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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일기Z ㅣ 밀리언셀러 클럽 132
마넬 로우레이로 지음, 김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평점 :
얼마 전 <좀비 그리고 생존자들의 섬>이란 한국 좀비 소설을 읽었다. 왜 다른 소설부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것은 이 소설도 갑자기 좀비로 변한 한국을 배경으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소설은 비슷한 시작이지만 중반부터 다른 길을 간다. 한국 좀비가 소품으로 축소되어 아기자기한 재미와 약간 황당한 결말로 끝난다면 이 소설은 규모가 훨씬 거대하다. 시리즈 중 첫 권임에도 생존을 위해 이동하고, 그 과정에 악당을 만나고 처절한 투쟁이 나온다.
한국 좀비 소설이 지형적 특성 때문인지 좀비 속에서 살아남기라면 스페인 좀비 소설은 생존자들을 찾아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가 적극적으로 펼쳐진다. 이 적극성이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어내고 전체적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단편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그 과정에 인간들이 좀비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세운 하늘 도시가 왜, 어떻게 무너졌는지 보여줄 때 세상이 좀비로 가득하게 된 이유를 조금은 납득하게 된다. 사실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 부분이 대부분 생략되었는데 조금은 반가웠다.
이야기 진행 방식은 제목처럼 일기다. 아직 세상에 전기가 남아 있을 때는 블로그를 통해 글을 남겼지만 좀비 세상이 된 후는 손으로 일기를 적는다. 이런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은 아마 자신의 블로그에 먼저 연재했던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처럼 세상이 인터넷이란 정보망을 통해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가장 납득할 만한 설정이 아닐까. 사실에서 시작한 정보가 정보 통제로 가려지고, 가려진 정보가 목격자들의 블로그 등을 통해 조금씩 밖으로 나오는 설정은 현실 세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문명이 제대로 작동할 때까지만 그렇다. 이것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편리함이 사라졌을 때 우리가 느끼게 되는 불편함보다 두려움을 더 강하게 표현해준다.
초반에 주인공은 의도하지 않은 몇 가지 생존도구를 준비한다. 하지만 이 도구들도 영화 속처럼 완벽하게 작동하지 못한다. 이미 한국 좀비 소설에서 우리가 먹는 음식의 유통기한을 잘 나타내주었듯이 고립된 공간에서 계속 살아남기는 정말 힘들다. 그렇다고 소리에 민감한 좀비들 뚫고 다른 생존자를 찾아가기는 더욱 힘들다. 인간의 심리가 안정지향적인 경우가 많은데 주인공 또한 그렇다. 그가 움직인 것은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식량문제도 아주 중요하다. 더 이상 자가발전을 할 수 없어 냉동 냉장 보관할 수 없다면 소설 속 다른 사람들처럼 자살 외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 소설의 중간 중간에 나오는 자살자들의 모습은 그 상황에 대한 절망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준다.
일기로 표현 방식이 변하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집을 떠난 그가 택한 것은 보트다. 바다로 나가 섬으로 간다면 안전한 지대가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이 기대는 첫 여행지에서 사라진다. 좀비에 대한 정확한 정보 부재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정보 통제가 문제를 더 키운 것이다. 여기에 좀비로 변한 가족과 친구들에게 인간성을 기대한 순간 파멸은 더욱 빨라진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좀비는 현대 과학 기술로 쉽게 대응할 수 없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만든 공간에 사람들이 급속하게 몰리면서 생기는 부작용을 설명한 부분에서 현대 문명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식량과 생활환경 문제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설명을 읽으면서 고개를 많이 끄덕였다.
좀비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인간은 곳곳에 존재한다. 절망감을 못 이겨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조그만 실수로 좀비로 변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구속하고 협박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중반 이후 이야기는 바로 악당에 의해 다시 좀비 세상으로 들어가서 겪게 되는 대모험과 처절한 싸움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갈 수 있는 무기가 한정적인 상황에서 정확하게 머리를 쏘아야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좀비와 직접 싸우는 것은 바로 죽기 위한 것이다. 조용히 움직이지만 어디나 있는 좀비는 그렇게 쉽게 공간을 내주지 않는다. 총소리는 다른 좀비를 부르고 이 상황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많은 좀비 영화나 소설이 있지만 이번에 읽으면서 느낀 것이 몇 가지 있다. 좀비 세상으로 변하면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다. 하나는 전기를 만들 수 있는 태양발전기고, 다른 하나는 아주 두꺼운 잠수복이다. 특히 외부로 나갈 때 이 잠수복은 필수 아이템이다. 주인공이 좀비의 이빨로부터 목숨을 구한 것이 몇 번인가. 능력이 된다면 큰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좀비가 당장 덤빌 수 없기 때문이다. 낚시에 소질이 있다면 바다에서 꽤 많은 식량을 구할 수 있다. 식수나 다른 식량은 어쩔 수 없이 상륙해서 구해야 하겠지만.
시리즈 3부작 중 첫 권이다. 아직 그가 겪어야 고난과 처참한 현실은 아직 많이 남았다. 그만큼 독자들의 즐거움도 많이 남았다. 여기에 그가 생각하고 보여줄 좀비세상은 기존 것들과 어떻게 다를 것인지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가 수십 세기를 거쳐 만들어낸 과학 문명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알려줄 것 같다. 물론 대반격이 있다면 바로 그 과학에서 시작하겠지만. 혼자만의 생존이 아닌 동료가 생긴 그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 끝까지 살아남을지 궁금하다. 다음 일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