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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 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심연’이란 단어를 볼 때마다 니체가 한 말이 떠오른다. “심연을 깊숙이 보고 있으면, 심연 또한 너를 본다.”란 문장이다. 어느 날 이 문장을 읽고, 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읽을 때면 늘 머릿속에 담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의미에서 이 심연을 다루지 않는다. 자기성찰을 위해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심연은 말한다. 그리고 자기 성찰의 4단계로 고독, 관조, 자각, 용기를 다룬다. 이에 책은 4부로 나누어져 있고, 각 부는 그 내용에 맞는 용어로 풀어져 나온다. 이 글은 한 신문사의 자기수련에 관한 연재로 1년 동안 이어져 왔던 것을 책으로 낸 것이다.
고독. 현대인을 풀이한 말 중 하나가 대중 속의 고독이다. 이때의 고독과 이 고독은 의미가 다르다. 혼자만의 시간을 자발적으로 갖자는 의미다. 이것을 위해 저자가 선택한 것은 순간, 생각, 현관, 인내, 침묵, 실패, 동굴 등이다. 이 단어들은 자신의 경험과 더불어 그가 생각하고 해석한 것으로 풀려나온다. 그의 전공이 고전문헌학이라고 하는데 이 지식이 함께 다루어진다. 원어의 의미를 풀어내면서 조금 색다른 느낌을 준다고 해야 하나. 어떤 대목에서는 옛 기억을 떠올려주었는데 특히 현관이 그랬다.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문지방이란 단어와 그것을 밟지 마라는 말이 아련하다.
관조. 쉽지 않다. 있는 그대로 나를 발견하기라고 말하는데 자신의 바르지 않는 마음으로 보게 되면 편견과 선입견 등이 개입한다. 묵상, 단절, 숭고, 사유, 관찰, 오만, 심연 등으로 풀어져 나온다. 심연을 다룬 장에서 니체를 발견하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고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가 그 중심에 있다. 조금 의외다. 여기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관찰이다. 단순히 본다는 것을 넘어 안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관찰이 부족한 것은 그냥 보기만 할뿐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보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내면도 마찬가지다.
자각. 어느 순간 찾아온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오지 않는다. 괴물, 임시 치아, 가면, 갈림길, 멘토, 진부, 자립 등으로 표현한다. 임시 치아란 단어가 나와 의외였는데 바다거북이의 카벙클을 예로 들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만들어지는 임시 치아인데 저자는 이것을 ‘편견과 상식, 전통과 관습, 흉내와 부러움이라는 알을 깨는’ 것으로 풀었다. 깨달음도 이런 것이 없다면 그 단단한 벽을 깨고 넘어갈 수 없다. 나의 삶에서 가장 부족한 것 중 하나가 이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알을 깨기 위한 강력한 도구로써.
용기. 참 어렵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바로 여기서 생긴다. 머릿속에서는 안다고 생각하는데 몸은 움직이지 않는 것. 바로 용기 부족이다. 옮음을 양심을 용기 있게 행동을 옮기는 것이라고 풀었을 때 사회적으로 나는 용기가 부족하다. 귀차니즘에 몸을 맡기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면 저자가 말하는 옮음을 생활 속에서 조금씩 왜곡한다. 바로 앞에 나온 착함의 경우는 핑계를 대면서 더 심해진다. 잊고 있던 것들이 글을 읽으면서 되살아났다. 가끔 이런 책을 읽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항상 문제는 여기서 멈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내면은 이런 글들로 조금씩 살찌고 넓어진다.
저자가 종교학과 교수라 종교적인 내용으로 글을 도배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기우였다. 바쁜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잠시나마 돌아볼 수 있는 분량으로 잘 편집되어 있다. 강조할 부분은 큰 글로 한 면을 할애했다. 앞에서 무심코 읽은 글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역할을 한다. 또 고전문헌학자란 부분이 글 속에서 언어학적 해석으로 풀려나온다. 모두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흥미로웠다. 한 학자의 자기 성찰을 다루다 보니 나의 것과 가끔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배우는 것이 더 많다. 흔한 자기계발서보다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