 많을 것이다. 닐스가 베니스 형사 토마소의 연락을 받고 마지막 남은 두 사람의 굿맨을 찾으려고 할 때 이것은 잘 드러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혹은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 실제는 평범하거나 권위적인 인물이란 사실을.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 아니길 바랐다. 그런데 바로 그가 마지막 굿맨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속도감은 대단했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시간 단위 장면으로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여놓았기 때문이다.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은 닐스다. 그는 총을 싫어하고 여행공포증이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벗어나면 공포를 느낀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공간이 확장되지만 국경을 벗어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병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책을 통해 배운다는 것을 알게 하는 장치다. 그의 직업은 경찰이다. 임무는 교섭인. 그는 강제적인 방법을 싫어하고 배운 것과 경험을 통해 상황을 잘 풀어간다. 누구나 가는 미국 FBI 연수도 여행공포증 때문에 가지 못했지만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다. 도입부에 그가 인질범과 대화하는 장면은 약간 도식적인 부분이 있지만 그의 능력을 충분히 알려준다.

 

각 나라에서 의문의 죽음이 이어진다. 한 가지 공통점은 등에 문신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일련의 규칙을 파악한 인물이 있다. 베니스 형사 토마스다. 그런데 그의 역할이 미미하다. 닐스와의 공조를 통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것 같았는데 다른 사람이 파트너로 등장한다. 천재 천체물리학자인 한나다. 굿맨을 찾기 위한 과정에 그녀를 만났다. 이후 그녀는 다른 굿맨들의 죽음에 대한 규칙을 발견한다. 여기에 도입된 것 중 하나가 대륙이동설이다. 약간 진부한 부분이 있지만 규칙성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제는 굿맨을 살인자로부터 지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굿맨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재미와 속도감은 올라간다.

 

유대 경전에 나온 이야기가 현실로 이어질 때, 그 규칙성을 알게 될 때 사람들은 믿고 싶어지는 마음이 더 강해진다. 이 감정은 어느 순간 공포로 이어진다. 종말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다르겠지만. 하지만 굿맨이라면 어떨까? 이 소설의 후반부는 바로 이 부분을 말한다. 그들이 느끼는 공포가 그들을 사로잡았을 때 이성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튄다.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변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본성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강력한 힘이 작용할 때는 더욱더.

 

나쁘지 않은 소재에 속도감 있는 구성과 재미는 충분히 시선을 끈다. 하지만 기본 설정이 뒤로 가면서 힘을 빼게 만든다. 물론 이 자체가 하나의 장르이자 재미를 줄 수도 있다. 최소한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1부 사자의 서에서 인간적인 마무리로 이어졌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닐스와 한나 콤비도 조금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콤비가 나오는 소설이 출간된다면 손은 자연스레 나갈 것 같다. 왜냐고? 이 둘의 관계나 한나의 놀라운 추리력을 또 보고 싶기 때문이다. 닐스의 여행공포증에 대한 후기도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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