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밤 11시 56분에 시작해서 다음 날 새벽 6시 52분까지 일어난 이야기다. 패밀리 레스토랑 데니스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는 아사이 마리에게 남자가 다녀오면서 시작한다. 물론 그 이전에 ‘우리’라는 존재가 보는 밤의 도시 풍경을 아주 멋지게 그려내고 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역시 하루키라는 생각을 잠시 한다. 마리에게 다가온 남자는 아는 척 한다. 그런데 이름을 잘못 부른다. 유리라고. 그녀의 언니 에리와 함께 2년 전 호텔 수영장에 간 적이 있다. 이 우연한 만남이 결코 짧지 않은 밤 동안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발점이 된다. 하루키 특유의 문장과 분위기로 나를 강하게 빨아들인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은 ‘우리’라는 존재다. 작가는 친절하게 ‘우리’에 대해 설명해준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름 없는 침입자다. 우리는 본다. 귀 기울여 듣는다. 냄새를 맡는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그곳에 존재하지 않고, 흔적을 남기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우리는 정통적인 시간 여행자와 동일한 규칙을 지키는 셈이다. 관찰하지만 개입은 하지 않는다.” 이 글은 ‘우리’가 마리의 언니 에리의 방을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서술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에리의 방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을 그냥 보고 있는 장면들을 읽을 때면 “우리는 한낱 시점에 불과하다. 어떤 형태로든 상황에 관여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은 마리가 머물고 있는 한밤의 도심이다. 그렇다고 에리의 방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원이 연결되지 않았는데도 텔레비전이 켜지고, 얼굴을 알 수 없는 남자가 그 방을 쳐다본다. 나중에는 화면 속으로 에리와 침대가 들어가는 일까지 벌어진다. 뭐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비슷한 장면들이 곳곳에 나온다. 바로 거울이다. 마리나 다른 사람도 거울을 본 후 그 이미지가 홀로 남아 있는데 이 이상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지 않는다. 판타지 같은 설정이 늦은 밤 아주 조용히 펼쳐진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조금 지루했다.

 

마리에게 아는 척 남자, 다카하시가 사라진 후 한 여자가 그녀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그녀가 중국어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다카하시에게 들은 것이다. 중국 매춘녀를 한 손님이 폭력을 가한 후 옷을 가지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풀기 위해 중국어 가능한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간단한 대화를 나눈 후 중국인 조직에 연락을 한다. 어떻게 이 상황을 넘기지만 일본에 자리 잡은 중국 조폭은 만만한 조직이 아니다. 열아홉의 어여쁜 중국 여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다. 현실의 어두운 단면을 잠시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를 찾아온 러브호텔 알파빌의 매니저 가오루와 시간을 보낸다. 간단한 이야기가 둘 사이에 오고 간다.

 

‘우리’는 하나의 시점으로 여기저기를 오가면서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마리와 에리만 보여줄 것 같았는데 가오루나 다카하시나 중국 매춘녀에게 폭력을 가한 남자까지 등장시켜 이 한밤중의 사건들을 조용히 관찰한다. 감정은 대화를 통해 나오고, 밤이 깊어지고 새벽이 가까워지면서 가슴 한 곳에 조용히 묻어두었던 이야기가 밤의 어둠을 뚫고 흘러나온다. 여기서도 감정의 폭발은 없다. 절제된 감정은 차분하게 대화를 통해 표현된다. 격렬한 행동도, 터져나오는 감정의 폭발도 없다. 마리와 다카하시의 대화를 듣다 보면 이들이 겪은 일들이 화면 속 한 장면처럼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이 속에 한밤의 진실이 담겨 있다.

 

중간중간 낯선 느낌이 많이 든다. 화려한 하루키가 보인다고 생각할 즈음 기묘한 일이 벌어져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짧은 시간을 다루다 보니 뭔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그냥 흘러갈 뿐이다. 중국 매춘녀에게 폭행을 가한 남자가 그 여자의 휴대전화를 편의점에 놓아둔 후 벌어진 두 개의 에피소드는 오해와 착각이 불러온 무시무시한 협박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리가 에리의 문제를 인식하고 다카하시에게 털어놓을 때 과거의 기억 하나가 그녀를 일깨운다.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때 그녀를 도와준 에리의 행동이다. 그 이후 이 자매의 사이는 벌어졌다.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그녀는 언니에게 다가간다. ‘우리’는 작은 태동을 본다. 새로운 시작은 새벽과 함께 온다.

 

예전에 읽었던 <어둠의 저편> 개정판이란 사실을 인터넷 서점 정보를 보고 알았다. 나의 이 무참한 기억력이라니... 덕분에 하루키의 소설을 다른 번역자를 통해 한 번 더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록 아티스트
스티브 해밀턴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음악 관련 이야기인 줄 알았다. 록앤롤의 록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어 제목을 본 후에 금고털이에 대한 이야기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선입견이 책을 펼쳐 읽은 첫부분에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것은 주인공 소년 마이클의 나이였다. 여덟 살에 끔찍한 사건을 겪었고, 이 때문에 기적의 아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대신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아이다. 그 후 9년의 시간이 지났다고 하지만 그래도 겨우 열일곱이다. 이런 소년이 우리가 흔히 영화 속에서 봐왔던 금고털이 역할을 한다니 잘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이다. 이 소설은 마이클이 감옥에 갇힌 후 자신의 인생을 적은 글이다.

 

인생은 갑자기 하나의 전환점을 던져준다. 이것은 예측할 수도 없고, 그때도 알 수 없다. 마이클에게는 어릴 때 자신을 데리고 와서 같이 산 리토 삼촌이 버린 자물쇠를 주어 만지면서부터다. 처음엔 흥미와 오락이었지만 금방 그 재능이 꽃을 피운다. 물론 이 재능이 크기 위해서는 좋은 선생이 필요하다. 그 선생이 바로 고스트로 불리는 사람이다.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이 직업 세계에 누군가 홀연히 나타나 ‘자네 재능이 있군, 나에게 한 번 자물쇠 여는 법을 배우겠는가.’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열일곱 살 소년이 범죄자들과 어울려 금고를 열러 다니지도 않는다. 작가는 노련하게 시간을 교차시키면서 왜 마이클이 이 금고털이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려주고, 그가 만나는 범죄자들을 통해 이 세계의 한 면을 보여준다.

 

특별한 재능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언제나 위험해진다. 마이클도 자신의 친구를 돕기 위해 한 행동이 자신의 인생을 바꿀 것이라고는 그 당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던 그가 다른 누군가의 장난에 의해, 충동에 의해, 알 수 없는 열정에 의해 뒤바뀌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은 바로 어밀리아의 집에 몰래 들어가고, 그녀의 그림을 봤을 때다. 그 자신도 그림을 잘 그리지만 그가 본 그림과 자화상은 영혼을 사로잡았다. 그를 충동질해 데리고 간 아이들이 도망칠 때 그는 그 그림에 메여있었다. 경찰에 잡힌다. 공범을 말하지 않는다. 그 집주인 노먼의 집에서 하루 네 시간 육 주간 봉사하는 판결이 내려진다. 이 집에서 힘든 땅파기를 하고, 어밀리아를 만난다.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나타난다.

 

마이클은 고스트에게서 다섯 개의 호출기를 받는다. 색에 따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어떤 색은 아마추어가, 어떤 색은 동부나 서부의 전문가들이 그를 필요로 한다. 빨간 호출기가 울리면 바로 연락해야 한다. 왜냐고? 그를 이 세계로 강제로 밀어 넣고 그가 한 일의 수수료 10%를 챙겨가는 두목이 연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야기를 읽었을 때는 이 소년이 상당히 경험 많고 노련한 금고털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스트를 통해 재능을 꽃피운 후 금방 이 세계에 나온 새내기였다. 아마추어와 함께 일하는 위험을 보여준 후 서부로 가서 전문가들과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이 둘의 차이가 너무 확연해서 고스트가 그에게 알려준 교훈에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위험은 어디에나 있다.

 

그가 어떻게 금고털이 세계로 오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의 핵심은 어밀리아다. 그녀의 엄마가 자살했고,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산다. 이 기적의 소년이 그녀 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가 본 것은 자기 내면의 어둠이었다. 그래서 둘은 금방 끌린다. 시작은 마이클이 어밀리아를 그린 그림을 그녀가 자는 방에 놓아두면서부터다. 몰래 들어가서 놓아둔 것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마이클에게 이 모험은 위험한 것이지만 그녀는 그림으로 답한다. 다음은 만화로 자신의 감정을, 상황을 표현하는데 그녀 또한 같은 방식으로 대답한다. 이렇게 둘은 사랑에 빠진다. 이 사랑이 어밀리아의 아버지 노먼의 사업실패와 연결되고, 그의 재능이 악당의 귀에 들어간다. 그는 어밀리아를 위해 금고털이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렇게 보면 한 남자의 순정을 담은 성장과 사랑 이야기다.

 

보통 범죄소설에서 많이 공을 들이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범죄를 준비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소설은 범죄 준비 과정이 그렇게 세밀하게 나오지 않는다. 금고털이 소년이 주인공이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보니 자신의 이야기에 더 집중해서 들려줄 뿐이다. 함께 도둑질을 하는 동료들이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떻게 그 집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지 등은 많이 생략되어 있다. 다만 빠른 시간 안에 금고를 열지 않으면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어느 순간에는 운도 작용한다. 고스트가 자신들의 작업을 예술이라고 말하는데 어느 정도 동의한다. 손의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연습하고 노력하는 모습과 그 섬세한 작업을 본다면 말이다. 모두 읽고 난 지금 이 천재 금고털이 소년이 감옥을 나온 후 보여줄 새로운 활약을 기대해본다. 좀 더 세련되고, 좀 더 위험한 일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브리데이
데이비드 리바이선 지음, 서창렬 옮김 / 민음사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사람이 있다. 그 혹은 그녀는 매일 아침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난다. 단 하루도 예외가 없다. 이렇게 5993일을 살았다. 5994일이 되는 날 스스로 A라고 하는 사람은 한 여자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리애넌이다. 그녀는 5994일째 몸 주인인 저스틴의 여자 친구다. 이 둘의 관계는 열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리애넌이 더 매달린다. A는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리애넌과 함께 바다로 간다. 이 짧은 여행은 이 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바로 A와 리애넌의 사랑 이야기다. 단순히 사랑 이야기라고 말하기에는 하루하루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 많은 의미와 삶을 담고 있다.

 

매일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는 것이 일상이 된 A. 리애넌을 만난 후 변한다. A는 그녀를 보고 싶다. 다행이라면 A가 깨어난 동네에서 그녀가 살고 있는 동네까지 거리는 길어도 1~2시간이면 충분하다. 몰래 그녀에게 접근한다. 어떤 때는 여자의 모습으로, 어떤 순간은 남자로 그녀 앞에 나타난다. 외모도 모두 다르다. 어느 날은 엄청난 뚱보로, 때로는 아주 멋진 몸매를 가진 채. A에게 성은 큰 의미가 없다. 외모도 의미가 없다. 매일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는 삶을 살았기에 하나의 성이나 외모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것이다. 동성애에 대해서도 자연스럽다.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하나의 시각 속에 갇혀 있었는지 깨닫는다.

 

사랑은 위험한 감정이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열정이 삶과 세상을 변하시킨다. 자신을 깨닫게 한다. A도 이 감정 때문에 실수를 한다. 먼 거리에 있는 그녀를 만나러 갔다가 제 시간에 집에 도착하지 못하고, 집을 떠나면서 남긴 흔적 때문에 그가 하루 동안 머물렀던 네이선이 그의 존재를 알게 된다. 물론 정확한 정체는 모른다. 이것은 A도 마찬가지다. 이 일이 A와 A가 머물렀던 네이선 모두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네이선은 A를 악마로 부르고, A는 이에 변명한다. 리애넌에 대한 사랑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A의 정체는 무엇일까? A와 같은 존재들이 또 있는 것일까?

 

자신의 선택이 아닌 알 수 없는 방식으로 A는 매일 아침 다른 사람 몸에서 깨어난다. 선택하기 따라서는 몸 주인의 일상이나 중요성과 상관없이 하루 동안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이런 삶이 멋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태어나면서 이렇게 적응하지 않은 존재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일 어디, 누구의 몸에서 깨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A에게 갑자기 나타난 사랑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A가 일상으로 삼았던 일들이 흐트러지는 계기가 된다. A의 영혼에 새겨진 사랑이 일상과 관계의 반복을 깨트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백미는 A가 리애넌의 몸에서 깨어난 하루다. 이때 하루 동안 그녀의 몸안에서 살면서 느낀 감각과 감정들은 평범하지만 그 사랑의 깊이를 아주 잘 표현해준다. 그녀가 보고 듣고 움직이고 만지고 부딪히는 느낌 모두가 A에게 진한 감동을 준다. 갑자기 짝사랑했던 그 옛날 기억 한 자락이 떠오른다. 그녀가 걸었던 길, 만졌던 물건, 보았던 시선, 곁을 지나면서 풍겼던 향기 등등. 평생 살면서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물론 그 당시는 이보다 더 아픈 일이 없지만. 소설 속 두 인물의 사랑은 성이나 외모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전혀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둘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눈빛에 담긴 감정이다. ‘나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A의 존재를 발견하는 리애넌을 볼 때 이들의 사랑은 결코 평범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내일이 없는 이들의 현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서울의 삶을 만들어낸 권력, 자본, 제도, 그리고 욕망들
임동근.김종배 지음 / 반비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이다. 정치지리학이란 학문을 통해 메트로폴리스 서울이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는지 돌아보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서울의 성장만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 경제, 자원 등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는지 검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 나오는 몇 가지 사실은 이때까지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바로 잡아주고, 너무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도시화와 아파트 문제 등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 순으로 서울의 변천사를 다루면서 그 당시 정책의 이유 등을 알려준다. 시간나면 한 번 제대로 깊이 있게 공부해볼만한 주제다.

 

정치지리학은 정치가 어떤 식으로 자원 배분을 관리하면서 사회를 바꾸어가는 가를 보여주는 학문이라고 저자는 간단히 말한다. 이 학문의 체계화는 독일의 지리학자인 프리드리히 라첼이 하였다고 한다. 최근에 와서야 이 학문이 중요해졌다고 하는데 이런 세부적인 사실이 일반 독자에게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 몇 가지 단어가 있다. 정치와 자원 배분과 사회라는 단어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단순화한 것이다. 실제 다루어야 할 것은 더 많다. 임동근이 주장하는 바를 따라가면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사실과 충돌하는 것도 나온다.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한 것도 있지만 대체로 그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이 책이 재밌고 흥미로운 것이다.

 

이 책은 2013년 10월부터 12월까지 팟캐스트 ‘김종배의 사사로운 토크’에 방송한 것을 수정, 보완해 출간한 것이다. 진행자 김종배가 질문하고, 감탄하는 역할을 맡고, 임동근이 학문적 사실을 알려주고 답하는 대화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과정에 진행자 김종배의 경험담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주고 그 시대를 일반 사람의 시선으로 보게 한다. 그러면 임동근이 사실은 인정하고 왜곡된 정보는 수정하면서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기억의 한자락을 붙잡고 있던 것은 다가구주택이다. 오래전 한 선배가 다가주주택을 투자용으로 사서 살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잘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었다.

 

팟캐스트 방송이라는 한계 속에서 풀어놓은 이야기라 깊이 있게 파고들거나 현실적인 예를 많이 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가구주택과 다세대주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거시적인 부분에서 다루다 보니 내 주변에서 경험한 것과 약간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가 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주택들이 그 시대주택의 수급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부분은, 특히 아파트 공급 부족 등과 연관시켜 풀어내는 이야기는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나 자신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특히 아파트와 관련된 기억의 몇 가지는 현재의 사실을 가지고 과거의 기억을 왜곡하여 기억하는 부분도 몇 가지 있다. 특히 래미안과 관련된 이미지가 그렇다.

 

김종배도 말했지만 나도 지금까지 박정희 최고의 공적 중 하나로 그린벨트를 꼽았다. 그런데 이 그린벨트가 환경보호 목적에서 지정된 것이 아니라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한다. 또 개발과 관련하여 반드시 알아야 하는 단어가 하나 등장하는데 바로 체비지다. 사전적 의미는 도시의 체계적인 개발을 위한 방안으로 일정지역을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로 선정 후 공공시설의 설치 등 시행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구획정리 지구내 지역주민의 개인토지 점유 면적에 따라 감보율을 적용하여 확보한 토지를 말한다. 이 체비지가 강남의 개발과 관련하여 아주 복마전 같은 역할을 하는데 새로운 시각에서 개발사업을 들여다보게 한다.

 

서울하면 역시 아파트를 빼놓을 수 없다. 아파트하면 역시 강남과 토건재벌이 떠오른다. 김종배는 “지금까지 아파트 역사를 보면 정부의 땅 장사와 재벌의 집 장사가 서로 이익이 맞아떨어진 결과다”라고 정의하고, 임동근은 여기에 “재벌 돈이 주택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정부가 제도를 하나하나 바꿔가는 과정이었다”라고 덧붙인다. 이때도 체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주택 건설에 정권 차원에서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현실은 바로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이는데 살 곳이 없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것과 관련된 수많은 사회기초설비, 상하수도, 전기, 쓰레기 등이 갖춰져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간단하게만 볼 서울의 변천사가 아니다.

 

처음에 동사무소 이야기로 문을 여는데 이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흔히 일제가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일제 강점기 당시 지역의 유지 등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라고 한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권의 손발로 전락하지만 그 시작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지방자치로 인한 문제나 역대 서울시장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시장직에 임했는지 설명할 때는 이 정치지리학의 매력이 듬뿍 묻어난다.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의 현대사를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면서 배우게 되는 것도 적지 않다. 책을 한 번 더 읽는 것이 좋겠지만 안 되면 팟캐스트라도 찾아서 들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족에 대한 환상을 무참하게 깨트리는 소설을 읽고 놀란 적이 있다. 덴도 아라타의 <가족사냥>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읽고 난 후 지금까지도 가장 잔혹한 소설로 기억한다. 오래되어 세부적인 기억은 나지 않지만 화목한 가족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되었다. 실제 살다 보면 내가 알던 가족과 다른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이 가족이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부담을 지우는 것도 가족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참 모습이 잘 드러나는 경우는 흔히 둘 있다. 하나는 결혼이고, 다른 하나는 유산 분배할 때다. 이것이 단순히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모양이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고 고백한다. 바로 이어서 “ 가족 구성원 각자를 한 사람의 개인으로 간주하고 생각을 전개해나가려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단순히 개인적 경험에 의해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가 실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본 것을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다. 물론 아버지의 몰락과 어머니의 집착과 오빠의 떠남 등이 어우러져 홀로 서고자 하는 삶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이것을 단순히 환경만의 문제로 돌리기에는 이와 비슷한 삶을 산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물론 그녀 자신이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아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을 하면서 또 하나의 삶을 포기하였지만 이것 또한 자신의 살고자 하는 의지의 결과다.

 

나 자신도 버릇처럼 내뱉는 말이 있다.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혹은 콩가루 집안이네 등과 같은 말이다. 한 사람의 행동을 확대해석하거나 하나의 현상을 전체로 확장하는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 이런 말을 많이 한다. 가족의 한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고, 이것이 사회문제로 발전할 경우 그 가족이 그 잘못을 짊어져야 하는 일이 생긴다. 내가 볼 때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쑥덕거린다. 누구네 아버지네, 어머니네, 아들이네, 동생이네, 오빠네 등과 같이. 저자는 이런 경우 실제 잘못한 사람의 죄가 다른 사람에게 이전되고, 당사자의 죄의식이 희석된다고 말한다. 공감하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개인과 가족을 혼동하고, 아니면 의도적으로 자기 가족과 차이를 두기 위해 이런 표현을 한다.

 

가족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 이미 그 틀이 정해져 있다. 틀 안에서 아버지, 어머니, 자식이라는 역할을 연기하는데 이 속에서 개인은 매몰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의 인격을 되찾는 것이 진정 가족이 무엇인지 아는 지름길이 아닐까 묻는다. 여기에는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이라는 환상이 없다. 실제 우리는 화목한 가족을 강요받으면서 자란다. 가족이라는 거대한 폭력에 휘둘리면서 혹은 그속에서 폭력을 휘두르면서 살아가고 있다. 가족 간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 사고를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누구나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 수없이 많은 강요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형제자매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 더 좋다는 말이 있다. 실제 현실의 사소한 문제에 있어서 이런 경우는 많이 일어난다. 나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빈도수를 따지만 친구들이 더 높다. 물론 가족이 아니기에 한계를 보여주는 부분도 많다. 요즘과 달리 이전에는 다른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도 빈약했다. 가족을 더 강조하면 할수록 부모, 형제자매가 아니라 부부와 자기 자식으로 그 가족을 한정시키고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대가족 사회에서는 그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졌지만 핵가족이 되면서 더욱 이기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저자도 현대 사회의 가족이 핵가족화되면서 예전의 가족과 차별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을 더 깊게 파고들어 연구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예전에 할리우드 영화 비평을 보면 가족주의를 너무 강조한다는 말이 많았다. 실제 그 영화를 보면 늘 가족이 중심에 있다.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가족이 우선이다. 물론 결과는 좋게 끝난다.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는 글이 이 책에 있다. “국가도 나서서 가족을 예찬한다. 전시 중에 그랬던 것처럼, 가족이 화목하고 단합이 잘되면 통치하기가 쉽다. (중략) 그런 의미에서 가족은 작은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족은 다른 가족에게 배타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는 모르다고 말하고, ‘자기 가족만 좋으면 된다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되는게 아닐까.’하고 묻는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나 가부장적 체계가 이것을 잘 보여준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가장의 위치나 역할이 조금 바뀌었다고 해도 그 기본 구성은 별 차이가 없다.

 

현재 일본의 점점 심해지는 우경화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글도 있다. 바로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경험이다. “패전 후에는 두 번 다시 전쟁을 하는 것도 군대에 가는 것도 싫다고 하더니, 그 후 국력이 강해지고 나라 전체가 우경화되자 과거에 교육받은 사고방식으로 돌아가는 아버지”라는 문장이다. 물론 현재 저자의 아버지가 죽었다. 하지만 이런 영향력은 이런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는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한국의 극우보수세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비교하면 많은 부분에서 닮을 꼴이 나올 것 같다. 한 가지 저자에 대해 오해를 풀어주자고 하면 그녀는 오래전에 결혼해서 반려 혹은 파트너와 잘 살고 있다. 각자 자신의 삶을 살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