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스패로우 3 - 배반의 궁전 버티고 시리즈
제이슨 매튜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그들이 다시 돌아왔다. 치열한 첩보전이 다시 시작했다. 이 시리즈가 이렇게 빨리 나올 것이라고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반가웠다. 이전 작품이 도미니카의 스파이 성장기에 가깝다면 이번은 실전이다. 속고 속이고, 함정에 만들고 그 함정 위를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가는 스파이들의 모습은 읽는 내내 긴장감을 준다. 전편이 도미니카가 CIA 편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차분히 보여주었다면 이번은 더 강렬한 모습으로 그것을 정당화시킨다. 그리고 스파이 초보에서 권력의 핵심으로 더 다가간다. 비록 그 과정은 불안과 공포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지만.

 

전편에서 헤어진 도미니카와 네이트는 서로의 생존을 모른 채 지낸다. 도미니카는 새로운 임무를 받고 다시 러시아를 떠난다. 이번에는 이란의 핵 과학자다. 그를 포섭해서 이란의 핵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아내는 것이 주된 임무다. 스패로우인 우드란카를 이용해 섹스의 늪으로 빠트리고 동영상 등으로 그를 협박한다. 그가 가진 정보가 핵기술의 원천이거나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몰래 핵무기를 만들려고 하는 이란에게는 아주 중요한 기술이다. 만약 핵무기가 만들어지면 중동에 새로운 파란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미국에게는 아주 중요한 정보다. 물론 러시아에게도 마찬가지다.

 

도미니카의 승진이 반갑지 않은 인물이 있다. 상사인 주가노프다. 고문기술자 출신인 그는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길 바란다. 이런 그에게 내부의 두더지를 발견하고, 푸틴의 관심을 끄는 도미니카가 반가울 리가 없다. 전편에서도 그녀를 죽이기 위해 킬러를 보냈는데 이번에도 폭력배를 보낸다. 도미니카는 겨우 살아난다. 이것이 그녀로 하여금 CIA 정보원으로 다시 활약하게 만든다. 그녀의 생존과 새로운 정보를 기다리고 있던 네이트와 그의 상사들에게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스파이 활동이 시작하고, 서로 떨어져 있던 두 연인은 다시 만난다.

 

이들의 첫 공동 작업은 이란의 핵무기 기술에 대한 것이다. 푸틴은 이 정보를 가지고 장사를 하려고 한다. 정보는 곧 돈이다. 권력이다. 푸틴은 핵 기술자 관리는 도미니카에게 맡기고, 이란의 핵 원료 처리를 위한 장비 등의 거래는 주가노프에게 맡긴다. 도미니카가 더 많은 정보를 가져오면 올수록 주가노프의 입지는 약해진다. 비열하고 잔인한 그는 이란 정보원에게 배신자에 대한 정보를 흘린다. 도미니카의 승진을 막고, 이란 암살자들에게 죽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연인을 만나 행복감에 젖어 있던 이 둘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참극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둘을 잡기 위한 몰이가 시작한다. 쉽게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적도 이 부분에서 프로들이다. 힘든 탈출이 이어진다.

 

이번 작품에서는 CIA 내부에서도 배신자가 생긴다. 승진 누락에 불만을 품은 앙주빈이다. 고위직인 그는 상당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돈이다. 도미니카와 러시아 장군의 이유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자본주의적이다. 앙주빈의 등장은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 넣고, 내부 스파이는 어디에도 있을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내부 첩자를 찾기 위해 미국과 러시아 정보국의 치열한 대결이 펼쳐진다. 자신들의 배신자는 찾고, 자신의 정보원은 보호해야 한다. 앙주빈이 가진 정보는 미국 스파이에게 아주 치명적이다. 러시아도 최고의 스파이를 보내 그에게서 정보를 빼내려고 한다. 내부 첩자를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아주 잘 보여준다.

 

기존 인물들이 나와 반가웠다면 새로운 인물들이 이야기에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변함없는 관료와 적합하지 않은 인사로 인한 문제가 이어진다. 최고의 스파이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인물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도 이런 관료들이다. 능력보다 정치를 통해 승진한 사람들. 이것이 CIA의 문제라면 러시아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을 승진시키면서 문제가 된다. 이런 인물이 푸틴이 바라는 것을 이룬다고 해도 더 높은 지위는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내부적 경쟁과 투쟁은 권력자들이 바라는 바이기는 하다.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문제지.

 

처음에는 약간 속도가 더뎠다. 이전 기억을 되살리고, 새로운 등장인물들에 적응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방 빠져들기 시작했다. 액션이 주가 되는 장르가 아니다 보니 잘 짜인 구성과 상황만으로 긴장감을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에는 도미니카가 스패로우에서 배운 기술을 이용해 정보를 빼낸다. 몸과 이성은 따로 논다. 그녀 곁에는 먼저 죽은 영혼들이 머물고 있다. 주가노프가 고문을 행하는 몇몇 장면은 아주 잔혹하다. 이전 작품과 달리 푸틴이 많이 등장한다. 어디까지 사실인지 모르지만 독재와 권력형 비리의 정점을 보여준다. 정면이 아닌 어둠 속에서 정보를 가지고 상대방을 속이려는 두 집단의 대결은 냉전 이후 힘을 잃었던 스파이 소설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처럼 희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2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전편 <피처럼 붉다>를 읽고 조금 실망했었다. 그녀의 활약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분량 속에 많은 것을 녹여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러다 다시 읽게 된 이 시리즈 2권은 전편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한정된 공간과 시간과 등장인물들을 통해 간결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었기 때문이다. 시리즈란 이름을 달고 나왔지만 별도로 읽어도 이해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는 내용이다. 실제로 전편의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이 글을 쓰기 전 이전 서평을 찾아본 정도에서 기억 몇 개를 살짝 떠올리는 정도일 뿐이다.

 

이번 소설도 <흰 눈과 붉은 장미>란 동화를 변주해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솔직히 이 동화 내용을 모른다. 관심이 생기면 나중에 찾아 읽어볼 예정이다. 그러니 이 부분은 넘어가자. 전편에서 죽을 수도 있었던 힘든 경험을 한 루미키가 이번에는 프라하에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 이 위기의 시작은 그녀에게 다가와 ‘내가 네 언니인 것 같아’라고 젤렌카가 말하면서부터다. 스웨덴어로 이 말을 했고, 스웨덴어 때문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뻔한 출생의 비밀 이야기가 이어진다. 오래 전 아빠가 프라하에 와서 한 여자를 만났고, 임신한 것을 모른 채 떠났다는 이야기. 이 진부한 이야기가 아빠의 이름과 함께 나오는 순간 의심의 그림자가 조금씩 지워진다. 다음날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진다.

 

이 둘이 만날 장소와 시간은 젤렌카가 일방적으로 정한다. 루미키는 시간에 맞춰 그곳에 간다. 출생의 비밀을 듣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의 진실 여부를 알려면 아빠에게 전화해서 확인하면 되는데 그녀는 이것을 주저한다. 젤렌카 엄마가 죽은 후 어떻게 살았는지 말하고, 그녀의 새로운 가족에 대해 알려준다. 그런데 이 가족이 문제다. 이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져 있지 않고, 하나의 믿음으로 이어져 있다. 이상한 컬트 종교단체다. 이 컬트 조직을 조사하는 한 명의 야심만만한 기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이르지다. 이 조사와 보도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어쩌면 그냥 스쳐지나갈 인연이었을 이 둘이 연결되는 것은 컬트 종교단체의 내부고발자가 차에 치여 죽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분위기가 갑자기 변하는 시점도 바로 이 교통사고 소식을 들을 때다. 젤렌카의 말이 그녀의 기억을 정밀하게 되짚으면서 이르지와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얼핏 본 듯한데 이르자가 근무하는 방송국을 떠올린다. 대단한 기억력이다. 이때까지는 한 명의 관광객이었는데 이르자와 만나면서 그녀도 이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어간다. 그와 만남이 새로운 변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그녀에게 킬러를 보낸다. 재빠른 행동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루미키의 기지와 행운으로 실패로 돌아간다. 보통 액션 영화라면 멋진 액션으로 킬러를 제압하겠지만 그녀는 평범한 십대(?)일 뿐이다. 이후에도 그녀는 숨고 달아나고 또 달아나 킬러의 마수에서 벗어난다.

 

전편과 달리 이번 악당은 인간의 약한 심리를 노렸다. 이전에도 많았던 컬트 종교단체의 집단자살 문제를 다룬다. 물론 이 문제를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깊이 파고들어 분석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소재로 삼을 뿐이다. 이런 부분이 이 소설의 재미를 더 만들지 못하고 있다. 대신 빠르고 간결한 진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읽으면서 의문을 품게 되는 부분이 몇 있다. 하나는 앞에서 말한 이르지의 수첩을 기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에 음모를 꾸민 사람을 너무나도 일순간에 파악하는 것이다. 전자가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라면 가능하겠지만 후자는 충분한 정보가 쌓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갑가기 힘을 잃는다. 이어지는 군더더기 없는 마무리는 깔끔하다.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에 살을 붙여 상상하게 만든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로 가서 그녀를 계속 뒤흔드는 존재에게 다가가 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마르탱 파주 지음, 김주경 옮김 / 열림원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이름은 자주 들었는데 책을 잘 읽지 않은 작가들이 있다. 마르탱 파주도 나에게 그런 작가 중 한 명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그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한번쯤은 본 작품들이 주르륵 나온다. 그런데 읽은 책은 두 권밖에 없다. 꾸준히 번역되었지만 눈에 자주 띄지만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이 작가의 작품에 손이 잘 나가지 않는다. 읽으면 단숨에 읽게 되는데도 말이다. 사실 이번 작품도 표지만 봤을 때는 읽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우연히 보게 된 하나의 그림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특히. 그 그림은 <내 집 마련하기> 앞에 나오는 잠수복을 입은 남자 그림이다. 무심코 볼 때는 그냥 잠수복과 잠수 도구를 쓴 것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머리에 쓴 헬멧 속에 스노클이 들어 있다. 이 이상한 모습이 책 속으로 나를 인도했고, 그 결과는 아주 만족한다.

 

얇은 책이다. 하지만 담고 있는 단편은 여섯 편이다. 각 단편마다 비현실적인 상황이 연출되는데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중에서 첫 작품 <대벌레의 죽음>은 아주 멋있었다. 말도 되지 않는 부조리극 한 편을 보는 것 같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의도된 연출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마약을 한 후 정신을 차린 남자에게 경찰이 와서 당신이 시체라고 말하고, 대화를 나누는데 이 상황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시체에게 총을 겨누기도 하고, 사진사가 나타나 시체 사진을 찍겠다고 말한다. 분명히 살아 그들과 말을 하고 있는데도. 어느 순간에는 카프카의 소설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답답하고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열린 결말이 되다 보니 더 많은 생각을 한다.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는 갑자기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남자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그와 똑같은 옷을 입고, 행동도 비슷하다. 그가 바란 것은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속에서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자유를 누리는 화자가 강한 인상을 준다. <멸종 위기에 처한 남자>는 제목 그대로다. 혈액 검사에서 호모사피엔스 이전 인종인 호모사피엔스 인슈라리로 밝혀진다. 과학자가 이 사실을 세계에 알리면서 그는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없게 된다. 현재 그가 유일한 호모사피엔스 인슈라리인데 그가 죽게 되면 멸종된다. 과한 보호를 받고 살지만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보호와 격리생활은 오히려 건강을 헤친다. 그러다 히피들이 나타나 그를 사람이 없는 곳에 머물게 하면서 끝난다. 혼자 외로이 섬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가 되어서 말이다.

 

<평생직장에 어울리는 후보>는 직업소개소 상담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런데 이 남자가 바라는 것은 범죄 직종에 참여하는 것이다. 상담원은 그의 부적격 사유를 계속 말하고 주인공은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범죄자와 공무원을 나란히 놓고 비틀어서 풀어낸 이야기는 조금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내 집 마련하기>란 제목만 놓고 보면 흔한 재테크 책 제목 같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흔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이 내 집은 자신의 내면에 있다. 이 집의 장점을 늘어놓는데 이 비현실적인 설명이 상당히 매혹적이다. <벌레가 사라진 도시>는 작가도 책 속에서 말했듯이 벌레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먹이 사슬 위쪽으로 이 사라짐이 이어진다. 사라진 이유는 인간이 사귀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처참한 현실인가. <세계는 살인을 꿈꾼다>는 망상에서 시작한 일이 하나의 예술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조금은 자극적이다. 그리고 화자의 행동은 돈키호테와 닮은 점이 있다. 마지막 장면은 자본에 의해 박제가 된 예술과 예술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 하늘 바람, 그녀
정민 지음 / 청옥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해를 배경으로 한 연작소설이다. 3편의 단편과 한 편의 중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작소설이라고 했지만 4편의 분위기나 소재 등이 다르다. 표제작인 <바다 하늘 바람, 그녀>의 경우 조금 모호한 느낌을 주었다면 나머지 3편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라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자연 풍광과 서정적인 묘사가 있는 연작이란 소개 글을 읽었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전에 그의 작품을 하나라도 읽은 적이 있다면 낯익은 장면들 일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바다의 빛>은 다르다.

 

세 번째 작품까지 읽었을 때만 해도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시간까지 같이 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중편 <어달, 於達 - 탄식함에 이르다, 까마귀와 통하다>를 거의 다 읽었을 때 전편에서 등장한 인물들이 카메오처럼 나와서 나를 놀라게 했다. 각각의 인물을 평면적으로 풀어내던 것이 갑자기 교차하면서 입체감을 더한 것이다. 이 입체감은 어떻게 보면 나의 착각에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분위기와 내용들 때문에 한정된 공간 속에서 이들이 만날 일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미리 예측한 잘못 말이다.

 

서울의 찜통 더위를 피해 동해행 버스에 몸을 싣는 것으로 시작하는 <바다 하늘 바람, 그녀>는 환상과 추억이 교차하는 평범한 한국 소설이었다. ‘평범한’이란 표현을 쓴 것은 이전에 읽었던 단편들과 그렇게 차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만난 두 번째 단편 <바다의 빛>은 낚시에 대한 전문성을 더하면서 개인적으로 낯설음을 전해주었다. 단순히 낚시 이야기만 풀어놓았다면 딱딱했을 텐데 동해로 오게 된 이유와 1년 동안 살면서 마주한 일들과 사람들을 잘 엮어 몰입도를 높였다. 자동차 충돌과 오팔감생이를 연결한 부분에서는 예측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 재미있었다.

 

<개의 임무>는 읽으면서 전작을 가장 많이 떠올리게 만들었다. 멍충이란 이름의 개를 화자로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처음에는 주인에게 사랑을 참 많이 받은 개라는 생각만 했다. 하지만 멍충이가 주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들려줄 때, 저승에서 15년 이상 한 주인과 함께 산 개가 해야 하는 일을 잠시 돌아와 들려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깜짝 놀랐다. 아직 읽지 않은 첫 작품 <사이공 나이트>에 대한 기대를 높여주었다고 할까. 보통 동물들을 화자로 내세워 풀어내는 훈훈하거나 사회비판적인 모습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어달, 於達 - 탄식함에 이르다, 까마귀와 통하다>는 한 여성 편집장이 갑자기 동해로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왜 그녀가 오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오면서 이전에 알던 작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그와 만나 함께 보낸 이틀 동안의 이야기다. 그냥 무난한 전개인 듯하다가 선장의 실종과 앞에서 말한 카메오들의 등장으로 살짝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 여기서 더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교차하는 만남으로 마무리해 약간의 아쉬움을 주었다. 아마 이 작품이 없었다면 이 연작단편집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여운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가 단편마다 나오는데 아직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겠다. 뭐 언젠가 알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맑은 슬픔
공광규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인 공광규를 모른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몰랐다. 책을 선택한 것은 시인의 산문집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시인들이 쓴 산문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본 것을 기록한 것이란 말을 들은 후 가능하면 읽으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 시인이 쓴 산문집은 가능한 눈길을 준다. 내가 기대했던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느낌을 그렇게 많이 받지는 않았지만 시인 특유의 표현은 늘 감탄하게 만든다. 이 책 속에 나온 시들은 나의 뇌세포와 심장을 동시에 건드리고 지나간다. 시인의 글쓰기가 쉽게라는 말처럼 다른 시보다 잘 읽힌다.

 

모두 4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부모님, 2부는 시론, 3부는 사람의 인연 등, 4부는 가족 혹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담고 있다. 이 모든 산문에는 항상 시가 한 편 이상은 실려 있다. 대부분은 그의 시지만 몇 편은 번역 혹은 인용된 시다. 자신의 시를 실을 때는 어떻게 이 시가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면서 시의 이해를 돕는다. 아마도 내가 이 시들을 평소보다 쉽게 이해한 것은 쉽게 쓴 것도 있지만 작가의 설명이 곁들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읽으면 참 쉬워 보이는데 실제 생활에서 이런 표현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눈에 선하다.

 

맑은 슬픔, 수많은 산문 중 한 편이다. 어머니와 막과자를 두고 풀어낸 이야기는 곤궁했던 시절의 기억에서 현실의 슬픔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이 살지 않아 가끔 내려가는 귀향길에도 사람이 잘만한 곳이 되지 못하는 옛집에 대한 글은 고향에 대한 애정과 반비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가슴 한 곳에 살짝 아련함을 불러온다. 나 자신도 제대로 부모님과 어울린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도, 지금 이 순간도 옛 추억의 몇 장면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나와 다른 환경과 시대에서 자란 그지만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

 

시에 대한 글은 참고할 만하다. 경험, 이야기, 거짓 없는 마음, 배움, 재미, 현재의 문제, 쉽게 쓰기 등은 그의 글쓰기 방법이자 권하는 방법이다. 시가 아니라고 해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재미난 일 중 하나가 동시를 썼고, 그림책으로 나온 것이다. 특히 시 한 편의 번역을 두고 부녀 사이에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한 것을 읽고 왜 번역이 제2의 창작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시 창작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나 작품을 말할 때 나의 눈은 반짝였다. 이해의 폭을 좀 더 넓힐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혼밥의 시대다. 물론 나의 경우는 아주 오래전부터 혼밥을 했었다. 이제는 거의 혼밥을 하는 경우가 없지만 홀로 먹는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오히려 누구와 같이 먹으러 가서 다른 선택 때문에 고민하는 것보다 오히려 나았다. 하지만 그가 얼굴반찬이란 말을 꺼낼 때 과연 일 년에 몇 번이나 가족들과 혹은 친구들과 이런 시간을 가질까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끼니를 때우는 일들로 가득한 날들이 아닌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의 사회문제에 대한 강한 참여의식은 왜 펜이 칼보다 강한지 알려주는 하나의 모범과도 같다. 시를 암송하는 노인 이야기를 읽을 때는 며칠 만에 그만 둔 하루 세 편의 시를 읽자는 시도가 떠올랐다. 그러다 하루 한 편을 바뀌었는데 이것도 곧 그만두었다. 좋은 표현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는데 왜 이렇게 게으른지.

 

한 시인의 삶을 한 권의 산문에 담는 것은 무리다. 그가 한 번에 쓴 글이 아니라 여기저기 낸 글들을 모아 새롭게 편집한 책이다. 그러다 보니 중복되는 표현이나 내용들이 자주 나온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다행이라면 그의 시가 중복되어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덕분에 한 편이라도 시를 더 읽을 수 있었다. 산을 오를 때 맨발이라는 글을 읽고는 오래전에 알고 있던 한 분이 떠올랐다. 그분도 맨발로 산을 올랐다. 개인적으로 맨발로 산을 올라갈 때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한 부분은 아주 멋지고 강하게 가슴에 울림을 주었다. 먼저 든 생각은 발이 다치는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이 산문집은 나의 기억과 추억을 되살려주고, 한 시인을 머릿속에 심어주고, 시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