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 라만차 돈 키호테의 길
서영은 지음 / 비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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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평론가들이 최고의 소설로 꼽는 책이 바로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다. 누구나 알고 있는 캐릭터지만 정작 끝까지 읽은 독자를 찾으면 몇 되지 않는 소설이 바로 <돈 키호테>다. 아닌가?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고전을 상당히 읽었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왠지 이 소설은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 2권까지 사 놓은 것이 20년은 넘은 것 같은데 말이다. 뭐 이런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지만. 그래도 최고 소설에 대한 목록이 나올 때면 읽어야지 마음을 먹게 된다. 실행은 언제나 실패. 그러다 손에 들어온 이 책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돈 키호테에 대한 생각을 많은 부분 새롭게 만들어줬다. 아마 나중에 읽게 된다면 그 영향과 여운이 조용히 스며들 것 같다.

 

서영은 작가가 식사 자리에서 출판사 사장에게 돈 키호테가 얼마나 성서적인 인물인지 설명했는데 출판사 사장이 그 내용을 책으로 내자고 한다. 며칠 후 출판사에서 사람을 보냈다. 편집장이다. 돈 키호테의 루트 탐색에 동행할 사람이다. 그렇게 이 두 사람은 마드리드에 왔다. 여기에 현지에 살고 있는 한 명이 더 동행에 참여한다. 그녀는 차를 운전하고 예약하고 이 일정을 좀더 편안하게 진행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없었다면 이 책의 탄생은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힘들게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낯설고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가이드의 존재는 언제나 빛날 수밖에 없다.

 

마드리드를 떠나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돈 키호테의 루트를 따라가지만 곳곳에 세르반테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스페인의 마을들이 돈 키호테로 먹고 사는지 놀랐다. 물론 이런 곳만 다녔기 때문에 더 그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각각의 마을에 세워진 동상이나 기념품 등을 생각하면 그 예상을 초월한다. 하나의 마을에 머물면 그 곳의 인상을 말하고 에피소드가 있는 곳이면 원작의 인용도 같이 곁들여진다. 이 인용은 순전히 작가가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되기 전 그녀는 다시 <돈 키호테>를 읽고 수많은 주석과 감상을 적어둔 상태다. 작가가 성서적으로 느낀 돈 키호테가 쉼없이 흘러나온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성서적 인물 돈 키호테가 이 책의 주제다. 이것을 조사하고 느끼고 발견하는 것이 바로 이 여정의 핵심이다. 동시에 세르반테스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나온다. 읽으면서 이전까지 몰랐던 세르반테스의 과거와 그 시대 모습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돈 키호테에 대한 설명 중 내적 동기를 ‘미침’ ‘광기’ 등의 정신병리학적 광기가 아니라 ‘의지적 열정’으로 해석한 부분은 아주 강하게 와 닿았다. 흔히 우리는 그를 희화해서 미친 놈 취급하지만 그의 의지적 열정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는 쉽게 잊는다. 이 때문에 돈 키호테와 산초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작가가 인용하는 문장들과 그녀의 단상이 엮이면 상당히 무거운 내용으로 바뀐다. 빠른 속도로 읽히던 책이 잠시 멈추어 설 수밖에 없다.

 

돈 키호테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두 인물이 있다. 산초와 둘시네아다. 그리고 그의 애마 로신안떼도 빼놓을 수 없다. 산초는 의지적 열정에 사로잡힌 돈 키호테를 뒤따라 다니면서 자신의 이익을 생각한다. 반면에 둘시네아는 돈 키호테의 환상이다. 말 안장을 두고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읽으면 돈 키호테가 분명하게 보인다. 둘시네아도 마찬가지다. 의지가 바로 선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변함이 없다. 아마 돈 키호테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광기에 사로잡혀 풍차에 돌진한 인물의 인상을 충분히 지워낼 에피소드다. 이런 에피소드를 뽑아내고, 과거와 현재의 경제 상태를 살짝 버무려 내놓은 것은 작가의 영적 경험과 삶에 대한 고찰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스페인이지만 나중에 가게 된다면 아마도 이 책이 조금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또 다른 방법 하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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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섬 1 - 비밀의 무덤 풀빛 청소년 문학 10
쎄사르 마요르끼 지음, 김미경 옮김 / 풀빛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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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을거리로 선택했다. 책소개글에서 쥘 베른이나 틴틴의 모험을 인용했을 때만 해도 조금 가벼운 문장과 약간 허술한 전개를 예상했다. 물론 이 작품이 받은 수많은 상들을 생각하면 나의 예상은 조금 심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청소년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 중 상당수가 문장의 밀도가 낮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예상이 이런 쪽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읽으면서 점점 사라졌다. 캐릭터와 이야기 전개에서 낯익은 부분이 많지만 묵직함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1권 마지막 쪽을 넘길 때는 쥘 베른의 소설을 읽을 때 호기심을 그대로 재현했다.

 

노르웨이 작은 섬에서 발생한 한 영국 선원 살인 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허술한 사건 조사로 그냥 묻히고 말았지만 그 의미가 결코 간단한 것은 아니다. 이 살인 사건의 의미가 드러나는 것은 남편의 생사를 알고 싶어 하는 엘리자베스 부인이 등장하면서부터다. 그녀의 남편 존 토마스 포가트 경이다. 포가트 경은 유명한 학자이자 탐험가인데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라이벌인 사르꼬 교수에게 조사를 의뢰하라고 부탁했다. 그는 성격이 불같고 남성 우월론자이지만 탐험과 조사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미 다른 조사 일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가 내민 조그만 금속의 정체 때문에 모든 일정을 변경한다. 그것은 그 시대에 혹은 이 금속이 매장되었던 시대에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물체이기 때문이다.

 

그 금속의 정체는 순도 백퍼센트의 티타늄이다. 매장된 연도는 10세기 경 성자 보웬의 무덤이다. 이 시대에 이런 금속이 존재할 수가 없다. 하지만 실재한다. 이런 모순과 놀라운 사실은 모든 학자들을 흥분하게 만든다. 동시에 이 금속의 경제적 가치에 재빨리 깨달은 악당 아르단이 등장한다. 광산 개발 등으로 엄청난 부자인 그의 정체는 투명하지 않다. 오히려 실체를 조사할수록 악취가 가득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살인도 불사한다. 제일 처음 영국 선원의 살인 사건도 그래서 일어난 것이다. 이런 악당을 적으로 깔아둔 상태에서 사르꼬 교수 일행은 사라진 포가트 경을 찾아내야 한다. 그 첫 걸음은 보웬의 무덤을 찾아가서 모든 사건이 처음 벌어진 곳을 조사하는 것이다.

 

악당과의 대결이 가장 중요한 하나의 줄기라면 보웬의 모험을 조사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기이한 수많은 사건들이 또 다른 줄기다. 여기에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과 새롭게 연인으로 발전하는 두 젊은이의 로맨스는 양념 같은 이야기다. 그리고 등장하는 인물 한 명 한 명에게 개성을 불어넣고 과거 사연을 만들어줌으로써 전체적으로 풍성한 이야기로 발전한다. 특히 일기를 쓰는 사무엘 두랑고의 존재는 등장 비중에 상관없이 이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역할을 주면서 제1차 대전이 어떤 전쟁이었는지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 캐서린과의 관계는 충분히 예상되는 전개지만 나의 나쁜 예상 중 하나는 반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탄탄한 구성과 전개 속에서 펼쳐지는 모험은 기억 속 쥘 베른 소설들의 것을 많이 닮아 있다. 보웬의 모험이 그대로 재현되는 과정과 모습은 어릴 때 기억을 환기시켜준다. 거기에 작가는 노골적으로 쥘 베른 소설 속 인물이나 역사 속 혹은 소설 속 인물들을 등장시켜 그 모험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이 연상 작용은 읽으면서 더 강해지는데 1권 마지막 장면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앞으로 펼쳐질 보웬 섬의 경이로운 모습을 상상하는 단계에서 끝난 것이다. 아직 2권을 읽지 않아 전체적인 평가를 내릴 수 없지만 단언컨대 쥘 베른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소설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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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즐거움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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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편의 에세이가 쉽게 읽히는 와중에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잠시 딴 생각을 하면 에세이 한 편이 후딱 지나갈 정도의 분량이다. 하지만 읽는 동안, 음미하는 동안에는 잠시 시간이 조용히 흘러간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모두 읽은 지금 표지의 푸른 색 외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왜일까? 집중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공감하지 못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해력 부족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다시 책을 펼쳐본다. 어둠과 문장을 엮은 글이 보인다. 보통 간단하게 표현되는 이 문장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명확함을 뒤로 하고 은유가 더 부각되니 문장들이 낯설다. 아마 이것이 이유가 아닐까? 낯선 표현과 문장이 쉽게 가슴에 와 닿지 못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만 집중하면 문장이 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빠르게 읽을 수 있지만 왠지 모르게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이 그렇다. 그냥 아무 곳이나 펼쳐도 음미할 문장이 나온다. “우리는 모두 한 줌의 빵 부스러기로 돌아간다.”(138쪽)는 문장도 방금 펼친 곳에서 발견했다. 보통 한 줌의 흙이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빵 부스러기라니 낯설다. 낯선 표현은 한 번 더 집중하게 만든다. 아마 이 책은 처음 읽을 때보다 두 번 세 번 읽을 때 더 가치가 빛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사랑하면서 느끼는 고통 역시 사랑이며, 그 고통은 말도 안 되는 위로로 사랑이 어둠 속으로 밀려들어 가듯 우리의 사랑이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아준다.”(76쪽) 이 사랑에 대한 문장은 사랑의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조금 과장된 표현인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살은 결코 하지 못할 것이란 말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감정과 감성이 엮이고 이것이 행동으로 표현될 때 그 사랑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문장일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어떤 글은 작품이나 연주자 등에 대한 감상을 풀어낸다. 그 평가가 너무 시적이고 현학적이면서 깊게 다루어져 도저히 작가의 감상에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내용은 읽는 내내 부러웠다. 어떻게 이런 평가와 감상을 쓸 수 있지 하고 말이다. 일상의 기적을 말할 때 그 평범한 듯한 일상이 왜 그렇게 성스럽고 중요한지 알려준다. “우리의 영혼은 그 성스러운 눈으로 보았던 순간을 차곡차곡 담아 우리의 일상을 버티게 한다.”(103쪽)는 문장이 바로 그것이다. 나의 일상이 무료하고 지루하다면 아마도 이런 성스러운 눈을 상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섬세한 문장과 통찰이 만들어낸 이 책은 사유의 깊이와 상관없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것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은 개인의 역량에 달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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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헤이스 두 번 죽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 34
마커스 세이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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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남자가 벌거벗은 채 바닷가에서 눈을 뜬다. 춥다. 생존을 위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차가 보인다. 차 안으로 들어간다. 푸시 버튼을 눌러 시동 건다. 온기가 느껴진다. 아늑한 시간이다. 그런데 내가 있는 곳은 어디지? 나는 누구지? 집중한다. 하지만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을 잊었다. 차안을 뒤져 차량등록증을 찾아낸다. 차 주인 이름이 대니얼 헤이스다. 자신을 대니얼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이제 자신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움직인다. 왜 자신이 이런 곳에서 이런 모습으로 있었는지 말이다.

 

잊어버린 기억을 찾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아무 정보도 없이 우선 쉬기 위해 모텔에 들어간다. 그곳 방송에서 여배우 에밀리를 본다. 자신을 자극한다. 낯익은 정보가 들어온다. 그녀는 누굴까? 이 의문을 품고 있는데 풋내기 경찰이 그를 급하게 달아나게 만든다. 에밀리를 통해 자신의 잊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BMW를 몰고 달려간다. 이 여행은 별로 힘들지 않지만 말리부와 LA에서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여기에 베넷이라는 무시무시한 악당이 등장한다. 자신의 정체를 결코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그는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 사람을 조정한다. 처음엔 해결사 같은 분위기였는데 그보다 훨씬 무서운 인물이다.

 

중요한 인물 세 명이 등장한다. 기억을 잃고 자신을 대니얼 헤이스라고 생각하는 남자. 악당 베넷. 마지막으로 베넷을 잘 아는 여자 벨린다 니콜스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당연히 대니얼이다. 미국 동서를 가로질러 도착한 후 마주한 사실은 자신이 대니얼 헤이스의 외모와 똑같고, 여배우 에밀리를 연기한 레이니를 죽인 제1용의자이자 그녀의 남편이란 것이다. 기억이 분명하지 않는 가운데 이 사실은 큰 충격이다. 하지만 독자에게 이 사실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펼쳐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중반으로 넘어가면 예상하지 못한 만남과 사실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때 다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호기심을 품는다. 레이니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 외에 다른 이유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 의문이 모두 풀리는 것은 반전으로 펼쳐지는 마지막 부분이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 보여준 각자의 활약과 예정된 장면들은 대니얼이 시나리오 작가란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있다. 어떤 순간에는 너무 뻔한 설정으로 혼이 나고 어떤 순간은 모두의 허를 찌른다. 하지만 이 때문에 풀리는 어두운 기억은 개인적으로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정도의 것인가 하는 의문과 더불어 마지막 장면과 엮인다. 너무 쉽게 적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현재의 삶은 과거의 내가 결정한 것이다. 지금 내가 결정한 것이다. 지금 내가 결정하는 것이 미래의 나를 만든다. 이런 당연한 일들을 약점과 협박이란 수단을 통해 사람을 조정하는 베넷의 존재는 읽는 내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 어떤 사람을 등장시켜 새로운 상황을 만들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일에 파탄이 생기는 것은 자만심이 가슴 한 곳에서 자랄 때다. 과거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바라는 바를 성취했던 그가 역습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소설의 오락적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속고 속이는 과정에 이를 엿보는 사람과 불신하는 관계가 형성되고 반전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기억 상실자와 시나리오 작가를 동일한 위치에 놓으면서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그리고, 벨린다를 통해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의 욕망을 표현한다.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한 사람들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는 베넷은 냉정한 포식자이지만 자신도 그 무리 속에 포함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알려준다. 선택과 결정, 그리고 행동. 이것을 통해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사실들이 하나로 모이기 시작한다. 두 번의 죽음 후에 발견한 어둠의 끝은 그를 웃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누군가의 선택과 결정에 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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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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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란 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한자로 뭐일까? 였다. 破瓜가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작가는 후기에 破果도 같이 집어넣었다. 그리고 독자에게 어느 한자가 당신의 결론인지 묻는다. 정말 불친절한 후기다. 시작은 분명 破果인데 破瓜를 같이 놓으니 사실 헷갈린다. 소설을 모두 읽은 지금도 어느 한자가 더 적합한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10대나 20대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당연히 후자지만 65세 살인청부업자 할머니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떻게 보면 전자에 더 어울릴 것 같지만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 후자도 무시할 수 없다. 나의 결론을 말한다면 솔직히 상관없다. 둘 다 모두 가능하다.

 

65세 할머니 살인청부업자 조각. 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방역업자라고 부른다. 문맥을 보면 수많은 신부름센터 중 하나 같이 보이지만 할머니가 속한 조직을 보면 소지섭 주연의 <회사원>이 연상된다. 그렇다고 영화처럼 엄청난 조직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월급쟁이처럼 일하는 것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청부살인을 방역으로 부르는데 이것을 위해 그녀는 늘 운동을 한다. 나이를 넘어선 엄청난 근육을 보고 감탄하거나 놀라는데 이 때문에 방송작가도 엮인다. 그녀 직업 상 당연히 멀리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늙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점점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은퇴를 고민하는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바로 이때 과거의 한 방역으로 인한 인연이 슬며시 나타난다.

 

할머니 킬러 조각 이야기다. 동시에 그녀가 살아온 시대에 대한 극단적 현실 표현이다. 살인청부가 난무하는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이라고 할 수 없다. 대단히 비현실적인데 읽다보면 한국형 느와르 소설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 지점까지 작가가 나가지 않았다. 액션보다 조각의 심리 묘사와 변화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액션 비중이 적다고 느와르 소설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단지 작가가 그런 지점까지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적기에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그렇다고 장르소설에서 빌려온 장치와 설정마저 무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히려 이것을 잘 사용하여 재밌고 흥미로운 장면을 많이 만들어내었다. 뭐 어떤 사람에게는 많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장르소설의 외형 속에 잔잔히 흐르는 조각의 마음은 순정소설의 그것과 닮아 있다. 자신을 킬러 세계로 인도한 류에 대한 애정이 바로 그것이다. 조각의 회상 장면을 보게 되면 그 시대 사람들의 삶 한 자락이 잘 나타나 있다. 많은 형제자매와 무관심한 부모. 식모 생활. 실수와 오해. 술집 생활 등. 여기에서 뻔한 전개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류의 존재 때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 실력을 가졌고, 이것을 이용해 돈을 번다. 조각의 재능이 이 뻔한 역사의 전개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를 인도하는 새로운 세계는 어떻게 보면 뻔한 전개보다 못하다. 삶의 안정을 전혀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류의 가정이 파괴되고, 류와 그녀마저 다른 업자들에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협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삶에 조그만 틈이 생기면 그 틈새로 수많은 변화가 들어온다. 조각에게 그 틈은 노쇠다. 노쇠는 일반적인 방역도 약간의 실수를 저지르게 만들고,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자신의 비밀을 엿보게 만든다. 살짝 드러난 비밀을 강 박사가 덮어주지만 불안한 그녀가 그의 주변을 맴돈다. 이런 그녀를 뒤따르며 엿보는 젊은 방역업자 투우가 등장한다. 먹이사슬 관계가 만들어지는데 20년 전 방역의 피해자였던 투우의 호기심과 엇나감 감정이 변수를 만든다. 심리 묘사가 중심인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은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존재가 바로 투우다. 과거와 현재가 어느 시점에서 만나고 충돌한다. 그때 바로 새로운 인생의 실마리가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쉬울 리가 없다. 그 때문에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지지만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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