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의 기담 -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옛이야기
오정희 지음, 이보름 그림 / 책읽는섬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른, 아이, 남녀노소가 두루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작가의 결과물이다. 그 바탕이 되는 것은 <강원도 설화집>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 할머니나 주변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옛날이야기, 또래 동무들끼리 지어내어 나누던 이상하고 으스스하고 괴기스러운 이야기들을 나름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하고 싶었단다. 실제 이 기담집에 나오는 이야기 중 몇 편은 아주 낯익다. 설화나 민간전설 등에 나온 이야기의 변형이 보이기 때문이다. 강원도라는 지역을 빼면 한국 어디에서나 만날 법한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작가 오정희의 손을 통해 재구성되었다.

 

결코 많은 이야기가 아니다. 겨우 여덟 편이다. 편당 분량도 많지 않다. 마음먹고 읽으면 한두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다. 기담을 다루다 보니 작가 오정희의 특징을 잘 파악할 수도 없다. 이것은 <강원도 설화집>에 나오는 이야기 원형을 모르다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작가가 설화에 어떤 첨삭을 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가독성이 좋고,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라 더 쉽게 빠져든다. 말로 전해지는 것과 달리 글로 변했을 때는 아무래도 작가의 필력이 작용할 것이다. 내가 알아채지 못해서 문제지만. 이런 생각들은 적은 수의 기담이 주는 아쉬움에서 더욱 더 커진다.

 

이 기담집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한 명이 있다. 바로 이보름 화가다. 작품 속에 그려진 몇 편의 그림은 간결한 선과 여백으로 이야기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그림을 잘 몰라 자세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리고 감안해야 할 부분도 있다. 시대다. 대부분 조선 시대를 다루다 보니 전근대적 사상이 곳곳에 드러난다. 작가가 이 부분을 조금 손 본듯하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사람에 따라 조금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담이란 설정에서 알 수 있듯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내려놓고 보면 이 황당한 이야기가 아주 재밌게 다가온다.

 

<어느 봄날에>에서 윤호는 누나 윤옥의 말을 듣지 않아 죽는다. 누나는 계교로 복수를 하고, 죽은 동생을 살릴 생각을 한다. 어느 부잣집 일꾼으로 들어가 사위가 된 후 그 집에 숨겨진 보물을 훔친다.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는 누군가의 노력보다 자신의 욕망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평범하지만 기이한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그리운 내 낭군은 어디서 저 달을 보고 계신고>는 낯익은 이야기다. 남편을 믿지 않은 아내의 고생담을 다룬다. 언니들의 간교한 욕심과 질투도 한몫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앵두야, 앵두같이 예쁜 내 딸아>는 계모의 간교한 술책에 너무 쉽게 넘어간 아비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아비의 후회와 오빠들의 복수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용화산>은 처음 생각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어딘가에서 본 듯한 이야기다. 두 괴물의 말 중 어느 쪽이 맞을까 궁금하다. <누가 제일 빠른가>는 황당함 그 자체다. 반 나절만에 누에를 키워 옷을 만든다. 이 놀라운 처녀의 결혼 상대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빠르기만 해서는 안된다. 실수도 없어야 한다. 처녀를 구해주는 인물의 능력도 정말 황당하다. 그렇지만 재밌다. 이야기의 힘이다.

 

<주인장, 걱정 마시오>는 김응하 장군 이야기다. 역시 낯익다. 하지만 김응하가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것은 조금 아쉽다. 역사와 가장 밀접한 이야기다. <짚방망이로 짚북을 친 총각>은 유럽의 동화와 같은 느낌이다. 오빠보다 훨씬 현명한 여동생의 존재는 은연중에 빛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과 마지막 장면이 연결되는 부분은 잘 이어져 있다. 작가의 구성이 작용한 것일까? <고씨네>는 한 여성의 불행한 삶을 보여준다. 아내의 노동으로 공부만 하는 남편. 과거 시험을 위해 떠난 후 연락조차 없던 남편. 그리고 새로운 남편과 그의 죽음. 금의환향한 전남편이 내뱉은 한 마디는 아주 잔혹하다. 조선 시대 열녀에 대한 비판으로도 다가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