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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의 악마
모 헤이더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버드맨> 이후 처음으로 번역된 작가의 소설이다. 이미 영미권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 적은 번역이다. 아마도 남경대학살을 소재로 하지 않았다면 번역되지 않았을 것 같다. 아닌가? 굉장히 자극적일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작가는 노골적인 묘사를 상당히 많이 생략했다. 어떻게 보면 기대치에 조금 못 미친다. 남경대학살의 풍경이 소설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곳의 생존자이자 그 시기를 경험한 스충밍과 그 학살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영국 여자 그레이의 사실 집착이 더 강하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남경대학살은 역사적 진실이다. 하지만 일본은 거부하고 있다. 너무 잔혹한 이야기지만 그들은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어찌 남경대학살 뿐이겠는가. 종군위안부 문제도 역시 그들은 부인하고 있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도 역시 마찬가지다. 일제의 만행과 잔혹함 중 상당 부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거나 묻힌 것들이 많다. 그 유명한 731부대도 그 실체가 완전히 벗겨지지 않고 있다. 나치의 대학살이 낱낱이 밝혀지고 진심으로 사죄한 것과 정말 대조된다. 이런 현실에서 이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것과 관계없이 상당히 의미 있다. 장르 속에 그 이야기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가 교차한다. 현재는 영국 학생 그레이가, 과거는 남경대학살 당시 남경에 살았고 지금은 동경에 거주하는 대학교수 스충민의 일기가 중심이다. 그레이는 아픈 기억이 있다. 이 기억과 남경대학살에 대한 사실 집착이 스충민을 찾아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이 역사적 사실을 지우고 왜곡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한 일본에서 쉽게 자료를 받을 수 없다. 스충민은 거부하고 그레이는 계속 요청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돈이 바닥난다. 이때 한 남자가 그녀를 클럽으로 유혹한다. 자신이 바라는 정보를 확인하려는 욕망이 너무 강한 그녀는 동경에 머물고 클럽에서 돈을 번다. 이 체류 속에 무시무시한 사실이 숨겨져 있다.
대학살이 일어나기 전 스충민은 그곳을 떠날 기회가 있었다. 장개석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그는 그 기회를 놓친다. 역사를 알고 있는 지금 그 선택은 너무 미련해 보인다. 그 대가는 너무 무시무시하다. 일본군이 진격한 후 직접 스충민이 본 것은 사실 그렇게 직접적이고 충격적인 장면들이 아니다. 학살이 있지만 다른 곳에서 묘사된 수위를 생각하면 조금 부족하다. 하지만 그 시기에 생존을 위해 살았던 그가 경험했던 것들이 연쇄적인 상상으로 이어지면서 엄청난 장면을 연상하게 만든다. 특히 냄새에 대한 착각은 끔찍하다.
스충민은 남경대학상 필름에 대한 보답으로 그레이에게 뭔가를 받기 원한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것의 정체를 말하지 않는다. 그레이는 그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찾고자 한다. 이 상황을 만들게 된 것은 그녀가 일하는 클럽에 야쿠자 두목 후유키가 오면서부터다. 그는 가끔 이 클럽의 호스티스들을 자신의 집 파티에 초대한다. 이 초대가 뭔가를 훔칠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필름에 대한 집착으로 삶이 정체된 그녀에게 이것은 엄청난 유혹이자 기회다. 그렇지만 야쿠자 집의 보안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여기에 오가와 간호사가 만들어내는 공포도 상당하다. 교수가 원하는 물건에 대해 떠도는 소문만으로 짐작하게 되지만 그 실체를 알지 못하니 훔칠 수가 없다. 독자의 상상력이 마구 발휘되는 순간이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과정에 긴장감은 점점 더 고조된다. 이 긴장감은 그레이와 스충민이 쫓기는 과정에 더 높아진다. 두 사람의 죽음이 예상되지 않지만 앞으로 밝혀질 사실이 줄 충격 때문이다.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두 부류가 등장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잔혹함에는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 살의만 가득하다. 이 때문에 더 무섭다. 그리고 마주하는 진실은 조금 약했다. 더 심한 장면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스충민과 그레이의 집착과 상처가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상승해야 하는 고통과 아픔과 공포등이 순간 사라진 것이다. 그 동안 그들의 감정에 깊이 몰입하지 못한 모양이다.
작가는 무지를 말한다. 스충민도 그레이도 무지했다. 그들이 겪은 고통은 무지에서 비롯했다. 이 무지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일까? 이것은 다시 일본의 역사 왜곡으로 이어진다. 일본 사람들은 왜곡되고 감춰진 역사에 무지하다. 그들이 저지른 만행에 무지하다. 그럼 용서받을 수 있을까. 무지와 실수를 연결한 대목을 읽을 때 그 무지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알려고 노력했는지도. 소설 속 화자 두 사람은 그 무지로 인해 충분히 고통받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은 어떤 노력을 했는가? 그들이 거부한 잔혹한 역사의 진실은 몰랐다는 말로 결코 덮을 수 없는 것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완전히 치료받기 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