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낯설게
이힘찬 지음 / 경향미디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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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무거운 책이나 장르 소설을 읽다가 잠시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런 말랑말랑한 책을 읽으면 조금 느슨해진다. 감상적인 글과 사진들로 가득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청춘 한 자락이 잠시 떠올랐다. 재기발랄한 글도 보이고,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한 글도 눈에 들어왔다. 서울이란 공간을 같이 살다보니 겹치는 공간도 있다. 공간이 겹친다고 그와 내가 보는 곳이나 감상까지 같지는 않다. 그래서 내가 가본 곳은 조금 낯설게 보이고, 가보고 싶었지만 가보지 못한 곳은 아쉬움과 설렘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그와 그녀의 사랑 흔적도 같이.

 

일상이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이 책에서 말한다. 그리고 글과 사진으로 그것을 보여준다. “이 안에 여행 정보 같은 것은 없다. 나만이 알고 있는 예쁜 길이라든가, 너무 특별해서 잊을 수 없는 만남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소소한 이야기, 누구나 갈 수 있는 곳,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웠다.”라고 미리 말한다. 그의 말처럼 열두 곳은 누구나 갈 수 있고, 실제 갔던 곳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평범한 듯한 사진 한 장과 그곳과 관련된 기억과 추억을 풀어낼 때 또 다른 감성으로 그곳들이 다가온다.

 

열두 곳 중 딱 반이 가본 곳이다. 우리 동네 포함해서 그렇다. 물론 나와 그가 사는 동네는 다르다. 이 책을 선택할 때 목차 속에 나온 몇 곳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그 중에서 특히 선유도와 하늘공원과 당산역 4번 출구가 그랬다. 선유도와 하늘공원은 늘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 아직 가보지 못했기에 그곳의 풍경은 어떨까 하는 기대가 있었고, 당산역 4번 출구는 그곳에 무엇이 있길래 하는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 예상한 것과 다른 사진과 이야기가 흘러나와 낯설었지만 그의 감상과 감성에 조금씩 젖어들면서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책을 넘기게 되었다.

 

사실 이런 감성적인 글을 읽으면 처음에는 참 좋다. 하지만 끝으로 가게 되면 조금은 감정이 가라앉게 된다. 아마도 짧은 시간 동안 읽다 보니 그 감성을 녹여낼 시간이 부족했는지 모르겠다. 며칠의 시간을 두고 다른 책도 보면서 짬짬이 본다면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그의 글들이 낯익은 감상으로 다가온 탓인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말한 청춘의 한 자락을 떠올려주는 문장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키워드로 나열된 단어는 혼자, 여행, 사랑, 그리움 등이다. 짧은 시간 동안 다니면서 찍은 사진과 글을 편집한 것이 아니다. 긴 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다니고 그때 한 사랑과 이제 끝난 사랑에 대한 감정을 녹여내었다. 그의 여행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다른 도시로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곳으로 낯설게 다가가는 것이다. 늘 반복적으로 가는 곳일지라도 어느 날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잘 안다고 생각한 곳이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다. 목적지를 향해 그냥 걸어갈 때는 몰랐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 쌓여 있는 추억과 기억들이 많다면 더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올 것이다.

 

내가 가본 곳과 겹치는 공간도 그의 눈으로 사진으로 본 곳은 달랐다. 분명 같은 길을 걸었을 텐데 말이다. 이런 낯선 시선이 좋다. 내가 자주 간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집에서 가까운 서울숲만 해도 늘 가는 곳만 돌아다니지 더 깊은 곳 새로운 곳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입구조차도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통로로 생각하는데 그는 그곳에 카메라를 들여다 대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때 연쇄적으로 기억의 문이 열리고, 그 장소와 관련된 추억들이 떠오른다. 낯선 곳에 대한 이야기보다 가본 곳의 이야기가 더 좋은 경우가 바로 이때다. 내가 같은 나라, 도시, 지역을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잠시 무거운 것을 내려놓고 추억 속으로, 일상의 여행 속으로 빠져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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