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렌의 참회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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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가 이력을 제대로 보지 않다가 반가운 소설 한 권을 발견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본문에서 알려준 것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살인마 잭의 고백>이다. 최근작들을 보니 아는 제목들이 꽤 있다. 역자 후기를 보니 엄청난 다작을 내놓고 있는데 어느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다작하면 일본 작가 몇 명이 먼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데 결코 좋은 평가만 내릴 수 없다. 아마 이 작가의 작품이 더 많이 팔리고, 더 많이 번역된다면 개인적 평가도 바뀔 것이다. 하지만 지금만 놓고 보면 좋은 작품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다른 작품들을 거의 읽지 않아 작가의 작품 속 세계가 연결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살인마 잭의 고백>은 전편에 해당한다. 후속작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하나의 중요한 등장 요소 중 하나였던 방송국 프로그램과 그 속에 소속된 보도기자가 주인공이다. 데이토 TV의 간판 보도 프로그램 [애프터 JAPAN]은 <살인마 잭의 고백>의 방송 때문에 방송윤리위원회의 권고를 받은 상태다. 이 권고 사항을 알려주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보도 기자 다카미와 사토야의 활약이 펼쳐진다. 특종에 목매는 기자와 방송국의 이면을 보여주면서 언론 보도의 명암을 하나씩 파고든다.

 

현재 시청률이 가장 우선인 방송국의 현실은 보도 기자들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건을 쫓을 기회를 박탈한다. 정확한 보도보다 선정적이라도 시청률이 더 좋은 방송이 우선이다. 2년차 여기자 다카미가 베테랑 사토야와 함께 경찰청에서 납치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은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처음에는 보도 협정으로 문제가 불거지고, 다음은 시청률이란 거미줄에 걸린 PD의 방송으로 인한 대오보로 이어진다. 이 과장 속에 이전에 있었던 문제들이 다시 반복되는데 특종과 과시욕이 이것을 더 부채질한다. 이 과정 속에서 가장 냉정한 판단을 하는 인물이 사토야지만 월급쟁이 한계를 그는 결코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한 여고생이 납치되었고, 결국 시체로 발견된다. 유력한 용의자라고 방송한 아이들 중 한 명은 자살을 시도하고, 취재의 열기는 더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언론의 모습은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 권리라는 말 속에 담긴 진짜 속내는 특종과 시청률 등으로 대표되는 욕망들이다. 이런 욕망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인물이 다카미다. 여동생이 자살한 후 제대로 된 언론이 되어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한 명의 기성인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잔인하고 악독한 게 TV와 신문, 주간지라고요.”라고 말하는 것과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기자란 사실을 알았다는 것에서 이것이 드러난다. “언론 일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해요?”라고 물을 때는 우리가 미화하고 과장해온 언론의 본질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여고생의 죽음을 다루다 보니 학교 문제와 청소년 범죄를 간단하게 말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 “희생된 학생과 유족의 비탄에는 일절 귀 기울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학교의 보신만을 위해 내달리는 모습은, 교육자라기보다 상사의 지시에 따라 사고를 진화하기에만 급급한 회사원으로 보였다.”와 “소년 범죄는 잔혹성을 차지하고 발생 건수 자체로 보면 전후로 거의 변동이 없다.”란 말들은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교육계의 문제는 이미 다른 책에서 잘 다루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소년 범죄의 경우는 그 잔혹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체를 호도하는 분위기다. 교묘하게 건수가 아주 많이 늘어난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언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언론 환경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결론은 아직은 언론인이 필요하다는 쪽이다. 경찰과 언론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말하면서 그 지위를 어느 정도 올려놓았지만 탐사 보도의 영역이 아닌 경우라면 그 필요성을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와 오보에 대해 진정성 있는 방송 한 번 내보지 않고 있는 현실과 그 오보로 인한 피해자들이 겪는 아픔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법조계의 모습이 겹쳐진다. 언제부터 알 권리가 인권보다 우선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치열한 취재 경쟁과 그 속에 담긴 비열한 욕망은 국민의 알 권리를 이용한 것 이상으로 보기 힘들다. 기레기란 단어가 나오게 된 것도 이 연장선일 것이다. 마지막 반전을 보여주지만 사실 이 반전이 그렇게 강렬하게 와 닿지 않는다. 그보다 힘겨운 일상 속 삶에서 비롯한 작은 실수와 악의가 더 눈에 들어온다. 부모이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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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의 피크닉 스트루가츠키 형제 걸작선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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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SF는 잘 모른다. 근래 몇 권 정도 출간된 것 중 읽은 것도 거의 없다. 물론 사놓은 책은 몇 권 된다. 이 형제 작가들의 이력을 보다 낯익은 작품이 한 권 보인다. 바로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이다. 한참 책을 사 모을 때 출판사를 보고 집어넣었던 책이다. <종말전 10억년>과 같은 소설인데 그 당시는 약간 헷갈렸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출판사 열린책들의 초기 판본을 볼 수 있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이전 작품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겼다. 이 작품이 주는 매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다.

 

외계와의 첫 접촉을 이렇게 풀어낼 수도 있다는 상상력에 먼저 놀란다. 외계인들이 다녀간 곳을 구역이라고 부르며, 그곳을 몰래 들어가는 인물들을 스토커라고 한다. 이 구역에 대한 설명은 현재의 과학으로 불가능하다. 이 불가능이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은다. 만약 이 도구를 현실에 적용만 할 수 있다면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많고 더 다양한 구역 내 물건을 가져오길 바라지만 이 구역을 관리하는 조직은 이것을 공식적으로 막는다. UN같은 조직의 역할이다. 하지만 높은 수익은 언제나 높은 위험을 감수하도록 만든다. 주인공 레드릭 슈하트도 그런 스토커 중 한 명이다.

 

하몬트란 지역의 한 곳을 외계인이 다녀갔다. 그들이 다녀간 후 그 구역은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상식과 현실의 과학을 넘어선 일들이 일어난다. 어떤 물체는 닿기만 해도 고무처럼 변하게 만들고, 어떤 지역은 중력에 문제가 생긴다. 이 구역은 그냥 걸어 들어가서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스토커는 이런 일을 몰래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스토커가 아니라 오히려 밀수꾼 혹은 도굴꾼에 더 가깝다. 그곳에서 챙겨나온 물건들은 높은 가격으로 암시장에서 거래된다. 구체적인 이름이 없는 그 물건들은 작가들의 의도에 따라 정확한 이름이 붙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나의 뇌는 그 이미지를 상상한다고 무척 바빴다.

 

레드릭의 시점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스토커가 그 구역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모험을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이 구역 안에서 발견된 혹은 가져 나온 물건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긴 세월을 지나면서 그가 겪게 되는 일들은 그렇게 넓지 않은 그 구역이 어떤 곳인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상상도 할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한 공간임을 직접적으로 알려준다. 처음에는 왜 그가 조약돌을 던졌는지 그 이유를 몰랐지만 뒤에 가면 바로 알 수 있다. 그가 발견한 물건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는 현실의 과학과 별개의 문제다. 모험과 상상력이 한꺼번에 집약되어 있다.

 

누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장은 이 소설의 제목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 구역이 의미하는 바도 같이 보여주는데 외계와의 첫 접촉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 신선했다.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과 과학적 난제를 안겨준 그 구역이 실제 외계인들이 잠시 다녀간 피크닉 장소일 뿐이라는 가정은 인류가 안고 있는 수많은 의문과 철학을 뒤집어보게 한다. 사람들의 인식이 지닌 한계를 이런 식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이란 것이 얼마나 한계가 분명한지 잘 나온다. 그 한계를 뛰어넘었을 때 우리의 상상력도 그 한계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하몬트라는 지역을 결코 확장하지 않는다. 다른 지역에서 하몬트 출신이 살면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을 말하기는 하지만 항상 그 대상은 하몬트에 한정된다. 이 놀라운 구역의 발견물들이 현실의 과학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그 중 일부의 쓰임새가 나오기는 하지만 과학적 설명은 없다. 이런 불친절한 설명은 오히려 상상력을 키운다.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에 더 집중한다. 이런 설정들이 어쩌면 검열관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명확하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마지막 레드릭의 모험은 여운을 남긴다. 처음 읽을 때 놓쳤던 문장들을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느꼈다. 인간의 의지는 어떻게 되는가 하고. 외계인의 피크닉은 인류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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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란드의 밤
올리비에 트뤽 지음, 김도연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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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란드란 지명이 아주 낯설다. 하지만 지도에서 찾아보면 낯익다. 이 낯섦과 낯익음의 차이는 이 지역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나에게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히 스칸디나비아 반도라는 불리는 그곳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사미족이 살았던 이 땅은 노르웨이, 스웨덴, 필란드의 세 나라에 걸쳐 있는 광대한 영토다. 구글에서 라플란드를 검색하면 오로라, 북극, 필란드, 여행 등이 먼저 나타난다. 이 지역의 오로라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 같이 문외한에게는 아주 생소한 이름이다. 이 소설은 바로 이곳에 사는 사람과 사건 등을 다룬다.

 

라플란드에 먼저 살았던 민족은 사미족이다. 순록을 치면서 산 이들에게 종교와 인종 문제가 엮이면서 큰 변화가 생긴다. 멀리는 기독교가 사미족 샤먼을 말살하고, 19세기는 사미족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이루어졌다. 현재 가장 선진적인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역사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인종 탄압과 함께 강한 동화 정책이 펼쳐졌고, 현재도 이 민족을 둘러싼 많은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이름만 진보당인 극우 정당이 소설 속에서 내뱉는 말들은 우리가 북유럽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많이 다르지만 현실이다. 자신들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극우정당들이 더 많은 득표를 한다는 지적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북유럽 스릴러가 아주 인기 있지만 이 소설처럼 극지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흔치 않다. 주로 대도시를 배경으로 살인자를 좇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이 소설은 작은 마을이 배경이다. 순록치기들이 등장하고, 사미인들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스노우모빌을 타고 순록치기들을 관리하는 경찰이 등장하고, 사미인들은 라플란드 속 국경을 오고 간다. 이 국경이란 인위적 구분이 오래전에는 하나의 비극이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현재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순록경찰도 이 국경을 넘어 다니고, 어떤 순간에는 라플란드에 있는 순록경찰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은 개인적으로 아주 낯설다.

 

순록경찰인 클레메트와 니나가 전체적인 이야기를 끌고 간다. 아버지가 사미인이고, 어머니가 스웨덴인 클레메트는 사미인 동화정책 때문에 아주 큰 고생을 했다. 이 이야기 속에 가끔 나오는 이 인종정책은 니나가 북유럽에 있었던 인종차별주의자들에 대한 무지와 이어진다. 과거의 역사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현재의 모습만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역사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프롤로그와 사미족 북의 도난으로 인한 시위에서 목사가 하는 말과 행동이다. 이 경건주의파가 어떻게 사미인들의 문화를 파괴했는지, 풍부한 자원이 사미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등은 이 소설의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다.

 

라플란드의 자연환경을 알려주기 위해 각 장마다 일출과 일몰과 해가 떠있는 시간을 알려준다. 극야의 시기를 지나 조금씩 햇볕이 나오는 시간과 함께 이야기는 점점 더 확대된다. 사미족 북의 도난과 순록치기 사미인 마티스의 죽음까지 이어지는 사건은 노르웨이의 작은 사미 마을 카우토카이노에 많은 분노를 자아낸다. 그리고 곧 열릴 예정인 UN 컨퍼런스에서는 소수민족의 인권을 다룰 예정이다. 이런 상황이니 이 사건들이 재빨리 해결되길 바란다. 상부의 압력과 달리 아직 충분한 수사도 지원도 없는 상태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인물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엮기 시작한다. 여기에 극지의 아주 열악한 자연 환경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솔직히 아주 복잡한 미스터리나 충격적인 반전이 나오는 작품은 아니다. 의외성은 살아있지만 감탄할 반전은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추리를 따라가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모습들이 사미인들의 역사와 황량한 풍경과 극저온의 기온들과 엮이면서 읽는 동안 머릿속에 이미지를 쌓아간다. 이 쌓인 이미지와 사미인들의 역사와 자원개발 등이 섞인다. 언제나 비극은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한다. 이 작품도 바로 그 지점을 정확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강한 인상과 함께 약간의 허무감을 던져준다. 뭔가 뒤끝이 남는 느낌이다. 좋게 말하면 여운이려나? 두툼하지만 이미지가 조금씩 쌓이면 생각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다. 이런 극지 스릴러라면 또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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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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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본이 가득한 고서점과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란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 기이한 모험까지 곁들여졌으니 내가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지금은 예전처럼 헌책방을 순례하듯이 돌아다니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못한다. 많은 헌책방을 돌면서 사놓은 책들은 집에 가득하고, 새롭게 산 책과 받은 책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으니 헌책방에서 책을 사겠다는 말을 마눌님께 꺼낼 수가 없다. 다만 가끔 생기는 상품권과 적립금 등으로 책을 살 뿐이다. 그래도 적지 않은 책들이 쌓인다. 이런 상황이니 고서점과 책이란 설정만 나오면 눈길이 돌아간다. 대리만족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이 소설은 순식간에 끝까지 달리게 만들었다.

 

고서점을 운영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남은 손자 나쓰키 린타로는 서점을 정리하고 고모와 함께 살 예정이다. 기간은 정해져 있다. 이때 한 얼룩 고양이가 나타나 말을 한다. 린타로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 소설이 판타지인 이유는 바로 여기 있다. 얼룩이란 이름을 가진 고양이가 인간의 말을 하고, 고서점을 통해 다른 세계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 개의 미궁을 방문하여 하나씩 문제를 해결한다. 이 과정이 목차에 나오는 가두고, 자르고, 팔아치우는 등의 행동이다. 이 행동은 책과 독서에 대한 현재 사회의 단면들이다. 너무 현실적인 행동인데 이 행동을 막는 답변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나의 경우에는 이미 많은 곳에서 만난 것이기에 특히 그렇다.

 

하나의 미궁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지만 이 소년의 재능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고서점에서 책을 찾을 때다. 아무리 고서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 옆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해도 린타로가 보여주는 지식은 보통 사람을 능가한다. 그의 탁월함에 대한 감탄은 엄친아인 선배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반적인 베스트셀러가 아닌 고전을 말하고, 그 내용을 요약하는 모습은 단순히 많이 읽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답도 미궁에서 문제를 해결할 때 하나씩 알려준다.

 

다독, 줄거리 요약, 책 판매 이익 등만 내세우는 미궁의 주인들은 몇 개 부분에서 나의 독서와 닮은 부분이 있다. 천천히 내용을 음미하면서 읽는 습관이 아직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고, 다독하면서 얻은 지식이 다른 책에 대한 욕심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 이야기 속 다독자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되지 않지만 말이다. 줄거리 요약해서 책 한 권을 한 줄로까지 줄인 인물의 이야기는 인간의 삶에 대해 ‘태어나서 살다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요약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중 몇 명은 장광설인 것을 감안하면 나와 맞지 않는 듯하지만 이야기에 집착하는 성격을 보면 또 다르다. 가장 맞지 않는 것은 잘 팔리지 않는 책보다 잘 팔리는 책에 대한 것일 텐데 이 부분은 나의 마이너한 취향을 생각하면 이 미궁의 주인과 맞지 않다. 내가 출판사를 한다면 이처럼 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독서와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여기에 린타로와 반장의 아주 작은 연애 분위기도 재밌다. 본격적이지 않아 신선하고, 순수한 느낌인데 마지막 미궁에 이르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점이 무대이다 보니 반가운 작가와 작품들이 계속 나온다. 물론 이 작품들을 모두 읽은 것도 아니고, 읽었다 해도 나의 취향과 맞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한 작품도 있다. 반대로 절판된 책이 우리집 책장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없는 책도 꽤 있지만. 책에는 힘이 있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그 힘을 찾아내고 이용하는 것은 당연히 독자 개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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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살아남았지 -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집 에프 클래식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옥용 옮김 / F(에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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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브레히트의 시집이다. 그의 시를 여러 곳에서 한두 편 정도 읽었을지 모르지만 하나의 시집으로 읽기는 처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섯 권의 시집에서 시를 뽑은 시선집이다. 역자 해설을 보면 이 다섯 권의 시집들이 지닌 특성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이 시들이 수록된 순서도 시집 발간 순서와 동일하다. 사실 브레히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희곡이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극작가였는지, 그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연극 무대가 어떠했는지 알고 있기에 시인 이미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에 나의 점점 떨어지는 기억력이 더해지면서 시인 브레히트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시집을 펴고 읽으면서 처음 받은 느낌은 무서움이었다. <아펠뵈크 또는 들에 핀 백합>과 <영아 살해범 마리 파라에 대해>로 이어지는 시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시들과 완전히 다르다. 죽음과 그 죽음을 둘러싼 환경이 아주 직접적으로 표현되면서 그 무서움에 압도되었다. 어려운 비유 없이 돌직구를 날리는 시어들은 그 상황에 처한 인물들에 대한 감정을 극도로 배제한다. 반복되는 상황만이 눈에 들어온다. 이 상황들 속에 현실이 담겨 있다. 이웃의 무관심과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들의 반응과 고된 노동 등의 현실이다. 사람들이 흔히 보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이 아닌 밖으로 드러난 죽음이다.

 

<독서하던 어떤 노동자의 의문점들>에서 시인이 가진 의문들은 바로 내가 어릴 때 가졌던 그 의문이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위인들의 이름 뒤에는, 높은 성곽의 아래에는 수없이 많은 죽음과 민중들이 있었다. 시인은 이 물음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환기시킨다. 어떤 때는 이런 물음과 의문이 더 많은 답을 주기도 한다. ‘“보다 강한 녀석들이 살아남는 거야.”/ 난 내가 싫었다.’<난, 살아남았지>란 시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살아남는 것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다.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란 일반적인 의미 너머를 말이다.

 

<어린이 십자군>을 읽으면서 전쟁과 고아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약한 존재들인 아이들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참상을 겪는지, 그것을 피하기 위한 아이들의 노력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등. <우리 형은 비행사였어>에서 그가 정복한 공간이 “길이는 1미터 80센티/ 깊이는 1미터 50센티”라고 말하면서 묘지 그 이상이 아님을 알려준다. “독일에선 시인과 철학자를/ 사형 집행인이 잡아가네.”<시인과 철학자>라고 말하면서 나치가 저지르는 폭압과 공포 정치의 현실을 간략하지만 강렬하게 보여준다.

 

<해결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그 의미가 잘 다가오지 않았다. 천천히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읽으면 정부와 인민의 입장 차이가 얼마나 다른지 눈에 바로 들어온다. “정부가 인민을 해산시키고/ 다른 인민을 선택하는 게/ 더 간단하지 않나?”라는 물음은 많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화원>을 읽다보면 그 풍경 이미지의 고요함에 과연 이 시가 브레히트의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어쩌면 그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 “나 역시 늘 이런저런 호감 가는 걸/ 보여 줄 수 있기를 소망하네.”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에 희곡과 시들이 그렇게 나왔을 것이다.

 

<민주적인 판사>를 읽으면서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판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현재의 바뀐 미국 대통령을 생각하면 이런 판사가 설 자리가 없겠지만. <즐거움>이란 시는 그가 생각하는 즐거움을 나열한 것이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했다는 것을 <약점>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과 왠지 맞지 않았다. 하지만 공감하는 것은 왜일까? <승객>에서 자신만을 위해 운전하던 그가 “난 승객을 생각한다.”고 했을 때 바뀌려는 노력과 의지와 실천이 느껴졌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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