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파수꾼
켄 브루언 지음, 최필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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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듯 낯익은 이름이다. 저자 이력에 재미있게 읽은 책 한 권이 보인다. <런던 대로>다. 간결한 문체와 빠르고 파괴적인 이야기로 나를 사로잡은 작품이다. 개성 강한 캐릭터가 돋보였는데 이번에도 강한 개성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잭 테일러다. 아일랜드 경찰 가르다 출신인데 술과 사고 이후 짤렸다. 가르다가 해고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는 목적을 이루었다. 그리고 무허가 사설탐정이 되었다. 그것도 알코올중독자로. 하지만 그의 저렴한 수수료는 의뢰인들을 만족시켰다. 여기에 좋은 실적이 덧붙여졌다.

 

바에 앉아 있는데 한 여자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다. 앤 앤더슨이 바라는 것은 딸 새라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혀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앤 익사했어’란 전화 한 통. 앤은 딸과 함께 여행하려던 돈을 의뢰비로 지출하고 떠난다. 술주정뱅이 탐정인 잭은 얼떨결에 사건을 맡는다. 한때 동료를 찾아가 사건 파일을 보여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한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조사하니 새라 외에도 자살한 아이들이 몇 명 더 있다. 한 가지 공통점도 있다. 세 명의 아이들이 에드워드 스퀘어란 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그가 파일을 부탁했던 클랜시 총경도 이곳 오너 플랜터와 골퍼를 친다. 수상하다.

 

일반적이 하드보일드는 탐정물이라면 이 단서를 가지고 깊게 파고들어서 한두 차례 위기를 겪은 후 진실을 밝혀낼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진행이 아니다.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 정도가 다르다. 경찰이었고 알코올의존증이 있는 그지만 책은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래서 책 곳곳에 다른 작품이나 시가 인용된다. 빠르고 강렬한 흐름이 아니라 약간 느슨한 가운데 사건이 발생하고 해결되는 방식이다. 사건 자체보다 잭과 그 주변 사람들의 관계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그렇다고 완전히 이 사건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 관계는 알게 모르게 사건과 이어지고, 새로운 사건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간결한 문장은 건조하고, 사건은 그렇게 강렬하지 않다. 아니 당사자에게 아주 강하겠지만 표현이 그렇다. 잭에게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서튼이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술집 주인 숀이 있다. 이 둘은 술에 절어 사는 그에게 없어서는 안될 사람들이다. 서튼은 친구고, 숀은 그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화가이기도 한 서튼은 그와 함께 새라의 사건을 조사한다. 이때 사고가 생긴다. 이 사고가 둘 사이에 조그만 균열을 만든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균열은 점점 더 자란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듯이. 이 둘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역시 술이다. 술이 점점 그의 정신과 육신을 갉아먹는다.

 

<런던 대로>의 강한 액션을 기억하는 나에게 이 작품은 조금 심심했다. 한 번에 휘몰아치는 방식이 아니다 보니 다음에 뭔가 더 큰 일이 일어날 것이란 기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없다. 치밀하게 짜여진 살인이나 트릭도 없다. 정말 조금만 신경을 쓰고, 노력을 한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사건들이다. 물론 그 이면은 다르다. 그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진한 외로움을 만난다. 그 외로움은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것이다. 술은 잠시 끊었지만 상황이 그로 하여금 마시게 만든다. 다행이라면 도박으로 엄청난 배당을 받아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랄까. 하지만 그의 곁에 사람이 없으니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빠른 진행이나 강한 액션에 중독되어 있다면 이 소설은 심심할 것이다. 잘 짜인 구성 속에서 미스터리를 풀어내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차갑고 어두운 밤과 진한 술 한 잔과 더불어 가슴 끝까지 파고드는 외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건조하고 간결한 문장 속에서 피어나는 블랙유머도. 아직 잭의 중요한 과거가 나오지 않았다. 과연 어떤 과거가 있길래 그는 술에 빠졌을까? 시리즈 다음은 어느 곳에서 일어난 사건일까? 여러 가지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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