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포스 1
돈 윈슬로 지음, 박산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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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경찰이 되고 싶었던 데니 멀론의 몰락기다. 멀론은 뉴욕 맨해튼 북부 특수 수사팀의 책임자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맨해튼 북부 지역의 왕이었다. 물론 왕이라고 해서 나쁜 짓을 저질러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현재 기준으로 본다면 부패 경찰이다. 마피아에게 뒷돈을 받고, 마약상의 돈과 마약을 훔친다. 당연히 이 돈들을 혼자 꿀꺽 삼키지 않는다. 동료들과 나누고, 일부는 위로 상납한다. 이런 일들은 이 소설 속에서 일상처럼 벌어진다. 부패와의 전쟁으로 깨끗해졌다고 생각했던 뉴욕 경찰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여전히 뇌물은 받는다. 물론 받지 않는 경찰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뇌물을 주려는 사람들이 있고, 그 돈이 필요한 경찰이 있는 한 이것은 영원히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 포스는 뉴욕 특별수사대다. 이 수사대는 여러 지역을 나누어 관리한다. 그 중에서도 최고는 멀론이다. 이 수사대가 만들어진 것은 그의 아이디어 덕분이다. 작가는 이 사실을 알려주기 전에 뉴욕 경찰의 부패를 다룬 간략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우리가 영화로 본 부패 경찰 이야기도 같이. 이런 노력은 경찰들에게 커피 한 잔, 샌드위치 하나도 뇌물로 여기게 만든다. 작은 불씨가 큰 화재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다. 깨끗한 공무원을 바라는 것은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바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 멀론과 그 동료들에 괜히 감정 이입하면서 그들의 부패를 용인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수많은 경찰 영화에서 최악은 언제나 밀고자다. 내사과를 다룬 영화 속에서 유능한 부패 경찰이 강하게 내뱉는 말들에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그의 부패에 더 초점을 맞춘다. 그가 왜 나쁜지 공감한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그의 부패와 나쁨보다 다른 것들이 더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를 밀고자로 만들어 부패를 소탕하려는 조직과 검사들의 배후와 목적 덕분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경찰의 현실 때문이다. 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달려가고, 결코 많지 않은 급여를 받으면서 그들은 최선의 노력을 한다. 물론 그들에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강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고, 때로는 이 때문에 무고한 흑인을 죽이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인종차별에 깜짝 놀랐다고 하면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멀론의 아버지도 경찰이었다. 동생은 소방관이었다. 하지만 9.11 테러에 동생은 순직했다. 이제 십 수 년이 지나 우리에게 희미해진 이 사건이 아직도 뉴욕 등에서는 현재진행형이다. 멀론도 가끔 이 악몽을 꾼다. 쌍둥이 빌딩이 서 있던 곳을 지나면 텅 빈 그 공간에 아픔을 느낀다. 이런 일반적인 경찰인 그가 자신의 구역으로 넘어가면 왕과 다름없다. 마피아와 거래를 하고, 마약상들을 관리한다. 마약상들끼리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시장의 총알받이가 된다. 이런 시장들은 경찰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뉴욕에는 경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소수 민족의 표가 어떨 때는 더 중요하다. 이것도 하나의 중요한 설정이다.

 

멀론 팀은 가족보다 더 끈끈한 관계다. 대부와 대자의 관계로 엮여 있고, 누군가 사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그 가족을 돌본다. 상납과 갈취로 얻는 돈은 똑같이 나누고, 일정 부분은 비자금으로 사용한다. 내사과를 비롯해 조직 곳곳에 그들의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사건은 작은 실수에서 비롯한다. 이 실수가 먼저 그를 삼키고,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삼켜간다. 이럴 때 경찰들이 보여주는 반응 중 하나는 자살이다. 그럼 더 이상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멀론에게도 그런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고 돌봐야 하는 사람들이 먼저였다. 경찰을 파는 밀고자는 결코 되지 않겠다는 선을 그으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부패 경찰 멀론은 말한다. “난 경찰을 사랑했어. 정말 사랑했지. 난 이 빌어먹을 도시도 사랑했어. 하지만 이젠 틀렸어. 당신들이 다 말아먹은 거야.” 앞에서 말한 것은 사실이다. 뒤에서 말한 것도 사실이다. 경찰로써 멀론은 지켜야 할 선을 나름대로 지켰다. 노약자와 여성들과 아이들을 특히 보호하려고 했다. 갱들의 전쟁에 가족들을 배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쟁에 아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잔혹만이 위력을 발휘한다. 멀론의 영혼 일부를 잃어버린 것도 바로 이 순간들 때문이다. 당연한 듯한 일들이 반복되고 지속되면서, 자신의 힘에 도취되면서 그 틈은 벌어진다. 그 좁은 틈은 이제 그와 관련된 모두를 삼켜버릴 만큼 거대해진다. 영웅이라고 불렸던 인물은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자신의 삶을 잃어간다.

 

한 영웅의 몰락만 다루었다면 그냥 보통의 경찰 부패를 다룬 소설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경찰의 현실을 보여주고, 뒤에서 이들을 이용해 정치하는 인물들과 이들보다 더 큰 부패의 원흉을 알려준다. 시장이 부패 경찰을 척결한다고 할 때 자신을 빼놓고, 대기업 총수가 엄청난 횡령을 하지만 직원들의 사소한 횡령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처럼. 멀론을 앞으로 부각시켜 거대한 부패의 고리를 엮고 풀어가는 과정은 그에게 감정이입할수록 아프다. 괴롭다. 그가 원하는 거라곤 좋은 경찰이 되는 것뿐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하지만 그 정도가 심했기에, 그 선을 넘었기에 나는 이 사이에 혼란을 느낀다. 지금은 이성보다 감정이 더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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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의 기담 -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옛이야기
오정희 지음, 이보름 그림 / 책읽는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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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아이, 남녀노소가 두루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작가의 결과물이다. 그 바탕이 되는 것은 <강원도 설화집>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 할머니나 주변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옛날이야기, 또래 동무들끼리 지어내어 나누던 이상하고 으스스하고 괴기스러운 이야기들을 나름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하고 싶었단다. 실제 이 기담집에 나오는 이야기 중 몇 편은 아주 낯익다. 설화나 민간전설 등에 나온 이야기의 변형이 보이기 때문이다. 강원도라는 지역을 빼면 한국 어디에서나 만날 법한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작가 오정희의 손을 통해 재구성되었다.

 

결코 많은 이야기가 아니다. 겨우 여덟 편이다. 편당 분량도 많지 않다. 마음먹고 읽으면 한두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다. 기담을 다루다 보니 작가 오정희의 특징을 잘 파악할 수도 없다. 이것은 <강원도 설화집>에 나오는 이야기 원형을 모르다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작가가 설화에 어떤 첨삭을 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가독성이 좋고,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라 더 쉽게 빠져든다. 말로 전해지는 것과 달리 글로 변했을 때는 아무래도 작가의 필력이 작용할 것이다. 내가 알아채지 못해서 문제지만. 이런 생각들은 적은 수의 기담이 주는 아쉬움에서 더욱 더 커진다.

 

이 기담집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한 명이 있다. 바로 이보름 화가다. 작품 속에 그려진 몇 편의 그림은 간결한 선과 여백으로 이야기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그림을 잘 몰라 자세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리고 감안해야 할 부분도 있다. 시대다. 대부분 조선 시대를 다루다 보니 전근대적 사상이 곳곳에 드러난다. 작가가 이 부분을 조금 손 본듯하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사람에 따라 조금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담이란 설정에서 알 수 있듯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내려놓고 보면 이 황당한 이야기가 아주 재밌게 다가온다.

 

<어느 봄날에>에서 윤호는 누나 윤옥의 말을 듣지 않아 죽는다. 누나는 계교로 복수를 하고, 죽은 동생을 살릴 생각을 한다. 어느 부잣집 일꾼으로 들어가 사위가 된 후 그 집에 숨겨진 보물을 훔친다.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는 누군가의 노력보다 자신의 욕망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평범하지만 기이한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그리운 내 낭군은 어디서 저 달을 보고 계신고>는 낯익은 이야기다. 남편을 믿지 않은 아내의 고생담을 다룬다. 언니들의 간교한 욕심과 질투도 한몫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앵두야, 앵두같이 예쁜 내 딸아>는 계모의 간교한 술책에 너무 쉽게 넘어간 아비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아비의 후회와 오빠들의 복수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용화산>은 처음 생각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어딘가에서 본 듯한 이야기다. 두 괴물의 말 중 어느 쪽이 맞을까 궁금하다. <누가 제일 빠른가>는 황당함 그 자체다. 반 나절만에 누에를 키워 옷을 만든다. 이 놀라운 처녀의 결혼 상대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빠르기만 해서는 안된다. 실수도 없어야 한다. 처녀를 구해주는 인물의 능력도 정말 황당하다. 그렇지만 재밌다. 이야기의 힘이다.

 

<주인장, 걱정 마시오>는 김응하 장군 이야기다. 역시 낯익다. 하지만 김응하가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것은 조금 아쉽다. 역사와 가장 밀접한 이야기다. <짚방망이로 짚북을 친 총각>은 유럽의 동화와 같은 느낌이다. 오빠보다 훨씬 현명한 여동생의 존재는 은연중에 빛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과 마지막 장면이 연결되는 부분은 잘 이어져 있다. 작가의 구성이 작용한 것일까? <고씨네>는 한 여성의 불행한 삶을 보여준다. 아내의 노동으로 공부만 하는 남편. 과거 시험을 위해 떠난 후 연락조차 없던 남편. 그리고 새로운 남편과 그의 죽음. 금의환향한 전남편이 내뱉은 한 마디는 아주 잔혹하다. 조선 시대 열녀에 대한 비판으로도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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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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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가 쓴 단 하나의 연애소설.’ 이 얼마나 멋진 광고인가. 반스의 소설을 읽는데 늘 힘겨워하는 나도 이 문구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반스는 개인적으로 잘 읽히는 작가가 아니지만 나오면 늘 관심을 두고, 여력이 되면 구입하는 작가들 중 한 명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재밌고 잘 읽히지만 왠지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 작가 말이다. 이런 반스의 신작에 눈빛이 반짝인 것은 당연히 연애소설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그리고 첫 문장의 강렬함도 한몫 했다. 그 중심에는 쉼표가 있었다.

 

문장에서 늘 그 중요성에 비해 홀대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쉼표다. 나 자신도 문장을 쓸 때 쉼표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쉼표가 만들어내는 호흡을 잘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이 쉼표들은 아주 멋진 역할을 한다. 쉼표는 잠시만 한눈을 팔면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다른 문장으로 이해된다. 쉼표 원래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그 짧은 멈춤이 앞의 문장을 빠르게 복기하게 만들고, 강조하고, 뒤에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 용도를 알지만 잘 사용하지 않고, 잊고 있던 쉼표가 소설 내용보다 먼저 눈에 들어왔다.

 

19세 청년과 48세 부인의 연애는 어떤 모습일까? 이 소설 속에서도 말했듯이 능숙한 부인이 초보를 잘 인도하는 모습일까? 쉽게 생각할 때, 다른 영화 속 장면들을 생각할 때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들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수전은 그렇게 능숙하지 않다. 남편으로부터 차갑다는 말을 듣는다. 두 서툰 남녀의 사랑은 우리가 예상을 뒤엎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혹시 뭔가 농밀하고 에로틱한 장면을 기대했다면 책을 덮는 것이 좋다. 실제로 자극적인 묘사가 나오지 않는다. 원 제목처럼 하나의 이야기(The only story)만 다룰 뿐이다. 거기에 열아홉 살 소년 폴과 마흔여덟 살 수전이 있었다.

 

십대를 돌아보면 세상을 냉소적으로 쳐다보고 비아냥거리기 바빴다. 아직 섹스혁명이 일어나기 전 영국 한 시골 마을에서 열아홉 살 대학생이 어른들의 사교모임인 테니스클럽에 가입했을 때 느낀 것도 이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혼합 복식으로 경기를 할 때 보여준 몇 가지 예의는 십대에게 답답할 뿐이다. 그러다 만난 수전은 자기와 키가 똑같고, 마음이 조금 통했다. 아마 처음부터 이 둘이 사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작은 마을에 작은 소문거리를 만들어내는 것 정도를 생각했는데 감정과 상황이 이 둘을 하나로 묶었다. 사랑에 서툰 두 남녀로 말이다. 재밌는 것은 수전이 둘의 관계 횟수를 세고 있었다는 것이다. 왜일까?

 

기억은 늘 혼란스럽게 찾아온다. 시간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상황과 장면들이 나오고, 그보다 앞에 있었던 일들도 나온다. 이런 기억들 속에 둘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빠진다. 대학생이었던 폴은 학교로 가서 수업을 받아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밀회를 위해 짧은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남편을 속이고, 부모를 속이는 이런 행동이 지속될수록 알려질 확률이 높아진다. 결국 둘은 테니스클럽에서 제명당한다. 이 소문이 마을을 흔들고 다녀야 하지만 조용히 처리된다. 이때 이 둘은 헤어질 수도 있었다. 수전이 남편에게 맞는다는 사실을 몰랐고, 아직 사랑이란 것에 집착하는 십대가 아니었다면.

 

둘이 런던에 집을 구해 같이 살게 되었을 때는 그 사랑의 열정이 빠르게 식는 중이었다. 이제 이십대가 된 청년과 중년 부인의 관계는 누가 봐도 이상하다. 폴도 그녀의 대자라고 말한다. 실제 관계가 불러올 오해와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 바탕에는 현실의 무거움이 자리잡고 있다. 수전의 남편 고든이 술을 많이 마셨는데 어느 순간 수전도 술을 많이 마신다. 이 문제도 그들을 파국으로 이끈다. 폴이 주장한대로 둘이 결혼했다면 더 오랫동안 관계가 유지되었을까? 둘의 나이 차이와 다른 상황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왔을 것이다. 폴이 말하는 하나의 가정처럼 그녀가 능숙했고, 사랑 기술을 발전시킨 그가 떠났다면 한 편의 영화 같았을지 모른다.

 

역자의 글을 읽기 전에 생각하지 못한 것 하나가 있다. 수전의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둘이란 의미다. 홀로 몰래 한 사랑이 아니라면. 폴의 기억 속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그의 이야기다. 그의 감정이고, 사랑이고, 추억이다. 이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추억할 때, 지나간 사랑을 되짚어볼 때 늘 있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영화처럼 그의 말 한 마디에 수전이 보인 반응은 없고 현실적인 짧은 고민만 있을 뿐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기억 속 사랑은 있었던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윤색된다. 작가도 몇 번 이렇게 말했지 않은가. 이번 소설로 반스에게 한 발짝 다가간 것 같다. 나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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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회전목마처럼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한수진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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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이력을 가진 소설이다. 요코미즈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에 응모했다가 대상 후보까지 올라간 작품을 수정한 작품이다. 작가 후기를 보면 그 당시보다 더 세밀하고 발전했다고 한다. 실제 이 소설이 작가의 첫 작품이다. 이 작품의 출간은 작가의 출세작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수첩>이 크게 성공한 덕분이다. 가끔 이런 경우를 만난다. 성공한 작가가 과거의 습작이나 아이디어를 현재 시점의 필력으로 재탄생시킨다. 내가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이 성공작이 다른 편집자로 하여금 기존의 응모작을 출간하게 만들었다. 반가운 일이다.

 

연애 미스터리란 이름을 달고 있다. 실제 이 작품은 일상 미스터리 범주에 들어간다. 우리가 흔히 미스터리하면 떠올리는 살인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 어느 정도 살짝 기대한 부분도 있었는데 실제 없다. 그렇다고 미스터리의 긴장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감정과 소소하지만 개인들에는 중요한 미스터리가 계절마다 나온다. 이때 중요한 설정 중 하나가 ‘계절’이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 나츠키와 후유코가 학창시절 만들어낸 하나의 추리 놀이다. 주위의 기묘한 일의 ‘계’기를 알아내어 ‘절’차에 맞게 설명하는 것인데 당연히 정답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논리적으로 맞는가 하는 것이다. 이 ‘계절’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설정이다.

 

나츠키와 후유코의 관계는 일단 고등학교 동창이다. 졸업 후 서로 떨어져 있었다. 후유코는 1년 어학 연수를 떠났다. 서로의 대학 위치도 다르다. 교토와 오사카.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둘은 대학시절 만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후유코가 연락을 했다. 이 소설은 그 이후 일어난 네 계절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이 둘의 추억이다. 그리고 작가의 작지만 중요한 트릭 하나가 살짝 끼어든다. 만약 누군가가 이것을 깨달았다면 마지막에 펼쳐지는 계절을 아주 잘 맞추었을 것이다. 그 속에 담긴 복잡한 감정의 흐름도.

 

이 둘의 이름에는 계절이 담겨 있다. 나츠키는 여름이, 후유코는 겨울이. 여름과 겨울은 함께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둘은 첫 만남부터 ‘계절’을 통해 관계를 발전시켰다. 다만 친구 그 이상의 단계로 발전하지 않고. 물론 이렇게 둘 사이가 정체된 데는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후유코다. 둘의 타이밍은 기가 막히게 엇갈린다. 이 엇갈림을 바로 잡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둘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 중 하나는 바로 나츠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그의 생각과 감정이 과연 어디까지 사실인지, 그가 짐작한 후유키의 진실은 또 무엇인지 추측만 할 뿐이다.

 

둘이 펼치는 대결인 ‘계절’은 관찰과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다. 확인이라는 절차가 반드시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어떤 대결은 더 그럴듯한 추리가 이긴다. 후유코의 약점은 ‘계절’에 낭만을 집어넣는 것이다. 감정의 개입은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데 장애 요소로 작용한다. 반면에 나츠키는 한 순간도 관찰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순간에서조차도. 단서를 모으고,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통찰로 풀리는 이야기는 소위 말하는 정당한 추리 대결과 거리가 좀 있다. 서술 트릭을 이용한 대목도 있다. 이런 장치와 설정들보다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마지막 에필로그다. 그의 미래를 ‘계절’한다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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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칭 관찰자 시점 - 2018년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조경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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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이다. 개인적인 취향만 놓고 보면 대상보다 더 마음에 든다. 아마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다루고 있는 소재 탓일 것이다. 제목처럼 이 소설은 카톨릭 사제 디모테오를 관찰하는 사람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들의 시점은 개인적 관계와 이해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달라진다. 목차에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자주 등장하는 시점은 친구인 베드로와 레아의 자살을 수사한 남 형사와 정신과의사 마 교수 등이다. 다른 시점들은 현재와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나타내줄 뿐이다.

 

디모테오의 아버지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인 강치수다. 이런 그의 과거는 숨겨져 있다가 사제 서품을 받기 전 디모테오가 적발한 횡령 사건과 자살 때문에 드러난다. 일반 살인자도 아닌 연쇄살인범의 아들이란 이력은 신성한 종교 단체에서도 문제가 된다. 그의 아픔과 고통을 안고 품어야 할 텐데 숨겨지고 가려진 본능을 더 걱정한다. 하지만 테오의 강한 의지와 노력은 그를 사제로 만든다. 그가 심해성당의 사제로 오면서 만난 한 사기꾼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의 첫인상은 너무 강렬하다. 아니 너무 잘 생겼다. 과거에 대한 선입견이 없다면 더욱 그의 외모는 빛난다.

 

베드로는 외모가 조폭처럼 생겼지만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다. 바로 누나가 테오의 아버지에게 죽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테오와 둘도 없는 친구다. 잘 생겼지만 냉혹해 보이는 테오가 그를 이용한다고 주변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베드로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베드로를 통해 테오의 다른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가장 힘든 순간을 함께 했고, 진심으로 서로를 대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테오를 진솔하고 대하고 굳건하게 믿는 인물이다. 이것은 안나 수녀의 시점과도 같다. 이 때문에 혹시 하는 반전을 기대하게 된다.

 

남 형사는 레아의 자살 사건을 수사했다. 자살로 결론을 내렸지만 테오의 의심 때문에 다시 수사한다. 물론 남 형사가 재조사를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테오의 잘 생긴 외모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외모만으로 재수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인 레아가 먹은 수면제다. 처방전이 없으면 구할 수 없는데 누구도 발행해준 적이 없다. 거기에 청산가리가 있다니 더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의문들을 너무 쉽게 덮고 자살로 판단을 내렸다는 사실과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이 소설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들이다. 디모테오의 팬클럽 창단 멤버란 사실은 별도로 하고.

 

마 교수는 평생 사이코패스를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레아의 상담의사였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테오의 과거와 연결된 또 한 명의 등장인물이다. 테오 어머니 연수의 한때 연인이었고, 강치수의 폭력 희생자였다. 이 치욕은 평생 그의 아픔이자 수치이자 복수의 원천이다. 그는 악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그 심연에 먹혔다. 정신과의사라는 갑옷을 입고 사회정의를 외치면서 처벌자가 된다. 마 교수에게 좀 더 복잡한 심리적 갈등을 집어넣고, 테오와의 대결을 더 긴장감 있게 표현했다면 아마도 대단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조금 아쉽다.

 

한 인물을 둘러싼 시점의 변화를 통해 이야기를 흡입력 있게 풀어내고, 악에 대한 논쟁을 다룬 것은 박수칠만 하다.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중간중간 부드럽게 풀어주는 인물과 에피소드를 집어넣어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한 번 잡으면 단숨에 읽을 매력으로 가득하다. 분량도 그렇게 부담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분량을 더 늘이고, 가벼운 에피소드를 더 넣고, 더 무거운 이야기를 풀어내어도 좋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 교수와의 대결 장면은 조금 비현실적이지만 디모테오의 처분은 현실적이다. 앞으로 관심 있게 봐야 할 작가 한 명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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