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의 피크닉 스트루가츠키 형제 걸작선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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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SF는 잘 모른다. 근래 몇 권 정도 출간된 것 중 읽은 것도 거의 없다. 물론 사놓은 책은 몇 권 된다. 이 형제 작가들의 이력을 보다 낯익은 작품이 한 권 보인다. 바로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이다. 한참 책을 사 모을 때 출판사를 보고 집어넣었던 책이다. <종말전 10억년>과 같은 소설인데 그 당시는 약간 헷갈렸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출판사 열린책들의 초기 판본을 볼 수 있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이전 작품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겼다. 이 작품이 주는 매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다.

 

외계와의 첫 접촉을 이렇게 풀어낼 수도 있다는 상상력에 먼저 놀란다. 외계인들이 다녀간 곳을 구역이라고 부르며, 그곳을 몰래 들어가는 인물들을 스토커라고 한다. 이 구역에 대한 설명은 현재의 과학으로 불가능하다. 이 불가능이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은다. 만약 이 도구를 현실에 적용만 할 수 있다면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많고 더 다양한 구역 내 물건을 가져오길 바라지만 이 구역을 관리하는 조직은 이것을 공식적으로 막는다. UN같은 조직의 역할이다. 하지만 높은 수익은 언제나 높은 위험을 감수하도록 만든다. 주인공 레드릭 슈하트도 그런 스토커 중 한 명이다.

 

하몬트란 지역의 한 곳을 외계인이 다녀갔다. 그들이 다녀간 후 그 구역은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상식과 현실의 과학을 넘어선 일들이 일어난다. 어떤 물체는 닿기만 해도 고무처럼 변하게 만들고, 어떤 지역은 중력에 문제가 생긴다. 이 구역은 그냥 걸어 들어가서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스토커는 이런 일을 몰래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스토커가 아니라 오히려 밀수꾼 혹은 도굴꾼에 더 가깝다. 그곳에서 챙겨나온 물건들은 높은 가격으로 암시장에서 거래된다. 구체적인 이름이 없는 그 물건들은 작가들의 의도에 따라 정확한 이름이 붙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나의 뇌는 그 이미지를 상상한다고 무척 바빴다.

 

레드릭의 시점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스토커가 그 구역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모험을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이 구역 안에서 발견된 혹은 가져 나온 물건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긴 세월을 지나면서 그가 겪게 되는 일들은 그렇게 넓지 않은 그 구역이 어떤 곳인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상상도 할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한 공간임을 직접적으로 알려준다. 처음에는 왜 그가 조약돌을 던졌는지 그 이유를 몰랐지만 뒤에 가면 바로 알 수 있다. 그가 발견한 물건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는 현실의 과학과 별개의 문제다. 모험과 상상력이 한꺼번에 집약되어 있다.

 

누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장은 이 소설의 제목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 구역이 의미하는 바도 같이 보여주는데 외계와의 첫 접촉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 신선했다.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과 과학적 난제를 안겨준 그 구역이 실제 외계인들이 잠시 다녀간 피크닉 장소일 뿐이라는 가정은 인류가 안고 있는 수많은 의문과 철학을 뒤집어보게 한다. 사람들의 인식이 지닌 한계를 이런 식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이란 것이 얼마나 한계가 분명한지 잘 나온다. 그 한계를 뛰어넘었을 때 우리의 상상력도 그 한계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하몬트라는 지역을 결코 확장하지 않는다. 다른 지역에서 하몬트 출신이 살면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을 말하기는 하지만 항상 그 대상은 하몬트에 한정된다. 이 놀라운 구역의 발견물들이 현실의 과학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그 중 일부의 쓰임새가 나오기는 하지만 과학적 설명은 없다. 이런 불친절한 설명은 오히려 상상력을 키운다.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에 더 집중한다. 이런 설정들이 어쩌면 검열관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명확하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마지막 레드릭의 모험은 여운을 남긴다. 처음 읽을 때 놓쳤던 문장들을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느꼈다. 인간의 의지는 어떻게 되는가 하고. 외계인의 피크닉은 인류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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