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날
유현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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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느와르 풍 소설이다. 솔직히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우리 안의 다른 사람들이라는 조선족과 조선족 사회를 다루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사회는 아직 너무나도 낯설다. 이 낯설음은 단편적인 면만 보여주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나 신문 기사 등을 통해 그 사회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 소설은 그 사회를 정면에서 보여줄까?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정착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식당 아줌마를 포함해서 말이다. 극적 장치를 위한 과장이 곳곳에 보이지만 그 바닥에 깔려 있는 사실이나 분위기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소설 굉장히 흡입력이 있다.

 

시작은 20년 전 회상에서 한 모자가 산을 걷는다. 이들의 대화를 보니 남한 사람이 아니다. 북한 사람이란 느낌이 먼저 드는데 놀랍게도 그들이 걷고 있던 곳은 한국의 어느 곳이다. 바로 이때가 첫 번째 날이 있었던 순간이다. 그리고 바로 한 남자의 불안한 일상이 나온다. 불법입국한 조선족 정문환이다. 용정 건달이었던 그가 어떻게 한국까지 오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알려준다. 불법체류자인 그는 출입국관리소 직원이나 형사들을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발견되면 강제 귀국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에서 돈을 벌어 아들에게 보내야 하는 그에게 이것은 무조건 피해야 할 일이다. 이때 북경에서 그와 문제가 있던 조폭이 나타난다. 그들에게 잡힌 그에게 살인을 청부한다. 그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조성우 기자는 아내가 작가다. 조 기자는 HM캐피탈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친구를 찾아갔다. 이 회사의 사장은 제임스 리라는 조선족이다. 그런데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한다. 아내는 소설을 몇 권 썼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논픽션이다. 한국의 조선족 사회를 다루는 과정에 HM캐피탈이 나왔다. 그리고 그녀를 스토킹하는 사람이 있다. 스토킹의 내용은 글을 쓰라는 것이다. 이 압박이 오히려 글쓰기를 방해한다. 이런 상황인데 조 기자가 집에 가니 아내와 아들이 시체로 변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내면은 황폐해지고 삶은 엉망진창이 된다. 이제 범인을 찾아 복수하려는 그의 의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제임스 리는 20년 전 회고에 나왔던 소년의 현재 모습이다. 그는 금융으로 조선족 사회를 휘어잡고 있던 고려행정사의 박 령감을 수족처럼 부린다. 이 둘은 공생관계다. 제임스 리는 박 령감의 잠자고 있던 욕망을 일깨워 그를 이용한다. 령감의 욕망은 강남 진출이다. 제임스 리는 더 큰 것을 바란다. 처음에는 그 윤곽이 보이지 않는데 과거 사건을 통해 그 그림이 드러난다. 사실 이 사건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시스템 불안정이 가져온 당연한 수순이다. 20년 전 과거의 진실이 드러날 때 지역 유지들의 부패와 숨겨진 잔혹성이 드러난다. 우리 사회의 감춰져 있던 단면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은 다양한 욕망을 표출한다. 이 욕망이 충돌하고, 살인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인간관계보다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다. 속고 속이고, 계획하고 기획하면서 일을 꾸민다. 하지만 이들은 더 큰 세력 앞에 너무 무력하다. 권력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반격을 노린다. 쉬울 리가 없다.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충돌이 일어난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문제로 어느 순간 바뀐다. 정보도 권력 앞에 그 힘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한다. 아직까지는. 작가는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 과정과 결말에 드러나는 사연들은 결코 통쾌하지 않다. 승자의 활기가 사라지고 슬픈 사연들만 그 자리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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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짓하다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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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김성호가 주인공이다. 이 프로파일러의 정체가 좀 묘하다. 처음 읽을 때는 평범한 프로파일러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이야기의 초점이 처음과 달라진다. 현재와 과거의 사건이 교차하고 겹쳐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하지만 이 과정으로 가는데 너무 많은 단서를 흘려놓았다. 범인들이 너무 쉽게 밝혀진다. 만약 범인 찾기만 있었다면 이 소설은 실패다. 이것을 상쇄하는 설정과 엔딩이 있기에 지금 이 소설보다 다음 이야기가 더 기다려진다.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지, 다음 이야기는 언제 나올지 기대한다.

 

일베를 모티브로 한 듯한 주간파 사이트에 한 성형여성을 비하하고 모욕주고 살해하자는 글이 올라왔다. 몇 사람이 동조하고 모이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 모인 사람은 처음 그 글을 올린 중학생 준희뿐이다. 온라인 상에서만 용감했던 사람들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날 밤 하나리가 죽었다. 가장 강력한 용의자로 준희가 지목되었다. 범죄행동과학계 프로파일러인 성호가 준희를 상대로 심리분석을 위해 지원나왔다. 정황이나 심리 상태 등을 보았을 때 이 소년이 범인일 확률이 매우 낮다. 담당 형사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준희가 자살을 시도한다. 이 사건이 발생한 후 인터넷에 김성호의 신상털기가 진행된다. 그는 다른 사건에 배정된다. 삼보섬의 실종 사건이다.

 

삼보섬에서 세 명의 여성이 실종되었다. 가족들은 가출로 생각하기도 했는데 방송에서 이것을 보도하면서 사건이 유명해졌다. 삼보섬의 강대수 형사가 서울에 지원을 요청했다. 현장과 증거 자료 등으로 범인상을 프로파일링해달라는 것이다. KTX를 타고 가려고 하는데 동행이 한 명 있다. 여도윤이다. 용의자가 보낸 듯한 필적 감정 자료를 삼보섬 강대수 형사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 둘은 함께 경찰서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가 껄끄럽다. 하나의 사건을 위해 같이 움직이는데 따로 논다. 여도윤의 썰렁한 농담에 반응 한 번 보여주지 않는다. 처음에 뭔가 새로운 콤비의 탄생인가 하는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나리 살인 사건을 풀어내는데 실패한 김성호 경사. 새롭게 도착한 삼보섬에서 현장을 돌고 용의자나 친인들을 만나면서 프로파일링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초동수사에 문제가 있다. 납치 실종이 아닌 가출로 판단하면서 생긴 기초적인 문제다. 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성호가 화를 낸다. 살짝 순간적으로 알력이 생긴다. 하지만 삼보섬 형사들의 신속한 대처와 조사로 범인상을 추리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약간 도식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다른 소설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 모양이다.

 

삼보섬에서 실종 여성들을 수사하는 도중에 과거의 기억 단편들이 떠오른다.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바로 여기서 일어난다. 어릴 때 다쳐 사라진 기억의 단편들이 되살아나면서 이것이 과연 이 삼보섬 사건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삼보섬의 어떤 밤에 수상한 두 남자가 만나 이상한 대화를 한다. 분명히 사라진 여성들에 대한 것이다. 자랑과 충동이 교차하는 대화다. 이때 비교적 쉽게 한 명의 범인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단숨에 깨닫게 하지는 못한다. 진실은 기억 속에 왜곡된 채로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가독성이 좋다. 단숨에 읽었다. 하지만 감탄을 자아낼 설정이나 구성이 아니다. 만약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프로파일러 성호의 삶이 어떤 과정을 통해 시리즈로 발전하게 될까 하는 기대다. 이 소설에서 가장 비극적이면서 파격적인 인물이 바로 성호이기 때문이다. 기억이 돌아오는 과정에 보여준 그의 다른 모습과 숨겨진 이야기는 처음에 준희와 대화하고 그 아이를 변호하던 그가 아니다. 이 파탄을 작가는 곳곳에서 드러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너무 많다. 조금 줄였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넘겨본 곳에서는 작가가 참 많은 단서를 넣어두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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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 스토리 살롱 Story Salon 1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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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을 참 재미있게 읽었다. 영화도 재밌게 봤다. 집사람에게 책을 빌려주었더니 영화도 보자고 했다. 그래서 같이 봤다. 내가 먼저 읽은 책을 빌려줘 좋아한 책이 몇 권 되지 않는다. 그 중 한 권이 바로 <카모메 식당>이었다. 사실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심심하다. 사건도 사고도 거의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빨려 들어간다. 빈 여백으로 남은 공간들이 묘하게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한 편의 동양화 같은 소설이었다. 영화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본 느낌과 조금은 닮아 있다고 하면 과장된 것일까? 이런 기억을 가진 작가의 신작 장편이 나왔으니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몇 평의 공간이 필요할까? 솔직히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욕심이 많아지고 가지고 사는 물건이 많아짐에 따라 공간 부족을 점점 더 많이 느낀다. 나의 삶도 공간도 그렇다. 방 한 칸에서 시작한 것이 어느 순간 방 두 개도 부족해지게 되었다. 물욕이 늘어남에 따라 마음의 여유는 더 사라졌다. 물론 이 소설이 이런 것을 소재로 쓴 것은 아니다. 마흔다섯에 대형 광고 회사를 그만 두고 월 10만 엔의 검소한 생활을 계획한 교코의 일상과 도전을 담았다. 이런 생활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엄마의 간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낡았지만 내부는 깨끗한 세 평 방을 가진 연꽃 빌라에 오게 된 사연이다.

 

앞부분에 그녀의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간결하게 설명된다. 자신의 삶보다 남을 의식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자신들의 소득보다 비싼 집을 샀고, 남편은 그 빚을 갚기 위해 일만 했다. 엄마의 욕심은 끝나지 않는다. 자식에게도 당연히 투영된다. 집에서는 엄마의 간섭이, 회사에서는 접대라는 문화와 여직원들의 질투와 질시 등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녀의 삶은 거품 경제의 화려함도 누려봤지만 그 내면은 점차 황폐해져갔다. 그래서 계획한 것이 월 10만 엔 생활자다. 물론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한 번도 집을 떠난 적이 없는 그녀가 독립을 결심하고 나왔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연꽃 빌라에 오게 된 것도 3만 엔이라는 저렴한 월세 때문이다.

 

연꽃 빌라에는 모두 4명이 산다. 교코, 구마가이 씨, 고나쓰 씨, 사이토 군 등이다. 이들은 서로 겹쳐지지 않는다. 다만 구마기이 씨와 교코가 종종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식사도 같이 한다. 고나쓰 씨나 사이토 군은 인사 정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모두 함께 모인 적은 한 번도 없다. 소개나 이런 저런 일로 3명이 함께 한 것이 최고다. 각자의 삶을 그냥 살아갈 뿐이다. 어떤 간섭도 하지 않는다. 한 번은 폭력식당이라는 곳에서 일하는 사이토 군이 엄청난 폭력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분개한 적이 있지만 실제 개입하지는 않았다. 구마가이 씨 말처럼 아는 척하는 것이 사이토 군에게 더 힘든지도 모른다.

 

쳇바퀴 같은 회사 일에 익숙해진 몸은 여유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퇴직한 후 며칠 동안 교코가 보여준 행동과 심리 묘사에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직장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벗겨내기 위해 그녀는 집주변을 탐방한다.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본다. 구마가이 씨 소개로 좋은 커피숍도 발견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영 익숙하지 않다. 불안감도 살짝 든다. 이것을 친구에게 이야기해보지만 명확한 답이 없다. 그러다 주소를 보고 엄마가 찾아온다. 남의 시선을 먼저 생각하는 엄마는 딸이 사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딸의 삶이 아닌 자신이 남에게 보이는 삶을 먼저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지막에 조카가 와서 고모의 방을 본 후 보여준 반응과 정반대의 것이다.

 

작고 깨끗하고 나무와 풀이 있는 빌라지만 오래 전에 지은 집이다. 여름이면 모기, 장마철에는 습기, 겨울에는 추위와 싸워야 한다. 이 과정을 작가는 사실적으로 적어간다. 편안하고 깨끗한 집에서 살던 사람이 자연 바로 옆에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 점점 짧아지는 봄과 가을은 생활을 더 힘들게 한다. 모기와 습기는 그렇다고 하지만 추위를 벗어나기 위해 공공도서관이나 다른 곳을 가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안팎의 온도가 같은 추위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이런 그녀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면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교코의 삶을 읽다보면 부러움이 먼저 생긴다. 버릴 수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소박한 일상이 주는 힘겨움도 있지만 자신의 삶에 긍정하고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자신의 기쁨도 늘어난다. 사실 그녀가 집을 떠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남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오빠가 보여준 반응은 냉철하고 이성적이다. 개인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동생의 삶을 인정해준다. 그녀의 엄마가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반응이다. 그래서 엄마와 만나는 것이 불편하다. 엄마는 자신을 위해 딸이 장기 해외 출장을 갔다는 거짓말도 한다.

 

내가 백수로 생활할 때 우리 부모도 그렇게 강하게 직장을 구하라고 몰아붙이지 않았다. 그래서 고맙다. 어쩌면 불안했을지 모르지만 믿는다는 느낌을 준 것이다. 나의 삶이 그렇게 경쾌하지도 않았고 나이도 적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런 경험을 해봤기 때문일까? 그녀의 삶에 좀더 공감한다. 어쩌면 그녀가 거품경제를 포함하여 사치를 충분히 누렸기에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이것은 구마가이 씨의 삶 이야기에서도 반복되는 부분이다. 이제 그녀의 독립이 겨우 1년 지났다. 그 후 어떤 삶을 살지 알 수 없지만 한두 번 더 적응기를 거치면 점점 더 좋은 연꽃 빌라 주민으로 거듭 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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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은밀한 업무일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8
도쿠나가 케이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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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에다 아야카. 스물다섯 살. 그녀는 낯에는 택배회사 콜센터 직원으로, 밤에는 만화가 지망생으로 열심히 만화를 그린다. 이것이 이중생활의 실체다. 그럼 생활밀착형 스파이는 누굴까?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아야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새롭게 나타난 센터장 기무라 이치로다. 이 둘의 은밀한 업무일지라고 하지만 둘이 어떤 특별한 업무일지를 써지는 않는다. 단지 자신들의 다른 생활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아야카는 만화지망생이란 사실을, 기무라는 스파이라는 사실을. 그렇다고 이것이 큰 문제나 사건을 불러오지 않는다. 단지 일상의 소소한 비밀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기무라 센터장은 좀 다르다.

 

작가의 실제 경험이 녹아 있는 소설이다. 택배회사 콜센터가 주무대이다보니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들이 자주 나온다. 고객들의 클레임이나 무례한 폭언도 심심하지 않게 나온다. 콜센터 직원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은 맡아 처리하는 직원도 있다. 새롭게 부임한 센터장 기무라가 어떤 아줌마의 과격한 클레임을 해결했을 때 이 남자 능력이 뛰어나다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효율성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이 조금은 밋밋한 소설에 자그만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그리고 이 둘의 첫 만남과 그때 벌어진 사건이 예상한 결과지만 끝까지 호기심을 품게 만든다.

 

아야카가 그리는 만화는 순정만화다. 그것도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순정만화. 이 업계도 나름의 공력이 필요한 모양이다. 한 번 성공하면 어떤 작가의 경우 십 수 년 동안 이 만화만 그리기도 한다. 작가가 꼭 여자일 필요도 없다. 편집자도 마찬가지다. 아야카가 기무라 센터장에게 영감을 얻어 그린 만화를 투고하려고 했을 때 만난 편집자들을 보면 그렇다. 전문가의 냄새가 나는데 그들의 평을 읽다보면 너무 도식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장르문학의 한 아마추어 작가가 쓴 출판사의 요청이 떠올라서 그렇다. 그렇다고 신인에게 완전히 새로운 형식을 주는 것도 쉽지 않다. 가끔 이것이 대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는 아주 드문 일이다.

 

아야카와 한 중년남자의 충돌. 그리고 떨어진 만화 원고. 이것이 새로운 센터장과의 첫 만남이자 사건의 시발점이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야카는 늘 불안에 떤다. 결코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센터 마당발 다치바나 여사가 한 가지 일을 의뢰한다. 신임 센터장의 정보를 더 캐고 싶다는 것이다. 본사에서도 그 정보를 입수할 수 없다면서 아야카와 동료 히로미에게 일을 의뢰한 것이다. 이 둘은 의뢰비를 받고 기무라 센터장을 미행한다. 그런데 이 미행 이상하다. 센터장은 그 사실을 알아서 그런지 이상한 재료들만 가득 산 채 마트에서 나오고, 어느 순간 갑자기 길에서 사라진다. 그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간결한 문장과 일상의 미스터리를 버무려 놓은 책이다. 개인적인 만족도는 그냥 그렇다. 보너스로 나온 단편은 전형적인 소녀 스파이물이다. 긴장감이 떨어지고, 낯선 이야기가 주는 신비감도 없다. 모험도 부족하다. 그런데 은연중에 이 소설 잘 읽힌다. 본편은 200쪽도 채 되지 않는다. 끝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로 생각하고 읽게 되면 그 끝에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나의 경우는 최소한 그렇다. 보너스 편은 이 센터장과의 만남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옛날에 본 만화나 영화 등이 순간 떠올랐다. 학원물을 미스터리하게 풀어낸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진다. 순정만화라면 다를까? 이 분야 너무 낯설다. 잘 모르겠다. 그래서 만족도가 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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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 개정판 한창훈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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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를 재밌게 읽어 선택한 책이다. 같이 나와서 개정판이란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이미 4년 전에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란 제목으로 나왔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다르다. 지난 책이 하나의 여행기에 가깝다면 이번 책은 하나의 어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개인적으로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가 더 재미있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로 하여금 술 생각이 들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자주 먹지만 특별히 찾아먹지 않았던 물고기들에 대한 관심을 강하게 불러왔다.

 

몇 가지 물고기야 이미 다른 쪽에서 듣고 봐서 알고 있다. 이름도 한두 번씩 어딘가에서 듣고 봤다. 주변에서 늘 보던 생선이나 어패류야 보면 알지만 그 구분조차 못하는 수많은 것들이 나온다. 바닷가에 살았고, 외할머니가 어창에서 생선을 팔았지만 내가 구분할 수 있는 물고기는 그렇게 많지 않다. 큰 관심도 없었고 그렇게 열심히 찾아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방파제에서 낚시를 한 번 해보자고 했다가 한 마리도 낚지 못해 그냥 그만 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첫 낚시가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 상당히 부럽다. 만약 그때 내가 물고기 몇 마리나마 잡았다면 강태공의 삶을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지난 번 책에 자산어보란 이름이 들어가 있지만 그 이름값을 못했다면 이번 책은 다르다. 물고기나 어패류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우고 자산어보의 설명을 앞에 인용한다. 그런데 자산어보의 이름이나 설명이 현실과 조금 다르거나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해류와 수온이 바뀌고, 사람들의 입맛이나 조리법 등이 변하면서 그 차이가 난 것 같다. 하지만 이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를 것이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이름이 같은 것도 있다. 맛에 대한 설명이 같은 것도 있다. 세월의 변화 속에서 아직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것이다.

 

솔직히 이 책 저자가 설명한 맛의 차이를 글로만 혹은 이미 맛본 것으로 구분하기에 나의 미각도 경험도 턱없이 부족하다. 생계형 낚시꾼이라는 그의 표현처럼 먹고 살기 위해 혹은 좋아서 낚고 먹는다면 어느 순간 그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단지 그 설명만으로 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그 제철 생선의 맛을 한 번 느껴보고 싶다. 갯장어나 숭어에 대한 화려한 설명은 이미 다른 곳에서 들어 짧은 글에 아쉬움은 없지만 몇몇 어종은 좀더 다양한 맛과 요리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 감성돔을 둘러싼 저자와 자산어보의 설명은 차이가 큰데 이것이 큰 재미를 준다. 맛이 죽인다고 하는데 살짝 그 맛이 궁금하다. 감성돔을 잡기 위해 펭귄들의 먹이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가슴 아프다.

 

아는 만큼 먹을 수 있다. 이 문장은 이 책에 정말 딱 맞는 표현이다. 제철 과일은 쉽게 마트에서 만날 수 있지만 제철 생선은 그 현지가 아니면 그 맛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그곳을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 좁은 국토를 가득 메우는 차들을 생각하면 쉽게 길을 나설 수 없다. 서울에서 전라남도 여수로 가기는 더 어렵다. 물론 아직 나의 입맛이 그 정도까지 도달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맛집 프로그램을 그렇게 열심히 보면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더욱 더. 이 책의 편집에 한 가지 바람이 있다. 그것은 몇 월에 어디서 어떤 물고기를 먹으면 좋다는 표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아니면 계절별로 제철 생선을 표기한 간단한 표라도 하나 정도. 그렇다면 책을 펼쳐놓고 읽으면서 식욕을 더 강하게 만들고, 발걸음을 좀더 가볍게 옮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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