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회전목마처럼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한수진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재밌는 이력을 가진 소설이다. 요코미즈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에 응모했다가 대상 후보까지 올라간 작품을 수정한 작품이다. 작가 후기를 보면 그 당시보다 더 세밀하고 발전했다고 한다. 실제 이 소설이 작가의 첫 작품이다. 이 작품의 출간은 작가의 출세작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수첩>이 크게 성공한 덕분이다. 가끔 이런 경우를 만난다. 성공한 작가가 과거의 습작이나 아이디어를 현재 시점의 필력으로 재탄생시킨다. 내가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이 성공작이 다른 편집자로 하여금 기존의 응모작을 출간하게 만들었다. 반가운 일이다.

 

연애 미스터리란 이름을 달고 있다. 실제 이 작품은 일상 미스터리 범주에 들어간다. 우리가 흔히 미스터리하면 떠올리는 살인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 어느 정도 살짝 기대한 부분도 있었는데 실제 없다. 그렇다고 미스터리의 긴장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감정과 소소하지만 개인들에는 중요한 미스터리가 계절마다 나온다. 이때 중요한 설정 중 하나가 ‘계절’이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 나츠키와 후유코가 학창시절 만들어낸 하나의 추리 놀이다. 주위의 기묘한 일의 ‘계’기를 알아내어 ‘절’차에 맞게 설명하는 것인데 당연히 정답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논리적으로 맞는가 하는 것이다. 이 ‘계절’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설정이다.

 

나츠키와 후유코의 관계는 일단 고등학교 동창이다. 졸업 후 서로 떨어져 있었다. 후유코는 1년 어학 연수를 떠났다. 서로의 대학 위치도 다르다. 교토와 오사카.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둘은 대학시절 만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후유코가 연락을 했다. 이 소설은 그 이후 일어난 네 계절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이 둘의 추억이다. 그리고 작가의 작지만 중요한 트릭 하나가 살짝 끼어든다. 만약 누군가가 이것을 깨달았다면 마지막에 펼쳐지는 계절을 아주 잘 맞추었을 것이다. 그 속에 담긴 복잡한 감정의 흐름도.

 

이 둘의 이름에는 계절이 담겨 있다. 나츠키는 여름이, 후유코는 겨울이. 여름과 겨울은 함께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둘은 첫 만남부터 ‘계절’을 통해 관계를 발전시켰다. 다만 친구 그 이상의 단계로 발전하지 않고. 물론 이렇게 둘 사이가 정체된 데는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후유코다. 둘의 타이밍은 기가 막히게 엇갈린다. 이 엇갈림을 바로 잡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둘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 중 하나는 바로 나츠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그의 생각과 감정이 과연 어디까지 사실인지, 그가 짐작한 후유키의 진실은 또 무엇인지 추측만 할 뿐이다.

 

둘이 펼치는 대결인 ‘계절’은 관찰과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다. 확인이라는 절차가 반드시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어떤 대결은 더 그럴듯한 추리가 이긴다. 후유코의 약점은 ‘계절’에 낭만을 집어넣는 것이다. 감정의 개입은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데 장애 요소로 작용한다. 반면에 나츠키는 한 순간도 관찰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순간에서조차도. 단서를 모으고,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통찰로 풀리는 이야기는 소위 말하는 정당한 추리 대결과 거리가 좀 있다. 서술 트릭을 이용한 대목도 있다. 이런 장치와 설정들보다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마지막 에필로그다. 그의 미래를 ‘계절’한다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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