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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힘든 긴 밤 ㅣ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평점 :
이 글을 쓰기 전 인터넷 서점에서 쯔진천 이름으로 검색을 했다. 불행하게도 다른 번역 소설이 없다. 중국 3대 추리소설가란 이름을 생각하면 조금 의외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읽은 몇 권의 사회파 추리소설은 나의 취향을 저격했다. 그 중에서도 이번 소설은 중국 추리소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 몇몇 중국 작가의 추리소설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것을 봤기에 이 소설에 대한 엄청난 호평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모두 읽은 지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독자들의 평가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되었다.
한 인물이 지하철역에서 시체를 끌고 가다 도망친다. 잡힌 인물은 유명 형사 변호사 장차오다. 그는 순순히 혐의를 인정한다. 시체는 전직 검찰관 출신의 장양이다. 그의 기록만 보면 결코 착한 검찰관이 아니다. 감옥도 다녀오고, 도박도 하고, 뇌물까지 받은 나쁜 검찰관이다. 장차오와 장양이 싸운 것을 본 경찰의 기록도 있고, 장양의 손톱에는 장차오의 피부가 묻어 있다. 누가 봐도 이 사건은 장차오가 살인을 했다. 현장에서 잡혔고, 살인을 자백까지 했으니 이보다 더 분명한 사건은 없다. 그런데 재판이 벌어지면서 그는 이 모든 것을 부인한다. 알리바이도 완벽하다. 장양이 죽은 시점에 그는 북경에서 고객을 만나고 있었다. 이 시간 차이는 경찰을 미로 속으로 빠트린다.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끈 사건이고, 공개 재판으로 벌어졌기에 장차오를 고문할 수도 없다. 완벽한 알리바이와 시체 유기는 의혹투성이다. 이때 사건을 재수사하게 된 형사 자오톄민과 탐정 역의 옌량이 장차오의 동기를 조사한다. 너무 뻔한 사건이라 놓친 부분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옌량의 주장으로 다시 기본 수사를 시작하고, 한 사람의 이름이 드러난다. 그의 이름은 허우구이핑이다. 대학 졸업 전 시골로 와서 임시 교사를 했던 그의 이야기가 이때부터 흘러나온다. 과거 이야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진행되고, 진실의 흔적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허우구이핑. 그는 평범한 대학 졸업생에 정의감 불타는 청년 선생이다. 그가 머문 마을의 학생이 임신으로 학업을 그만 두고, 다른 학생이 집으로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삼촌의 등장으로 보냈다. 이 학생은 돌아와서 자살한다. 그때 보낸 것을 자책하는 그는 이 일을 파헤친다. 동네 깡패가 소녀를 성폭행했는지 조사했지만 조사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 다른 사람이 있다. 그는 이것을 계속해서 파고든다. 더 많은 아이들을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한다. 검찰원에 이 사건을 고발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마을 과부의 유혹에 넘어가고, 얼마 후 시체로 발견된다. 마을 과부와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수사 결과도 나온다.
장양은 허우구이핑의 동기다. 검찰원이 되었을 때 허우구이핑의 여자 친구였던 리장이 찾아온다. 허우구이핑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조사해달고 하면서. 1년차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여자 친구의 독촉과 함께 협의지심이 움직여 허우구이핑의 죽음을 재수사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검시관 천밍장과 정의로운 형사 주웨이를 만난다. 특히 주웨이와 그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던진다. 이 과정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절망감과 결코 굴복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은 보는 내내 감동하게 만든다. 부패한 조직과 권력은 이들이 발견한 단서들을 조금씩 묵살하거나 없애면서 이들의 수사를 무력화시킨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협박과 신분 추락 등이 발생했지만 그들의 굳센 의지는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처음 조직원으로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장양은 시간이 지나면서 강철처럼 단련된다. 그의 의지가 어떤 식으로 표출되었는지 보여줄 때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장양과 주웨이가 공무원이었을 때 왜 이들을 직접 죽이지 못하는지 보여줄 때 침묵하는 다수의 숨겨진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권력과 권위에 굴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의기는 결코 완전히 사그라든 것이 아니다. 비겁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어둠속에서 장양 등의 힘이 되어준다. 마지막 반격의 단서를 제공한 것도 바로 이들 중 한 명이다.
흔히 생각하는 수준에서 범인이, 배후가 나오지 않는다. 반전처럼 이어지는 몇 가지 이야기는 마지막 한 문장에서 방점을 찍는다. 그것을 작가는 현실의 사건과 연결시킨 것 같다. 하지만 그 수사의 신호탄은 바로 장양 같은 굳세고 정의로운 검찰관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 그들의 희생정신과 의지 등에 가슴이 먹먹했다. 아니 울컥했다. 그리고 장차오가 만든 이벤트를 재빠르게 눈치 챈 두 명이 나오는데 그 중 한 명이 옌량이다. 전면에 등장해서 이야기를 이끌고 가지 않지만 수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번 작품은 옌량이 등장하는 시리즈 마지막이라고 하는데 이전 작품에 관심을 그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예상하지 못한 사회파 추리소설의 구성과 전개인데 다른 작품은 어떨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