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소년 만화시편 1
서윤후.노키드 지음 / 네오카툰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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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만화의 만남이다. 낯설다. 출판사는 만화시편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런 형태의 출판물이 다른 곳에서 나왔는지 검색하니 잘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장르라는 단어가 먼저 보인다. 이런 형태의 결합으로 책으로 나온 것이 처음이지만 시 한 편을 만화로 그려낸 것이 완전히 낯설지는 않다. 시에 대한 애정이 만화가만의 해석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시인은 이 책을 만화가의 작품이라고 한 것이다. 공감하는 부분이다. 책을 읽다가 시어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역시 만화가가 그려낸 공간과 작은 대사들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만화를 보는 것도, 시를 읽는 것도 방해한다. 최소한 나의 경우는 그랬다.

 

편집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만화시편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만화, 시 전문, 시인의 코멘터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독자가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시 전문, 만화, 시인의 코멘터리라면 더 쉽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과정이라면 시가 어떻게 이런 만화로 표현되었는지 좀 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을까, 아니 만화 속에서 시를 찾는 노력을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아마도 아직 낯선 장르이다 보니 이런 사소한 부분에 더 눈길이 가는 모양이다.

 

만화시편 속에 담긴 시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모두 열아홉 편이다. 시집으로 치면 많지 않지만 이 모든 시들이 만화로 재탄생하는 것이라면 어떨까? 단편 만화 열아홉 편을 본 것이다. 이렇게 따지면 적은 수가 아니다. 실제로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도 미리보기로 본 <독거 청년>을 봤기 때문이다. 시를 만화가가 이렇게 멋진 만화로 만들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고, 다른 작품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만화와 시의 결합만으로 이 작품들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인의 코멘터리가 이 부족한 이해를 조금 더 도와줬다. 그렇다고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다.

 

많은 시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역시 소년이다. 이들이 자라 청년이 된 경우다. 나의 기억과 추억을 불러오는 장면들이 가끔 보이지만 다른 세대다 보니 많은 부분이 낯설다. 코멘터리 중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시인의 시집에 실리지 않은 작품들이 이 만화시편에 실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무 살에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럼 시집은? 하고 검색하니 2016년 2월에 처음 나왔다. 등단부터 시집 출간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신춘문예로 등단했던 작가들이 제대로 시집 한 번 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늦지 않았다. 다른 에세이들도 보이니 더 왕성한 활동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가 재료가 되어 만화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아직 나에게는 이해 진행중이다. 이 말은 앞에서 말한 순서의 문제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만화를 새롭게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더불어 시에 대한 감상을 더 깊숙이 할 필요도 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한다면 여유 있는 독서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즉각적으로 와 닿은 만화는 <우물관리인>이다. 시와 만화의 연결을 만화가의 상상력으로 잘 채웠다. 시어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가끔 다가오는데 이렇게 만화시편으로 나오니 나의 이미지가 조금은 사라진다. 어떤 만화에서는 와! 하고 감탄하는 경우도 있지만. 언제 시간 내어 시인의 시집을 따로 읽고, 만화가의 만화도 따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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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탈리 아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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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상한 것보다는 조금 더 편안하게 읽었다. 이전에 이 출판사에서 나온 프랑스 문학상 수상작을 아주 힘겹게 읽은 적이 있기에 조금 걱정했다. 이 작품도 2015년도 메디치상 수상작이다. 이전에도 메디치상을 받은 작품들을 몇 권 읽었지만 그렇게 힘겨웠던 적은 없다. 아마도 이 책을 선택한 것도 그런 기억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표현해서 이 책 쉽지 않다. 구성도 특이하다. 현대의 베레니스가 티투스와의 실연을 프랑스 극작가 장바티스트 라신(1639~1699)의 전기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실제로 도입부와 중간의 아주 작은 부분과 마무리 장을 제외하면 베리니스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언제 베레니스가 나올까 기다렸다.

 

라신. 이름은 한두 번 들어본 것 같다. 몰리에르를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에 반해 그의 이름이 조금은 낯설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라신이란 성보다 장이란 이름으로 계속 나온다. 무식한 나는 장이란 아이가 누군지 모르고, 시대로 잘 모른 상태에서 계속 읽었다. 그러다 나의 시선을 끄는 장면이 나왔다. 문법과 라틴어 번역에 대한 장의 이해와 열정이다. 하나의 문장을 다듬기 위해 그가 어떤 노력과 열정을 바치는지 볼 때 감탄하게 되었다. 중국의 퇴고 고사가 떠오른다. 좋은 번역가 혹은 작가는 이렇게 한 문장에 자신의 혼신을 싣는구나 하고. 이렇게 장의 성장과 그 세계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장은 어릴 때부터 수도원에서 자란다. 이 수도원이 어떤 곳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수도원의 모습과 조금 다른 것 같다. 이 수도원에서 그는 라틴어와 프랑스어 문법 등을 배운다. 그리고 아몽을 만난다. 그의 라틴어 해석은 다른 학생보다 월등하고 선생들보다 나아 보인다. 언어에 대한 그의 이해와 열정은 수도원 안의 공간이 좁아 보인다. 더 많은 텍스트를 원하지만 수도원과 선생은 신에 대한 찬양이 없는 텍스트를 금지한다. 더 넓은 세계로 나가고 싶다. 그러다 파리로 떠난다.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경험을 한다. 살롱, 여자, 연극, 문학 등이다. 그가 쓴 시 한 편이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몰리에르가 희극으로 왕을 사로잡았다면 장이 선택한 길은 비극이다. 무명의 극작가는 연봉도 적다. 하지만 그의 열정과 노력은 그를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옮겨가게 만든다. 문장을 만들고, 시어를 다듬는다. 왕을 찬양하고, 더 좋은 시어를 쓴다. 자신의 쓴 문장을 여배우가 제대로 읊조리게 계속 훈련시킨다. 작은 실패가 있었지만 자신의 경쟁자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간다. 이 과정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잃기도 하고, 자신의 꼬투리를 잡는 무리도 만난다. 처음 경험했던 신비로운 여체는 이제 그의 일상이 된다. 17세기 절대왕정의 프랑스는 이런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작가는 이 흐름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장의 나이도 알려주지 않는다. 얼마나 시간이 걸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는지도. 독자는 작가가 보여주는 문장 속에서 이미지를 만들고, 지우고, 다시 만든다. 어떤 부분에서 너무 간결하고, 어떤 부분은 깊은 곳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덕분에 단숨에 책을 읽는 것은 무리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나의 집중력이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되지 않는다. 제목과 책소개에 대한 오해는 계속해서 티투스와 베레니스를 과거 속에서 이해하게 만들었다. 로마가 실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하지 않았다. 도입부에 분명하게 나오는데도 말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라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더불어 누군가의 실연이 한 작가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와 재해석을 통해 작품으로 발전한다면 왠지 장려(?)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긴다. 책을 읽으면서 최근 나의 문장이 조악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살짝 반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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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로드 모중석 스릴러 클럽 42
로리 로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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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상 최우수신인상과 최우수장편상을 모두 거머쥔 작가의 데뷔작이다. 이 작품으로 작가는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했고, 4년 뒤 다른 작품으로 최우수장편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두 상을 수상한 작가는 처음이라고 한다. 이 작가 이전에 이 두 상을 모두 수상한 작가는 단 두 명뿐이었다고 한다. 언제나처럼 이런 기록은 시선을 끈다. 영미권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어쩔 수 없는 유혹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소설의 앞부분은 매끄럽게 읽히지 않았다. 오히려 더뎠다. 불충분한 설명과 상황은 답답하게 다가왔다. 그러다 중반 이후부터 긴장감이 고조되고,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아서 스콧은 60년대에 발생한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 때문에 25년 전 떠나온 집으로 돌아간다. 아서의 시선으로 시작하지 않고 그의 아내 실리어의 시선으로 문을 연다. 어둠 속을 달리는데 남편의 앞차가 보이지 않는다.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캔자스 주의 한 시골 마을에 있는 시댁으로 차를 몰고 온 것이다. 어둡고 굽은 길에는 텀블위드들이 굴러다니고, 차는 뭔가를 친 것 같다. 사람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힘겹게 멈춰 선 차 밖으로 나오니 저 앞에 남편 차의 후미등이 빤짝인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 이제 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사람의 심리를 압박하고 긴장하게 만드는 일들이 생긴다.

 

작가는 한 사람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지 않는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낸다. 하지만 1인칭 시점이 아니다. 이 차이가 처음에는 조금 적응하는데 어려웠지만 읽다 보니 금방 적응했다. 소설 속에서 주요한 인물들은 실리어와 아들 대니얼과 막내딸 애비와 고모 루스 정도다. 물론 사건을 만들고, 다른 사람과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인물은 레이 고모부나 아빠인 아서 등이 있다. 이들의 감정 묘사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월등이 적다. 이 시대에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자들은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기보다 타인이 던져 준 이야기에서 비롯한 상상력에 의해 더 많은 영향력을 받는다. 이 때문에 독자가 감정이입을 많이 하게 되면 더욱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평온해야 하는 시골 마을임을 감안하면 따분하고 지루해야 하지만 작가는 잠시도 독자를 편안하게 놓아두지 않는다. 가장 먼저 아서가 25년 동안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사건이 있고, 레이 고모부의 가정 폭력이 있다. 여기에 소녀 줄리앤의 실종이 있다. 아서의 딸인 에비는 25년 전 죽었던 이브 고모와 꼭 닮았고, 줄리앤의 외모도 이와 비슷하다. 이 죽음과 실종은 또 다른 사건을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긴장감을 불러온다. 실종된 줄리앤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이 소녀의 실종을 레이 고모부 탓이란 생각을 한다. 아내를 때리는 남자, 술에 늘 취해 있는 남자란 설정이 이 의문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과거의 죽음과 현재의 실종이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은 모두 틀렸다. 그리고 아직 성당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마을에서 루스 고모가 이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레이의 아이까지 임신한 상태에서는 더욱. 읽으면서 가장 분노하게 만든 인물 중 한 명이 신부다. 자신의 종교관 때문에 한 여성을 위험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평온해 보이는 마을의 수면 아래에 얼마나 추악하고 무서운 일들이 잠겨 있을지 모른다. 읽을 때 느낀 분노와 놀라움은 이야기가 마지막에 도달할 때가 되면,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 도착하면 더 많은 생각과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가득해진다.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한 편의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대니얼의 육체적 정신적 변화는 아주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아빠 아서가 분노해 떠나야 했던 이유가 드러났을 때, 그날부터 현재까지 그다지 성장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대니얼은 친구를 때리고, 죽음을 마주하면서 분명하게 성장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개인적인 큰 상처를 남겼다. 에비의 퇴행과 외톨이적인 삶과 대비된다. 이런 모든 과정들은 심리적인 긴장감으로 이어진다. 불편함과 짜증과 두려움 등이 겹쳐지는 장면들로 채워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작가가 충격적이면서도 능청스럽게 알려주는 사건들의 진실은 또 다른 생각의 꼬리를 물게 만든다. 읽을 때보다 그 후에 더 많은 것을 남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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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철도 분실물센터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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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역 분실문센터에 펭귄이 살고 있다고?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이 의문은 혹시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먼저 품게 만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펭귄이 살고 있는 것이 맞고, 판타지 소설은 아니다. 이 놀라운 사실이 현실에서 가능한가 하는 부분은 논외로 치고, 이야기에 집중하자. 도쿄 인근 바닷가 공장지대에 자리한 무인역 야마토기타 여객철도 나미하마선 유실물 보관소에 이 펭귄이 살고 있다. 직원으로 빨간 머리의 역무원이 근무한다. 그럼 이 펭귄이 말이나 보관소 일을 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완전히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이곳에 살면서 철도를 타고 다닌다. 이 때문에 펭귄철도라는 별명을 얻었다.

 

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모두 감성을 자극하는데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출 줄을 안다. 작가는 과하게 감성을 자극하거나 섣부른 예상을 결론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책임하게 각각의 이야기를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한 편 한 편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 속에 이들을 잠시나마 다시 등장시켜 이들이 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임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비록 그들이 서로를 인식하거나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지만 말이다. 현실에서 이웃 사람과 인사를 나누기 전에는 그들도 스쳐지나 가는 행인의 일부분일 뿐이다. 각자가 누구 한 명 혹은 한 장소와 인연을 맺고 있다고 해도. 이 소설 속 인물들의 경우는 당연히 분실물센터와 역무원 소헤이다.

 

기본적으로 네 편은 모두 사랑을 이야기한다. 첫 편의 <고양이와 운명>은 11년 동안 키운 고양이의 유골을 분실한 교코 이야기다. 메신저백 속에 유골함이 있었는데 철도에 놓고 내렸다. 이 백을 찾으려고 하는데 어떤 남자가 똑같은 모양을 말하고 난 다음에 수령해 갔다고 한다. 다행이 연락이 되어 그 남자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이 함께 만난 곳은 분실물센터다. 이 장소가 어떤 특별한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이 두 남녀가 함께 자신의 아픔을 공유할 시간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고양이를 만났던 장소에 가고, 그날의 기억이 밀려온다. 고백하지 못한 사랑, 인식하지 못한 사랑 등의 감정들. 더불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에 역무원 소헤이의 정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작은 이벤트까지.

 

<팡파르가 들린다>는 은둔형외톨이가 어쩔 수 없이 세상으로 나와 경험한 일을 다룬다. 게임 세계에서 자신을 돌봐준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 부적처럼 생각한 소중한 편지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분실물센터에서 너무나도 변해버린 모습의 그녀를 만난다. 함께 현실에서 미션을 수행한다. 언더아이돌 콘서트장까지 간다. 목적은 단 하나 이제 게임계정을 없애려는 인물의 마지막 미션을 도와줄 게임 아이템 때문이다. 언더아이돌 콘서트장을 보면서 몇 년 전 사진 한 장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한 아이돌이 생각났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겐의 그녀가 아이돌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예쁜 외모라는 것을 계속 말했기에 쉽게 수긍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이야기는 또 다른 삶의 이면을 보여준다.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그리고 거짓말을 할 때나>는 겐이 마지막 배웅을 하려고 했던 게임유저인 지에가 주인공이다. 그녀도 철도에서 뭔가를 분실했다. 그리고 임산부 배지를 주었다. 그런데 이 배지가 문제다. 남편이 임신했다고 오해한 것이다. 뛰어난 게이머였던 그녀가 게임을 그만 둔 것도 남편의 시간 낭비라는 한 마디 때문이다. 마트에서 일하는 남편의 귀가 시간은 늦고, 그는 자신이 목표한 바를 향해 앞으로 나가는 남자다. 임신을 축하한다. 열의를 다한다. 이 거짓말을 어떻게 해명할까 의문을 품는데 예상하지 못한 결론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던 것 같은 결혼 등에 얼마나 자신의 의지가 있는지, 남편에게 기대었는지 등.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남편의 말이다. 자신의 삶과 아기로 인한 감정의 혼란. 이런 사실적인 문제를 작가는 자연스럽게 풀어놓는다.

 

<스위트 메모리스>는 개인적으로 눈시울을 많이 붉히게 만들었다. 상실의 고통과 그리움과 사랑이 아주 자극적으로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펭귄이 어떻게 분실물센터에 오게 되었는지, 역무원 소헤이의 정체가 무엇인지 등이 드러난다. 당연하게도 살짝 예측했던 것들이 단숨에 깨어진 것도 사실이다. 재미있는 것은 앞에 나온 인물들이 이 이야기 속에서 모두 등장한다는 것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위화감은 금방 사실을 알려준다.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감정을 건드리고 흔드는 한 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연이다. 자식을 키운다면 더 분명하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팥빵에 이렇게 눈시울을 붉힐 줄은 정말 몰랐다. 아마 한 동안은 팥빵을 보면 이 이야기가 떠오를 것 같다. 가장 많은 분량이지만 그 속에 반갑게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현재가 행복해 보여 읽으면서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런 분실물센터가 있다면 일부러 물건을 잃어버린 후 찾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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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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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공지영의 소설을 읽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후 처음이다. 집에 보면 <도가니>, <별들의 들판> 같은 소설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같은 에세이도 있는데 왠지 쉽게 손이 나가질 않았다. 한국 여성 작가 중에서 베스트셀러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작가인데 왜 그랬을까? 아마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으면서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을 흘리면서 괜히 멀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도가니>의 경우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더 손이 나가지 않았다. 나의 분노와 슬픔이 나를 잠식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른 매체를 통해 이미 많은 정보를 들은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요즘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잘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이 대부분이다. <별들의 들판>이 출간된 연도를 확인하니 2004년이다. 13년만의 단편소설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발표연도를 보면 2편을 제외하면 모두 2004년 이전이다. 정확하게 정보를 취합하지 않았지만 2004년 이후 발표된 단편이 겨우 2편이란 것인지 살짝 의문이 든다. 그녀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정말 의외다. 아니면 활발한 사회활동 덕분에 충분한 소설 쓰기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일까? 장편이 몇 년에 한 편씩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나도 과작이다. 그리고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나의 기억이 왜곡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왜냐면 내가 알고 있던 공지영의 소설과 다른 듯하기 때문이다.

 

<월장 춘구>는 2006년 발표작이다. 개인의 경험이 소설 속에 잘 녹아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시간의 흐름이다. 단순히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미래가 엮여 시간의 뫼비우스 띠를 만든다. 소설 첫머리가 뒤에 나오는 이야기 속에서 다시 처음인 것처럼 나온다. 이런 구성이 완전히 새롭지는 않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그녀의 삶과 글쓰기의 어려움이 그대로 표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라는 위치와 작가라는 위치를 모두 완전히 해내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것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자신만의 공간이 막내의 아픔으로 사라지고, 이것이 소설로 변하는 모습은 어쩌면 작가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표제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한편의 공포물을 보는 것 같다. 여고생이 화자로 등장하여 죽지 않는 할머니 이야기를 하는데 기이하고 공포스럽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인데 할머니가 활력을 찾을 때마다 누군가가 혹은 무엇인가가 죽는다. 가족에서 시작하여 동물로까지 이어지는 이 과정은 반복으로 인해 가족 누구나 두려움을 떨게 만든다. 하지만 할머니가 이룬 부 때문에 쉽게 달아나지 못한다. 삶에 대한 욕망과 부에 대한 욕망이 뒤섞이면서 만들어낸 공간이자 현상이다. 발표 연도가 2001년인데 이메일 주소에 헬조선이 들어간 것은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바뀐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 설정을 비유로 받아들이면 정말 현재 한국 현실과 닮아 있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는 2000년도 발표작이다. 이 작품은 그녀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깔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다루고 있다. 가족과 닮지 않은 자신을 닮은 누군가가 잃어버린 동생이란 말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불안과 의심으로 이어진다. 개인사와 시대의 아픔이 삽입되면서 이야기의 흐름은 바뀌고, 과학의 힘으로 의심은 사라진다. <부할 무렵>은 개인사를 다루지 않는다. 한 파출부의 어려운 삶을 질박하게 들려준다. 여동생의 도둑질과 허영에 의한 과소비와 종교의 허례 등이 혼합되어 있다. 십일조 낼 돈이 있냐는 물음보다 그 돈을 내어서라도 삶이 더 좋아지길 바라는 동생의 바람은 이미 그들이 사는 곳이 지옥임을 알려준다. 순례가 자존감을 완전히 내려놓지 않았다는 사실에 작은 위안을 얻는다.

 

<맨발로 글목을 돌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골목’의 오타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201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데 앞의 작품처럼 개인사가 깊숙하게 드러나 있다. 이 개인사는 자신의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한 H와의 관계로 시작한다. H는 북한에 납치되어 24년 동안 머물렀다. 이 인권 침해에 대해 일본인들은 한국인에게 질문한다. 이 질문에 대한 반론으로 종군위안부를 말할 때 그들의 입은 닫힌다. 이 모순 혹은 이중성은 우리 속에도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작가는 운명을 말한다. 쉬운 질문이 아니다. 아우슈비츠가 나오고, 이곳에서 살아남은 작가들을 말할 때 더욱 더. 그가 고통과 아픔을 쌓지도 내뱉지도 않고 그냥 놓아둔다고 했을 때 크게 공감했다. 하지만 또 언제 이 고통과 아픔이 생살을 찢고 나올지 모른다. 그때는 조금 덜 아프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니라면 아직 그것을 제대로 놓아두지 못한 탓이다. 인간이 성장해가는 것이 운명이라는 말에 의문과 함께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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