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하늘 바람, 그녀
정민 지음 / 청옥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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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를 배경으로 한 연작소설이다. 3편의 단편과 한 편의 중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작소설이라고 했지만 4편의 분위기나 소재 등이 다르다. 표제작인 <바다 하늘 바람, 그녀>의 경우 조금 모호한 느낌을 주었다면 나머지 3편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라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자연 풍광과 서정적인 묘사가 있는 연작이란 소개 글을 읽었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전에 그의 작품을 하나라도 읽은 적이 있다면 낯익은 장면들 일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바다의 빛>은 다르다.

 

세 번째 작품까지 읽었을 때만 해도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시간까지 같이 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중편 <어달, 於達 - 탄식함에 이르다, 까마귀와 통하다>를 거의 다 읽었을 때 전편에서 등장한 인물들이 카메오처럼 나와서 나를 놀라게 했다. 각각의 인물을 평면적으로 풀어내던 것이 갑자기 교차하면서 입체감을 더한 것이다. 이 입체감은 어떻게 보면 나의 착각에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분위기와 내용들 때문에 한정된 공간 속에서 이들이 만날 일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미리 예측한 잘못 말이다.

 

서울의 찜통 더위를 피해 동해행 버스에 몸을 싣는 것으로 시작하는 <바다 하늘 바람, 그녀>는 환상과 추억이 교차하는 평범한 한국 소설이었다. ‘평범한’이란 표현을 쓴 것은 이전에 읽었던 단편들과 그렇게 차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만난 두 번째 단편 <바다의 빛>은 낚시에 대한 전문성을 더하면서 개인적으로 낯설음을 전해주었다. 단순히 낚시 이야기만 풀어놓았다면 딱딱했을 텐데 동해로 오게 된 이유와 1년 동안 살면서 마주한 일들과 사람들을 잘 엮어 몰입도를 높였다. 자동차 충돌과 오팔감생이를 연결한 부분에서는 예측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 재미있었다.

 

<개의 임무>는 읽으면서 전작을 가장 많이 떠올리게 만들었다. 멍충이란 이름의 개를 화자로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처음에는 주인에게 사랑을 참 많이 받은 개라는 생각만 했다. 하지만 멍충이가 주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들려줄 때, 저승에서 15년 이상 한 주인과 함께 산 개가 해야 하는 일을 잠시 돌아와 들려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깜짝 놀랐다. 아직 읽지 않은 첫 작품 <사이공 나이트>에 대한 기대를 높여주었다고 할까. 보통 동물들을 화자로 내세워 풀어내는 훈훈하거나 사회비판적인 모습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어달, 於達 - 탄식함에 이르다, 까마귀와 통하다>는 한 여성 편집장이 갑자기 동해로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왜 그녀가 오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오면서 이전에 알던 작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그와 만나 함께 보낸 이틀 동안의 이야기다. 그냥 무난한 전개인 듯하다가 선장의 실종과 앞에서 말한 카메오들의 등장으로 살짝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 여기서 더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교차하는 만남으로 마무리해 약간의 아쉬움을 주었다. 아마 이 작품이 없었다면 이 연작단편집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여운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가 단편마다 나오는데 아직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겠다. 뭐 언젠가 알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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