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얘기 계속해도 될까요?
니시 카나코 지음, 전경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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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름이지만 그녀가 쓴 소설 제목을 들으면 금방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가까이는 2015년 나오키상을 수상한 <사라바>가 있고, 조금 더 가면 <노란 코끼리>가 먼저 떠오른다. 이런 작품을 쓴 작가의 에세이였기 때문에 선택한 것도 있지만 “풋풋한 시절의 니시 가나코는 말리고 싶을 정도로 솔직하며, '웃기고 싶다'는 패기와 거침없는 자신감으로 문장과 문장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닌다.”라는 소개가 결정적이었다.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데는 역시 앞에서 말한 소설들을 읽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뭐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는 그녀의 소설도 이런 종류의 웃음으로 가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되지만.

 

4개의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진행한다. 실제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어 낸 것인데 시간 순으로 편집된 것 같지는 않다. 읽다 보면 작가의 나이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에세이, 한자로 수필이라고 하는 이 장르를 작가는 정말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쓴 것 같다. 잡다한 신변잡기도 나오고, 맥주와 프로레슬링 사랑도 나오고, 자신의 어수룩한 삶의 에피소드도 적지 않게 다룬다.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쓴 문장도 자유분방하다. 문체도 자유롭다. 반복되는 단어를 이용해 나에게 웃음을 준 것도 적지 않다. 너무 자신의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주절거림이 집중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때는 나의 머리가 맑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기는 하다.

 

자신의 일상을 재밌게 쓴 글이다 보니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다. 특히 친구 Y나 프로레슬러 이노키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술과 여행과 고양이는 아주 중요한 조연들이다. 술꾼의 기본자세를 제대로 보여주는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시는 행동에 대한 멋진 핑계는 한때 내 주변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던 이야기다. 여행에 대해 쓴 글은 한 편으로 끝나지 않고, 두세 편으로 계속 이어지는데 아주 평범한 여행자의 모습만 가득하다. 작가 특유의 과장법과 재미난 표현이 없다면 뭐야! 하고 놀랄 정도랄까.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고, 도전하는 모습 또한 여행자의 일상이다.

 

일상을 가볍게 다루는데 표현은 과장되어 있다. 백화점 화장실 에피소드를 보면 극한에 몰린 인간의 심리 상태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프로레슬링을 보러 가려고 표 2장을 2만 엔에 구입했는데 다른 사람은 공짜표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했을 때 그녀의 반응은 무한긍정으로 변하면서 프로레슬링에 강한 애정을 보여준다. 이 긍정은 말투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를 보면 또 사라지게 된다. 뽀뽀와 H한다는 표현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지적한 부분은 일본의 성에 대한 2중 잣대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자주 등장하는 ‘대박’이란 단어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설명할 때 그 많던 ‘대박’, ‘완전대박’이란 단어가 얼마나 진심이 담긴 표현인지 알 수 있다.

 

작가의 귀는 팔랑귀인 모양이다. 가전에 대한 친구의 소개를 너무 넙죽넙죽 받아들이며 전자제품을 살 때 이것이 잘 드러난다. 방문 판매하는 사람이 와서 물건을 팔면 잘 사줄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가전과 가구 중 상당수는 돈이 없을 때 구하거나 산 싸구려다. 그렇다고 그 물건들에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귀가 얇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이야기가 많은 데 그중에서 서른 살 성인식 이론은 특히 그렇다. 아마도 나의 아동틱한 행동들 때문에 더 공감한 것인지 모르겠다. 만약 이 책에서 인생의 심오함을 찾는다면 글쎄 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이렇게 비틀고 과장하고, 때로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보고 싶다고 추천하고 싶다. 제목에 대한 답변으로 마지막을 대신한다. ‘앞으로도 계속 해주세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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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넥스트 도어
알렉스 마우드 지음, 이한이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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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하고 잔혹한 소설이다.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이 연쇄살인마라는 설정이 그렇게 낯설지 않지만 작가는 아주 사실적인 묘사로 잔혹함과 긴장감을 높였다. 단순히 잔인한 묘사만 가득했다면 싸구려 호러물이 되었을 테지만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공감대를 형성했다. 좋은 아파트가 아닌 곳에 살 수밖에 없는 그들의 내면을 충실하게 그려내면서 조금씩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여기에 탐욕적인 집주인이 등장하여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사람들의 현재를 압박한다. 그리고 사건은 언제나 그렇듯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터진다.

 

셰릴에게 사전청취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셰릴은 가출소녀다. 그녀의 짧은 답변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3년 전 리사가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던 사건으로 넘어간다. 불법자금을 세탁하던 곳에서 우연히 본 폭력이 오랫동안 그녀를 달아나게 만든다. 물론 그곳에 훔친 돈이 그들의 추적을 더 끈질기게 만든다. 여러 나라를 떠돌며 토니 일당을 피해다니던 그녀가 런던으로 돌아온 것은 엄마 때문이다. 치매에 다른 병까지 걸린 엄마를 홀로 내벼려 둘 수 없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왔다. 당연히 머물 곳은 그 어떤 신고도 필요없는 은밀한 곳이다. 이렇게 그녀는 이 무시무시한 아파트의 입주자가 되었다.

 

리사, 가명으로 콜레트가 들어온 방의 주인은 니키였다. 하지만 그녀는 연쇄살인마에 의해 죽었고, 그의 연인 중 한 명이 되는 중이다. 방 주인이 며칠 방을 비우고, 월세도 내지 않자 집주인은 다른 세입자를 찾았다. 비싸지 않지만 깨끗한 집도 아니다. 이 방을 자주 들락거리는 소녀가 있었다. 셰릴이다. 그녀는 니키가 준 열쇠가 있어 쉽게 들어온다. 누군가가 자신을 뒤쫓는다는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는 콜레트에게 그녀의 등장은 엄청 놀라운 일이다. 그들의 첫 만남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이후 오랫동안 지하에서 싸고 안정적인 월세로 생활하는 베스타와 이란 망명자인 호세인까지 한 명씩 천천히 등장한다. 이들 이외에 공무원인 토머스와 늘 음악을 털어놓는 음악 선생이 한 명 더해 모두 여섯 명이 살고 있다.

 

이 여섯 명은 서로 교류를 잘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교류가 많은 사람은 베스타와 호세인 정도다. 텔레비전이 없는 셰릴이 니키의 방에 자주 온 정도고 다른 사람들은 겨우 인사하는 정도다. 처음에는 이 세 명의 남자 중 누가 그 끔찍한 연쇄살인마일까 하고 추측했었다. 이 추측은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읽으면 조금씩 드러난다. 그러다 하나의 사건이 펑 터진 후 그 이름을 바로 공개한다. 이때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랫동안 여자들을 죽인 후 미이라처럼 만들어 온 이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들려준 끔찍하고 잔혹한 이야기는 대단히 과학적이다. 건조하게 사실을 설명할 때 그 잔인함을 강해진다.

 

사실 이 소설은 누가 연쇄살인마인지 찾는 추리물이 아니다. 언제 이 살인마에게 같은 아파트 사람들이 죽을지 모른다는 긴장감으로 채워놓은 소설도 아니다. 다만 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와 삶의 지리멸렬함을 보여주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셰릴과 리사 두 명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핵심적인 주인공이다. 보호소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도둑질로 월세와 생활비를 만드는 셰릴이나 검은 돈을 훔친 후 늘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긴장을 느끼는 리사가 흐름을 주도한다. 그리고 이 둘의 좋지 못한 만남은 자신의 방에 도둑이 든 후 이웃들을 불러 모은 베스타에 의해 계속 이어진다. 이때부터 호세인을 포함한 이 네 명은 작은 유대감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소설을 읽다가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베스타의 긴 월세 계약이다. 가끔 유럽 소설을 읽을 때면 장기계약자들을 만난다. 부러운 현실이다. 하지만 이 장기계약이 그녀에게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삶의 반경을 제한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게 만든다. 이곳을 자주 찾고, 그녀를 돕는 호세인은 아직 망명자 신청이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잘생긴 외모는 늘 불안감을 느끼는 콜레트에게 잠시나마 훈풍이 불게 만든다. 일상에서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은 역시 콜레트다. 누군가 자신을 좇고 있다는 느낌과 그들 중 한 명을 본 것 같은 느낌은 연쇄살인마와는 다른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불안과 권태와 외로움이 겹쳐지는 이곳에 하나의 사건이 유대감을 강화시키고, 무시무시한 현실을 뛰어넘는 계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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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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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다. 작년부터 이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두 편 모두 나의 이해 수준을 넘었다. 이번 수상작의 경우 솔직히 말해 읽는데 힘이 들었다. 화자들이 알파벳 B, D, X, Y, Z 등으로 표기되어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기 전에는 누군지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본명이 아닌 익명으로 등장한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조각난 파편들이다. 하나의 분명한 사건을 다루면서 뚜렷한 실체를 찾아가는 방식이 아니다 보니 읽는 동안은 뭐지? 하는 기분이 더 강했다. 마지막에 와서야 이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작가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났다. 불친절한 소설이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D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처음 이 문장을 읽을 때만 해도 이 사라진 사람들을 찾는 과정을 다루고 있겠구나, 하고 섣부른 판단을 했다. 그녀가 가진 과거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면서 한 편의 멋진 스릴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 소개에 스파이 소설이란 부분이 있어 더 기대했는지 모른다. 물론 스파이 소설이지만 스파이 소설이 아니라는 평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부분에서 기대를 접지 못한 것은 이어서 등장한 기억을 잃는 남자와 자신이 스파이라고 말하는 X, Y의 등장 때문이다.

 

15년 동안의 기억을 잃은 남자가 X다.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기억의 빈 공간을 발견한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이 빈 공간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루거나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파고들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관심이 없다. 다시 깨어난 후 스파이로 변신하고, 현재의 자신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지시를 받은 스파이 Y가 있다. 과거를 조작해 대학 동기라는 거짓말로 그에게 다가왔다. 진짜 스파이인 Y는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담당한다. 스파이 세계와 X와 소설가 Z 등을 이어주는 존재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주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듯한 Z가 보여준 몇 가지는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 재미난 부분은 Z가 문학에 사용하는 혁명이란 단어가 이 세계에서는 금기시 되어 있다. 이 부분이 현실을 반영하는 듯하면서 그 시대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여기에 Y의 상사인 B가 등장하여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스파이 세계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다. 그가 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이 소설이 마지막에 보여주는 패자의 길이 바로 그 길이다. 바위에 계란 던지기 같은 노력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거창하게 포장하지도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는다.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스파이들이 등장하지만 일반적인 스파이 소설이 아니다. 발달한 문명은 개인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시 도구를 피해 다녀야 한다. 정보는 통제되고, 통제된 정보는 개인의 삶을 조금씩 지배한다. 사람들은 거대한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한다. 그 변화가 끝난 후에는 너무 익숙해져 바꿀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런 세계에 혁명이라니. 얼마나 위험하고 불순한가. 하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스파이의 삶에서 물음은 필요 없다. 시대가 변하면서 더 강해진 통제수단이다. 달아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어느 부분에서는 답답하다. 은퇴한 스파이가 헌책방 주인으로 등장했을 때 여유를 느낄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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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 배달
김기택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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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첫 산문집이다. 시인 김기택을 잘 모른다. 그의 시를 한두 편 정도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을 테지만 이름은 조금 낯설다. 몇 명의 시인을 제외하면 사실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시인의 첫 산문집을 선택한 것은 시인의 산문집이란 것과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의자고행을’이라고 사무원을 표현한 시 때문이었다. 실제 이 문장을 읽을 때 나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느꼈다. 시인이 우리의 삶을, 사물을 어떻게 보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실린 51편의 시는 시인이 2010년 5월부터 1년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임명한 문학 집배원이었던 때 즐겨 읽거나 좋아하는 시에 짤막한 감상을 붙여 보낸 것들이다. 물론 이 산문집이 나오면서 새롭게 ‘감상에다가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나 체험적 시론, 삶에 대한 이런저런 잡생각들을’덧붙였다. 덕분에 한 편의 시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의 경험을 떠올려주는 이야기도 있고, 나의 이해를 넘어선 시들도 가끔 보였다. 하지만 이런 시와 산문의 결합은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한 카페에서 시를 올리고 여기에 짧은 감상을 덧붙였던 기획이 살짝 떠올라 그립기도 했다.

 

이전에 문학 집배원에서 온 글들을 그냥 대충 읽었던 기억이 있다. 정독하는 경우도 있지만 웹으로 오게 되면 그냥 대충 보고 삭제한다. 시의 경우는 왠지 모르게 더 집중이 되지 않는다. 아직 아날로그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그리고 51편의 시와 시인들 중에서 낯익은 시인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늘 이런 시 모음집을 읽으면 낯선 시인들을 만난다. 그러다 몇 명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물론 휘발성 기억은 며칠 가지 못한다. 반면에 오래전 멋모르고 읽었던 시인들을 만나면 괜히 반갑다. 당연히 이런 시인도 몇 명 되지 않는다. 사놓고 묵혀두고 있는 많은 시집을 생각하면 조급증이 생기기도 한다.

 

나에게 시는 참 어렵다. 얼마 전에 읽은 시인의 산문집 한 권으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는데 이번에 다시 그 자신감이 사라졌다. 날림으로 읽고, 대충 공부한 탓이다. 이 산문집을 사계절로 편집되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탄력의 통쾌함, 나의 세상의 중심이다, 사랑에는 기교가 필요하다, 난폭한 슬픔 길들이기 등으로 작은 제목을 정했다. 읽기 편한 것이 봄이라면 겨울의 시는 무심코 읽다가 시인의 해석을 읽고 다시 보면서 그 난폭함에 놀란다. 정제된 단어와 문장이 만들어낸 시어들은 왜 시인들이 사물을 다르게 보는지 잘 보여준다. 박주택의 <국경>, 장경린의 <퀵 서비스>, 유홍준의 <가족사진>, 정철훈의 <병사들은 왜 어머니의 심장을 쏘는가> 등이 특히 그렇다.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면 이면우의 <거미>가 떠오른다. 지독한 외로움이라고 저자는 말했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나이듦이다. 거미가 지은 집을 두로 나이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 떠올랐다. 몇몇 시는 나의 오독인지 모르겠지만 시인의 해석과 달랐다. 경험의 차이 탓일까? 아니면 제대로 읽지 않은 탓일까?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나의 시 세계도 조금은 넓혀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정병근의 <물방울, 송곳>은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물방울이 오랫동안 송곳 역할만 했다고 생각한 나에게 ‘자신의 고통을 떨어지기 직전의 물방울에 담았다’고 했을 때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회사원으로 일하며 시를 쓴다는 것의 어려움을 말한 에피소드 중 영수증과 돈에도 시어들을 적었다는 부분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제는 메모지를 들고 다닌다고 하지만 출퇴근길에 떠오른 시상을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잘 드러났다. 물론 이것으로 한 편의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갈고 다듬어 한 편의 시로 만들어야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옛날에 뚝딱 시를 읊던 시인과 퇴고의 고사가 떠올랐다. 시와 산문의 결합은 왠지 모르게 산문에 더 눈길이 간다. 시를 좋아하고 쉽게 이해한다면 다르겠지만 나처럼 이해의 폭이 좁은 사람에게는 산문이 더 쉽다. 산문으로 시를 이해하려고 하는데 저자의 감상이 나의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는 조금 난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편집은 시를 쉽게 접하게 만든다. 시인이 쓴 산문집이라면 더욱 더 반갑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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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골사람 - 일상이 낭만이 되는 우연수집가의 어반 컨추리 라이프
우연수집가 글.사진 / 미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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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수집가란 블로거를 잘 모른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홍대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전원주택에서 사는 사람의 이야기란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어디지? 하고 생각했다. 읽으면서 김포라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가까운 곳에 이렇게 멋진 집이 이렇게 저렴하게 나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실 김포는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다. 가끔 지나간다. 그런데 요즘 고층 아파트만 도로에서 보인다. 물론 내가 잘 다니지 않는 길에는 저자가 살고 있는 곳과 비슷한 곳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으로 올 때까지만 해도 ‘나도 한 번!’ 하고 살짝 꿈꿨다. 하지만 이 집의 계약이 끝나고 재개발이 된다는 사실을 읽고는 참으로 아쉬워했다. 뭐 좀 더 발품을 팔면 비슷한 곳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의 게으름이 이것을 쉽게 용납하지 못한다.

 

도시골사람. 이 단어는 저자가 만들어낸 조어다.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출퇴근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요즘처럼 대부분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고,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저자처럼 자영업을 하거나 프리랜스가 아니라면 더욱 어렵다. 직장인에게 이런 곳에 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의지와 열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도시의 일상에 찌들려 살아간다면 한 번쯤은 고려할 만한 삶이다. 물론 살면서 잘했다는 생각과 내가 미쳤지, 라는 생각이 수없이 교차할 것이다. 그러다 대부분은 떠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응해서 산다면 이 책의 저자처럼 많은 것을 자연에서, 삶에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름처럼 저자가 김포에 내려와 살게 된 것은 우연이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후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차로 홍대 15분이지만 그는 운전을 하지 못한다. 버스는 빙 돌아 한참 시간이 걸린다. 이 시간을 그는 아주 충실하게 사용했다. 글 속에 나온 것처럼 대부분 사람들은 게임이나 카톡 같은 것으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이전에 출퇴근 전철을 타면 책을 꺼내 읽었는데 요즘은 운전을 하면서 팟캐스트를 주로 듣다 보니 나의 시간이 많이 사라졌다. 출퇴근 시간이 짧아졌고, 생각할 여유도 많이 사라졌다. 이런 시간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면 어떤 좋은 일이 생길까 하는 물음에 하나의 모범 답안 같다.

 

김포에 내려와 넓은 텃밭을 가꾸며 사는 그의 일상은 여유롭다. 새로운 동거인과 낯선 공간에서의 삶은 불안감을 주지만 그는 의외로 잘 지낸다. 읽으면서 주변 친구들이 생각보다 자주, 혹은 많이 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친구 중에 이런 집에 산다면 생각보다 자주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배우자와 친구의 양해가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친구의 두 딸이 생각보다 잘 노는 것을 보고 나도 기분이 좋았다. 예전에 후배 아이들이 아주 재밌게 자기들끼리 노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일상을 블로그나 SNS에 올린 글을 가볍게 적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뒤로 가면서 자신의 철학을 조금씩 녹여내는 모습을 보고 바뀌었다. 자신의 꿈을 위해 편안한 방식의 삶을 버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려는 그의 모습이 어떻게 보면 불안하고 무모해 보이지만 그의 현재는 분명히 나의 현재와 미래보다 알차고 재미있어 보인다. 그의 생각들이 하나씩 흘러나올 때 휙휙 넘어가던 이야기들이 집중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아주 깊은 곳으로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공감하고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것이었다.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 세계를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늘 쫓기는 듯한 삶을 사는 나에게 잠시나마 여유를 주었다.

 

가볍게 읽기 좋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 사진작가가 찍은 것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이야기와 잘 맞아 떨어진다. 다만 사진 밑에 쓴 글자들의 색깔이 노안 때문인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늦은 밤 형광등에 반사된 글자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아쉬운 부분이다. 솔직히 그는 성공한 사람이다. 파워블로거에 연예인을 몇 명 안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비록 그 돈이 엄청난 부가 아니고 늘 엑셀로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수준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의 열정과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몇몇 부분에서는 개인적으로 과장된 것처럼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여유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배우고 움직이는 것을 즐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소소한 즐거움과 재미가 많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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