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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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파라다이스 가든> 이후 첫 장편 소설이다. 희미한 기억 속에 상당히 재밌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무려 10년 이상이 지난 후 다음 작품이 나왔다. 이런 경우 흔하지 않은데 상당히 반갑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우주인에 대한 이야기다. 중력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지구라는 땅에 묶여 있다. 이 땅을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비행 역사에 잘 나타난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 지구의 중력을 벗어났다. 달까지 갔다. 어릴 때 생각하면 지금쯤 달 여행이 상용화되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작가는 이런 우주인에 대한 도전을 그려내고 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은 이소연 박사다. 그녀가 우주인이 되기까지는 많은 도전자와 경쟁해야만 했다. 방송으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 자신이 별로 이런 홍보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러시아 우주선을 빌려 타고 가는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 당시 이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 이 소설의 작가다. 물론 작가는 이소연 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았고, 소설에 필요한 질문을 그녀에게 바로 던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많은 부분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다. 하지만 이 기억은 작가의 무의식 속에 쌓여 적지 않은 부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30대 중반의 샐러리맨 연구원 이진우가 주인공이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을 꿈꾸며 이 선발 경쟁에 뛰어든 수많은 지원자들 중 한 명이다. 이 우주인 선발 과정은 방송으로 나왔고, 그가 최종 인원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지도를 얻는다. 실제 방송을 보지 않은 나도 이소연 박사를 기억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회사원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그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단순히 그 혼자만 다루지 않고 함께 경쟁하는 사람들도 같이 보여준다. 작가는 다른 지원자의 생각을 나중에 공개된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면서 보여준다. 아마도 가장 치열한 경쟁 상태에서 지원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이 인터뷰가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우주인에 가까워진다. 고비도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신체검사다. 언제 어떤 검사를 했는지에 따라 실험에 영향을 미친다. 이 사실을 안 이진우가 강력하게 재검을 요청하는 모습은 흔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강력한 경쟁자가 같이 탈락한 상태에서 이런 정보를 알려줄 때 그가 고민하는데 아주 현실적이다. 이 소설에서 자주 보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이런 갈등과 고민들이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목적지가 눈앞에 보일 때 이런 유혹은 더 강해진다. 이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우주인이 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모두가 될 수 없다. 최소 한 명, 많으면 두 명이 최선이다. 중반 이후 러시아에서 교육을 받을 때 최초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를 분명하게 예를 들면서 보여준다. 기록의 세계에서 두 번째는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최초보다 중요한 것은 우주로 나간다는 것이다. 이 꿈에 도전에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열정은 일일이 나열할 필요가 없다. 단지 몇 명만 예를 들어 보여주고, 이 경쟁을 마지막까지 펼치는 사람들의 모습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단순히 경쟁 관계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기도 한다. 가슴 훈훈하지만 아슬아슬한 장면들이다.

 

한국 최초 우주인이 현실에서 누구인지 안다. 하지만 소설은 끝까지 이 사실을 숨긴다. 중간에 탈락한 것 같은 장면은 보여주지만 앞에서 말한 재검 등을 통해 이진우는 부활한다. 연구소 직원인 그가 직장에서 겪게 되는 인사 문제는 공간이 바뀐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력과 열정과 의지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실제 훈련 과정을 보여주면서 이들이 경험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많은 부분 피상적이었던 훈련 테스트 등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해소되었다. 현재 과학이 지닌 한계도 분명하게 보인다. 내가 어릴 때 꿈꾸었던 우주여행이 어려운 이유도 알 수 있다.

 

꿈은 현실에서 시작한다. 꿈이 이루어졌다고 현실이 사라지지 않는다. 중력을 벗어나 우주로 나갔다고 평생 그곳에 살 수 없다. 먼 미래에 중력이 없는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는 이 중력을 벗어날 수 없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현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우주로 나간다고 해서 자신의 삶에 당장 무언가가 변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돌아와야 한다. 무중력에서 늘어난 몸은 중력의 힘에 의해 제자리를 찾고, 일상은 다시 시작된다. 선발 과정이 끝나고 누군가가 우주로 나갔지만 우주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꾸는 누군가는 또 있다. 나 자신도 이 선발 과정과 우주선을 타고 나간 사람을 조금은 삐딱하게 봤는데 이 소설은 읽으면서 괜히 미안해진다. 그들의 열정과 노력과 의지에 박수를 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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