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낯설게
이힘찬 지음 / 경향미디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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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무거운 책이나 장르 소설을 읽다가 잠시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런 말랑말랑한 책을 읽으면 조금 느슨해진다. 감상적인 글과 사진들로 가득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청춘 한 자락이 잠시 떠올랐다. 재기발랄한 글도 보이고,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한 글도 눈에 들어왔다. 서울이란 공간을 같이 살다보니 겹치는 공간도 있다. 공간이 겹친다고 그와 내가 보는 곳이나 감상까지 같지는 않다. 그래서 내가 가본 곳은 조금 낯설게 보이고, 가보고 싶었지만 가보지 못한 곳은 아쉬움과 설렘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그와 그녀의 사랑 흔적도 같이.

 

일상이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이 책에서 말한다. 그리고 글과 사진으로 그것을 보여준다. “이 안에 여행 정보 같은 것은 없다. 나만이 알고 있는 예쁜 길이라든가, 너무 특별해서 잊을 수 없는 만남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소소한 이야기, 누구나 갈 수 있는 곳,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웠다.”라고 미리 말한다. 그의 말처럼 열두 곳은 누구나 갈 수 있고, 실제 갔던 곳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평범한 듯한 사진 한 장과 그곳과 관련된 기억과 추억을 풀어낼 때 또 다른 감성으로 그곳들이 다가온다.

 

열두 곳 중 딱 반이 가본 곳이다. 우리 동네 포함해서 그렇다. 물론 나와 그가 사는 동네는 다르다. 이 책을 선택할 때 목차 속에 나온 몇 곳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그 중에서 특히 선유도와 하늘공원과 당산역 4번 출구가 그랬다. 선유도와 하늘공원은 늘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 아직 가보지 못했기에 그곳의 풍경은 어떨까 하는 기대가 있었고, 당산역 4번 출구는 그곳에 무엇이 있길래 하는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 예상한 것과 다른 사진과 이야기가 흘러나와 낯설었지만 그의 감상과 감성에 조금씩 젖어들면서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책을 넘기게 되었다.

 

사실 이런 감성적인 글을 읽으면 처음에는 참 좋다. 하지만 끝으로 가게 되면 조금은 감정이 가라앉게 된다. 아마도 짧은 시간 동안 읽다 보니 그 감성을 녹여낼 시간이 부족했는지 모르겠다. 며칠의 시간을 두고 다른 책도 보면서 짬짬이 본다면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그의 글들이 낯익은 감상으로 다가온 탓인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말한 청춘의 한 자락을 떠올려주는 문장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키워드로 나열된 단어는 혼자, 여행, 사랑, 그리움 등이다. 짧은 시간 동안 다니면서 찍은 사진과 글을 편집한 것이 아니다. 긴 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다니고 그때 한 사랑과 이제 끝난 사랑에 대한 감정을 녹여내었다. 그의 여행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다른 도시로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곳으로 낯설게 다가가는 것이다. 늘 반복적으로 가는 곳일지라도 어느 날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잘 안다고 생각한 곳이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다. 목적지를 향해 그냥 걸어갈 때는 몰랐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 쌓여 있는 추억과 기억들이 많다면 더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올 것이다.

 

내가 가본 곳과 겹치는 공간도 그의 눈으로 사진으로 본 곳은 달랐다. 분명 같은 길을 걸었을 텐데 말이다. 이런 낯선 시선이 좋다. 내가 자주 간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집에서 가까운 서울숲만 해도 늘 가는 곳만 돌아다니지 더 깊은 곳 새로운 곳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입구조차도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통로로 생각하는데 그는 그곳에 카메라를 들여다 대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때 연쇄적으로 기억의 문이 열리고, 그 장소와 관련된 추억들이 떠오른다. 낯선 곳에 대한 이야기보다 가본 곳의 이야기가 더 좋은 경우가 바로 이때다. 내가 같은 나라, 도시, 지역을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잠시 무거운 것을 내려놓고 추억 속으로, 일상의 여행 속으로 빠져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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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파수꾼
켄 브루언 지음, 최필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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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듯 낯익은 이름이다. 저자 이력에 재미있게 읽은 책 한 권이 보인다. <런던 대로>다. 간결한 문체와 빠르고 파괴적인 이야기로 나를 사로잡은 작품이다. 개성 강한 캐릭터가 돋보였는데 이번에도 강한 개성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잭 테일러다. 아일랜드 경찰 가르다 출신인데 술과 사고 이후 짤렸다. 가르다가 해고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는 목적을 이루었다. 그리고 무허가 사설탐정이 되었다. 그것도 알코올중독자로. 하지만 그의 저렴한 수수료는 의뢰인들을 만족시켰다. 여기에 좋은 실적이 덧붙여졌다.

 

바에 앉아 있는데 한 여자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다. 앤 앤더슨이 바라는 것은 딸 새라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혀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앤 익사했어’란 전화 한 통. 앤은 딸과 함께 여행하려던 돈을 의뢰비로 지출하고 떠난다. 술주정뱅이 탐정인 잭은 얼떨결에 사건을 맡는다. 한때 동료를 찾아가 사건 파일을 보여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한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조사하니 새라 외에도 자살한 아이들이 몇 명 더 있다. 한 가지 공통점도 있다. 세 명의 아이들이 에드워드 스퀘어란 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그가 파일을 부탁했던 클랜시 총경도 이곳 오너 플랜터와 골퍼를 친다. 수상하다.

 

일반적이 하드보일드는 탐정물이라면 이 단서를 가지고 깊게 파고들어서 한두 차례 위기를 겪은 후 진실을 밝혀낼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진행이 아니다.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 정도가 다르다. 경찰이었고 알코올의존증이 있는 그지만 책은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래서 책 곳곳에 다른 작품이나 시가 인용된다. 빠르고 강렬한 흐름이 아니라 약간 느슨한 가운데 사건이 발생하고 해결되는 방식이다. 사건 자체보다 잭과 그 주변 사람들의 관계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그렇다고 완전히 이 사건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 관계는 알게 모르게 사건과 이어지고, 새로운 사건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간결한 문장은 건조하고, 사건은 그렇게 강렬하지 않다. 아니 당사자에게 아주 강하겠지만 표현이 그렇다. 잭에게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서튼이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술집 주인 숀이 있다. 이 둘은 술에 절어 사는 그에게 없어서는 안될 사람들이다. 서튼은 친구고, 숀은 그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화가이기도 한 서튼은 그와 함께 새라의 사건을 조사한다. 이때 사고가 생긴다. 이 사고가 둘 사이에 조그만 균열을 만든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균열은 점점 더 자란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듯이. 이 둘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역시 술이다. 술이 점점 그의 정신과 육신을 갉아먹는다.

 

<런던 대로>의 강한 액션을 기억하는 나에게 이 작품은 조금 심심했다. 한 번에 휘몰아치는 방식이 아니다 보니 다음에 뭔가 더 큰 일이 일어날 것이란 기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없다. 치밀하게 짜여진 살인이나 트릭도 없다. 정말 조금만 신경을 쓰고, 노력을 한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사건들이다. 물론 그 이면은 다르다. 그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진한 외로움을 만난다. 그 외로움은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것이다. 술은 잠시 끊었지만 상황이 그로 하여금 마시게 만든다. 다행이라면 도박으로 엄청난 배당을 받아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랄까. 하지만 그의 곁에 사람이 없으니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빠른 진행이나 강한 액션에 중독되어 있다면 이 소설은 심심할 것이다. 잘 짜인 구성 속에서 미스터리를 풀어내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차갑고 어두운 밤과 진한 술 한 잔과 더불어 가슴 끝까지 파고드는 외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건조하고 간결한 문장 속에서 피어나는 블랙유머도. 아직 잭의 중요한 과거가 나오지 않았다. 과연 어떤 과거가 있길래 그는 술에 빠졌을까? 시리즈 다음은 어느 곳에서 일어난 사건일까? 여러 가지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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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램의 선택
제인 로저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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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 인류는 엄청난 재앙을 만난다. 그 재앙은 인간에 의해 탄생한 바이러스다. 그 바이러스의 이름은 모체사망증후군(MDS)이다. 이 바이러스는 생화학 테러리스트가 만들었다. 이 바이러스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안전하지만 임산부를 공격하여 죽게 만든다. 전 인류가 이 바이러스에 걸렸다. 백신이 만들어지거나 다른 방법이 없다면 현재까지 태어난 아이들이 죽게 되면 인류는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런 끔찍한 종말을 앞둔 상황에서 영국의 한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심에는 제시 램이 있다.

 

열여섯 소녀인 제시 램은 소위 말하는 진보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환경운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하고, 몇 가지 급진적인 단체에 동의한다. 이 시대 가임 여성들은 피임 도구를 몸에 넣은 채 살아간다. 어느 날 누군가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떠돌면 곧바로 그녀의 죽음 소식이 따라온다. 아내가 임신 후 이 바이러스 때문에 죽으면서 절망에 빠진 남편들이 자살을 하거나 이제 아이를 영원히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그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제시의 이모인 맨디 이모가 후자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아기다. 이제는 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시한부 종말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같지만 다른 종말 소설과 다른 방향을 가진다. 좀비나 다른 행성의 충돌을 기다리는 상황을 다룬 소설은 있지만 이처럼 더 이상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없는 종말은 처음 본다. 이 독특한 설정 속에서 작가는 열여섯 소녀의 감성과 현실 속에 이 상황을 풀어내기 위한 과학적 정치적 윤리적 문제를 뒤섞는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SF소설로, 또 어떤 부분은 성장소설로 읽힌다. 이 다층적인 의미 속에서 나를 사로잡은 부분은 바로 SF적인 설정이 아닌 제목처럼 제시 램이 선택한 결정이다. 그리고 이 결정에 관련된 아빠와 딸의 대립이다.

 

예전에 에이즈가 전 세계적으로 퍼졌을 때 종말이 곧 일어날 것처럼 언론은 떠들었다. 하지만 피임기구와 환자들의 격리와 의학 검사 등을 통해 전염의 속도를 늦추었다. 의학은 이 병을 처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지만 에이즈로 인한 사망을 늦출 수 있게 만들었다. 단 치료약을 먹어야 한다. 이 약을 먹지 못하면 죽음에 이른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아기들이 에이즈에 걸린 채 태어나지만 그 약값이 없어 죽는다. 선진국은 난치병으로 바뀌었는데 말이다. 이런 기억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들었다. 이 바이러스도 곧 백신이 나오거나, 아니면 과학이 다른 방법으로 인류의 종말을 막을 것이라고. 실제 일어났다. 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 잔혹하다.

 

현재까지 유일한 방법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뇌가 썩어 임산부는 죽지만 태아는 임산부 뱃속에서 살아남는다. 기존의 바이러스 감염자는 치료할 수 없지만 바이러스 발생 전 냉동 보관한 난자에 백신을 놓은 후 인공 수정하고, 대리모의 몸을 통해 태아를 성장시키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대리모는 죽게 된다. 동물을 이용해 인공자궁을 만들거나 다른 의학적 방법을 사용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유일한 방법이다. 참으로 잔혹한 방법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과학에 동참하려는 지원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제시 램이다.

 

이 소설은 제시 램이 화자가 되어 자신이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과학자인 아빠의 의견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실제 당사자가 된 아빠는 이 선택을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 딸을 납치해서 가둔다. 여기서 이야기는 시작하고, 과거로 돌아가서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솔직히 말해 그녀의 선택이 아주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든 사회적 과학적 분위기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바로 ‘인신공양’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다는 거대한 대의를 여성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단체가 등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남의 일일 때 인류와 과학을 말하며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말하던 아빠가 자신의 딸이 인신공양의 대상이 되었을 때 변하는 모습을 보고 과학자의 논리와 이성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아빠의 의견에 동의한다. 이 실험을 주도하는 과학자가 몇 번의 단계를 거쳐 중간에 그만둘 수 있게 만들었지만 그의 본심이 실제 드러나는 대목을 보면 그 자신이 얼마나 잔혹한지 알 수 있다. 이런 부분을 감안하고 읽게 되면 종말과 인신공양이란 두 주제가 연결된다. 아무리 발단한 문명이라고 종말이란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이에 저항하는 수많은 시민단체가 등장하지만 현재의 법체계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과학자는 그 법의 허점을 이용한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제시의 선택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종말을 앞둔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수많은 조직과 사람들이 나와 현실의 높은 벽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직 인류에게 시간이 남아 있는데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왜 제시가 하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이런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제시가 아빠와 한 이야기 속에 고대인들의 인신공양이 나오는데 이 희생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자신을 하나의 영웅으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그녀가 한 것은 자궁을 제공한 것밖에 없다. 생명을 바쳤지만 그 태아를 키운 것은 과학자와 의료기계들이다. 이렇게까지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인류가 생존해야 한다면, 그것이 한두 사람이 아니라면 인류의 존재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 것 같다. 이렇게 이 한 편의 소설을 통해 인류와 과학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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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 - 비만기자 김민하의 육체개조 프로젝트!
김민하.이근형 지음, 똥똥배 만화 / 메디치미디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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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기자 김민하의 육체개조 프로젝트란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표지만 보면 만화로 된 책이다. 실제 만화인 줄 알았다. 김민하 기자의 운동을 똥똥배라는 만화가가 만화로 표현한 것으로 착각했다. 만화라면 가볍게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고 기대했다. 그런데 책을 받으니 아니다. 만화가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글이다. 비만인이 살을 빼는 다이어트 프로그램 정도로 너무 쉽게 생각했다. 점점 늘어나는 나의 뱃살을 생각하면서 이 만화를 보면서 쉽게 따라할 운동이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다. 이 기대는 책을 받아 읽기 시작하면서 간단히 무너졌다.

 

101kg 거구의 기자가 몸을 생각해서 선택한 운동은 조금은 낯선 크로스핏이다. 가끔 보는 방송에서 이 운동을 아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아주 격렬했다. 단시간에 운동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기자가 이 운동을 하면 얼마나 많은 살들이 얼마나 빠르게 빠질까 하는 기대를 했다. 이 기대도 역시 산산조각났다. 흔히 살빼는 다이어트 운동과 성격이 다른 운동이기 때문이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같이 진행하면서 전신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는데 읽는 것만으로도 만만찮게 다가온다.

 

비만에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이 이 격한 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버틸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체계적인 운동은 언제나 그 사람에 맞춰진다. 그리고 그 한계를 조금씩 높여간다. 김민하 기자도 자신의 운동기록이 책으로 나올 것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고? 하루의 운동을 마친 후 그가 보여주는 간결한 마무리 글들이 늘 운동을 멀리하는 나의 핑계와 너무나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좋은 트레이너를 만났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자신이 4개월에 걸쳐 이 혹독한 운동을 했다. 그 결과는 살 빼는 목적인 사람들의 바람과는 완전히 다르다. 몸무게가 겨우 4kg 빠진 97kg이기 때문이다. 대신 지방을 버리고 근육을 얻었다.

 

이전에 중년인이 폭식과 폭음과 운동 부족을 겪은 후 다이어트한 내용을 적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거구의 남자는 가장 먼저 한 것이 음식량 조절과 운동이었다. 운동의 기본은 걷기였다. 이 조합의 결과는 좋았다. 운전하던 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려 집까지 걷는 그는 아주 많은 살을 뺐다. 멋졌다. 하루 걷는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나에게 이 조합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물론 실천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이런 조합으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살을 뺀 사람이 있다. 몇 개월 사이에 홀쭉해진 상태로 나타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더 살이 쪘다. 그렇다고 걷기를 포기한 것도 아니다. 먹는 것을 잘 조절하기 못한 탓이다. 이때 즈음에 방송에서 근력운동의 중요성을 다룬 프로그램을 봤다. 그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살을 뺐을 때 근육운동을 같이 했다면 훨씬 건강하고 좋은 몸을 만들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런 간접 경험들을 가지고 읽은 이 책은 낯선 용어들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아주 효과적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역시 몸무게다. 근육이 늘었다고 해도, 라인이 좋게 변했다고 해도 몸무게가 무거우면 내가 기대한 것과 조금 다르다. 개인적으로 헬스 트레이너들의 근육질 몸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다. 물론 이런 몸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책 속에서도 나오는 지적이다. 학창시절 이와 조금 유사한 운동을 하고 난 후 엄청난 헛구역질을 한 경험이 있는 나에게 저자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공감이 된다. 이근형이 지적한 많은 것들은 사실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게으름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늘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언젠가 실천하리라! 는 다짐 말이다. 당연히 아직 한 번도 실천한 적이 없다. 간단한 것 조금 하다가 중단한 것을 제외하면. 만약 이 책을 통해 몸무게를 많이 빼는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면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진짜 건강한 몸을 원한다면 읽고 당장 크로스핏 헬스장으로 달려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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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는 것
와시다 기요카즈 지음, 김경원 옮김 / 불광출판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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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이 책을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 선택했을 때는 기다림에 대한 간단한 에세이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받고 읽기 시작하면 금방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이것은 착각과 나의 오만이었다.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니다. 기다린다는 것에 대한 심리학적 문학적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어 곱씹어야 하는 대목이 곳곳에 나온다. 기다린다는 것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는 것에 박수를 친다. 초조함에서 시작한 열아홉의 여정은 열림의 장으로 끝난다.

 

초조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해도 나의 일상과 부합하는 부분이 많았다. 학창시절부터 약속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나와 사람들을 기다린 경험이 많기에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곧 이 기다림은 시간과 심리와 철학과 종교 등과 엮이면서 난해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용되는 문학과 철학 등은 낯선 이름과 학설로 잠시 동안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미묘한 문장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 부분도 적지 않아 조금만 집중력을 깨트려도 뭔 말인지 모르고 그냥 넘어간다. 이 말은 집중하면 아주 많은 사유를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많은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치매고, 다른 하나는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해석한 부분이다. 치매 부분은 임상심리를 다룬 부분이 많고, 새로운 시도를 다룬 부분이 있어 신선하게 다가왔다. 몇 장으로 다 다루기는 어려운 부분이지만 치매 환자와 요양원의 관계가 이전에 흔히 보던 것과 달라 놀랐다.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을 생각할 때 유념해야 할 부분이 많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예전에 한 번 읽은 적이 있다. 당연히 뭔 소리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제목 때문에 읽으면서 이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했는데 적중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반복되는 곳도 있지만 새롭게 다가온 내용이 더 많았다. 약간이나마 희곡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제목처럼 그들은 기다리지만 그는 결코 오지 않는다. 이 부조리 연극이 많은 무대에 올려지고, 수많은 해석서가 나오는 것은 이미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다린다는 행위는 수많은 곳에서 일어난다. 수많은 감정을 불러온다. 누군가는 이 기다리는 것이 올 것이란 기대가 없는 경우도 있다.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린다는 점에서 <고도를 기다리며>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런 심오한 경우가 아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또 시간과 관계있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해설은 기존의 인식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시간을 흐름의 개념으로 볼 때 생기는 오류를 감안하면 더 쉬울 것이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꼼꼼하게 읽고, 수많은 인용과 주석을 읽다 보면 나의 지식이 얼마나 협소한지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은 새로운 기대로 당연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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