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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8월
평점 :
최근에 전아리 소설 몇 권을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문장들이 좋았다. 하지만 읽을수록 캐릭터에 집중한 이야기에 조금은 질렸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전아리 소설의 발랄함과 유쾌함은 살아있지만 하나의 틀처럼 굳어져 가는 부분이 느껴졌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빠르게 읽을 수 있었지만 와~ 재미있다! 라는 느낌은 없었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심리 묘사 등이 치밀하지 못하고 작위적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좌충우돌하는 로맨틱 코미디가 될 것이다. 나에게는 딱 그 정도였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각각 다른 화자를 내세워 상황을 설명하는 식이다. 요조숙녀 같은 언니 서혜윤이 매춘을 하다가 동영상을 몰래 찍혔고, 이것으로 협박을 받는다는 것이 시작이다. 혜윤은 약혼자가 있고, 모두가 마더 테레사와 비교할 정도의 정숙함을 가지고 있다. 이런 딸이 어플로 남자를 만나고, 매춘을 하고 동영상까지 찍혔다니 보통 일이겠는가. 아빠 서용훈은 자신의 해결사를 동원해 이 남자를 해결하려고 하고, 동생 혜란은 컴퓨터 도사인 친구 진환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아빠의 해결사가 남자의 회사를 찾아가는데 그냥 사라졌다. 만만한 협박범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의외의 일들이 일어난다. 그것은 그 남자와 언니가 짜고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다.
남에게 보여지는 자신과 실제 자신의 모습이 다른 혜윤에게 고진욱은 신선한 존재다. 그리고 고진욱은 고아다. 좋은 집안에서 자란 부모가 그를 용납할 리가 없다. 몰래 달아나도 되는데 어렵고 힘든 선택을 했다. 자신들의 계획이 성공할 것이란 섣부른 믿음을 가지고. 이 계획은 아빠의 해결사에게도 들키고, 동생 혜란에게도 들킨다. 결국 혜란이 먼저 숨은 곳에 도착해 진욱을 데리고 나오는데 이때 실수가 하나 있다. 이 실수가 나중에 또 다른 사건을 만든다. 하지만 진환과 함께 세운 혜란의 계획은 진환의 배신으로 금방 끝난다. 여기서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재미가 없다. 작가는 여기서 이 둘을 헤어지게 만들려는 음모를 꾸민다. 후반부는 이 음모와 앞에 말한 실수가 엮이면서 재미를 만든다.
뛰어난 외과의사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서용훈이 사업에 더 재능을 보여준 것이나 현모양처의 모범 같은 엄마 유미옥의 미국 시절 연인 등은 이야기의 뼈대에 살을 붙여준다. 자수성가한 아빠나 고상한 엄마 밑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딸의 일탈은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에 깊은 설명을 생략하고, 간단하게 성욕으로 처리한다. 늘 함께 아침을 같이 하지만 식탁에서는 그 어떤 대화도 소리도 없다. 가족끼리 충돌도 없다.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면서 조용히 산다. 둘째 딸 혜란이를 제외하면 말이다. 혜란은 자신이 가진 부를 숨기지도 않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그렇게 나쁘게만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솔직함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네 가족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그 사이에 가끔 고진욱과 이진환이 등장한다. 아주 비현실적인 이 가족에게 인간미를 심어주는 인물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리고 엄마 유미옥을 통해 보여주는 미술계와 상류층의 모습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어떻게 보면 작가가 살을 너무 많이 쳐냈다는 생각이 든다. 많지 않은 분량과 빠른 전개 등은 가독성을 높이지만 강한 여운을 남기지는 않는다. 두툼하고 무거운 내용의 책을 읽다가 지치면 가볍게 읽을 수 있을 테지만 꼭 읽어야지 하는 생각은 이제 들지 않을 것 같다. 가족의 민낯을 보여주지만 마무리는 너무 자주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