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 램의 선택
제인 로저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까운 미래 인류는 엄청난 재앙을 만난다. 그 재앙은 인간에 의해 탄생한 바이러스다. 그 바이러스의 이름은 모체사망증후군(MDS)이다. 이 바이러스는 생화학 테러리스트가 만들었다. 이 바이러스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안전하지만 임산부를 공격하여 죽게 만든다. 전 인류가 이 바이러스에 걸렸다. 백신이 만들어지거나 다른 방법이 없다면 현재까지 태어난 아이들이 죽게 되면 인류는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런 끔찍한 종말을 앞둔 상황에서 영국의 한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심에는 제시 램이 있다.

 

열여섯 소녀인 제시 램은 소위 말하는 진보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환경운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하고, 몇 가지 급진적인 단체에 동의한다. 이 시대 가임 여성들은 피임 도구를 몸에 넣은 채 살아간다. 어느 날 누군가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떠돌면 곧바로 그녀의 죽음 소식이 따라온다. 아내가 임신 후 이 바이러스 때문에 죽으면서 절망에 빠진 남편들이 자살을 하거나 이제 아이를 영원히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그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제시의 이모인 맨디 이모가 후자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아기다. 이제는 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시한부 종말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같지만 다른 종말 소설과 다른 방향을 가진다. 좀비나 다른 행성의 충돌을 기다리는 상황을 다룬 소설은 있지만 이처럼 더 이상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없는 종말은 처음 본다. 이 독특한 설정 속에서 작가는 열여섯 소녀의 감성과 현실 속에 이 상황을 풀어내기 위한 과학적 정치적 윤리적 문제를 뒤섞는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SF소설로, 또 어떤 부분은 성장소설로 읽힌다. 이 다층적인 의미 속에서 나를 사로잡은 부분은 바로 SF적인 설정이 아닌 제목처럼 제시 램이 선택한 결정이다. 그리고 이 결정에 관련된 아빠와 딸의 대립이다.

 

예전에 에이즈가 전 세계적으로 퍼졌을 때 종말이 곧 일어날 것처럼 언론은 떠들었다. 하지만 피임기구와 환자들의 격리와 의학 검사 등을 통해 전염의 속도를 늦추었다. 의학은 이 병을 처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지만 에이즈로 인한 사망을 늦출 수 있게 만들었다. 단 치료약을 먹어야 한다. 이 약을 먹지 못하면 죽음에 이른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아기들이 에이즈에 걸린 채 태어나지만 그 약값이 없어 죽는다. 선진국은 난치병으로 바뀌었는데 말이다. 이런 기억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들었다. 이 바이러스도 곧 백신이 나오거나, 아니면 과학이 다른 방법으로 인류의 종말을 막을 것이라고. 실제 일어났다. 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 잔혹하다.

 

현재까지 유일한 방법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뇌가 썩어 임산부는 죽지만 태아는 임산부 뱃속에서 살아남는다. 기존의 바이러스 감염자는 치료할 수 없지만 바이러스 발생 전 냉동 보관한 난자에 백신을 놓은 후 인공 수정하고, 대리모의 몸을 통해 태아를 성장시키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대리모는 죽게 된다. 동물을 이용해 인공자궁을 만들거나 다른 의학적 방법을 사용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유일한 방법이다. 참으로 잔혹한 방법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과학에 동참하려는 지원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제시 램이다.

 

이 소설은 제시 램이 화자가 되어 자신이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과학자인 아빠의 의견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실제 당사자가 된 아빠는 이 선택을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 딸을 납치해서 가둔다. 여기서 이야기는 시작하고, 과거로 돌아가서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솔직히 말해 그녀의 선택이 아주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든 사회적 과학적 분위기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바로 ‘인신공양’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다는 거대한 대의를 여성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단체가 등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남의 일일 때 인류와 과학을 말하며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말하던 아빠가 자신의 딸이 인신공양의 대상이 되었을 때 변하는 모습을 보고 과학자의 논리와 이성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아빠의 의견에 동의한다. 이 실험을 주도하는 과학자가 몇 번의 단계를 거쳐 중간에 그만둘 수 있게 만들었지만 그의 본심이 실제 드러나는 대목을 보면 그 자신이 얼마나 잔혹한지 알 수 있다. 이런 부분을 감안하고 읽게 되면 종말과 인신공양이란 두 주제가 연결된다. 아무리 발단한 문명이라고 종말이란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이에 저항하는 수많은 시민단체가 등장하지만 현재의 법체계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과학자는 그 법의 허점을 이용한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제시의 선택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종말을 앞둔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수많은 조직과 사람들이 나와 현실의 높은 벽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직 인류에게 시간이 남아 있는데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왜 제시가 하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이런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제시가 아빠와 한 이야기 속에 고대인들의 인신공양이 나오는데 이 희생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자신을 하나의 영웅으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그녀가 한 것은 자궁을 제공한 것밖에 없다. 생명을 바쳤지만 그 태아를 키운 것은 과학자와 의료기계들이다. 이렇게까지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인류가 생존해야 한다면, 그것이 한두 사람이 아니라면 인류의 존재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 것 같다. 이렇게 이 한 편의 소설을 통해 인류와 과학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